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통신원 모집 통지]|시작페지 설정
최신고위층동향당건설인사임면부패척결국내경제조선족집거지중앙정책사회인물문화교육과학기획멀티미디어조선뉴스 한국뉴스국제뉴스종합보도 리론관점 스포츠 연예관광생활포토
·중경동물원, 갓 태여난 참대곰쌍둥이 처음 모습 드러내  ·호북 당양 한 기업 폭발사고로 21명 사망, 5명 부상  ·그리스 화물선과 충돌한 중국어선 침몰, 8명 실종  ·길림성 12개 성직속사업단위 사업일군 79명 공개 모집  ·2016년 길림성공무원시험 9월 5일 등록, 10월 22일 필…  ·중국과 몽골, 제9회 국방안전사무 협상대회 소집  ·외교부 대변인, 파키스탄 퀘타에서 발생한 테로습격사건과 관련해…  ·산동 연태서 "수중올림픽" 상연  ·북방, 곧 한차례 폭우날씨 맞이  ·아버지 심장 기증받은 로인 손잡고 결혼식장 입장한 녀성  ·국무원 대만 판공실, 량안민중는 법에 의해 전자통신 사기범죄를…  ·벨기에서 출생한 참대곰아기 동물원서 모습 드러내  ·멸종위기 아기동북표범 벨기에서 모습 드러내  ·외교부 대변인, 장명 부부장의 터키방문 거론  ·국방부 보도국, 일본 신임 방위대신의 언론과 관련하여 태도 표시  ·암수술 성공기념으로 산 복권 대박  ·폭염속의 얼음도시, 호랑이 물놀이로 피서  ·왕의: 항주정상회의 개도국 참가 최다의 G20정상회의가 될것이다  ·우리 나라 네티즌 처음으로 7억명 초과, 련속 9년 세계 제일  ·개막 초읽기 한달, G20정상회의 여러가지 준비사업 기본적으로…  ·중국남해넷 정식 오픈,일부 력사문헌과 법률문서 첫 공개  ·세계서 가장 깊은 온천수 수영장  ·“땅속으로 파고드는 집”…덕분에 관광객 북적  ·희귀 “시체꽃” 77년만에 개화  ·강한 충격에 끄떡없는 “슈퍼 인간”  ·악어 세마리와 동거하는 간큰 녀자  ·고릴라에게 복부 맞고 기절  ·중경시민들 수중에서 마작 놀며 더위 해소  ·할빈극지관: 바다사자에게 임신검사 진행  ·국방부 보도대변인, 중국에 대한 일본의 공공연한 비난 중단 촉구  ·국방부 보도대변인,일본의 2016년판 《방위백서》발표 관련 담…  ·장강홍수방지 단계성승리 이룩  ·전국 기업 파산 재조정 사건 정보망 공식 개통  ·하북성 지도간부 년도법률시험과 임직법률시험제도 추진  ·광서 창오현에서 리히터 규모 5.4의 지진 발생  ·우리나라, 행정허가표준화 추진  ·국가해양국, 해양재해 1급 응급예비안 가동  ·조국 휘황한 려정의 증인—중국인민해방군 륙해공 삼군의장대  ·남해 8월 1일 12시부터 휴어기 결속  ·길림 왕청 동북표범 가족 카메라에 재차 포착돼  ·400℃ 화염속에서 버틴 “불꽃남”  ·심양, 20만원 가치의 황금 속옷 등장  ·"80세 외모" 4살 소년의 시간  ·장초: “비사(飞鲨)”영웅 령혼이 하늘, 바다와 잇닿아있다  ·국방부 “싸드”에 대해 언급: 전략균형 수호 위해 필요한 조치…  ·동북호랑이 못가에서 더위를 식히다  ·당산지진 40주년: 페허속에서 고통 이겨내고 신생을  ·중국 관광객 4명, 미국서 차사고로 조난  ·2019년 북경 신공항 운영  ·대륙관광팀 23명 조난자 유해 귀환 
인민넷 조문판>>개인문집

