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북경에서 일하는 장령은 퇴근할 때 마트에 들려 고향에 돌아갈 때 엄마, 아빠에게 드릴 음력설 선물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돌아나오고 말았다. 그는 "엄마, 아빠께 설명절에 어울리고 두분이 진짜 마음들어하는 선물을 사드리고 싶은데 아무리 고민해도 정말 고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장령에게만 있는 것이 아나다. 미니블로그 등 소셜플랫폼에서는 '음력설에 집에 뭘 가져갈가'라는 질문이 재차 열띤 토론화제로 등장했다.
집에 돌아가 설을 쇠는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한가지 문제에 직면하는데 그것은 바로 '설에 집에 뭘 가져갈가?'라는 것이다. 비록 부모는 “아무것도 살 필요 없다. 집에 오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지만 자녀들은 흔히 빈손으로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는다. 비록 부모와 형제자매가 바라는 것은 단지 온 가족이 모여 명절을 보내는 것이지만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은 적지 않은 사람과 부분적 가정의 전통이다.
겉으로 보기에 '음력설에 집에 뭘 가져갈가'라는 문제는 비교적 간단한 것 같다. 혹자는 선물을 받을 사람이 뭘 필요로 하면 뭘 가져가거나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특산물을 가져가면 되지 않는가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고 하거나 가져가려고 하는 특산물이 고향에서도 판매된다고 하면 더 고민스럽게 된다.
사실 이는 '행복한 고민'이다. 외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설이 되여 귀향하여 가족과 모이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이런 만남에 더 큰 가치를 더하기 위해 선물을 고르려면 꽤나 고민해야 한다. 물질적으로 풍부한 오늘날, 눈 앞에 가득한 좋은 상품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뭘 사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데 이 또한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년대에도 '집에 뭘 가져갈가'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집에 뭘 가져갈가’라는 고민은 너무 많은 선택사항 때문이다. 특히 전자상거래시대에 들어선 후 각지 특산물과 국외 상품이 온라인에서 모두 팔리고 있고 또 택배로 집까지 배달해주기에 소비자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집에 뭘 가져갈가'는 시대의 진보, 경제발전과 사회변화를 관찰하는 미니'창구'라고 할 수 있다. 비록 10년 전 혹은 20년 전에 많은 사람들이 크고작은 짐을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모습이 지금과 비슷하지만 짐 속에 들어있는 선물에는 차이가 큰바 예전에 비해 지금의 선물은 더 풍부해지고 품질도 더 좋아졌다.
필자는 집에 뭘 가져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 복잡한 문제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부모나 다른 친척들에게 나름대로 정성들여 고른 선물을 가져가면 그들이 꼭 즐거워할 것이는 것이다. 비록 당신이 가져간 선물이 고향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당신이 집으로 돌아갈 때 정성들여 선물을 골랐다는 이 한가지 리유 때문에 그들에게 놀람과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선물은 가볍지만 정은 무겁다(礼轻情义重)”는 말은 중국 사람들이 음력설에 친척들에게 선물을 주는 상황에 알맞는 것 같다. 꼭 물건이 비싸야 더 두터운 정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작은 선물로도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표달할 수 있다. 설사 집에 선물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해도 친척들은 여전히 뜨거운 포옹으로 당신의 귀가를 환영할 것이다.
근 2년간의 정황으로부터 보면 명절 후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자동차 트렁크와 크고작은 짐 속에는 모두 친척들에게서 받은 선물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당신이 친척들에게 가져간 선물보다 더 많은 선물을 그들로부터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친척사이에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가치로 따질 수 없지만 이는 서로의 마음과 사랑을 표달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사실 '음력설에 집에 뭘 가져갈가'라는 문제는 온라인, 오프라인 경영자들에게 한가지 계시를 주는바 많은 소비자들이 집에 갈 때 뭘 가져갈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현유의 상업서비스가 아직 소비자들의 음력설 선물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음력설 선물 상품을 좀더 합리하게 설계하여 더 많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만족을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