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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택민의 위대하고 빛나는 일생

2022년 12월 05일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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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택민은 우리당 우리군 우리나라 여러 민족 인민이 공인하는, 숭고한 위망을 지닌 탁월한 지도자이며 위대한 맑스주의자이며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 정치가, 군사가, 외교가, 오랜 시련을 겪은 공산주의 전사이며 중국특색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의 걸출한 지도자이며 당의 제3세대 중앙 지도부의 핵심이며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의 주요한 창립자입니다.

강택민의 일생은 빛나는 전투의 일생이였습니다. 70여년의 혁명 생애에서 그는 공산주의 리상에 대해 굳센 지조를 지켰고 당과 인민에 무한히 충성하였으며 초지일관 당과 인민 사업을 위하여 분투했습니다.

당 13기 4차 전원회의 이후 국내외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세계 사회주의가 심각한 곡절을 겪고 있는 준엄한 시련 앞에서 강택민은 당의 중앙지도부를 인솔하여 전당과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에 밀접히 의존해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위대한 사업을 수호하였고 중국특색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21세기에로 이끌었으며 마멸할 수 없는 공훈을 세워 전당과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의 깊은 애대와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1926년 8월 17일 강택민은 강소성 양주시의 한 애국 지식인 가정에서 태여났습니다. 강택민은 어려서부터 애국주의사상과 민주혁명사상의 계몽을 받은 동시에 지식인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강택민은 유년시절 양주동관소학교와 양주중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양주중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고향이 일본 침략군에 의해 점령된 후 그는 종종 매화령에 있는 명나라 애국 장령 사가법의 묘지로 찾아가 고인을 추모하고 사공사에 새겨진 주련 “흩날리는 매화꽃은 망국노의 눈물이오, 두쪽 갈린 명월은 옛신하의 마음같네”를 읊으며 비분의 심정을 달래였습니다.

1943년, 강택민은 남경중앙대학 전기기계학부에 입학하여 진보학생 항일애국활동에 적극 참가했습니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강택민은 상해교통대학 전기기계학과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1946년 4월, 강택민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공산주의 전사가 되였습니다. 강택민은 당의 지하사업에 적극 참가하면서 국민당 반동통치에 초점을 맞춘 기아 반대, 내전 반대, 박해 반대의 애국학생운동에서 혁명동지들을 엄호했습니다.

1947년, 강택민은 상해교통대학 전기기계학부를 졸업하고 상해식량봉사실험공장에서 근무했습니다. 이 곳에서 그는 공정사, 공무과장, 전기사무공장 주임, 동력작업장 주임 등 직무를 력임했습니다. 이 기간 그는 로동자 군중과 청년회 야간학교 직업청년들 속에서 혁명선전을 진행하였고 1949년 로동자 군중을 조직해 공장보호활동을 펼치면서 상해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초기 강택민은 선후하여 상해익민식품1공장 제1부공장장, 상해비누제조공장 제1부공장장, 제1기계공업부 상해제2설계분국 전기기계전업과 과장 등 직무를 담임했습니다. 익민식품공장에서 근무하는 기간 그는 “광명표” 식품 브랜드 연구와 구축을 책임졌습니다. 항미원조를 지원하기 위하여 그는 중국인민지원군에 전문 공급하는 통조림 생산을 조직했습니다. 제2설계분국에서 근무하는 기간 그는 새중국 첫 국산 증기 터빈 발전기 설계업무를 주재했습니다.

1954년 9월, 강택민은 업무배치에 따라 장춘제1자동차제조공장 건설에 참가하였습니다. 1955년 4월에 쏘련 모스크바 쓰딸린자동차제조공장에서 실습한 후 1956년에 귀국하여 장춘제1자동차제조공장 동력처 부처장, 부총동력사, 동력분공장 공장장 등 직무를 담임했습니다.

1961년 석탄공급이 긴장한 상황에서 강택민은 동력 보일러의 동력원을 원유로 대체하는 대형 공정 총지휘를 맡았습니다. 공정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였습니다.