소수민족의 문학에서 우리가 배울것

2016년 07월 04일 14:29【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1. 민족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족문학이란 말 그대로 민족의 문학을 말한다. 매우 단순해보이는 물음이고 대답이다. 그런데 정작 한층 깊이 들어가보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가령 “민족작가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물음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얼핏 보면 “한 민족구성원으로서 그 민족의 문자로 그 민족의 삶을 그린 작품이 민족문학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음직한데, 그리고 이 대답은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상황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조선족 구성원인데 한어나 다른 문자로 글을 썼다고 하자. 이럴 경우 민족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인 언어문자가 변질되어 있다(다른 하나는 민족종교이다).

우리 현역작가중 중국문단에 잘 알려진 김인순이나 과거 활약했던 백덕성, 박강평 등의 작품이 조선족문학에 속할 수 있을까? 필자가 알고있는한 이들은 조선족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지만 조선어를 모르기에 한어로 창작한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자기민족사랑이 진정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작품을 조선족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는 어렵다. 적어도 진정한 조선족문학이라 보기는 어렵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명안이라고 하는 우리말을 잘 하는 한족이 우리글로 소설집을 발간한바 있다. 상당정도 조선족의 삶이 담겨있고 일부는 한족과 조선족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나 이를 조선족문학이라 할 수는 없다. 이렇게 반영된 조선족의 삶은 좋게 봐주어야 한족의 눈으로 본 조선족의 삶일뿐이다. 다만 조선족작가로서 비록 한어로 썼다고 하더라도 그 작품에 조선족의 삶 혹은 조선족의 정체성이 반영되었을 경우에는 어느 정도 조선족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른 민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족이 점차 민족성을 상실해가고 있는것은 언어문자를 잃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닌가 한다. 자금성의 건물들에 걸려 있는 간판들은 만족어와 한어 두 문자로 되여있지만 이제 만족어를 알고있는 사람은 몇몇 학자에 한정되여있고 시골에는 만족어를 할줄 아는 만족인들이 일부 있다고 하기는 하나 문자가 사라졌기때문에 이들이 자기 문화를 상실하는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단, 샤머니즘을 고집할 경우 얼마간 더 연명할 수는 있을 것이다(샤머니즘이라는 말은 만족어의 “샤먼(薩滿saman)” “살만교”에서 연유했다. 그만큼 만족의 샤머니즘이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상당히 전형적이라는 말이 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조상들이 전승해온 무속, 무당굿은 만족의 살만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방의 수많은 민족들 대부분이 한어로 문학창작을 하는데 이를 어떻게 볼것인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른 민족어로 창작했다 하더래도 해당 민족의 삶이 반영되었다면 어느 정도에서는 민족문학으로 인정해줘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라져가는 민족문학일뿐이다. 물론 남방의 상당수 민족은 말은 있되 문자가 없다. 혹은 문자가 있다고 해도 별로 사용되지 않고있다. 이런 경우 이들 민족작가들은 대체로 자기 민족의 문화를 최대한 표현하고자 하며 그래서 민족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 있다.

요약하면 민족작가로서 자기 민족어로 본 민족의 삶을 그린 작품이 가장 전형적인 민족문학이고 다른 민족어로 창작했다 하더라도 자기 민족의 삶을 그린 작품 혹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반영한 작품에 한해 민족문학이라는 명칭으로 부를 수 있을것이다. 민족작가지만 다른 민족어로 다른 민족의 삶(혹은 어느 민족의 삶인지 불분명한)을 그린 작품은 민족문학으로서 잘 봐주어야 참고할 수 있을뿐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보면 민족문학이 민족문화의 존속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그래서 오늘과 같이 어려운 사회역사적 상황에서 전형적인 민족문학을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는 우리의 작가들은 존경받을만하다.

