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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을 불우아이들의 아버지로

—153명 불우아이들을 키워온 "화룡시희망복리원"의 리문철원장 이야기

2012년 11월 28일 10:05【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8월 30일과 31일 저녁 7시 50분에 중앙텔레비죤방송 제1채널의 “감동신변인물”프로에서는 상, 하로 나누어 8분간 “153명 아이의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화룡시희망복리원”의 리문철원장(59세)의 사적을 보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리문철은 장장 39년간을 불우아이들의 아버지로 되여 자기의 빛과 열을 깡그리 153명 불우아이에게 쏟아왔다.

◆ 불우아이들의 "총각아버지"

1973년의 일이다. 당시 20세인 리문철은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갔다가 로동자모집에 의하여 화룡시부동산관리국의 로동자로 배치되였다. 출근하여 얼마 되지 않는 어느날 이웃집 남자아이가 길가의 헌신의 신바닥에서 고무를 뜯어내고있었다. 사연을 물으니 아이는 자기 집에서는 돈이 없어 소금을 사지 못하는데 오늘 아침에도 소금을 넣지 않은 국을 먹었다는것이였다. 너무도 기막힌 사연이였고 소금을 사기 위하여 헌신을 주어 고무를 뜯어내는 아이가 너무도 불쌍해보였다. 후에 알아보니 이 집은 성이 박씨였고 아버지는 죄를 지어 감옥으로 가고 집에는 어린 자식 5명과 중병으로 신음하는 어머니가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있었다.

리문철은 이 가정을 돕기로 작심하였다. 그는 결연히 이 가정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였는데 당시 그는 월로임 39원을 전부 이 가정에 들여 놓았다. 경제원천이란 리문철의 얼마 안되는 로임뿐이였기에 그는 생활에 보태기 위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 나무를 해오고 산나물을 뜯었으며 밭에 나가 곡식이삭을 주었고 지어는 쥐구멍을 파서 낟알을 얻기도 하였다.

후에 결혼한 리문철은 이 집에서 나왔지만 의연히 아이들의 학잡비와 생활용품을 감당하면서 도움과 관심을 멈추지 않았다. 박씨네 넷째아들은 체격이 좋은데 자기 가정이 사회적으로 멸시를 받는다는 반역심리가 생겨 늘 말썽을 일으켜 파출소를 제집 나들듯했다.이때마다 리문철이 나서서 뒤수습을 하군 하였다. 파출소에서도 리문철을 보호인으로 인정하고 그가 말썽을 일으키기만 하면 리문철을 찾군 하였다. 리문철은 구류소에 갇힌 그를 찾아 교양하는 한편 먹을것이며 옷을 가져다주군 하였다.

리문철의 정성은 끝내 그를 감동시키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고 맹세하였다.

그후 박씨네 넷째아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사회에 진출한후 한국에 나가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고 돌아온후 지금은 운수업과 공정기계들을 경영하고있는데 여러모로 리문철의 사업을 돕고있다. 박씨네 다섯 자식들은 지금 사회에서 열심히 살고있는데 리문철을 따라 남을 돕는 일에 열성을 다하고있다. 특히 막내이고 유일한 딸인 박춘금은 지금 신동소학교의 교원으로 일하는데 지난 15년간 불우아이들에게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주고있다. 박춘금은 늘 불우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돕고있을뿐더러 경상적으로 자기 집에 데려다가 숙박시키면서 공부를 시키고있으며 2년간이나 어려운 아이를 자기 집에 데려다 키우기도 했다.

리문철은 1979년에 서로 뜻이 맞는 처녀 채명자를 만나 1980년에 결혼하였다. 불쌍하게 자란 채명자는 리문철의 사업을 적극 지지해나섰다. 당시 리문철은 년로하고 다병한 량부모와 수양하고있는 2명의 불우아이와 함께 18평방메터의 초가집에서 생활하였다.