1962년, 강택민은 제1기계공업부 상해전기과학연구소 부소장으로 전근되여 해당 연구소의 과학연구업무를 책임지면서 당시 국가에서 급히 수요하는 JO2 소형 비동기 전기 시리즈 설계과업을 완성했습니다. 1964년과 1965년, 강택민은 선후하여 중국대표단 부단장의 신분으로 일본과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전기기계공업위원회 년차회의에 참가하고 국외 전기기계과학기술 발전상황을 고찰했습니다.

1966년 5월, 강택민은 무한열에너지기계연구소 소장, 당위원회 서기 대리 등 직무를 력임하다가 후에 당위원회 서기를 담임하면서 원자력 발전설비 설계사업을 조직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후 강택민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1970년말 강택민은 제1기계공업부로 전근되였고 1971년에 로므니아 주재 중국제1기계공업부 전문가팀 총조장을 담임하여 중국에서 지원한 11개 공장 건설 사무를 책임졌습니다. 1973년 귀국 후에는 선후하여 제1기계공업부 외사국 부국장, 국장을 력임했습니다. 1973년과 1974년, 강택민은 선후하여 중국대표단 부단장, 단장의 신분으로 련방독일과 로므니아에서 열린 국제전기기계공업위원회 년차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1976년, 강택민은 대표단을 인솔하여 파키스탄을 방문해 중국에서 지원한 공장 건설상황을 고찰했습니다. 1978년 강택민은 중국기계공업대표단 비서장의 신분으로 유럽 6개국을 방문하였고 우리나라 기계공업 기술 수준을 다그쳐 제고하고 제품 갱신을 다그치며 한 세트씩 기술장비를 제공하는 능력을 제고하고 기계제품 수출을 확대하는 등 문제에 대해 깊이 사고하여 대책과 건의를 제출했습니다.

1978년 12월 열린 중공 11기 3차 전원회의는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하던” 국면을 과단하게 종말짓고 당과 국가사업중심의 전략적 이전을 실현하였으며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새 시기를 개척하였고 새중국 창건 이래 당의 력사에서 심원한 의의가 있는 위대한 전환을 맞이했습니다. 1980년 강택민은 국가수출입관리위원회, 국가외국투자관리위원회 부주임 겸 비서장, 당조성원을 담임하면서 대외무역을 확대하고 국외 선진기술과 설비를 유치하며 외자를 흡수 리용하는 등 분야의 정책 제정에 참여했습니다. 동시에 국가가 광동, 복건 두 성에서 특별 정책과 령활한 조치를 실시하는 구체적인 관철사업을 분담 관리하였고 경제특구 준비와 건설에 참가했습니다. 경제특구 건설은 당과 국가에서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진행한 위대한 혁신적 장거였을 뿐만 아니라 과거 경험이 부족한 원인으로 첫시작부터 탐색해야 했던 신생사물이였습니다. 1980년 강택민은 선후하여 대표단을 인솔해 타이,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향항, 메히꼬, 아일랜드 등 국가와 지역을 고찰하면서 수출가공구와 자유무역구, 변경경제구 상황을 료해하였고 그 속에서 중국의 경제특구 건설에서 답습할 수 있는 경험을 연구 섭취했습니다. 같은 해 8월, 강택민은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15차 회의에서 광동, 복건 두 성에 경제특구를 설립할 내용과 <광동성 경제특구 조례>에 관해 설명함으로써 회의에서 관련 의안을 심의 채택하는 데 중요한 의거를 제공했습니다.

1982년 5월, 강택민은 전자공업부 제1부부장, 당조 부서기를 담임했고 1983년 부장, 당조 서기를 담임했습니다. 강택민은 생산 제일선에 심입하여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전자공업에서 “토대를 닦고 수준을 제고하며 품질을 틀어쥐고 효과성을 추구하며 8배 증가하고 10년을 앞당기는” 발전방침을 제기했습니다. 한편 전자공업분야의 구조조정과 기술개조를 조직 령도하고 집성회로와 컴퓨터, 통신 및 시스템 공정 등 중점 프로젝트의 과학연구 개발과 생산사업을 강화하여 전자공업이 국가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위해 더 잘 봉사하도록 담보했습니다. 1982년 9월 강택민은 중국공산당 제12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당선되였습니다.