2. 소수민족의 문학과 소수민족 작가

과거 소수민족의 문학은 작가창작보다 구비전승의 문학으로 많이 알려졌다.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대개 그래왔다. 비록 노사(만족작가), 심종문(묘족작가) 등과 같이 국내외적으로 알려진 소수민족작가 몇 명이 있었으나 이들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소수민족문학으로서가 아니라 중화민족의 문학 혹은 중국문학으로 인식되었을뿐이다.

개혁개방후 소수민족문학에서는 에벵키족 작가 우럴투와 장족작가 자시다와나 아라이, 회족작가 장승지 등의 창작이 비슷한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개혁개방 이후의 소수민족작가와 그 이전의 소수민족작가들이 뚜렷이 구별되는 점이 있다. 바로 민족적특징이 극대화되여 표현되였고 이 점이 주류문단에서 인정을 받게 된것이다. 물론 이런 류형의 작가들은 찾아보면 많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이 몇 작가만 소개한다.

에벵키족 작가 우럴투(烏熱爾圖):

1952년생 에벵키족 작가 우럴투는 본명이 도소민(塗紹民)이고 원적지는 흑룡강성 감남현(甘南縣)이지만 내몽고 흥안맹 우란호트에서 출생하여 사냥군, 로동자, 경찰, 당위부서기직을 역임한바 있다. 에벵키족의 수렵생활과 이들의 운명이 우럴투의 창작에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던 것 같다. 1976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81, 1982, 1983 련속 3년간 전국 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조선족으로서는 임원춘이 유일하게 이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단편소설상을 수상한바 있다.

에벵키족의 특이한 생활사, 개성이 뚜렷한 사냥군과 숲속의 아름다운 풍경은 우럴투 단편소설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다. 평론가 장흥경(張興勁)은 “우럴투의 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야생 사슴과 곰이다. 에벵키족의 문화의식에서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사슴은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착하고 소박하고 용감하면서 강직한, 아름다운 품성의 화신으로 에벵키인들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에벵키인들의 자기 인격적품성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사슴의 착함과 아름다움에 반해 곰은 잔인하고 추악함의 상징이 된다.” “에벵키인들은 곰과의 싸움에서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겉보기에 대단해 보이는 곰을 정복하고 만다.”

사실 곰과 관련하여 에벵키인들에게는 여러가지 금기와 신앙의식이 있다. 에벵키인들의 토템으로서 중요한 존재인것이다. 따라서 사실상 우럴투는 자기의 소설에서 에벵키인들의 삶, 가장 근원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것이다. 현대인들이 항상 잊고사는 그 원형적인 삶의 형태가 우럴투의 소설을 통해 현대 독자들의 의식을 자극한것은 아닌가 한다.

장족작가 아라이(阿來):

1959년생의 장족작가 아라이는 사천성서북부의 아바 장족지역 출신이다. 먼저 시작품으로 문학에 입문하여 1980년대 중후반에 소설로 전향하였다. 장편소설 <진애낙정(塵埃落定)>(“확정” 혹은 “결정”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겠다)이 2000년도 모순문학상을 수상했다.

모순문학상 심시위원들은 이 소설을 관점이 특이하고 “장족문화의 깊은 의미를 담백한 마술적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하여 색채를 더했다.” “언어가 간결하고 매력적이다.” “시적인 감화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군인작가 류건위(柳建偉)는 아라이가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것이라 장담했다.

아라이는 장족인들속에서 전해지는 구비전승을 편애한다며 “거기에는 장족인들의 원시적인 사고방식과 미적인 특징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소박하면서도 깊은 인식이 담겨있다. 이런 인식은 리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이다. 중국인들은 소설의 무게감을 사상의 깊이로 평가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소설의 깊이는 무엇보다도 감정의 깊이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결국 불교도가 다수인 장족인들의 신비로운 신앙과 소박하고 진솔한 삶의 태도가 마술적사실주의 기법으로 가공됨으로써 좀 더 신비로운, 그러나 진솔한 이미지로 현대 독자들에게 다가갔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

아라이보다 한발 앞서 알려진 장족작가 자시다와는 “별빛이 없는 밤”으로 전국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한바 있다. 자시다와 또한 초기에는 의식의 흐름 등 서구의 모더니즘에 경도되었다가 마술적 사실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신비의 시각에서 장족인의 삶을 표현하고있다.

