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0일, 무순시조선족로인협회에서는 산하 각 분회회장과 부분 회원 30여명을 조직하여 신빈현 항일투쟁유적지를 답사하였다. 이번 행사는 올해 중앙으로부터 9월30일을 민족독립, 인민의 자유행복, 국가의 번영부강을 위해 희생한 렬사들을 추모하는 “렬사기념일”로 제정한데 비추어 리홍광, 량세봉 등 렬사기념비를 참배하며 혁명렬사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업적을 기리였다.
이날 아침7시, 무순시조선족로인협회 박춘걸회장 일행은 무순에서 출발하여 신빈에서 선후로 리홍광기념석상, 조선혁명군군사학교 옛터, 항일단체 통일부사령부, 항일명장 량세봉기념비, 량세봉장군 암살된 곳, 흑구 고구려산성, 량세봉의 일가족 살던곳과 한국의 전라도에서 이민와서 세워진 마을 장령자촌 등지를 현지답사하였다.
박춘걸 회장 일행의 첫 행정은 신빈만족자치현 북산에 위치한 항일영렬기념비를 찾았다. 먼저 산중턱에 위치해있는 만인갱을 돌아보고 산정상에 올라가 항일영렬기념비를 참배하고 기념비앞에서 묵도를 드렸다. 그리고 기념비 뒤에 모셔진 리홍광렬사 기념석상에 꽃다발을 올리고 묵도를 드렸다. 량세봉항일투쟁사료전시관 관장이며 연변대학민족력사연구소 초빙 연구원인 전정혁선생이 리홍광렬사에 관해 소개하였다. 리홍광은 “9.18”사변후 남만유격대의 창시자의 한사람이며 양정우의 친밀한 전우이다. 동북인민혁명군 독립사 참모장, 제1사 사장, 동북“항련” 1군 참모장, 1935년 신빈경내의 로령구에서 일본 위만군과 작전중 희생되였다. 모택동주석은“리홍광 은 동북의 유명한 의용군 령수중의 하나이다”고 하였다.
일행은 원 왕청문조선족중학교를 찾았다. 이곳은 원 화흥중학교 인데 조선혁명군군사학교 옛터이다. 이곳은 “조선족 항일투쟁의 요람”으로 불리운다. 전정혁관장이 보여준 1930년의 졸업 사진에는 학생수가 수백명이 넘었다. 당시 왕청문일대는 조선족이 많이 생활하고있는 지구로 20여개 마을의 2만여명 인구중에 조선족이1만여명이였다. 왕청문일대는 한국교민 조선독립운동 단체인 국민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총부 소재지이며 남만 조선독립운동수뇌부의 소재지이며 중요한 근거지이였다.
일행은 량세봉장군의 기념비를 향해 출발했다. 왕청문진 강남촌을 지나 이도구를 지나는데 이곳은 당년 항일단체 통일부 사령부 (1924년)소재지라고 했다.
일행은 왕청문진 강남촌 대협피구에 위치한 항일명장 량세봉 기념비를 찾았다. 참가자들은 기념비를 참배하고 꽃다발을 올렸다. 묵도를 드린후 전정혁관장이 량세봉장군의 생애와 항일투쟁 업적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량세봉은1894년6월11일 조선 평안북도 철산군 세리면 련산동의 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1910년 아버지가 별세하자 가족들을 거느리고 중국에 들어와 신빈현 영릉진 로성촌에 정착, 후에 홍묘자향 사도구촌에 이사하여 소작농으로 살아왔다. 1919년 조선“3.1”독립운동후 조선으로 돌아가 천마산항일무장대오에 가입,1923년 중국 류하현과 신빈현에서 활동, “9.18”사변후 조선 혁명당과 조선혁명군의 수뇌들이 일본 군경들에게 체포되자 그는 조선혁명군 총사령의 중임을 떠멨다. 그는 왕청문지구의 애국인사 왕동헌, 대도회 수령 량희부와 료녕농민자위단을 건립하고 후에 또 동북행정장관인 장학량의 지지하에 료녕민중자위단을 건립하였다. 중조항일무장대오는 현저한 전과를 가져왔다. 1932년 일본군과 위만군의 대토벌에 자위단이 실패하자 량세봉은 다시 조선혁명군 대오를 회복하였다. 1934년 량세봉은 양정우장군의 남만항일대오와 련계를 가져 공산당이 령도하는 항일무장과 통일전선을 형성하였다.
그해 9월20일 량세봉은 통화일본령사관에서 파견한 특무에 의해 향수하자 소황구에서 암살당했다. 량세봉의 시체는 홍묘자향 고구려 산성에 안치했는데 그후 일본헌병대가 그의 시체를 파내여 머리를 잘라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의 수급은 통화시 성벽에 오래동안 걸어 놨다가 또 산성진 관동군사령부에 걸어놨다고 한다.
일행은 또 향수하자향 소황구의 삼차로에 있는 량세봉장군이 암살당 한곳을 답사했다. 전정혁관장은 량세봉장군의 암살당한 경과를 상세히 소개하였다. 오후에는 향수하자향 쌍립자촌을 지나 조선혁명군 피복공장, 인쇄 등을 하던 곳인 홍묘자향 사도구촌 화수북촌, 그리고 사도구촌 흑구 고구려산성 남쪽기슭 김도선로인의 집터에 와서 량세봉장군의 시체를 파내여 머리를 잘라간 현장을 답사하였다. 나서 일행은 사도구촌 김구에 량세봉 일가족이 1932년까지 살던 옛터를 찾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전라도에서 1937년부터 륙속 이민와서 세운 장령자촌을 찾았다.
이날 신빈현항일투쟁유적지 현지답사에 참가한 로인들은 우리의 신변에 이렇게 보귀한 력사가 있고 훌륭한 애국주의 교육기지가 있는줄을 몰랐다며 우리의 조선민족이 남만일대에서 전개한 반일무장투쟁사를 생동하게 돼새기고 애국주의 교육을 깊이 받았다며 혁명선렬들이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철저한 해방을 위하여 보여준 위대한 국제주의정신과 애국, 애족정신, 그리고 불요불굴의 혁명정신을 따라배우고 력사를 명기하고 혁명전통을 이어가도록 후대들에게 널리 전해주겠다고 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