1985년 강택민은 상해시 시장과 중공 상해시당위원회 부서기를 맡았고 1987년에는 중공 상해시당위원회 서기를 맡았습니다. 강택민은 경제건설이라는 중심을 단단히 틀어쥐고 네가지 기본원칙을 견지하고 개혁개방을 견지하였으며 물질문명건설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정신문명건설을 깊이 중시하여 상해시 개혁발전의 안정을 전력으로 추진했습니다. 강택민은 상해시 경제발전 전망계획과 도시건설 전망계획 제정사업을 지도하고 20세기말 상해시를 개방형, 다기능, 합리한 산업구조, 선진적인 과학기술을 구비한 도시로 건설하고 고도로 문명한 사회주의현대화도시로 건설할 데 관한 발전방침을 제기했습니다. 한편 포동 개발개방을 적극 지지하고 포동을 국제화, 중추화, 현대화한 세계 일류의 신 도시구역으로 건설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은 여러 방면의 의견을 널리 받아들이고 열성을 불러일으키며 상해시의 경제사회발전 전략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당파 격월 좌담회와 언론계, 리론계 격월 좌담회 등 제도를 수립하도록 창도했습니다. 강택민은 과학기술혁신에 의한 경제발전을 중시하면서 중대 공정 결책 전문가 론증제도를 구축하였습니다. 상해시의 대외개방을 확대하기 위하여 그는 상호료해, 상호신뢰, 호혜상생, 장원한 안목에서의 대외경제 교류발전의 네가지 원칙을 제기했습니다. 강택민의 창도하에 상해시 정부는 해마다 반드시 인민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몇가지씩 하는 방법을 취하여 광범한 군중들의 의식주행에 관계되는 실제 문제를 힘써 해결하고 군중들의 생활을 개선해주었습니다. 1987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3기 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위원으로 당선되였습니다. 1989년 봄과 여름, 우리나라에서 엄중한 정치풍파가 발생했습니다. 강택민은 기치선명하게 동란을 반대하고 사회주의국가정권을 수호하며 인민의 근본리익을 수호하고 집행할 데 관한 당중앙의 정확한 결책을 옹호하고 집행하였으며 광범위한 당원과 간부, 군중에 긴밀히 의지해 상해시의 안정을 수호했습니다.

1989년 6월 중국공산당 제13기 4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선되였습니다. 강택민은 회의에서 "당의 11기 3차 전원회의이래의 로선과 기본정책은 변함이 없으며 이를 반드시 계속 관철하고 집행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 문제에 대해 나는 두마디를 정확히 말하려 합니다. 우선 확고부동하고 절대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은 전면적으로 일관되게 집행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중국공산당 제13기 5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습니다. 1990년 3월, 제7기 전국인대 3차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습니다.

199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개혁개방과 현대화건설의 속도를 다그쳐 중국특색사회주의사업의 더욱 큰 승리를 이룩하자"라는 제목으로 한 보고에서 전당에서의 등소평동지의 중국특색사회주의건설리론의 지도적지위를 확립할 것을 제기했습니다. 한편 중국경제체제개혁의 목표는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것임을 확정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발전을 다그치며 정력을 집중하여 경제건설을 추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제14기 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선되고 전원회의에서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습니다. 1993년 3월, 제8기 전국인대 1차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습니다.

1997년 9월, 중국공산당 제15 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등소평리론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중국특색사회주의건설사업을 21세기로 추진하자”라는 제목의 보고를 했습니다. 보고에서 등소평리론의 력사적 지위와 지도적 의의를 중점적으로 천명하고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의 당의 기본강령을 제기하였으며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다종 소유제경제를 공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주의초급단계의 한가지 기본경제제도라고 명확히 했습니다. 한편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주의법치국가를 건설하며 우리나라 개혁개방과 현대화건설의 세기 교체 발전의 웅대한 목표를 명확히 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제15기 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당선되였으며 전원회의에서는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습니다. 1998년 3월, 제9기 전국인대 1차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습니다.