회족작가 장승지(張承志)는 회족이면서 몽고족지역에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갔던 경력이 있어 초기에는 몽고족의 삶을 그린 작품을 발표하다가 나중에는 무슬림의 삶과 가치관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 네 작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각자 민족의 삶에 뿌리를 두고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야기구조가 되든 삶의 태도나 가치관이 되든 관계없이 하나의 깊이 뿌리박은 땅이 있어야만 인류 보편적인 삶에 좀 더 가까이 혹은 창조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는 케케묵은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맞는 말이다. 새로운 창작기법, 새로운 사상을 공부하는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국 남의 뒤꽁무니만 따라가는 꼴이 된다. 자신의 뿌리가 있어야 큰 나무를 키울수 있는것이다. 또 하나, 이들 소수민족작가들이 주목한것은 때묻지 않은 자연상태의 삶이다. 현대인들에 의해 항상 망각되여온 삶의 방식, 현재 류행어로는 원생태(原生態)의 삶을 소수민족작가들은 자연스럽게 현대의 독자들에게 펼쳐보였던것이고 그것이 덕지덕지 때묻은 현대인의 의식속에 충격적으로 다가갔던것인지도 모른다.

모두 한어로 창작하는 소수민족작가들인데, 사실 소수민족의 문학을 진정으로 료해하기 위해서는 민족어로 창작된 작품을 읽어보아야 하는데, 우리가 한어를 통해 읽을수밖에 없으므로 민족어로 된 문학작품을 많이 료해할수 없어 안타깝다. 다른 민족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민족어창작은 한어로 번역되여야 다른 민족에게 전파될수 있는데 그 번역역량이 한계가 있어 문제이다.

3. 문학, 문화 전통과 문학창작

현대의 문학창작은 전통문학 혹은 전통문화의 연장이다. 과거 문학은 대체로 구비문학의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개인창작으로 이루어진 문학은 상류층의 전유물일뿐 다수의 서민들에게는 구비문학이 유일했다. 오늘날의 개인창작은 중세 후기에서 근대에 들어서는 과정에 자리를 잡은것이다.

