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해군은 앞으로 전진하고 휘황찬 항로는 당이 인도한다.
70년의 피어린 영광, 70년의 련마와 분발. 인민해군은 1949년 4월 23일 탄생한 이래 당의 굳센 지도 아래에서 함께 파도를 가르고 만리 해역을 넘나들며 먼 바다와 대양에 용감하게 뛰여들고 큰 걸음으로 시대발전의 조류를 따라가며 세계가 주목하는 위대한 성과를 거두면서 다섯개 병종이 구전하고 핵과 상비를 겸비한 전략적 군종으로 발전했다.
18차 당대회 이래, 중공중앙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위 주석 습근평은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의 중국꿈을 실현하는 전략적 높이에서 해양강국 건설의 위대한 호소를 하고 인민해군에 큰 기대를 걸고 깊이 관심하면서 인민해군 건설과 장원한 발전과 관계되는 일련의 전략적 계획을 그려냈다. 인민해군은 건설발전의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고 력사적 도약의 새로운 항행을 시작했다.
높이 서서 멀리 보며 청사진 그리고 수많은 배 이끌고 큰 바다로 나아간다
“바다를 향하면 흥하고 바다를 등지면 쇠약해지며 바다를 다스리지 못하면 필시 바다에 의해 다스려진다.” 이는 력사가 중화민족에게 준 각골명심의 교훈이다—1840년부터 1949년까지 백여년 사이 세계 렬강들은 총 470여차례나 바다로부터 중국을 침입했다.
“해군이 없으면 우리의 해안방어선을 보호할 수 없다.” 새중국 창립 전야, 모택동동지를 주요대표로 하는 중국공산당원들은 눈길을 바다에 돌리고 해안방어 강화와 해군건설과 관련된 어려운 탐색을 펼쳤다.
1949년 1월 8일, 중앙정치국은 서백파에서 회의를 소집하고 모택동동지가 기초한 <목전 형세와 당의 1949년의 임무>를 통과시키고 ‘연해, 연강을 보호할 해군’을 창립할 임무를 제출했다.
같은 해 4월 23일, 중국인민해방군 화동군구 해군이 강소 태주 백마묘에서 탄생되였다. 8월 28일, 모택동은 화동군구 해군을 위해 제사를 썼다. “우리는 꼭 해군을 건설해야 한다. 이 해군은 우리 해안방어선을 보위해야 하고 제국주의의 가능한 침략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새중국이 창립된 초기,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1952년 11월 17일, 모택동은 단계적으로 강대한 해군을 건설할 데 관하여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1953년 2월 19일, 모택동은 처음으로 해군부대를 시찰하고 군함을 타고 3박4일을 항행하며 ‘장강’, ‘락양’, ‘남창’, ‘황하’, ‘광주’ 다섯척의 군함에 제사를 써주었는데 모두 똑같은 내용이였다.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강대한 해군을 창립해야 한다.” 1959년, 모택동은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핵잠수함은 만년에 걸쳐서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개국령수가 그린 웅위한 청사진을 따라 인민해군은 없던데로부터 있게 되고, 작던데로부터 커지고, 약하던데로부터 강대해지는 웅대한 로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