200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강택민은 “초요사회를 전면 건설하고 중국특색사회주의사업의 새 국면을 개척하자”라는 제목의 보고에서 초요사회 전면건설의 분투목표를 제기하고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전면 관철할 데 관한 근본적인 요구를 천명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제16기 1차 전원회의에서 강택민을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결정했습니다. 2003년 3월 제10기 전국인대 1차회의에서 강택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습니다.

중국공산당 제13기 4차 전원회의이후 강택민은 중국특색사회주의 건설을 지도하는 실천가운데서 전당과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 인솔하여 당의 기본리론과 기본로선, 기본강령을 견지하였으며 사회주의는 무엇이고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하며 어떠한 당을 건설하고 어떻게 당을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을 깊이하고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형성하였으며 중국특색사회주의 리론을 풍부히 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은 맑스주의 기본원리를 견지했을 뿐만 아니라 당과 국가사업에 대한 세계와 중국의 발전변화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였으며 새로운 사상과 관점, 론단으로 맑스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을 계승하고 풍부히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강택민은 중국특색사회주의 발전도로문제를 깊이 있게 사고한 후 발전을 당의 집권 국가진흥의 선차적 과업으로 삼고 현대화 건설의 새 국면을 부단히 개척할 것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전당 사업의 대국은 바로 기회를 포착하고 개혁을 심화하며 개방을 확대하고 발전을 추진하며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이는 장기적으로 견지해야 하는 방침이라고 제기했습니다. 당의 기본로선의 전부 내용을 전면적으로 파악하고 경제건설이라는 중심과 네가지 기본원칙, 개혁개방이라는 두가지 기본점을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위대한 실천으로 통일하고 현대화 건설의 전반 과정에 관통시켜야 합니다. 그는, 발전은 바로 진리이고 이는 우리가 시종 견지해야 할 전략적 사상이며, 자본이 있어야 자신감이 있고 락후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경제실력, 국방실력, 민족 응집력을 부단히 증강한다면 필연코 풍랑을 헤가르며 대안에 도착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는 당과 국가가 직면한 새로운 정세를 깊이 있게 분석한 후 21세기 첫 20년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포착 가능하고 큰 성과를 이룩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시간대이므로 반드시 능동적 정신과 우환의식을 갖고 기회를 포착하고 분발진취하며 전국인민의 지혜와 힘을 집중하고 정력을 모아 건설을 다그쳐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사회주의 물질문명, 정치문명, 정신문명의 조화로운 발전을 부단히 추진해야 합니다. 중국특색사회주의 건설은 바로 우리나라 경제와 정치, 문화가 전면적으로 발전하는 행정이여야 할 것입니다. 그는, 중국특색사회주의 건설의 제반 사업과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인민의 현실적 물질문화와 생활수요, 인민자질의 제고에 착안점을 둬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인간의 전면 발전을 힘써 추진하고 인간의 전면 발전과 경제, 정치, 문화발전, 인민의 물질문화생활을 개선하는 것은 상호 전제이자 토대입니다. 개혁, 발전, 안정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해야 합니다. 개혁은 동력이고 발전은 목표이며 안정은 전제입니다. 반드시 개혁의 강도, 발전의 속도,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통일하고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을 개혁과 발전, 안정관계를 대하는 중요한 결합점으로 삼고 사회안정속에서 개혁과 발전을 추진하고 개혁과 발전을 통해 사회안정을 추진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21세기 첫 20년은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단계이고 중국특색사회주의 발전단계와 발전전략을 풍부히 하는 단계라고 하면서 이는 우리나라 국정과 인민의 념원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적극적인 모든 요소를 충분히 동원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분투하는데 유조합니다. 20세기 90년대에 강택민은 초요사회 전면건설과 세 단계 전략 목표를 두고 원견성있는 전략적 사고를 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에서 그는 초보적으로 세 단계 전략목표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다음 세기 우리의 목표는 첫 10년동안 국민생산총액을 2000년의 두배로 늘려 인민의 초요생활이 보다 여유있도록 하고 비교적 완비화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10년동안의 노력을 거쳐 당 창건 백주년 때에 가서 국민경제가 더욱 발전하고 제반 제도를 더욱 완비화하는 것입니다. 세기 중엽의 건국 백주년 때에 가서는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고 부강, 민주, 문명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강택민은 중국공산당 제15기 5차전원회의에서 새세기부터 우리나라는 초요사회 전면 건설단계에 진입하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다그쳐 추진하는 새로운 발전단계에 진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초요사회 전면건설의 분투목표를 깊이 있게 설명했습니다. 현세기 첫 20년동안 모든 힘을 집중해 10여억 인구에게 혜택을 주는 높은 수준의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해 경제가 더욱 발전하고 민주가 더욱 건전하며 과학기술과 교육이 더욱 진보하고 문화가 더욱 번영하며 사회가 더욱 조화롭고 인민의 생활기반을 더욱 튼튼히해야 합니다. 이는 현대화 건설의 세번째 전략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경유해야 할 발전단계이자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보완하고 대외개방을 확대하는 관건적 단계입니다.