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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중공중앙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정협 부고

리붕 동지 서거

2019년 07월 24일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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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침통하게 선고했다. 중국공산당 우수당원, 시련을 겪어낸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전사, 걸출한 무산계급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 중국공산당 제12기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제13기, 제14기, 제15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원 국무원 총리,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리붕 동지가 병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2019년 7월 22일 23시 11분 북경에서 91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리붕 동지는 1928년 10월생으로서 사천 성도사람이다. 그는 혁명가정에서 태여났으며 유년시기에 부친이 영용하게 취의하였다. 소년시기에 그는 가정의 영향을 받아 주동적으로 혁명사상을 접수하고 혁명사업에 투신할 뜻을 세웠다. 1941년 3월, 그는 연안에 가 혁명사업에 참가하여 혁명리론과 과학문화 지식을 교육받았으며 1945년 11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해방전쟁시기 그는 당조직의 호소에 향응하여 전선에 나갔고 선후하여 진찰기전업회사 기술원, 할빈유지공장 부책임자, 당지부 서기를 력임했다. 1948년 9월, 당조직의 배치에 따라 쏘련에 류학을 갔다. 1955년 귀국한 후 그는 주동적으로 기층에 가 사업하였는데 선후하여 풍만발전공장 부공장장, 총공정사, 동북전업관리국 부총공정사, 관제국 국장, 부신발전공장 공장장을 력임했다. 1966년부터 1979년까지 북경전력공급국 당위 대리서기, 혁명위원회 주임, 북경전업관리국 국장, 당조 서기를 력임했다. ‘문화대혁명’기간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당성 원칙을 견지하고 실사구시하게 투쟁을 진행하였다. 1979년 4월부터 전력공업부 부부장, 당조 성원 겸 화북전업관리국 당조 서기, 전력공업부 부장, 당조 서기, 수리전력부 부부장, 당조 부서기를 력임했다. 그는 창조적으로 당중앙의 ‘전력선행’ 전략을 관철하였는데 전력을 적당하게 앞서 발전시킬 것을 제기하여 우리 나라가 발전소 건설과 전력 생산, 전력망 관리 등 면에서 거족적인 진보를 이룩하도록 추동했는 바 우리 나라 전력공업의 걸출한 지도자, 핵발전사업의 중요한 개척자이다. 1983년 6월, 리붕동지는 국무원 부총리를 맡았으며 1985년 9월 중국공산당 제12기 5차 전원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서기처 서기로 추가 선출되였다. 그는 에너지, 교통, 중점건설대상 등 사업을 맡았으며 '7.5'계획 에너지교통 면의 발전방침 연구에 참여하고 종합적, 통일적인 교통운수체계 건립과 기본건설체제 개혁을 추동하고 중대한 기술장비의 연구 제조 템포를 다그쳤다. 1987년 11월, 리붕 동지는 중국공산당 13기 1차 전원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상무위원으로 당선되였으며 같은 달 6기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제23차 회의에서 국무원 대리총리로 임명되였다. 1988년 4월, 7기 전국인대 1차회의에서 국무원총리로 임명되였다. 그는 치리정돈과 개혁심화 방침을 견결히 관철하고 국민경제에 대해 거시적조절을 진행하는 새로운 수단과 새로운 방법을 탐색하여 우리 나라 경제가 곤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전시기에 들어서도록 추동했다. 1989년 6월, 중국공산당 13기 4차 전원회 후 강택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앙령도집단의 주요성원으로서 리붕 동지는 기치가 선명하게 중앙정치국의 대다수 동지들과 함께 과단한 조치를 취하여 동란을 제지하고 반혁명폭란을 진압하여 국내 국세를 안정시켰고 이 당과 국가의 전도, 운명과 관계되는 중대한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였다. 1989년 6월, 중국공산당 13기 4차 전원회의 후 강택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앙령도집단의 중요성원으로서 리붕 동지는 등소평리론과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당의 11기 3차 전원회의 이래의 로선, 방침, 정책을 깊이 관철함으로써 당과 국가 사업의 발전을 위해 전심전력하였다. 1992년 10월, 리붕 동지는 중국공산당 14기 1차 전원회의에서 재차 중앙정치국 위원, 상무위원으로 당선되였다. 1993년 3월, 8기 전국인대 1차회의에서 그는 재차 국무원 총리로 임명되였다. 등소평 동지가 남방담화를 발표한 후 그는 등소평 동지의 개혁개방 사상 주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선전하고 관철하였으며 중국공산당 14차 대표대회 정신을 견결히 관철하여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개혁 발걸음을 다그치고 대외개방을 확대하고 거시적 조절을 강화하고 개선하였으며 당중앙의 령도하에 ‘9.5’계획을 주재하여 제정하고 한패의 국가 중대대상을 배치 및 건설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지속적이고 쾌속적이며 건전한 발전을 추동했다. 1997년 9월, 리붕 동지는 중국공산당 15기 1차 전원회의에서 또 다시 중앙정치국 위원, 상무위원으로 당선되였다. 1998년 3월, 9기 전국인대 1차회의에서 그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당선되였다.

