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는 보배산, 북쪽에는 한차간산이 있고 훌린강이 이곳으로부터 흐르고 있는 내몽골 흥안맹 호르친우익전기 바얀오보 가차(촌)은 풍수지리가 좋은 곳이다. 바얀과 오보는 몽골어로 ‘부유’와 ‘길상’을 뜻하지만 바얀오보 가차(촌)의 10년전 인당 가처분소득은 4000원 밖에 안되였는데 지난해말에는 2만 1700원에 달하여 바얀과 오보가 마침내 명실상부하게 되였다.
현지인들은 가차의 급속한 발전은 민족단결, 산업발전, 자질제고의 3대 고리를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러 민족 사이좋아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아
바얀오보 가차(촌)을 찾기 전에는 가차당지부 서기인 장군이 한족인줄로만 알았으나 후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그가 몽골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도합 317세대가 살고있는 이 마을에는 몽골족과 한족 등 혼합형 가정이 약 70세대 달한다. 여러 민족은 서로 섞여 살면서 너무나도 사이좋게 보내고 있다.
여러 민족의 우호적인 융합이야기가 많고도 많다. 1982년에 로씨야족 녀성 호수영은 바얀오보에 시집와서 37년째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웃는 얼굴로 기자에게 이 마을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좋다면서 이곳에 시집온 것은 잘된 일이였다고 말했다. 10년전에 귀주 준의에서 온 따이족 녀성 양려는 가차몽골족 청년 장경과 서로 사랑하게 되였으며 비록 집식구들이 반대했으나 양려는 가차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촌민들의 우호적이고 선량한 마음에 깊이 감동되여 자신이 남았을 뿐만 아니라 또 이종사촌언니인 왕소매를 다른 몽골족청년에게 소개했다.
가차 남쪽에는 얼무팅고러민속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거기에는 여러 민족 선민들이 남긴 물품들이 전시되여있다. 전시청 널문에는 전통적인 한족지역의 리벳이 박혀있고 그 옆 창문의 조각무늬는 오히려 몽골족 풍경이며 한족들이 사용하기 좋아하는 외바퀴차가 있고 몽골족식 소수레도 있으며 악기로는 한족들의 이호(二胡)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몽골족들의 사호(四胡)와 마두금도 있었으며 자수의 문양으로는 몽골족과 한족의 문양이 모두 있다… 같지 않은 민족문화가 이곳에서 서로 융합되였던 것이다.
호르친우익전기당위 서기인 바이윈하이는 “여러해 동안 서로 사귀고 융합되면서 오늘날 이 땅에서 여러 민족은 이미 서로간에 떨어질 수 없게 되였다. 모두들의 공동한 념원은 바로 합심협력하여 삶의 터전을 잘 건설하는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