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근본과업을 두고 강택민은, 반드시 력량을 집중해 사회의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을 선차적 지위에 놓고 선진 생산력을 부단히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당이 시종 시대의 앞장에 서고 선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 구현이자 근본적 요구입니다. 생산력가운데서 인간은 가장 결정적인 력량이며 지식인을 비롯한 로동계급과 광범한 농민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는 우리나라 선진 생산력 발전과 사회의 전면 진보를 추진하는 근본 력량입니다. 사회변혁과정에 나타난 민영 과학기술업체 창업인원과 기술일군, 외자기업에 초빙된 관리기술인원, 자영업자, 사영업주, 중개기구와 인원, 자유직업인원 등 사회계층은 모두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업의 건설자입니다. 인재자원은 첫째가는 자원이므로 각급 당위원회와 정부는 당과 국가사업의 장원한 발전과 인재에 대한 총체적 수요에 립각해 인재양성, 인재유치, 인재활용 등 세개 고리를 확보하고 인재전략을 힘써 실시해야 합니다. 그는 사회생산력 발전에서 일으키는 과학기술의 중요한 역할에 깊은 중시를 돌리고 강대한 과학기술실력이 없으면 사회주의 현대화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드시 지식혁신과 과학기술혁신을 힘써 추진하고 국가 지식혁신 체계를 건설하며 자주혁신능력을 증강하고 기술의 도약식 발전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는 사회주의 생산관계와 상부구조를 부단히 보완하고 생산력 해방과 발전을 위해 보다 광활한 경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은 새로운 실천과 결부해 우리나라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리론적 사고를 가일층 심화시켰습니다. 그는 쏘련의 해체와 동유럽의 격변에서 얻은 교훈 그리고 “문화대혁명”과 같은 우여곡절의 교훈을 진지하게 총화하고 그 원인을 깊이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두가지 결론을 얻을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첫째, 반드시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둘째, 반드시 사회주의 개혁을 진행해 자국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 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혁신은 민족 진보의 령혼이고 나라의 륭성발전을 이룩하는 무궁한 원동력이므로 반드시 확고부동하게 제분야 개혁을 추진해야 하고 개혁은 실제로부터 출발해 전체적으로 추진하고 중점적으로 돌파하며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제도건설과 혁신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 세기 90 년대에 그는 중국공산주의자의 리론혁신을 견지하고 시대와 더불어 전진하는 커다란 용기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개혁 목표와 기본틀을 확립하였고 사회주의 초급단계 공유제를 주체로 다종 소유제 경제가 공동발전하는 기본 경제제도와 로동에 따른 분배를 주체로 한 다종 분배 방식이 병존하는 분배 제도를 확립해 전면 개혁개방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았습니다. 1992년 6월, 강택민은 고도로 집중된 계획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진행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현대화를 실현할수 없다며 등소평의 남방시찰 담화 정신에 근거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제기법을 사용할 것을 명확히 제기함으로써 중국공산당 제14 차 전국대표대회의 개최를 위해 중요한 사상 리론적 준비를 했고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구축을 중국 경제체제 개혁의 목표로 공식 확립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제14기 3차 전원회의에서 통과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구축과 관련한 약간의 문제에 대한 결정”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구축을 위한 총체적 계획을 제정했습니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우리나라는 이미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기본 틀을 초보적으로 구축했습니다. 강택민은,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소유제 경제를 공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기본 경제제도이고 공유제는 여러가지 실현 형태를 취할수 있으며 주식제는 현대기업의 자본조직 형태의 하나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표했습니다. 공유제 경제를 확고부동하게 공고 발전시키고 비공유제 경제의 발전을 확고부동하게 격려하고 지지하며 인도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국유자산 관리체제를 개혁하는 것은 경제체제 개혁을 심화함에 있어서의 중대한 임무로서 국가소유를 견지하는 전제 하에서 중앙과 지방의 적극성을 충분히 발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국유기업은 우리나라 국민경제의 기둥이며 국유기업 개혁은 우리나라 경제체제 개혁의 중심고리로서 전반 국유경제에 착안점을 두고 큰 것을 잘 틀어쥐고 작은 것을 풀어놓으며 국유기업에 대해 전략적인 개편을 실시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그는 현대 기업제도를 수립하는 것은 국유기업 개혁의 방향이라며 “재산권이 명확하고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며 정부와 기업이 분리되고 과학적으로 관리하는”요구에 따라 국유 대중형 기업에 대해 규범화된 회사제 개혁을 실행함으로써 기업이 시장에 적응하는 법인과 경쟁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시장기제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시키고 거시적 조정을 강화하는 것은 모두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기본요구로서 거시적 조절통제 체계를 다그쳐 건전히 하고 보완하며 금융, 재정, 계획체제 개혁을 심화하고 거시적 조절통제 수단과 조률 기제를 보완하며 적정 긴축의 재정정책과 화페정책을 실시하고 조정 강도를 장악해야 한다고 표했습니다. 분배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광범한 대중들의 절실한 리익과 적극성 발휘에 관계되므로 로동에 따른 분배를 주체로 다종 분배 방식이 병존하는 분배 제도를 완비화하고 효률을 우선시 하되 공평성을 겸비하고 경제발전 수준에 알맞는 사회보장 체계를 건립 건전히 하며 도시 종업원의 기본 양로보험 제도와 기본 의료보험 제도, 실업보험 제도와 도시주민 최저생활보장 제도를 건전히 하고 농촌 양로, 의료 보험, 최저생활보장 제도의 수립을 모색해야 합니다.