중앙에 와서 사업한 후 리붕 동지는 국가교육위원회 주임, 국무원 환경보호위원회 주임, 중앙전문위위원 주임, 국가과학기술지도소조 조장, 중앙외사사업지도소조 조장 등을 겸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환경보호, 외교와 국방공업 등 령역에서 대량의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과학기술은 제1생산력’ 사상과 교육 우선발전 전략을 관철하였고 과학기술체제 개혁, 교육체제 개혁을 대폭 추진하였으며 지식인 정책을 착실히 락착하고 국가의 총체적 과학기술 실력을 제고하였으며 개혁개방 여러 전선에 대량의 인재를 수송하였다. 그는 환경관리를 강화하였고 실천중에서 환경보호 기본국책과 ‘세가지 동기화’, ‘세가지 통일’ 전략방침을 최적화였으며 중국특색 환경보호의 길을 초보적으로 개척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독립자주의 평화외교정책을 견결히 관철, 집행하였고 평화공존 5개 원칙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대량의 탁월하고 성과 있는 량자, 다자 외교활동을 조직, 참여하였으며 전방위적인 외교 새 국면을 개척하기 위하여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중공중앙의 통일전선과 인민정협의 방침과 정책을 견결히 관철하고 ‘한나라 두가지’제도 방침을 관철하였으며 향항, 오문 회귀의 각항 사업에 참여하고 지도하였다. 그는 삼협공사의 과학적, 민주적 결책과 건설중에서 중요한 작용을 발휘하였고 우리 나라 유인우주비행사업의 발전을 적극 지지하고 추동하였다. 리붕 동지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중요한 개척자, 충실한 실천자, 적극적인 추동자이다. 그는 시종일관 중국국정으로부터 출발하여 개혁, 발전, 안정의 관계를 정확히 처리하였고 재무와 세무 체제, 금융체제, 가격체제, 대외무역체제, 사회보장제도와 국유기업 개혁을 통괄 추진하였으며 농촌정책을 안정시키고 경제특구의 발전을 지지하였으며 계획경제체제로부터 사회주의 시장경제체로의 전환을 온당하게 추진하고 20세기말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초보적으로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였다. 리붕 동지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민주법치 건설의 중요한 지도자이다. 그는 헌법수정소조 조장을 담임하면서 헌법 수정안 초안을 작성하고 전국인대에서 채택되게 했고 국가의 기본법 형식으로 등소평리론의 지도사상 위치를 확립하였으며 의법치국의 근본 방침과 책략,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기본 경제제도와 분배제도 및 비공유제경제의 중요작용 등 내용을 명확히 하였고 임기내에 법률과 관련 법률 결정초안 100여건을 심의 통과시켜 헌법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법률체계의 초보적 형성을 추동하였다. 리붕 동지는 인민군중 특히는 곤난한 군중들에게 깊은 감정을 지니고 빈곤해탈사업을 고도로 중시하였으며 국유기업 정리실업 종업원들의 질고를 다함없이 헤아려주었다.

2003년 3월, 리붕 동지는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 직무를 더는 담임하지 않았다. 지도자 일터에서 물러난 후 그는 호금도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중앙을 견결히 옹호하고 지지하였고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을 견결히 옹호하고 지지하였으며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을 관심하고 당작풍 렴정 건설과 반부패투쟁을 견결히 지지하였다.

리붕 동지의 일생은 혁명적인 일생이고 전투적인 일생이며 휘황한 일생이고 전심전력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공산주의사업을 위해 분투한 일생이였다. 그의 서거는 당과 국가의 중대한 손실이다. 우리는 그의 혁명정신, 숭고한 품덕과 우량한 작풍을 학습하고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두리에 더욱 긴밀히 단결하여 초심을 잊지 않고 사명을 명기하며 초요사회 전면 건설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며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의 중국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분투해야 한다.

리붕 동지 천추에 길이 빛나리!

래원: 연변일보(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