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을, 산골의 아침안개가 아직 채 걷히지 않았는데 광동성 소관시 인화현 홍산진 신백촌의 고산 차밭에서는 차농들이 허리에 대바구니를 찬 채 손끝으로 여린 차잎을 따고 있었다. 하루 동안 바삐 일하면 한 사람이 100여원을 벌 수 있다.
1934년 늦가을, 역시 이른 아침이였다. 마을사람들은 일찍 일어나 차를 따러 나갔다가 거리와 골목마다 홍군 병사들이 가득 누워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당시 중앙홍군 장정 주력부대는 선후로 광동 북부의 남웅, 인화, 락창 등지를 거치며 국민당이 설치한 봉쇄선을 련이어 돌파했다. “그해 어머니 나이가 13살이였는데 홍군은 신백촌을 지나가면서 옷도 벗지 않은 채 들에서 숙영했고 물건을 사고팔 때도 공평했으며 백성들의 물건에는 털끝만큼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자진해서 홍군에게 차를 끓여주고 밥을 해주었으며 부상병을 돌봐주었습니다.” 퇴직한 전임 촌당지부서기 리여청이 말했다.
2018년 10월, 습근평 총서기는 광동을 시찰할 때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변증법적 사고를 견지하고 관념을 전환하여 부족점을 ‘잠재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광동 동부, 서부, 북부 지역의 생태우세를 충분히 발휘하고 발전공간을 끊임없이 넓히며 발전의 후속 동력을 증강해야 한다.” 2025년 11월, 습근평 총서기는 광동을 시찰할 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당과 정부는 계속 로혁명근거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하며 로혁명근거지의 광범한 간부와 군중은 일심전력으로 분발하고 분투해야 한다.”
습근평 총서기의 중요지시 정신을 깊이 있게 관철, 시달하여 광동은 도시와 농촌 지역 발전의 불균형문제를 힘써 해결했다. ‘천만공정’경험을 학습하고 활용하는 토대 우에서 광동은 2022년 말 ‘백개 현, 천개 진, 만개 촌 고품질발전공정’(이하 ‘백천만공정’으로 략칭ㅎ삼)을 가동하여 힘써 부족점을 ‘잠재력’으로 전환시켰다.
차산업과 관광을 융합하여 향촌전면진흥에 조력했다.
신백촌에 들어서면 푸른 차밭이 산꼭대기에서 산기슭까지 펼쳐져있고 흰벽에 검은 기와를 얹은 민가들이 그사이에 점점이 박혀있고 아스팔트길은 먹물을 머금은 리본이 나부끼듯 굽이굽이 뻗어있다.
“마을에서는 대대로 백모차(白毛茶)를 재배해왔지만 차산업이 한때 촌민들의 골치거리로 되였습니다.” 리여청은 “생엽(茶青) 수매가격이 한근에 4~5원까지 떨어질 때도 있어 차밭이 점차 황페해졌고 마을도 ‘빈 마을’로 변했습니다.”라고 말했다.
2024년 ‘백천만공정’의 추진을 계기로 신백촌은 광동금사차원유한회사와 협력해 금사차산업시범원을 건설하고 촌민들이 금사차로 품종을 바꾸어 심도록 격려했다.
“새 품종은 관리하기 쉬운가요? 잘 팔릴 수 있는가요?” 협력방안이 발표되자 촌민들은 반신반의했으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산업이 돌파구를 열자면 당년에 홍군이 장정할 때의 그 기세가 있어야 합니다!” 신백촌당지부 서기 리일상과 당원들은 앞장서 시험재배를 시작했다. 그는 촌의 ‘두 위원회’ 간부들을 이끌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상사업을 했으며 회사와 조률해 회사에서 촌민들에게 차모를 무료로 제공하고 기술일군을 파견해 재배기술을 가르치며 생엽을 통일적으로 수매하도록 했다. 지난 2년 동안 480여무의 차밭이 금사차품종으로 잇달이 갱신되였다.