20세기 90년대에 들어선후 강택민은, 경제의 글로벌화가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추세를 파악해 중국이 발전하고 진보하고 부강해지려면 반드시 대외개방을 하고 세계 각국과의 경제, 과학기술, 문화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며 모든 선진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참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관련 정책을 가일층 보완하고 계속 확고부동하게 대외개방을 확대하며 대외개방의 형식과 내용을 끊임없이 풍부히 하고 대외개방의 질과 수준을 부단히 제고하며 전방위적이고 다차원적이며 넓은 령역의 대외개방의 구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당이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개혁개방의 수요로부터 출발해 내린 중대한 전략적 결책으로서 이는 우리나라 대외개방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표징합니다. 강택민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 원칙을 이렇게 천명했습니다. 첫째,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중국의 경제발전과 개혁개방에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세계무역기구도 중국을 필요로 합니다. 12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중국이 가입하지 않는다면 세계무역기구는 불완전하고 세계경제 발전에도 불리합니다. 둘째, 중국은 발전도상국으로서 사회생산력이 아직 발달하지 못하였으므로 발전도상국의 조건으로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할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 그 권리와 의무는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중국은 중국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초월하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원칙에 따라 중국은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는 협상과정에 시종 주동권을 장악했으며 2001년 12월에 세계무역기구의 공식 회원국으로 되였습니다. 강택민은, 외국인 직접투자를 가일층 유치하고 외자 리용의 질과 수준을 높이며 상품과 봉사 무역을 진일보 더 확대하고 시장 다원화 전략을 실시하며 질로 승부하는 것을 견지하면서 경제특별구는 새로운 우세를 확보하고 한 단계 더 높이 올라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대외진출”전략을 실시하는 것은 대외개방의 새로운 단계에서의 중대한 조치이며 “대내 유치”와 “대외 진출”은 대외개방의 두 바퀴이므로 반드시 동시에 굴러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중국의 발전과 진보는 세계 각국의 문명 성과를 떠날 수 없고 대외개방 과정에서 시종 국가주권과 경제사회의 안전을 수호하는데 주의를 돌려 국제 위험부담의 충격을 주의해 방비하고 해소해야 합니다. 대외개방을 확대하는 것과 자력갱생을 견지하는 관계에 립각점을 두고 자체 력량에 의지해야 합니다.