서사문학의 경우 신화, 전설, 민화 등 구비전승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것이 사실이다. 혹은 오늘의 소설문학을 전통 서사의 연장이라 할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서사문학은 대체로 유럽의 근대소설을 견본으로 발전해왔다. 우리 소설에서 우리 구비문학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이 되겠다. 청년작가들의 경우 이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구비문학에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것은 많다. 그중에서도 이야기의 구성방법, 가치취향은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유익하게 섭취해야 할 사항들이다. 신비적인 이야기, 작품의 취미성에 초점 맞추기, 권선징악 등이 그렇다. 종교와 문화의 차이에 의해 감지되는 불가지성으로 신비감이 생성되는 외에도 소수민족의 문학은 구비문학의 신비적인 이야기를 많이 리용하는것이 특징적이다. 조광명의 중편소설 “비천”을 나는 높이 평가하는데 그 중요한 원인은 작가가 서장에서의 생명체험에 근거하여 재현해낸 신비적인 이야기구조와 가치관이 우리에게 빈약한 부분이기때문이다. 비록 구성의 정교함 면에서 이 작품은 일부 흠들이 보이고있고 주인공이 뼈저리게 느끼는 고통의 원천이 친구의 후안무치한 행위, 즉 자기 안해를 간음한 친구에 대한 원한과 안해의 실종에서 받은 깊은 상처에 두고있다는 점, 그것을 주인공의 행위에 맞먹을 정도로 부각시키지 못한것은 아쉽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색적이고 감동적이며 "낯설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서 무섭거나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우습거나 한 전설,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들으며 숨바꼭질을 놀고 땅따먹기를 놀고, 도랑물에서 고기 잡고 헤염치며 성장했던 세대가 아니다(필자 본인은 겨우 그 꼬리를 물로 성장했던것 같다). 게임(전자게임, 인터넷게임 등)에 액션영화에 “제리와 톰”, “이큐의 이야기(지혜로운 동자승 이야기)”와 같은 만화영화를 보는 등 많은 시간을 브라운관 앞에서 보내며 성장해왔다. 그래서 감수성이 매끄럽고 지혜롭지만 때로는 투박하고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늦게나마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법, 권선징악의 선악관을 배우기 위해 전통 구비문학을 복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복습으로 우리를 좀 더 조선족작가이게 할수 있을것이고 우리 문학을 좀 더 조선족문학(중국문학이나 조선, 한국문학과는 다른)이게 할수 있을것이며 그것이 오히려 타민족에게는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령 이런 경우이다. 러시아 민담연구가 프롭이 말하는 “신비의 이야기” 구조: ㉮이야기의 발단-㉯가출-㉰협력자와 만남-㉱적수와 싸움(요귀나 악한)-㉲귀환-㉳깊은 골짜기에 버려짐-㉴난제 시련-㉵결말. (프롭의 연구에는 이런 구비문학의 구조분석 혹은 귀납이 적지 않다.) 하니족 작가 중에 존문학(存文學)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작품 중에 “黑蟒橋(검은 이무기다리)” 라는 소설이 프롭의 이 서사구조와 닮아있다고 한다. ㉮㉯주인공 李弦(소년)이 아버지에 의해 시내에서 옛 전우가 사는 산골마을에 보내짐-㉰大岡, 二愣子 두 사내아이와 함께 산에 들어가 탐험-㉱호랑이, 곰과 조우-㉲호랑이를 벗어남-㉳검은 이무기(구렁이)에 의해(치켜들려) 강물에 떨어짐-㉴신비로운 할아버지의 나무집에 감-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발에 난 상처를 치료-할아버지가 飛虎隊(홍군의 한 부대인듯) 대원을 지켜낸 기이한 경력을 들음-㉵시내에 되돌아옴.

작품의 이야기구조가 프롭의 신비의 이야기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물론 존문학이 꼭 프롭의 민담리론을 공부했는지는 알길이 없다. 그러나 민족 구비전승에서 이러한 이야기구조를 영향 받았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소수민족작가들에게서는 흔히 볼수 있는 일이다.

구비전승의 모티프를 직접 삽입하는 경우도 흔히 볼수 있다. 이번에는 우리 조선족 작가의 경우를 보자. 윤림호의 소설에 “불로담에 깃든 이야기”, “천리동의 대학생”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전자는 천상의 말먹이는 할머니가 지상에 쫓겨간 하늘의 신들에게 말에게 먹일 물을 내려주고 그 죄로 하여 자신이 쫓겨갔을 때는 스스로 불로초가 되여 죄인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그 자리에서 물길이 생겨나 불로담이 되였다는 이야기로 재부의 창조가 정의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남을 배려하면서 재부를 모아야 선이다)는 교훈적인 주제를 풀어내고있고 “천리동의 대학생”에서는 도라지처녀의 이야기 즉 노총각이 도라지꽃처녀와 해로하게 된것이 그 도라지꽃을 잘 가꾼 결과라는 향토전설을 리용하여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생활에 대한 애착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역시 교훈적인 주제를 풀어내고있다. 비록 두편 모두 썩 훌륭한 리용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일종의 노력인것만은 틀림없다.

