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락 판소리에 일생을 바쳐
—판소리 전승인 연변대학 강신자교수를 만나
2012년 11월 26일 10:03【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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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 예술학원 강신자교수는 연변에서 판소리의 전문가이다. 애초에 판소리가 어떤것인지도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것에 푹 빠졌고 고희가 넘은 지금에도 학생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고있다.
1958년 연변예술학교 성악전업을 지망했던 강신자는 민요 “아리랑”을 불러 1차시험에서 합격되였고 2차시험을 보면서 시험관이 배워준대로 한곡조를 따라 부른것이 판소리이다. 무슨 싹수가 보였던지 당시 연변예술학원의 교장선생도, 민간예인들도 강신자는 판소리를 할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이에 신심을 얻은 강신자는 박정렬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1959년 조선 평양국립예술극장에서 온 서도민요, 남도민요, 가야금 전문가들이 연변예술학원에서 일년동안 강의했다. 박정렬선생은 연변예술학원에서 판소리학과를 설치하면서목단강으로부터 초빙해온 판소리전수자이다. 그렇지만 판소리작품의 전부는 부를수 없었고 중요한 대목들만 장악했다. 하여 박정렬선생은 조선 전문가들로부터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또 그것을 강신자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가르쳤던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접해보지도 못했던 판소리는 재미없고 어렵기만 했다. 입학할 때는 같이 공부하던 학생이 몇명이 있었지만 졸업할 때는 강신자만 유일하게 판소리를 전공하고 다른 학생들은 중도에 전공을 바꾸어버렸다. 학창시절에 무대에서 주역으로 공연을 했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강신자는 모교에 남아 교편을 잡았다. 그 뒤 길림성민족가무단에서 독창가수로 활약했고 선후로 연길시문공단, 연길시조선족예술단,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민족성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2011년 판소리는 국가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였고 강신자교수도 그 전승인으로 지정되였다. 강신자교수는 얼마전 주문화국으로부터 "국가급 판소리 전승인으로 지정되였고 명년이면 증서가 발급된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이 칭호에 부담감도 없지 않다는 속마음을 터놓았다.
판소리는 300여년의 유구한 력사가 깃들어있는 우리 민족의 전통구연예술이다. 1930년도 일제침략시기, 리동백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판소리 전문가가 몇몇 사람을 거느리고 흑룡강성, 길림성, 료녕성 일대에서 순회공연을 했는데 그때 중국에서 판소리가 처음으로 공연되였다. 그뒤로 한동안 류행되면서 주로 술집에서 몇개 중요한 대목들이 불리워졌지만 일제의 압박으로 어려웠다. 1950년대초, 각 민족의 전통문화예술을 조사, 수집하라는 나라의 지시에 따라 연변에서도 조선족민간문예에 대한 조사, 수집이 진행되였고 정진옥, 리황혼 등 선생들이 판소리연구소조에서 연변의 판소리를 발굴, 연구하고 또 외지의 민간예인들이 부르는 판소리를 록음하여 기보하여 기록했었다. 그러나 연변의 조선족은 대부분 북도에서 이주해왔으므로 남도민요 판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고 이에 흥취도 없다보니 판소리는 지금까지 전승되여오면서도 전면적인 보급은 힘들었다.
1987년, 연변예술학원에서 남도민요학과를 설치하면서 강신자교수는 연변예술학원으로 전근해왔다. 1990년에 이르러 그는 9명 제자들을 거느리고 40분동안 음악회를 가지고 판소리를 불렀으며 연변음악가협회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의견을 들어보았다. 탁성으로 부르는 제자들의 공연을 보고나서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성대에 손상을 줄것이니 연습하지 말라고 했다. 크게 타격을 받은 강교수는 집에 돌아가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는 발성체계를 개혁할것을 결심했다. 1994년, 학교의 중요한 회의에서 판소리과목을 계속 둘것인가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강교수는 흔들리기도 했지만 반면에 발성체계개혁의 절박함을 또다시 느꼈다.
그는 1985년부터 2년동안 중앙음악학원에서 연수하면서 중국의 꾀꼴새로 불리는 엽패영선생으로부터 전수받았던 발성법에 기초하여 고음부에서도 진성으로 발성할수 있는 새로운 발성체계를 연구해냈는데 그러한 발성법은 2006년 제자 변영화가 전국청년가수CCTV콩클에서 통속창법조 은상을 받으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강교수는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냈고 이들은 강교수의 발성법을 리용해 다양한 음악을 소화해내면서 무대에서 활약하고있다.
하지만 일생을 판소리와 함께 하고 판소리의 발전을 위해 심혈을 아끼지 않았던 강교수는 다른 전통예술이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에 외목난 신세에 처해있는 판소리가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한다. 무형문화재는 전승자를 통해 이어가지만 민족성악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현황에서 향후가 적잖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제자 박소연이 오래동안 외로이 걸어오던 스승의 손을 잡고 그 길을 이어가겠다고 한다. 강교수는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조교로 있는 박소연이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에 애착을 가지고 외로울수도 있지만 판소리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니 뿌듯하다고 덧붙였다(글/사진 허국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