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40년은 연변주 경제와 사회사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40년이다. 40년 동안 연변주 력대 지도집단은 당중앙, 국무원과 성당위, 성정부의 결책배치를 참답게 관철하고 독특한 구역, 자원, 정책과 인문우세를 발휘하여 '일대일로', 연변개방, 동북진흥, 장길도 개발개방 선도구역 등 중대한 전략적 기회를 틀어쥐고 국가의 움직임에 따라 부단히 사상을 해방하고 개혁을 심화하고 개방을 확대하여 전주의 경제발전, 정치안정, 문화번영, 민족단결, 사회진보, 변경안정 등 량호한 국면을 보여줬으며 련속 5차례나 국무원에 의해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집체'로 선정되였다.
경제건설 새로운 페지 장식국민경제가 지속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고정투자가 비약적인 성장을 실현했으며 3차 산업이 전면적으로 발전하고 경제체제개혁 효과가 뚜렷했다. 개혁개방 40년 동안 연변주 경제사회발전은 날로 새로워졌고 천지개벽의 변화가 발생했다.
1978년부터 2017년까지 전주 경제총량은 8.2억원으로부터 927.6억원으로 증가했는데 불변가격으로 계산하면 108.7배 성장했고 년평균 8.9% 성장했다. 일인당 GDP는 461원으로부터 41154원으로 증가하여 90.6배 증가했다. 경제실력이 부단히 증강됨에 따라 과학기술혁신능력도 부단히 제고되였으며 연변인민의 생활질과 행복지수도 뚜렷하게 제고되였다.
1978년, 전주 고정자산 투자총액은 불과 1.2억원이였으나 2017년에 이르러서는 723억원에 달하여 년평균 성장률이 17.4%였다. 일련의 대표적 공정이 우후죽순마냥 일떠섰는데 길림-훈춘 고속철도, 조양천공항 등 대형 교통류 항목이 잇따라 건설되여 사용에 투입되였고 오동공업원, 장백산광천수산업원 등 원구산업이 왕성하게 발전했으며 돈화양수식발전소, 왕청현 310메카와트 빈곤부축항목 등 인프라항목이 인민들의 생활조건을 개선시켰다.
몇년간의 발전을 거쳐 연변주 산업구조에는 뚜렷한 변화가 발생했다. 3차 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8년의 28.3:47.8:23.9으로부터 2017년의 7.5:45.8:46.7로 조정됐고 제1산업이 20.8% 하락하고 제2산업이 2% 하락했으며 제3산업이 22.8% 상승해 서비스업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가 부단히 제고되였다.
농업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공업경제가 빠르게 발전했으며 봉사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동시에 민영경제가 한점의 불꽃으로부터 연변경제의 절반을 이끄는 산업으로 발전하여 탄생으로부터 중요한 지주로 발전하는 과정을 걸어왔다.
"나는 1981년 연변에 왔는데 처음에는 남의 집에서 3년간 일을 하고 이후 혼자 이 두부간을 열였다. 여기에서 5년간 두부를 만들고 또 5년간 양꼬치를 팔았으며 이후에는 서시장에서 10년 동안 음식업에 종사했다"고 진국강은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30여년 전 홀로 하남성에서 연변의 친척을 찾아온 날을 기억한다. 일해서 모은 돈과 여러 곳에서 빌린 돈으로 두부간을 열었다. 당시 진국강은 매일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꿈을 위해 일했다. 1981년 국무원은 <도시진 비농업 개체경제에 관한 약간의 정책성 규정>을 발표했는에 이는 우리 나라 새중국이 창립된 이래 처음으로 개체경제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진국강도 우리 나라에서 비교적 빨리 개체호가 된 사람이다.
개혁개방의 봄바람과 함께 연변에는 진국강과 같은 개체호가 우수죽순마냥 나타났다. 그들은 시장의 수요에 눈길을 돌려 발전방향을 조준하고 국가와 성, 주의 민영경제를 지지하는 정책, 조치를 정확히 파악해 대세를 따라 빠른 발전을 실현했다.
연변주공업정보화국에 의하면 작년 연변주 민영경제 주요영업업무는 2527.8억원의 수입을 실현하여 동기대비 8.1% 증가했다고 한다. 전주에 민영기업 총 2.4764만개가 있고 민영경제 종사인원이 70여만명에 달하며 민영경제 실제 세금 납부액이 57.1억원으로 전주 GDP 비중의 51.8%를 차지한다. 올해 상반기 전주 민영경제의 실제 납부 세금은 50.4억원으로 동기대비 92% 증가했는데 년말까지 각항 수치가 작년 기록을 경신하여 력사 최고치를 달성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