이보다 윤림호의 소설에서는 렵기적인 인물관계, 특이한 소재, 신비로운 이야기구성이 구비전통에 대한 좀 더 고급화된 리용이 아닐까싶다. 앞의 존문학의 경우와 흡사하다. 애인에 대한 락언을 지키기 위해 깊은 산속에서 19년간을 혼자 생활한 여성(“귀신포”), 심산속에서 아이를 키우며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토비경력을 가진 늙은 홀아비들과 관계를 가지고 돈을 얻어오기도 하나 그것이 모두 교사였다가 문혁에서 죽은 남편의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서였다는 한족인 녀성의 이야기(“돌배나무”) 그리고 벙어리 어머니의 시점(“숙명론”), 천치의 시점(“천치 빵떡이”) 등 특이한 인물과 특이한 시점의 선택 등은 윤림호의 소설을 좀 더 가치 있게 해주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렵기적인 이야기, 신비로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술해야 한다고 하여 그것이 우연의 구조로 변질해서는 안 된다. 사실성을 떠나면 대중문학이 되기 십상이기때문이다. 한국의 련속극을 보다보면 이야기를 굴곡있게, 재미있게 끌고나가기 위해 우연의 구조를 자주 도입하는것을 볼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본격문학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사상이니, 의식이니 하는 것은 말공부에 불과하고 본격문학이 추구하는 좀 더 차원높은 즐거움도 얻을수가 없게 될것이다.

5. 생태환경과 문학창작

지난 세기말과 금세기초를 전후하여 생태문학이라는 개념이 점차 각광을 받고있는것 같다. 이는 인류의 활동이 지나치게 지구 환경을 파괴하여 비롯된 여러가지 부작용에 직면하여 인간이 자기의 행위를 자성하면서 생겨난 문화현상이다. 따라서 작가로서는 피해갈수 없는 문제의식이 될수밖에 없다.
생태의 문제는 지구의 온난화를 부른 생태환경의 파괴, 온실가스 배출, 공업화로 인한 란개발 등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동물보호는 당연히 생태환경 보호와 관련이 있다. 이 지구상에는 인간만이 생존할 권리가 있는것이 아니다. 모든 동식물들, 특히 고급생물체인 동물은 모두가 생존의 권리를 가지고있다. 이는 지구의 온전한 존속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지구상의 최고의 동물인 인간 자체도 생존할수가 없기 때문이다.(땅은 물을 먹고, 식물은 땅의 양분과 물의 양분 그리고 태양의 에너지를 먹으며, 동물은 식물을 먹고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먹으며 인간은 그 모든 것을 식용으로 한다(혹은 할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생태계의 순환방식이다).

그렇다고 지나친 동물보호 혹은 맹목적인 동물보호도 제창할 바는 아닌것 같다. 가령 개고기 식용에 대한 비난이 그렇다. 인간은 잡식동물이기에 식물성음식뿐만 아니라 동물성 음식도 먹어야 한다. 생태평형을 파괴하지 않는 전제하에서 무슨 동물을 식용으로 하느냐는 각자 나름의 권리이다.

텔레비전에서 본 사건 소식: 동물애호자 몇명이 길을 가다가 식용개를 싣고 가는 트럭을 막고 그 운전기사를 비난했고 결국 그 동물애호자들이 차에 실은 개를 사서 인근의 애완견 수용소에 넘겼는데 그 수용소에서는 오히려 난처하게 되었다. 그 많은 개를 먹일 사료와 자금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동물애호자들의 행동은 옳은 것일까? 나중에 듣자니 그 개들은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해 대부분은 죽었다고 한다. 결국 “생명존중”이라는 일반적인 원칙마저 이들은 파괴한셈이 되였다. 굶고 지치면서 며칠 더 살다가 괴롭게 죽을것이라면 오히려 그대로 두어 빨리 죽는것이 이들 개에게는 더 나았을것이기때문이다.

그러니까 생태문학을 주목해야 한다고 꼭 동물보호만 생각할 일이 아니고 더구나 애완견 따위를 가지고 동물보호니 생태환경이니 하고 떠벌리는것은 작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동물보호는 생태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동물보호를 말하는것이다. 가령 야생동물을 식용한다고 하면 이는 당연히 생태평형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는 말이다.

