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았다! 각자 제위치로!” 새벽의 도시는 깊은 잠에 빠져있지만 사천 면양의 어느 산 정상 불 밝은 시험장에는 걷힌 구름으로 하여 들끓고 있다. 이곳에서 별하늘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천문학자가 아닌 핵무연구일군들이다. 그들이 별을 지고 달을 이고 일하는 것은 바로 항성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적하고 모 대형시험을 위해 데터지지를 주기 위해서이다.
1990년, 국가는 핵무기연구제작사업을 사천의 심산에서 면양의 근교로 이전시켰다. 한패 또 한패의 핵무기연구일군들이 이곳에 뿌리내렸고 한채 또 한채의 실험실, 연구소, 시험장이 땅을 차고 일어섰다. 이 때로부터 이 지역은 명실상부한 이름—과학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였다. 중국특색 핵무기 과학기술사업의 새로운 페지가 이로부터 시작되였다.
애국심, 책임담당
얼마전, 5.4운동100주년 기념문예야회에서 단막극 <기다림>은 ‘원자탄, 수소탄’연구제조과정에서의 감동장면을 복원했다. 1979년의 한차례 핵시험 가운데서 폭발되지 않은 핵탄두를 제때에 찾아오기 위해 ‘원자탄, 수소탄 공신’인 등가선은 복사위험도 무릅쓰고 사고현장에 뛰어들어 핵탄두를 찾았다. “당신들이 들어가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는 내가 설계한 것이다. 책임장에 서명한 사람이 바로 나다!”
묵직한 마디마디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개무량하게 만들었다. “숭고한 애국심이 있어야만 이러한 강렬한 사명감이 생길 수 있다.” 과학성에 와서 사업한지 20여년이 되는 레이저기술전문가 호동하는 이렇게 말한다. “나라를 위해 몸바치는 전통은 이곳에서 잊혀진 적이 없다.” 한차례 시험에서 샘플채취에 고장이 생겨 귀중한 샘플이 곧 손상을 입게 되였을 때 4명의 인솔전문가들이 화생복만 입고 복사가 매우 강한 시험실에 들어가 샘플을 제때에 빼내온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다.
핵무기연구제작은 고도로 비밀을 지켜야 하는 사업이며 또한 아주 고생스러운 사업이다. 일부 중점실험은 수천수만명의 몇세대 사람들의 노력으로 황량한 사막과 고산의 바람과 해빛에 시달리고 반복적인 모색을 거쳐야 비로소 성공한다. 여러차례 국가과학기술진보상을 탄 과학성 모 연구소 총공정사 위효봉은 “성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도리이다.”는 종이테프를 사무실문에 붙여놓았다. “마음속에 반드시 나라를 위해 성공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만 견지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