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성 려강에 가면 세계적인 음악명인 선과(宣科)란 분이 있다. 이 분은 그 자신이 문화유산이고, 문화유산을 만드는 활화석이다. 27살에 감옥 가서 21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여 48세에 석방되였지만, 세계를 놀라게 하는 ‘나시고악(那西古樂)’을 재창조하였다, 그리고 이 ‘나시고악’은 중국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3년전에 86세의 고령이지만 여전히 건재하였고 영어, 중국어, 나시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국제음악인이다. 그는 유명한 학자로서“음악은 공포에서 산생되였다"는 독특한 가설을 세워 음악의 기원설을 한층 보완하였다. 이로 그는 세계적인 음악정상에 올라서게 되였으며, ‘나시고악’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전파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공포에 질려 있을 때 나시족의 음악인 ‘워러러(窝热热)’가 생각났다고 한다. 석방된 후 반백의 나이로 수년 동안 나시족의 전통상례에 참석하여 동네 어르신들을 인터뷰하고, 음악의 악보와 춤을 훌륭한 그림솜씨로 멋지게 기록하였다. 수년 동안 연구하여 1986년 《천진음악학원학보》의 제4기에 중국어로 3만 7천자의 긴 론문 <음악은 공포에서 기원되였다>(音乐起源于恐惧)를 발표하였다. 그후 이 글은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였다.
금년에 다시 곤명, 려강 지역을 돌면서 려강의 유명한 화가 화품정(和品正) 선생님의 댁을 방문하게 되였다. 화품정 선생님은 동파그림에서 굴지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중국의 유명한 국화가 주림(周霖) 선생님의 외손자이다. 화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로부터 국화를 배웠지만, 차후 탄탄한 국화의 기법을 기반으로 동파문자의 서법과 그림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다. 이제 그의 동파작품은 영국, 일본, 한국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였다, 지금은 동파서화 후학들을 가르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화계의 큰 어른으로서 나시족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나시음악의 큰 기둥인 화문광(和文光) 선생님을 려강에서 다시 만나게 되였고, 가깝게 하루동안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금년 7월에 우연히 화선생님, 그리고 심천에서 찾아온 제자 익단단(易丹丹) 가수와 함께 점심식사도 하게 되였다. 2000년 초반에 화선생님은 생면부지의 호남성의 한족가수 익선생님의 부탁으로 혼쾌히 <북방의 눈(雪), 남방의 정(情)>을 작사, 작곡하여주었다. 우리는 대연고성의 중턱에 있는 화선생님의 전시실을 방문하고 내려오면서 즐겁게 두 음악인의 흥얼흥얼한 노래를 려강고성의 맑고 활기찬 시내물의 연주 속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흥이 올라오자 편하게 노래 두곡을 올린 화선생님의 제자, 그리고 노래에 푹 잠겨서 밥상에서 반주를 하는 화선생님을 보면서 오전의 얘기가 다시 떠올랐다.
화선생님은 4대가 음악인이다. 화선생님의 할머니부터, 어머니, 부인, 아들, 딸 모두 유명한 음악이다. 화선생님의 어머니는 86세의 고령인데 아직도 수십곡을 부를 수 있다. 그는 중국의 유명한 록황제 최건(조선족)과 화선생님의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이 찍은 여러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최건은 자기 어머니의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였다.
화선생님은 매우 총명하고 멋진 분이였다. 그의 동파서예는 2008년 올림픽의 대표작으로 선정되였고, 2000년 초반의 만리장성 서예전은 세계에서 가장 긴 서예로 인정받았다. 화선생님은 자신의 글씨는 보통수준이지만, 모두 아이디어가 좋아서 전국, 나아가서 전세계의 인정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는 국가1급작곡가로서 이미 음악작사 방면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서예분야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다른 서예가들과 달리 과감하게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많은 나시족들의 서예가들은 지역에 집착하고 있지만 그는 민족, 인종, 국가를 넘어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것을 나시족의 작품으로 재현하는 것이 세계화의 길이라고 하였다.
화문광선생님은 나시족은 몇세대가 대를 이어서 서예, 음악, 종교 등을 전승한 집안들이 많다고 하였다. 수직적인 전승은 잘되였지만, 수평적인 확장이 부족한데, 자신은 나시족의 문화가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나는 사회학에서 지역화(localization), 글로벌화(globalization) 두개의 매우 중요한 개념이 있는데 최근에 지역화와 세계화(글로벌화)를 함께 사용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란 개념이 있다고 설명하여드렸다. 문화방면에서도 글로컬화는 매우 중요한데 나시족에게서 가장 잘 재현된 것 같다고 하였다. 특히 나시족이 집중하여 사는 려강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세곳이 집중되였는데 이 자체가 글로컬화의 대표적 자연/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화선생님은 나의 얘기를 다시 자신의 방식으로 설명하였다. “나무가 우선 뿌리를 깊이 박아야 하는데 이것이 지역화이다. 뿌리를 깊게 땅속으로 묻어야 넘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하늘로 높게 넓게 뻗어나가는 것이다. 하나의 가지는 한국으로, 하나는 일본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세계화가 아닌가?”
이번에 이 세분 뿐만 아니라 운남성사회과학원 부원장을 지낸 양복천 선생님, 차마고도연구원 부파 원장님, 나시족의 민족화가 란벽영 선생님 등 70명 정도의 나시족엘리트들과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교류를 하였다.
일언이페지하면(一言以蔽之), 그들은 나시족의 문화를 너무 사랑하고, 말마다 우리 나시족은, 이 음식은, 이 차는, 이 떡은, 하나하나 나시족의 종교, 일상생활, 문화, 전통과 련결시켜 이야기하여주었다. 그것을 즐겁게 그림으로, 음악으로, 학문으로 승화시키는가 하면, 려강의 따뜻한 해빛처럼 미소를 지으면서 소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 그 노래, 그 그림은 빠르게 감동과 행복, 미소를 전 중국, 전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려강으로 오게 하는 이것이 그들의 지역화이고 세계화이다.
나시의 왕(土司)이 거주하는 목부(木府)로 가는 대문에 ‘천우류방(天雨流芳)’이란 글이 있는데 이는 나시족언어의 발음을 한자로 표시한 것이다. 나시말로 “책을 읽으러 가세요”라는 뜻이다. 화선생님은 나시족은 독서를 좋아하는 민족이여서 교육수준도 중국의 조선족 다음으로 높다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조선족문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