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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정음문화칼럼125] 조선족의 이주, 리산과 녀성로인들의 로후생활

최선향(장강사범학원)

2019년 04월 16일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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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여름방학, 나는 조선족녀성 생애사를 연구하기 위해 길림성 J시에 가서 조선족녀성로인들을 만나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70대, 80대, 심지어 90이 넘은 녀성로인들을 만나 그분들의 인생사를 들으며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90이 넘은 녀성로인들에게서는 언제 더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 하루에 두세시간씩, 며칠을 나누어 들은 적도 있다.

처음에는 “난 언변이 없어 말 못해요.” 라며 수줍게 이야기하시던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생기가 돋고 활기가 넘치셔 듣는 내내 그분들의 내면세계의 변화를 읽는 것 같아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찾아주어서 고맙다고, 누구도 당신이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젠 자식들도 말만 꺼내면 엄마는 또 그 얘기다, 그만 하라는 식으로 말한다고 하셨다. 기꺼이 시간을 내주시고도 나한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 그분들을 보며 한평생을 농사일과 가족, 자식들을 위해 바쳐오신 그분들이 참 고맙고 존경스웠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함께 눈물을 흘리던 그 시간들을 지금 이 글에 담아 조선족사회가 로인들의 로후생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사회의 보편적 특징중의 하나가 이주와 그로 인한 리산이라 할 수 있다. 조선족녀성로인들의 삶에서 나는 이주와 리산이 낳은 득과 실을 읽을 수 있었다. 할머니들의 자녀분들과 손자녀들은 거의 대부분 한국이나 일본 등 외국과 북경, 상해 등 외지에 가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곁에 가족이 있는 분들이 많지 않다. 그분들중에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시다 농촌의 조선족소학교, 중학교들이 무너지며 손자녀들 공부 뒤바라지를 위해 시내에 나와 살게 된 분들이 많다. 처음에는 세집을 맡아 살다가 후에는 자녀들이 번 돈으로 조선족중학교 근처에 집을 사서 시내에 살게 되였다고 하신다.

그분들은 농촌의 어려운 살림에도 자녀들을 키우고 뒤바라지 하기에 최선을 다 하셨고,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는 외국이나 외지에 나가 일하는 자녀들을 대신해 손자녀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한다.

그중 한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북경에 가 김치장사를 해 어린 손주를 대신 키웠다고 하신다. 그러다 농촌의 조선족중학교가 문을 닫아 남편과 함께 손주를 데리고 시내에 나와 세집을 맡고 손주 공부 뒤바라지를 했다고 하신다. 이젠 손주도 다 자라 북경에 가서 일을 하고 있고, 남편은 세상을 떠나 할머니 혼자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그외에 한국에 나가 일하는 자녀들을 위해 손주들을 돌봐준 할머니도 계셨는데 친손주, 외손주 모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뒤바라지를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남편이 앓아 남편 병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70대와 80대 초반의 할머니들, 특히 남편이 생존해있는 할머니들은 모두 집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아직 건강한 셈이고 로부부가 같이 생활하는 경우 서로 의지가 되여 보기 좋았다. 그분들중에는 중소학교 교사를 지내셨던 분들을 위주로 문학동아리 등 여러 동아리들이 무어져 나름 성공적인 로년을 보내고 계셨다. 하지만 80대 할머니들중에는 남편이 돌아간 다음 조선족양로원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꽤 많았다. 양로원에 달마다 내야 하는 비용은 한국이나 외지에 가서 일하는 자녀들이 분담한다고 하신다.

할머니들께 언제가 제일 행복했는가고 물으니 양로원에 와 계시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답하는 할머니들도 계셨다. 왜냐하면 매일 손수 밥을 안 지어도 하루 세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고,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다 해주니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하셨다. 실로 그분들한테는 고된 농사일 뿐만 아니라 매일 불을 지펴 밥을 짓고, 집안 청소와 빨래 등 가사일을 하며 자식을 키워야 했던 지난 시절이 힘들고 고된 추억으로 남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딱 한 가지가 안 좋다고 하신다. 자식들이 모두 한국에 나가있어 자식을 볼 수 없어 괴롭다고 하셨다. 같은 방에 계시는 다른 할머니의 자녀들이나 친척들이 할머니를 뵈러 오는 날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나누며 양로원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할머니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다. 자녀들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그 마음은 마치 중학교 때 기숙생활을 하며 언제면 엄마, 아빠가 우리를 보러 오시겠나 기다리던 어릴 적의 우리 모습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 내내 더욱 가슴이 아리고 아팠다. 양로원에 계시는 할머니들은 그렇게 자식들이 찾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다.

