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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6월 초순의 어느 맑게 개인 날 오전의 일이다. 태항산의 팔로군총사령부 소재지인 동욕거리의 자그마한 광장에서는 심상치 않은 집회—조선동지환영대회가 열리였다. 대회에 참가한것은 팔로군총사령부직속의 각 기관 일군들외에도 일본인, 윁남인, 필리핀인 등이 있어서 마치 무슨 국제성질의 대회와도 같았다. 그 집회를 가진 목적은 우리를 즉 국민당통치구역에서 봉쇄선을 돌파하고 해방구로 들어온 조선청년들을 환영하기 위한것이였다.
대회에서 환영사를 한분은 팽덕회동지였다. 체구가 우람스러운 라서경동지는 당시 정치부 주임이였으므로 대회에 참가한것은 더 말할것도 없는 일이다. 비록 40년전 아득한 옛날의 일이기는 하지만 검박한 옷차림에 용모가 강의한 팽덕회동지의 호매하고도 힘진 말소리는 아직도 내 귀전을 감돌고있다.
“나는 18집단군 70만 장병을 대표해서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우리 무기고의 문은 여러분앞에 활짝 열릴것입니다. 맘대로 고르고 맘대로 가져가십시오…”
나는 팽덕회동지의 환영사를 듣는중에 불현듯 다른 또 하나의 격동적인 회장의 정경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1938년 가을, 우리가 한구에서 조선의용대를 건립할 때 중공대표 주은래동지를 특별히 초청해서 정치보고를 들은 일이 있었다. 지금도 력력히 기억하고있지만 그 연설제목은 “동방 각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분투하자”였다. 망국노가 되기를 원치 않는 우리들—젊은 조선혁명자들은 비길데 없이 격동된 심정으로 그 절주가 분명한 쇠소리나는 음성에 귀들을 기울였다. 진리를 갈망하는 우리들은 마치 메마른 사막이 봄날의 비물을 빨아들이듯이 단 한마디도 놓칠세라 하였다. 주은래동지는 강의한 의지와 슬기에 찬 그 형형한 눈으로 우리를 유심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한어를 못 알아들을가봐, 더우기는 자신의 강소북부사투리가 좀 남아있는 한어를 못 알아들을가봐, 다들 내 말을 알아들을만한가고 두번씩이나 물어보는것이였다. 우리가 두번 다 알아듣는다고 일제히 소리쳐 대답하자 주은래동지는 비로소 안심하고 보고를 계속하는것이였다.
그후 무한이 함락되여 우리는 호남, 호북, 하남 각 전장을 전전하였다. 이태 남짓한 동안 전쟁을 해본 결과로 우리는 항전에는 맘이 없고 실력보존에만 맘이 있는 장개석의 속심사를 속속들이 꿰뚫어보게 되였다. 하여 우리 전원은 인민의 대오—팔로군 해방구로 넘어들어갈것을 결심하게들 되였다. 당시 무정동지가 팔로군의 포병련대 련대장으로 해방구에서 활약하고있었다. 무정동지는 2만5천리장정에 참가한 조선혁명자들중에서 살아서 연안땅을 밟은 두 사람중의 하나였다. 우리가 해방구로 들어갈 때의 길잡이도 다름아닌 그가 팽덕회동지와 의논하고 지하련락망을 통하여 비밀리에 파견해왔었다.
래원: 인민넷 | (편집: 장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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