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공군 부사령원 리영태(조선족) 서거
2015년 10월 09일 14:49【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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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며 오랜 시련을 겪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전사이며 우리 군의 우수한 군사지휘원이고 원 공군 부사령원인 리영태동지(조선족)의 영길식이 10월 9일 (금요일) 오전 9시에 북경 팔보산 동강당에서 거행되였다. 리영태동지는 병환으로 치료에 효험을 보지 못하고 2015년 10월 5일 저녁 8시 40분에 87세를 일기로 북경에서 서거했다.
리영태동지는 1928년 11월 4일(음력)에 길림성 통화현의 한 조선족가정에서 태여났으며 1945년 10월, 동북민주련군에 참가하고 동북전투가 제일 치렬하고 제일 간고한 시기인 1946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해방전쟁시기 리영태동지는 동만군구 위생부, 료동군구 제1병소병원, 위생부에서 직무를 담임했다. 건국초기, 공군 제4항공학교의 비행원으로 되였으며 학원대구 대장, 당지부 서기를 담임했으며 선후로 1등공과 2등공을 1차씩 기입받았다.
1951년 2월, 그는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다. 1951년 9월 25일, 치렬한 공중전투과정에서 리영태는 홀로 적기 8대를 물리치며 침착하고 랭정하게 50여곳이나 부상당한 전투기를 조종하고 안전하게 몰고와 "공중땅크"로 불리웠다. 그는 또 1등공 2차, 2등공과 3등공을 각 1차 기입받았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급 자유독립훈장과 3급 국기훈장을 수여받았다.
귀국후 리영태동지는 공군 제4사 12퇀 퇀장, 공군 제1사 부사장, 공군 제14사 사장, 공군 제10군 부군장, 무한군구 공군 사령원, 공군 부사령원 등 직을 담임했다. 1982년 11월부터 1993년 12월까지 리영태동지는 공군 부사령원을 11년 담임했으며 공군 3기 지도부를 경력했다.
령도직위에서 물러난후 리영태동지는 전국인대 중국-체코우호소조 주석, 중국-말레이시아우호소조 부주석, 중국-한국우호소조 위원, 중국민족단결진보협회 부회장 직을 담임하여 가치있는 의견과 건의를 수많이 제기하였다.
2007년 8월, 전군영웅모범대표대회에 출석하여 당시 호금도총서기 등 중앙령도동지들의 친절한 접견을 받았다. 2010년 10월, 항미원조출국작전 60주년기념일에 즈음하여 그는 중국인민지원군 로전사대표단과 함께 조선을 우호방문하며 대외교류추진에 적극적인 역할을 놀았다.
리영태동지는 중국공산당 제10기, 제12기 전국대표대회 대표이고 제5기, 제7기, 제8기, 제9기 전국인대 대표이고 제8기, 제9기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위원, 전국인대 민족위원회 위원, 전국인대 대표자격심사위원회 위원을 담임, 1988년 9월에 공군 중장계급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