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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문화칼럼130] 조선족식 공동체: 넘치는 ‘정’과 빈약한 ‘신뢰’

박광성

2019년 06월 24일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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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다니면서 여러 민족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봐도 ‘정’ 하면 역시 우리 민족이 최고인 것 같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만나기만 하면 풍성한 식사 대접은 물론, 그리고는 서로 돈을 내겠다고 밀치락 뒤치락 하는 모습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싸우는 것 같다. 술 한잔에 쉽게 ‘형님, 동생’하면서 친해지고 골병이 들게 대접하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려 하지 않는다.

그 옛날 시골마을에서도 생활은 곤궁해도 ‘정’만은 찰찰 넘쳤다. 이웃사이에는 음식 그릇이 늘 오갔고,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달려가서 제집 일처럼 도와 나섰다. 명절이나 계절에 따라 놀이문화가 발달했으며, 궁핍한 생활이지만 나누면서 즐겼다. 그러한 습관들이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남아있어 도시에 살면서도 민족내의 공동체들이 쉽게 재건된다.

그런데 아이로니한 것이 이렇게 ‘정’이 찰찰 넘쳐나는 조선족사회이지만 절강의 온주인들이나 광동의 조주인들처럼 힘을 합쳐서 큰 사업을 벌렸다거나 큰 돈을 벌엇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반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조선족들이 단결심이 없다거나 힘을 합치지 못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늘 듣게 된다. 그렇다면 왜 ‘정’이 찰찰 넘치는 조선족사회에서 ‘힘’만은 합쳐지지 못할가? 그것은 바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집단내에 ‘신뢰’가 부족할가? 필자는 그 원인이 바로 ‘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어떤 사람은 ‘정’을 믿고 다른 사람의 돈을 ‘슬쩍’ 해버리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정’ 때문에 돈을 꿔주고도 낯이 간지러워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친척, 친구, 지인 사이의 돈거래가 깨끗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돈을 꾸고 제대로 갚지 않는 사람의 심리적 근저에는 결국 꿔준 사람이 ‘정’ 때문에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꿔주고 달라 말 못하는 사람 역시 ‘정’에 얽매여 당당하게 갚으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이렇다보니 친척, 친구, 지인 사이에 서로 돈거래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고, 돈 말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 신사로 통한다.

그러나 상업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기본관계는 교환이고 돈거래이다. 돈거래가 없다면 현대사회도 없다. 이는 농경사회의 일종의 생활문화가 현대사회로의 전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설명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나 미국의 사회학자 파슨스는 일찍 정이나 감정 같은 정신적 요인들이 계약, 법과 같은 합리성으로 전환되여야 현대사회에 순조롭게 들어설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허나 조선족사회의 현실을 볼 때, 대도시에 와서 생활터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관념적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지인들끼리 돈거래를 꺼리며, 돈거래를 하지 못하니 개인 손에 널려있는 소자본들이 모여서 사업을 할 수 있는 큰 자본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소비돈으로 전락되여버린다. 조선족의 큰 한계인 셈이다. 따라서 인젠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 ‘정’보다 ‘신뢰’를 중시하는 풍조가 온 사회에 형성되여야 한다. 집단내에 ‘신뢰’문화가 형성되여야 ‘합작’이 일어나게 되며, ‘합작’이 이루어져야 경쟁력이 생긴다. 집단내에 협동심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대인이나, 중국에서 장사 잘하기로 소문난 온주인, 조주인 모두 집단내에 끈끈한 신뢰심이 형성되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뢰문화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우선 온 사회적으로 신용불량자를 걸러내야 한다. 사기를 치거나 신용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입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져 사회적으로 발 붙일 자리를 주지 말아야 한다. 이 방면에서 우후죽순마냥 나타나고 있는 각종 단체들이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자기 단체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신용을 꼼꼼히 잘 확인하고 단체마다 신용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반면 신용을 잘 지키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적극 홍보되여야 하며, 그런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고 합작하여야 한다.

오늘날 경쟁은 점점 치렬해지고 생존환경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개인의 힘이 약소함이 어느 때보다 실감되는 시대로, 미래는 결국 합작을 잘하는 집단에 의하여 좌지우지될 것이다. 따라서 조선족공동체도 더이상 농경시대의 ‘정’문화에 발목이 잡혀있지 말고, 현대경제가 필요한 신뢰문화가 든든히 구축하여 큰 ‘플렛폼’도 만들고 큰 ‘배’도 띄워야 한다. 단순히 ‘정’에 목매는 ‘의리맨’보다 ‘합리성’과 ‘계약정신’으로 무장한 ‘슈퍼맨’들이 활보하는 조선족사회를 그려본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