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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변강 오지에서 대외무역 교두보로 ‘대변신’

훈춘 구역합작 성과 주렁져

2019년 05월 17일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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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은 대외무역 력사가 유구하고 예로부터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련계도시이다. 새 중국 창건 70년 동안 훈춘시의 변경무역은 ‘고조-하락-궐기-전환’의 력사과정을 거쳐왔다. 특히 개혁개방 40년간 항구를 빌어 바다에 나아가는 것과 륙해련합운수, 수출가공구, 종합보세구 등 일련의 개발개방조치를 통해 훈춘의 대외무역은 부단히 국제, 국내 합작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전 시 수출입총액은 련속 2년간 90억원을 초과했다.

력사적으로 훈춘시는 편리한 출해환경으로 하여 우리 성에서 두번째로 큰 상업도시로 된 적도 있었다. 그러다 1938년에 발생한 ‘장고봉사건’(쏘련과 일본의 군사충돌)이후에 출해활동은 중단되였다. 1983년과 1984년에 훈춘은 화물을 상호증정하는 방식으로 조선, 쏘련과 교류의 문을 다시 열었고 국가에서는 1986년 6월에 훈춘의 대 조선 무역경영권을 비준, 1988년 4월에 훈춘과 쏘련 하싼구의 직접무역을 허락했다. 1992년 훈춘은 발전의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다. 3월 9일, 국무원은 훈춘을 첫패의 변경 대외개방 도시로 비준하고 9월에 훈춘변경경제합작구의 설립을 비준했으며 한대한대의 ‘카마스’, ‘라다’ 자동차가 훈춘하를 지나면서 훈춘의 대외무역은 력사적으로 가장 활약적인 시기에 들어섰다.


국무원은 선후하여 2000년 4월 27일에 훈춘수출가공구의 설립을 비준하고 2001년 2월 1일에 중-로 호시무역구의 설립을 비준했으며 훈춘시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변경경제합작구, 수출가공구와 호시무역구 ‘3구 합1’의 지역으로 되였다.

훈춘시상무국 대외무역과 과장 전귀남의 소개에 따르면 2013년 이래, 국내외 시장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훈춘시는 대외무역의 전환승급을 추진했다. ‘원자재와 시장이 외국에 있고 생산가공을 국내에서 하는’ 가공제조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국내의 여러 복장, 해산물, 목제품가공 기업들이 훈춘시에 입주했으며 동시에 조건이 성숙된 기업이 주변국가에서 경외투자기업을 설립하는 것을 방조, 지도했다. 2017년에 훈춘시의 대외무역은 최고치에 달했고 수출입총액 99억 6000만 인민페를 달성했으며 2018년에는 일련의 불리한 외부요소에 맞서 훈춘시는 대 로씨야무역이라는 이 ‘관건’을 틀어쥐고 수산품기업들이 로씨야를 향해 전환하도록 인도했다.

27년의 개발개방 려정에서 훈춘은 지난 세기의 변경무역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호시무역, 일반무역, 수탁가공무역, 위탁가공무역, 중계무역, 출경가공 등 무역방식의 다양화를 실현했으며 공업, 무역 일체화진척을 착실히 추동했다. 2018년 훈춘시는 한국, 독일, 벨지끄, 일본, 미국, 로씨야 등 71개 국가, 지역과 대외무역 왕래를 한 가운데 그중 수출을 한 나라는 66개에 달하고 수출액은 24억 2500만 인민페에 달했으며 수입을 한 나라와 지역은 27개에 달하고 수입액은 69억 5500만 인민페에 달했다. 2019년 1.4분기의 대외무역 수출입총액은 2018년 동시기 대비 12% 성장한 19억 8000만 인민페에 달했다.

훈춘정성공업무역유한회사 총경리 우윤겸은 가장 일찍 훈춘수출가공구에 공장을 건설한 대련기업가이다. 회사는 주요하게 일회용젓가락, 아이스크림막대기, 이쑤시개 등 제품을 생산하며 일본, 한국, 구라파 등 지역에 수출한다. 그는 “훈춘수출가공구에서 원자재와 시장이 외국에 있는 기업에 대해 면세하는 정책에 끌려 투자를 결심했습니다. 지난해에 수출입총액은 7000만원에 달했고 올해는 9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고 말했다. 그의 인솔하에 현재 3개의 대련기업이 륙속 훈춘수출가공구에 입주하고 있다.

래원: 연변일보(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