몽고족작가 아율자나의 “한 사람의 고비사막”이라는 소설에서 금광회사의 통역관 까나가 사막에서 폭풍을 만나 모래에 묻히게 되었는데 때마침 그곳에 살고있던 할머니 니마다리에게 구원된다. 그리고 둘은 여러날 함께 생활하는데 까나는 로인에게서 원생적인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그후 로인에게 구해준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자 찾아갔더니 할머니와 할머니가 살던 천막은 온데간데없다. 아마도 까나가 금광회사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 정토(淨土)에 나타날것을 우려하여 이 고비사막의 비밀을 지닌채 사라졌는지도 모른다는것이다. 아시다시피 금광개발은 고비사막의 생태를 파괴하는 행위이고 금광채굴은 인간의 끝없는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이다. 그것이 오늘날 소비문화에 젖어있는 현대인의 참모습이다.

또 다른 몽고족작가 거를러치무그 헤이흐의 “늑대골 밥 짓는 연기”에서는 젊은 유목민 나르수와 그의 개들, 바누가이, 소요, 소라그의 이야기가 초원의 밥 짓는 연기처럼 피여오르다가 사라지고 사라진듯했다가 다시 이어진다. 늙은 양몰이개는 늙은 영웅마냥 비장한 최후를 맞고 어린 강아지는 건실하게 커가면서 인간이나 짐승 모두가 창망한 초원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그 존재를 자랑한다. 초원이라는 커다란 무대에서 싸우고 경쟁하고 죽고 태여나고 성장하는 생명의 존재방식, 이 또한 생태의 모습 그 자체가 되겠다. 이러한 생명에의, 자연에의 귀속감, 야성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자칫 잊고 살기 쉬운 인간과 세계의 원색적인 존재 양상인것이다. 소수민족에게는 아직도 그러한 원시적모습이 존재하며 그것이 우리 현대인이 습관화된 생활에서 자신을 뒤돌아볼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다시 우리 민족의 상황을 살펴보자. 윤림호의 소설에 “승냥이골의 마지막 종족”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승냥이와 개, 사냥군의 관계를 통해 인간과 크게 다를바 없는 승냥이들의 “정”을 그려내고있고 거기에 문화대혁명 시기 무지한 인간들의 생태파괴의 만행을 곁들여 생태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이끌어내고있다.

구비문학의 복습 문제, 생태문학의 문제는 소수민족의 문학에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외에도 여러가지 섭취할만한 양식들이 있다. 중국의 주류문학이나 한국문학에만 눈길을 돌리지 말고 소수민족의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끝내는 말

지난번에 필자는 “소설의 재미와 시의 운율”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바 있다. 현대소설이 아무리 이야기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돌이켜 보건대 필자본인은 소설에서 재미 혹은 이야기성은 가장 근본적인 존재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영원히 서사의 핵심이다. 독자가 읽어줘야 작가가 기대하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할수 있기때문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사상이나 의식을 소설속에 담았다고 해도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 한 그것은 별 의미가 없는것이다. 우리가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 쉽게 빠질수 있는 원인은 심오한 사상이나 의식때문이 아니라 이야기가 흥미롭기때문이다. 오히려 사상이나 의식은 상당히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폭력이나 얄팍한 인생태도 등이 그렇다.

필자가 거듭 소설의 재미 혹은 이야기성을 강조하는것은 과거 필자 또한 감각적인 묘사에 심취되여 이야기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심지어 하찮은 기술로 본 경력이 있기때문이다. 즉 반성하는 차원에서이다.

* <도라지>에 게재한 글입니다.

래원: 인민넷 (편집: 임영화)
  [본문 프린트]  [편집에게 편지쓰기]  [E-mail추천]
주의사항:
1. 중화인민공화국 해당 법률, 법규를 준수하고 온라인 도덕을 존중하며 일체 자신의 행위로 야기된 직접적 혹은 간접적 법률책임을 안아야 한다.
2. 인민넷은 필명과 메모를 관리할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
3. 귀하가 인민넷 메모장에 발표한 언론에 대하여 인민넷은 사이트내에서 전재 또는 인용할 권리가 있다.
4. 인민넷의 관리에 대하여 이의가 있을 경우 메모장 관리자나 인민일보사 네트워크쎈터에 반영할수 있다.
메모 남기기: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