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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가장 아름다운 향촌의사 박일봉: 우리는 한가족 같아

2022년 11월 08일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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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시 량수진 정암촌 촌민의 휴대폰에는 박일봉의 전화번호가 모두 저장되여있다. 밤낮을 불문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촌민들의 전화 한통이면 박일봉은 모두 수시로 달려왔다.

“8년간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며 세월이 흘러도 늘 함께 지내는 우리는 마치 한가족과도 같습니다.” 향촌의사인 56세 박일봉은 사랑과 고수로 책임을 실천하고 의사의 따뜻한 마음을 해석했다.

2015년, 박일봉은 량수진위생원으로부터 정암촌위생실로 파견되여 새로운 ‘직업려정’을 시작했다.

이곳은 전형적인 조선족마을로서 촌에 로인이 많고 시구역에서 촌까지 차로 약 40분이 걸린다.

마을사람들은 박일봉을 무척 환영했는데 그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한번은 급성위장염에 걸렸는데 새벽에 갑자기 구역질이 나고 설사가 났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외국에 있어 나 홀로 120에 전화를 걸어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한어를 잘하지 못해 의사와의 소통이 어려웠습니다. 이 때 박선생님을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그는 나의 상황을 알고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와 통역, 접수, 검사, 약처방까지 동반하며 ‘친아들’처럼 병세가 호전될 때까지 함께 있다가 나를 차로 집까지 데려다줬습니다.” 박일봉의 얘기를 하면서 77세 나는 조선족할머니 주정자는 감동을 금치 못했다.

“병이 있으면 지체할 수 없습니다. 특히 로인들에게 제가 좀 더 많이 신경써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마을사람들이 감사를 드릴 때마다 박일봉 하는 간단하고도 소박한 말은 그들을 따뜻하게 해줬다.

1년, 2년, 5년, 8년, 시간이 지나면서 박일봉과 촌민들의 감정도 날로 깊어졌다. 박일봉이 환자에게 내준 첫번째 ‘처방’은 관심이였다. 그는 누구의 몸이 어떤지를 머리속에 기억하고 있엇다.

“나이가 들어 탈도 많아져 고혈압, 요추간판돌출, 무릎관절염에 걸리고 혈압도 통제가 안돼 어지럽기도 하고 걷기도 불편합니다. 일단 병이 도져 박선생님한테 전화하기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와서 약을 챙겨주고 물도 끓여줍니다.” 72세 김영선은 평소 박일봉은 자신의 집에 가서 농사일도 자주 도와준다고 말했다.

“의사인 제가 백성의 신체건강을 돌보는 것은 거절할 수 없는 책임입니다. 마을에 로인들이 많아 최대한 그들을 돌봐주는 것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촌민들이 필요로 하면 박일봉은 한달음에 찾아갔다.

2020년 그믐날, 그는 장인댁으로 설을 쇠러 가던 길에 마을 한 환자가족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오는 것을 보고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사람은 장기간 병상에 누워있던 중환자였던 것이다. 통화를 끝내고 박일봉은 멀지 않은 장인댁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돌려 옆에 앉아있는 안해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한 끝에 방향을 돌려 곧장 마을로 달려갔다.

“리해합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할테니 함께 갑시다.” 안해의 말에 박일봉은 미안함과 감동을 느꼈다.

“몇년간 저는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빚졌습니다. 명절에도 그들 옆에 있어주지 못했건만 모두 제 일을 지지해주고 격려해줘서 그것이 동력이 되였습니다.”

의사직업 종사 38년 동안 박일봉은 항상 솔선수범하고 성실했으며 특히 전염병예방통제기간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 지도자 마음속의 좋은 동지이자 동료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였다.

“로동지로서 박일봉은 열심히 직책을 리행하고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했으며 사업면에서 진취적이고 마음이 따뜻해 아주 좋은 모범인솔작용을 일으켰습니다.” “매번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항상 고개를 저었습니다. 또 우리와 함께 자주 사업경험과 소감을 교류하는데 상냥하고 자애로워 우리들이 학습해야 할 본보기입니다.” 그동안 박일봉은 직업소양을 끊임없이 높이고 전문기능을 계속하여 향상시켜 모두들의 일치한 호평을 받았을 뿐더러 길림성 제2기 ‘가장 아름다운 향촌의사’라는 영예칭호도 수여받았다.

“조직에서 저에게 준 묵직한 영예에 감동했습니다. 명예는 격려이자 채찍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암촌은 저의 두번째 집이고 마을사람들은 저의 가족입니다. 저는 일터에 있는 한 꼭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일봉의 말은 단호하고 힘이 넘쳤다.

한가지 일을 선택해 평생을 바치고 그 일을 하면서 그것을 사랑햇다. 사람들은 박일봉이 바로 명실상부한 ‘가장 아름다운 향촌의사’라고 입을 모았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