“3년 안에 금사차산업시범원을 1,000무 규모로 확대하고 이어서 차잎가공공장도 건설할 계획입니다.” 리일상이 소개했다.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귀향해 차를 재배하는 추세에 맞춰 촌에서는 ‘홍색연학+향촌관광’로선 3갈래를 조성했다. 현재 신백촌 집체경제의 년간 수입은 9만원에서 40여만원으로 뛰여올랐다.
과학기술로 동력을 부여해 작은 모죽을 큰 산업으로 육성했다.
인화현 오달합판유한회사의 대나무를 기반으로 하는 신소재 생산작업장에서는 대나무판재들이 생산라인을 따라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도로 기반시설 건설, 컨테이너 제조, 신에너지자동차 부품… 대나무의 용도가 갈수록 넓어지면서 가치도 열배, 백배로 높아졌습니다!” 회사 총경리 반금섬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인화현에는 만무의 대나무숲이 있지만 과거에는 모죽을 땔감으로 쓰거나 비계(脚手架)를 만드는 데만 리용했다. 지금은 전 현이 ‘대나무로 목재를 대신하고 대나무로 플라스틱을 대신하며 대나무로 강재를 대신하는’ 산업발전의 새로운 길에 올라 생태우세를 발전우세로 전환시키고 있다.
“예전에 홍군은 온갖 난관을 헤치고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승격의 길에서 난관을 돌파해 과학기술로 ‘대나무를 황금으로 바꾸는’ 성과를 이뤄내야 합니다.” 광동성림업과학연구원 연구원 조영건은 연구팀을 이끌고 오달회사에 상주하면서 박사작업소를 공동설립하고 한세트의 지능화 가공설비를 개발해냈다.
‘기업+합작사+기지+농가’ 발전모식을 통해 2025년 인화현의 3만 8,000가구 대나무재배농가는 가구당 평균 1만 5,000원을 증수했다. 또한 전 현 대나무산업 종합생산액은 15억 8,900만원에 달했고 5,000명 넘게 대나무기업에 취업했다.
전자상거래를 지원해 특색과일산업이 농민들의 증수를 이끌었다.
소관 락창시에 들어서면 호남-광동접경지인 대왕산 기슭에 홍군렬사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1934년 11월, 홍군은 비를 맞으며 대왕산을 넘었다. 전사들은 나무가지를 짚고 홰불을 추켜든 채 산길을 따라 올라갔는데 마치 한마리 ‘불룡’이 산을 감돌아 오르는 것 같았다.
그제날의 봉화는 숲바다 속으로 잦아들었지만 오늘날 락창시 구봉진은 현지 실정에 맞게 시장을 개척하고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당지 간부와 군중들은 새로운 ‘산을 넘는 길’을 개척하고 있다.
“구봉진은 해발이 높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 황금자두(柰李)의 맛이 달고 시원합니다.” 구봉진 소랑촌에서 귀향청년 황기봉은 라이브방송으로 황금자두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번 자두수확철에 그는 라이브방송을 통해 170만원이 넘는 생과일을 판매했다.
‘백천만공정’에 발맞춰 락창시는 강진부촌회사를 설립했다. 농민들은 토지를 들여놓고 주주로 참여해 배당금을 받으며 당지 정부에서는 전자상거래 지원정책을 출범하고 생산과 판매를 련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현재 황금자두생산지는 락창시 8개 진, 86개 촌으로 확대되였으며 7,000여가구 과일재배농가의 가구당 평균 소득이 3만원 이상 늘어났다.
‘백천만공정’이 실시된 3년여 동안 광동성 57개 현(시)의 지역총생산 증가속도는 련속 2년간 전 성 평균수준을 웃돌았으며 60% 이상 현(시)에서 인구 순류입을 실현했다. 도시와 농촌 주민 소득비률은 2.41:1에서 2.28:1로 좁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