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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새 중국 이곳에서 걸어나왔다—

서백파, 새 시대 ‘시험보기’ 로정의 길 열어놓았다(장려한 70년•새 시대 분투)

본사기자 장지봉

2019년 04월 11일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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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전, 봉화가 하늘을 뒤덮고 전파가 울려퍼졌다. 당중앙은 하북 서백파촌에서 ‘3대전역’을 지휘하여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고 서백파로부터 출발하여 북경으로 ‘시험보러’ 떠났다—새중국은 이곳에서 걸어나왔다!

올해 청명시절에 많은 사람들은 호타하강반의 서백파를 찾아왔고 어제날의 전파는 시공간을 넘어 메아리쳤다. 작은 농촌마을은 하나의 ‘거작’으로 이곳에서 어렵던데로부터 휘황함으로 나가는 분투의 서사시를 읽을 수 있고 새 시대 ‘시험보기’ 로정의 길을 비추어주고 있다.

정신의 고지, 홍색정신은 대를 이어간다

“두살 때 내가 병에 걸렸는데 집안사정이 어려워 치료할 수 없었다. 집사람들은 나를 문앞의 방아돌에 올려놓았다. 그 때 우리집에 들고 있던 동필무 부부가 이를 발견하고 나를 부대 위생소에 보내 구해줬다.” 옛날을 추억하며 서백파촌의 73세나는 당원 염해청은 투박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오늘날 이 연자돌은 묵묵히 그의 집앞에서 ‘찌익찌익’ 소리를 내며 끝 없는 두터운 정을 이야기한다.
 
염청해는 41년의 당령을 갖고 있고 그의 삼촌 염지정은 마을의 지부서기를 맡았었다. “삼촌은 이전에 늘 사람들에게 혁명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염청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내가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서백파기념관이 락성된 뒤 많은 사람들이 혁명성지를 찾아왔다. 염청해는 평균 매주 두차례씩 사람들에게 ‘주제강연’으로 혁명이야기를 해주었다. 큰 소리가 없이 모두 ‘토배기말’이였다. 몇년래 그는 흰머리가 많아지고 주름살은 깊어졌으나 끈끈한 정은 종래로 변하지 않았다.

홍색정신은 대대로 이어졌다. 딸 염문언은 ‘90년대 출생’ 단원이다. 그녀는 2013년 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에 돌아와 서백파기념관의 전문해설원으로 되여 ‘홍색아나운서’로 되였다. “마지막 한사발의 쌀이 군량으로 되였고 마지막 한치의 천이 군복으로 되였다. 마지막 낡은 솜이불이 담가에 덮어졌고 마지막 혈육을 전장으로 내보냈다.” 매번 염문언이 그 때의 전선지원노래를 부를 때면 관광객들은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묵묵히 다 듣고나서 오래도록 깊은 생각에 빠진다.

서백파는 정신의 고지이다. “서백파는 승리로부터 더욱 큰 승리에로 나가는 전환점이였다.” 서백파기념관 연구부 주임 강언신은 이렇게 말한다. “ ‘두가지 반드시’는 서백파 정신의 요점의 하나이다. 련이은 승리를 거둘 때일수록 명석함을 유지해야 한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