87세의 한 할머니는 이야기를 나누는 몇시간 내내 한 숨을 지으셨다. 73세 때 남편이 돌아가고 홀로 농촌 집에서 7년 살다 80세에 시내 양로원으로 나오셨다 하신다. 농촌의 집은 마을에 이사온 한족 부부에게 세집을 주었는데 그게 후회된다고 하셨다. 불을 때야 하는 겨울에는 부득불 시내 양로원에 살아야 하지만, 더운 여름에는 농촌의 집에 돌아가 살았을 걸 하시면서 말이다. 6남매를 낳아 키우시고 또 손자녀들까지 돌봐주었다고 하신다. 하지만 자녀들은 자녀들 대로 한국이나 외지에 나가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느라 바쁘고, 이젠 자녀들에게도 손자녀가 생겨 손자녀를 돌봐주어야 한다. 그래서 같은 시내에 살고 있지만, 바빠서 별로 와보지 못하고 명절 때나 자녀네 집에 가서 하루 이틀 자고 온다고 하셨다.

양로원에 계실 경우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있고 같이 마작놀이나 카드놀이를 할 수도 있어 좋다. 할머니들은 양로원 원장 내외가 로인들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보살펴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하지만 양로원에는 치매를 앓거나 운신을 못할 정도로 병이 심한 분들이 꽤 많아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셨다. 혹 양로원에 살다 생명을 마감하는 로인들이 생기면 할머니들 역시 마음이 우울해나고 슬프다고 하셨다. 자녀들이 한국에 있어 생명을 마감할 때도 자식 얼굴 한번 못 보고 가는 로인들이 꽤 있다고 한다. 사망 소식을 듣고서야 자식들이 한국에서 부랴부랴 돌아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간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요즘은 80대, 90대까지 장수하는 로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로인들은 모두 일찍 결혼해 일찍 자녀를 보다 보니 자녀들과의 년령 차이가 많지 않다. 때문에 로인들의 자녀들도 이미 로년기에 들어섰다. 그외에 조선족로인들 대부분이 농촌에 살다 보니 퇴직금이 없어 로후생활을 자녀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농촌에 땅이 있어 땅에서 나오는 수입이 있기는 하지만, 자녀들의 경제적 지원과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거주 조선족인구가 80만명을 넘긴 오늘, 한국에 나가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들 중에 로후생활을 한국에서 보낼 계획을 하고 있는 준로인들이 적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에서 일하며 거기서 살아가는 노하우가 생겨 그곳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겠지만, 그들의 부모 세대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에서 로후생활을 해야 한다.

한국에 나가 일하다 가끔 귀국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일하느라 바빠 자주 돌아오지 못하고 전화로 안부를 전한다. 로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한 할머니가 한국에서 일하는 며느님의 전화를 받는 걸 보았다. 할머니는 돈을 보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셨고, 또 많이 보고 싶다고, 언제 만나겠는가고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치셨다.

년세가 많아지면서 청력, 시력이 저하되고 걷기도 불편하고, 뇨실금으로 고생하는 할머니들도 계셨다. 양로원에 계시는 할머니들의 경우 모두 남편은 돌아가고 혼자 남은 경우였다. 그러고 보니 그분들중에는 자식 뒤바라지, 손자녀 뒤바라지 뿐만 아니라, 남편 병시중, 심지어 먼저 간 자식 병시중까지 맡아 하신 분들이 적지 않다. 지금은 로화되여 간신히 몸을 움직이지만, 젊은 시절 한 가정을 떠맡아 보살피고 농사일과 가족의 일상생활을 책임지며 억세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그분들이 로후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한국이나 외지에 나가있는 그분들의 자녀들만의 몫이 아닌, 조선족 사회 전체가 힘과 지혜를 합쳐 고민해보아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특히 동북 현지의 조선족중소학교들에서 학생들의 사회실천의 일환으로 학생들의 양로원 방문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조선족양로원이 중학교 근처에 있어 학생들이 방문하기에도 편하다. 학생들이 가끔 양로원에 가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그분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지역사회와 민족의 력사를 배웠으면 좋겠다. 공부는 교실과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 속의 공부만이 아니라 사회와 실천을 통해서도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력사 역시 교과서나 책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조선족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분들의 헌신적인 삶과 근검절약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 평범하지만 나름 자신 앞에 차려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그분들은 분명 민족의 자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조선족중학교 학생들이 가끔 양로원을 방문해 로인들에게 춤과 노래를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연으로 끝나는 만남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더욱 생산적인 관계가 형성되였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고 힘을 얻고, 학생들은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지혜와 강인한 정신력을 배웠으면 좋겠다. 조선족대학생들 역시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등을 리용해 사회봉사의 일환으로 양로원을 방문해 로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많은 계발과 사랑을 배웠으면 좋겠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