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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때문에 유명해진 농사군 18명

2018년 12월 20일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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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때문에 유명해진 농사군 18명

올해는 우리 나라 개혁개방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40년 동안 중국공산당의 확고한 령도 아래 중국인민은 간고하게 분투하고 완강하게 투쟁하여 두 손으로 국가와 민족발전의 웅장한 사시를 써내려갔고 중화대지에서는 천지개벽의 위대한 변혁이 일어났다. 인민은 개혁개방 위대한 기적의 창조자이고 개혁개방을 추동하는 힘의 원천이다. 일전 중공중앙, 국무원은 개혁개방 걸출 기여 인원을 표창할 데 관한 결정을 발표하여 당중앙, 국무원의 명의로 일련의 개혁개방에서 걸출한 기여를 한 개인을 표창했다.

엄굉창, 엄금창, 관우강, 엄립화… 40년 전 '가문과 목숨을 걸고' '전면도급제'를 시작한 농사군 18명중에서 현재 10명 밖에 남지 않았는데 대다수가 이미 고희를 넘겼다. 

40년 전 '개인의 도급을 허락하지 않고 땅을 나눠 각자 일하지 못하게' 하던 년대에 엄금창은 집 앞과 뒤의 얼마 안되는 땅에 생강, 파, 고추를 심고 돼지 몇마리를 길렀다는 리유로 련속 3, 4일간 비판당했다. '함께 일하고' '큰가마' 밥을 분배하는 방식은 농민들의 생산적극성을 엄중하게 좌절시켰고 일년에 번 수입으로는 량식 100여근 밖에 차려지지 않았다. 

소강촌 사람들은 굶주리지 않고 배불리 밥을 먹으려면 천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해야 하며 가구를 나눠 제마끔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소문이 새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은 앞뒤에 방 두칸으로 둘러싸인 엄립화의 집을 선택했다. 1978년 겨울의 어느날 밤, 18명의 농사군들은 각자 살길을 도모하기로 맹세하고 '비밀협의'를 체결했으며 붉은 손도장을 찍었다. 

'전면도급제'는 소강 사람들의 생산적극성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소강촌은 풍년을 맞이했으며 량식 총산량이 13.3만근에 달했는데 이는 그전 10년 산량의 총합과 같았다.

이는 강한 동풍과도 같이 순식간에 '함께 일하고' '큰가마밥'을 먹던 생활을 뒤엎고 큰 불길을 지폈으며 오래동안 잠들어있던 농촌대지를 잠에서 깨웠다. 18개 손도장으로 산생된 가정렵합생산도급제는 결국 중국 농촌의 기본경영제도로 발전했다. 중국 농촌개혁의 커다란 막이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전면도급제'를 실시한 후 소강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는 것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부유를 실현할 것이가가 문제로 떠올랐다. 소강사람들은 개혁하여 재출발했다. 2008년, 관우강이 전촌에서 첫번째 농가락 '전면도급제식당'을 개업했다. 얼마후 소강촌에는 또 다른 개혁이 시작됐는데 바로 토지류전이였다. 

현재 '전면도급제' 인솔자는 이미 점차 토지를 류전시켜 아이들과 함께 농가락, 슈퍼를 열어 땅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데 국한되지 않고 있다. 엄금창은 "소강 사람으로서, 특히 전면도급제의 인솔자로서 '천하보다 먼저 시작한다'라는 개혁정신을 계속하여 발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소강은 이미 당시 100여명의 생산대로부터 전국 10대 명촌으로 발전했고 문화, 관광, 훈련, 현대농업 네개 특색브랜드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으며 향촌진흥실시방안이 이미 완성되였다. 

엄금창은 "개혁을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계속하여 개혁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향촌진흥에서 소강촌은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경제가 번영하고 사회가 조화로우며 환경이 아름답고 촌민들의 행복한 새소강촌이 "바로 나의 '소강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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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