◆ 뼈돈으로 불우아이들을 수양

불우아이들을 수양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그 돈을 벌기 위하여 리문철부부는 갖은 노력을 다하고 갖은 고생을 다 겪었는데 진정 뼈를 갈아 번 돈이였다. 이들은 닭도 치고 돼지도 길렀으며 상점도 경영하면서 불우아이들을 부양할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갖은 고생을 다했다.가정지출을 줄이기 위하여 이들은 10여년간 집에서 석탄을 때지 않고 밭에서 강냉이대를 주어다 때거나 저목장에 가 나무껍질을 벗겨다 땠다.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수양하는 아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은 늘 돈이 딸렸다. 안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집에 돈 한푼도 없어 리문철은 남의 돈을 꿔서 병원비용을 갚았으며 집에 쌀이 없어 남의 쌀 2.5킬로그람을 꿔서 안해에게 미음을 끓여주었다.

채명자는 끝내 한국행을 결정하고 한국에서 5년 반이나 고된 나날들을 보내면서 돈을 벌어 집에 꼬박꼬박 보내여 불우아이들을 수양하는 비용을 감당하였다.

리문철은 불우아이들을 수양하는 자금원천을 넓히기 위하여 남의 돈을 꿔서 곰사양을 시작, 곰사양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20여년간의 노력을 거쳐 그의 곰사양장은 화룡시에서 제일 큰 곰사양장으로 되였다. 지금 그가 복리원을 경영하는 비용의 대부분은 곰사양장에서 감당하고있다. 그리고 리문철은 공정기계들도 경영하고있는데 복리원의 운영에 큰 도움이 되고있다.

리문철은 불우아이들을 수양하는 규모를 확대하기 위하여 2001년에 대부금으로 부지면적이 2만여평방메터이고 건축면적이 3000평방메터인 파산된 화룡시미형전동기공장을 사들이였다. 이 공장을 사들인후 리문철은 2002년에 희망복리원을 정식으로 설립하였다. 하여 희망복리원은 수양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을 때에는 30여명에 달하였다.

◆ 넓은 사랑의 품

리문철은 불우아이들을 만나기만 하면 한번도 그저 스쳐지나간적이 없다. 1980년에 있은 일이다. 투도진에 하향하였던 리문철은 량친부모를 잃고 형님과 함께 생활하는 남모라고 하는 한 학생이 화룡고중에 붙었으나 돈이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사연을 알게 되였다. 리문철은 이 학생을 자기들의 18평방메터짜리 초가집에 데려다가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를 시켰는데 물론 학잡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은 그가 감당하였다. 그의 집에서 3년간 공부한 이 학생은 끝내 자기가 지향한 대학에 입학하였다.

2002년에 안해 채명자가 입원한 병실에는 김해연이라고 하는 한 녀자애가 입원하고있었는데 온 하루를 울음으로 보내고있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이 애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였고 얼마전에는 아버지까지 뇌출혈로 사망되였기에 고아로 되였는데 간염에까지 걸려 고생한다는것이였다.

녀자애가 퇴원한후 이들 부부는 이 녀자애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여 여러가지 보건품과 색다른 음식을 먹여 몸을 춰세웠으며 학습을 잘하도록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이 녀자애는 2007년에 대학입학꿈을 이루었다.

리문철이 수양한 불우아이들중에는 이미 50여명의 대학생이 나왔고 석사연구생과 박사연구생도 4명이나 된다.

리문철은 불우아이들을 수양하는 동시에 기로에 들어섰던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찾아주는데도 큰 공력을 들였다. 리문철은 다년간 기로에 들어섰던 청소년 30여명이나 교양하여 옳바른 길에 들어서게 하였다.

리문철부부의 이같은 장거는 당과 정부의 높은 긍정을 받았고 사회적으로 큰 감동을 일으켰다. 리문철은 선후로 전국5.1로력모범메달획득자, 길림성로력모범, 중국백년시대인물선진개인, 전국도덕모범, 전국공익사업걸출인물 등 영예를 100여차나 획득하였다. 39년이 지난 오늘 리문철은 “총각아버지”로부터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불우아이들의 할아버지”로 되였으며 간염 등 여러가지 심한 질병에 시달리고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불우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차넘치고 불우아이들을 안아주는 그의 품은 항상 뜨겁기만 하다.

래원: 연변일보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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