김학철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련재—《항전별곡》(5)
2016년 04월 25일 15:28【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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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김학무는 배낭속에 영문판《맑스, 엥겔스 서한집》 한권을 휴대하고있었다. 그는 우리 대오에서 가장 근학하는 사람들중의 하나로서 류문화, 강진세 같은 소문난 독서인과 맞먹었다. 김학무는 단 일분의 시간도 아끼는 사람이라 어느새 책을 꺼내서 뒤적거리다가 홀지에 내게로 웃몸을 기울이며 그중의 한 단락을 가리켜보였다. 내가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고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오직 금수들만이 인류의 고난에 외면을 하고 저만을 돌본다.”
고 씌여있었다.
김학무는 평소의 버릇으로 이내 필기장과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미처 한 글자도 적기전에 저쪽에서 망을 서던 리극이 나직이 소리쳤다.
“적군!”
“적군” 소리에 우리는 모두 긴장해나서 안전기를 연다, 장탄을 한다 일시에 부산하였다.
누런 군복을 입은 일렬종대의 야수들은 백년묵은 이무기처럼 꿈틀거리며 우리의 산골짜기로 기여들었다.
“본대에 련락을 누가 가겠소?”
김학무가 좌우를 둘러보며 물었다.
“동무 가겠소?”
그 짚인 동무—머나먼 하와이태생의 미술가 장지광(장진광)은 두말없이 일어나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눈 깜작할 사이에 깎아지른듯한 석벽뒤로 사라져버렸다.
한데 바로 이날 오후의 간난한 고전중에 한발의 적의 포탄이 우리 김학무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 포탄은 그에게서 불과 한발자국밖에 안되는 곳에 떨어져 터졌었다. 이틀후에야 우리는 되돌아와 전장을 정리했는데 그의 시체는 찾지 못하였다. 나는 속이 타서 눈이 화등잔이 되여가지고 온갖 군데를 다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그의 유표한 초록색군모에서 떨어져나온 헝겊쪼각 하나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거기에는 휘발유를 뿌리고 태워버린 흔적만이 황락하고도 생생하게 남아있을뿐이였다. 안날 우리에게 몹시 휘두들겨맞아서 사기가 저상한 적들은 퇴각하기전에 날라가기 불편한 저들의 시체를 거기에 끌어다 가려놓고 휘발유를 끼얹어 소각해버렸던것이다.
일찌기 계림에서 그하고 둘이 찍은 단 한장의 사진마저 행군과 습격과 풍찬로숙으로 점철된 가렬한 전투생활중에서 잃어져서 남은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김학무는 죽은 뒤에 한자리의 무덤조차 남기지 않았다. 묘비 같은것은 더 말할것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아하고 엄준한 태항산이 바로 그의 불후의 묘비가 아닐건가? 나는 심심한 애도의 정으로 이 서투른 만가를 그 태항산에다 적으련다.
(다음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