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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개혁개방 40년, 장편소설이 걸어온 려정

2018년 12월 19일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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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40년을 맞은 지금, 우리의 학술문화는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개혁개방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화독서보는 학술문화령역의 궤적을 정리해냈다.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 소집 이후 당중앙은 개혁개방의 정확한 로선을 결정했다. 그해 《상처》가 공개발표되면서 ‘상처문학’의 사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이후 왕몽 등 일대의 중년작가들이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서 ‘반성문학’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1기 3중전회 이후는 사상해방운동이 전국 대지에서 일어나면서 사람들의 사상을 옥죄던 ‘쇠사슬’이 풀리기 시작했다.

당시 ‘상처문학’에 대한 해석은 늘 류심무의 《담임선생님》을 가장 전형으로 앞세웠다. 엄격하게 따진다면 《담임선생님》은 ‘상처문학’보다는 ‘반성문학’에 가까웠다. 주인공은 정면인물이였고 이 주인공을 통해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무지몽매한 교육에 대한 반성을 담아냈는데 이는 반성문학의 특점에 부합된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반성’ 성질을 띤 작품을 ‘상처문학’으로 정의를 내렸을가?

문학사발전의 시각으로 보면 먼저 ‘상처’가 있었고 ‘반성’이 뒤를 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문학’은 변두리로 몰리게 됐고 ‘반성문학’이 빠르게 새시대 문학의 주류로 자리잡아갔다.

짧은 시간 안에 상해의 문예창작은 시대의 선두를 달리기 시작했다. ‘상처’는 그 시대의 ‘령혼’을 움직였고 대중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건드리며 민중들의 억눌렸던 정서를 폭발케 했다. 당시 북경에서도 이러한 문학사조가 일기 시작했다.

문예는 극히 특수한 역할을 발휘하기에 시대와 정치의 앞장을 달렸다. 시대의 변화 앞에서 한물간 리론체계는 붕괴됐지만 미처 새로운 리론이 뼈대를 갖추지 못했다. 사상계와 리론계를 포함한 분야가 전문적인 체계를 세우지 못한 시기에 시대특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문학예술이였다. 문학예술의 창작은 성숙된 리론구축에 기대는 게 아니라 민감하고 활력이 넘치는 감지능력에 의해 죄우지되기 때문이다.

1985년부터는 ‘뿌리찾기문학’의 시작이였다. 문학예술은 점차 자각의식이 형성되면서 성숙단계로 넘어갔다. ‘5.4’신문학으로부터 시작해 문학의 주류는 강렬한 사회혁명의 정치수요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인생’, ‘대중’, ‘로동자, 농민, 병사’였다. 문학과 정치는 언제나 긴밀하게 이어져있었다. 1985년에 이르러 ‘뿌리찾기문학’이 고개를 쳐들면서 문학과 정치는 구분되기 시작됐다. ‘뿌리찾기문학’의 기치는 문화심미, 즉 문화심미가 직접적으로 정치수요를 대체했다.

하지만 문예가 완전히 정치를 탈리 한 건 아니다. 문화심미가 주체로 되고 정치는 그중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다. ‘뿌리찾기문학’은 청년작가들에게 창작규칙에 부합되는 새로운 창작도로를 마련해주었다.

‘뿌리찾기문학’의 작가들은 대부분이 지식청년작가들이였다. 지난 세기 50년대에 태여난 이들은 모두 새시대의 문학초기에 활동했지만 정치수요를 주체로 하는 문학창작 사조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지 못했다. 이들은 문단 등단 초기 선배들의 닦아놓은 정치수요 도로를 따라 창작을 시작했기에 큰 성과를 따내지는 못했다. 그들은 력사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선배작가들에 비해 부족했지만 시대에 대한 자기만의 인식방식이 있었다.

당시의 ‘뿌리찾기문학’은 창신성을 띠였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뿌리찾기문학’ 사조에서는 일련의 실험소설들이 용솟음쳐나왔다. 장승지의 《북방의 강》, 가평요의 《상주초록》, 아성의 《바둑왕》 등이다. ‘뿌리찾기문학’은 강한 예술발생력을 지녔다. ‘뿌리찾기문학’은 전통문화 원소와 서방현대주의 원소를 두루 갖추면서 수많은 새로운 문학사조를 불러일으켰다.

그 다음으로는 지난 세기 90년대초, 특히는 1992년 중국사회는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빠르게 전통계획경제의 발전모식을 대체하면서 중국 현대문학의 구조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작가들이 문학창작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떠나거나 영화제작 등과 같은 새로운 분야에 뛰여들었다. 이 시기 정치수요를 주체로 하던 문학사조는 눈에 띄게 힘을 잃어갔고 ‘작은 땅뙈기’에만 집착하던 ‘뿌리찾기’ 작가들만이 창작을 이어갔다. 이들의 창작풍격 역시 이 시기에 발전하면서 점차 성숙되여갔다. 이 시기 일부분 작가들은 충분한 긍정을 받으면서 많은 우수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새 시기에 들어선지 18년, 문학은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고 새로운 심미모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오늘의 문학은 여전히 20세기의 문학심미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뿌리찾기문학’의 발전과 함께 한 작가들은 현재 이미 성숙단계에 들어섰다. 막언, 가평요, 왕안억, 여화 등은 모두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거물급 작가들이다.

지금의 우리 문학은 ‘중년위기’를 겪고 있다. 기성작가들의 창작풍격이 고정화되였다. 새 세기 이래 발생한 일련의 사회문제와 도전, 새 일대의 청년들의 정신생활, 국가와 개인의 운명 이 모든 것이 기성작가들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특히 문학의 구현방식 역시 변화가 발생했다. 인터넷문학이 점차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전민화된 문화보급운동은 또 다른 공간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문학은 늘 그래 왔듯이 어떤 시대이냐를 막론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다. 우리는 반드시 민감하게 새시대의 문학맥락을 짚어내야 한다. 문학은 새로운 생명자극을 필요로 하고 새로운 시기에 부합되는 목소리를 담아내야만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진다.

래원: 연변일보(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