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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분투정신이 부족한 것일가?

2019년 04월 18일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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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를 반대하는 것은 분투정신, 투철한 직업정신과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 세계는 중국의 개혁발전을 ‘근로혁명’이라고 하는데 중국은 지금도 한차례 ‘근로혁명’을 호소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법률과 법규 준수, 인문관심, 로동자권리 존중, 로동자 혁신창조의 충분한 격발과 효률 및 공평을 더 강조할 뿐이다.

요즘 996근무제(아침 9시 출근, 저녁 9시 퇴근, 한주일에 6일동안 근무제도)는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우선 프로그래머들은 인터넷회사 야근상태를 폭로하면서 ‘근무 996, 발병 ICU’라면서 스스로 비웃었고 여러명의 업계 실력자들도 륙속 이와 관련해 입을 열었다. 마운은 “만약 젊은시절에도 996을 지키지 않으면 당신은 어느때에 996을 할 수 있는가?”라고 했고 류강동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은 나의 형제가 아니다!”라면서 직언했다. 반면 리국경은 “관리자가 효률을 높이는 것이 직원들의 야근에 비해 더욱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야근이라는 화제는 직장인들의 현실적인 아픔을 찔렀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표달욕구를 자극했다. 이 화제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도화선으로 되였다. 일부 사람들은 996으로 인한 생활고를 통렬히 비난했고 일부 사람들은 “거부하면 해고당한다”는 참혹한 현실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또 일부 사람들은 996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야근비가 없는 데 대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동한 직장위치, 다원화 리익수요로 보아 이런 여론은 ‘가로로 보면 고개이고 옆으로 보면 봉우리’라는 말과 같이 부동한 관점마다 모두 합리한 점을 찾을 수 있지만 또 모두 서로 부동한 차원의 대화이기도 했다.

996 은 왜 뜨거운 화제로 되였을가? 이는 당면 사업과 휴식, 분투정신과 야근문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우선 명확히 해야 할 것은 강제적인 996은 확실한 위법행위로 우리는 마땅히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많은 론조들은 996을 분투정신과 인위적으로 묶어놓고 분투를 하지 않으면 미래를 말할 자격이 없다거나 혹은 미래를 위해서 996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데 분투와 996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론리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996을 비난하는 것은 교활한 수단으로 리익을 챙기거나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작으나 확실한 행복과 만족’에 빠지거나 ‘큰 꿈’이 없는 것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현대인은 여전히 분투가 운명을 개변한다는 인생준칙을 믿고 있지만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은 야근시간으로 근무태도를 가늠하고 건강을 망가뜨리는 것으로 직업의식을 가늠하는 론리이다. 로동권리와 휴식권리는 보장되여야 하는바 야근도 분투이지만 효률 향상 또한 분투이다. 기업 관리자로서 ‘일벌레’를 찬양할 수 있지만 분투의 명의로 모든 직원들을 ‘불모’로 잡아서는 안된다.

오늘날 중국은 중등수입국가의 행렬에 진입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각종 열망은 여전히 분투해야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회가 소중한 새 시대에 새로운 기회, 새로운 업종이 부단히 속출되고 있기에 우리는 반드시 분투하고 노력해야 한다. 강제적인 996을 반대하는 것은 분투정신, 직업정신을 창도하는 것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진정 지향이 있는 사람은 외부의 압력이 필요없이도 자각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착실하게 일하면서 더욱 밝은 미래를 개척한다. 세계는 중국의 개혁발전을 ‘근로혁명’이라고 하며 중국은 지금도 ‘근로혁명’을 호소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법률과 법규 준수, 인문관심, 로동자권리 존중, 로동자 혁신창조의 충분한 격발과 효률 및 공평을 더 강조할 뿐이다.

국제로동절이 다가오고 있다. 1877년의 5.1 대파업에서 로동자들이 웨친 구호는 “8시간 근무, 8시간 휴식, 8시간 오락”이다. ‘8시간 근무제’의 개념은 바로 이 때 탄생한 것이다. 백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력사퇴보를 미화한 그 어떤 행위에 대해서든 모두 ‘아니다’를 웨쳐야 하고 동시에 ‘분투’ 두글자의 시대적 내포를 부단히 정의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문명의 진보이고 리성의 체현이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장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