중국특색사회주의 경제건설과 관련해 강택민은 우리는 발전도상국으로 현대화를 실현하려면 발달국과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그 관건은 속도도 비교적 빠르고 효과성도 비교적 높은 국민경제 발전의 길을 개척하고 경제성장방식을 조방형에서 집약형으로 전환시키며 국민경제가 지속적으로 빠르고 건전하게 발전하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강택민은 속도와 효과성의 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려면 반드시 발전의 사고방식을 새롭게 바꿔 조방형 경제성장방식을 집약형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제운행의 질과 효과성을 높임에 있어 관건은 구조가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경제구조에 대한 전략적 조정을 실시해야 합니다. 내수확대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장기적이고 기본적인 립각점입니다. 강택민은 신형 공업화의 길을 걸으며 정보화로 공업화를 이끌어 가고 공업화로 정보화를 촉진하는 것을 견지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과학기술함량이 높고 경제효과성이 좋으며 자원소모가 적고 환경오염이 적으며 인력자원우세가 충분히 발휘되는 신형의 공업화 길을 개척하고 큰 힘을 들여 과학기술에 의존한 국가진흥전략과 지속가능발전전략을 실시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농업, 농촌, 농민 문제는 줄곧 우리 당과 국가 전반 국면에 관계되는 근본적인 문제로 도시농촌 경제사회 발전을 일괄 추진하고 현대농업을 건설하며 농촌경제를 발전시키고 농민소득을 늘리는 것은 초요사회 전면 건설의 중대 과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세기 전환점에서 강택민은 전당 전국 인민에게 시기를 놓치지 말고 서부대개발전략을 실시할 것을 명확히 제기했습니다. 강택민은 경제를 발전시키는 근본 목적은 전국 인민의 생활 수준과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표했습니다. 취업은 민생의 근본이고 취업 확대는 우리나라 당면과 향후 장시기의 중대하고도 막중한 과업입니다.

중국특색사회주의 정치건설과 관련해 강택민은 사회주의 민주정치를 발전시키고 사회주의 정치문명을 건설하는 것은 초요사회 전면 건설의 중요한 목표라고 제기했습니다. 사회주의 정치문명을 건설하는 것은 우리나라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과 발전의 필연적 요구이고 중국공산당이 인민을 령도해 인민민주를 견지하고 발전시킨 장기적 실천의 필연적 결론이며 중국특색사회주의사업의 법칙성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인식을 깊이 했습니다. 강택민은 사회주의 민주정치를 발전시킴에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당의 령도를 견지하고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며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을 견지하며 사회주의 민주제도를 견지하고 완비화하며 민주제도를 건전히 하고 민주형식을 다양하게 하며 공민의 질서 있는 정치 참여를 확대하고 인민들이 법에 따라 민주선거, 민주결책, 민주관리, 민주감독을 실행하고 광범위한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도록 보장하고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인민대표대회제도를 견지하고 완비화해야 합니다. 공산당이 령도하는 다당합작과 정치협상제도를 견지하고 완비화하며 가장 광범위한 애국통일전선을 잘 다지고 발전시키며 당의 민주정책을 전면 관철해야 합니다. 민족구역자치제도를 견지하고 완비화하며 평등하고 단결하며 상호 돕는 사회주의 민족관계를 잘 다지고 발전시키며 여러 민족의 공통된 번영과 진보를 추진해야 합니다. 당의 종교신앙자유 정책을 전면 관철하고 법에 따라 종교 사무를 관리하며 종교와 사회주의 사업의 상호 적응을 적극 인도하고 독립자주자체운영의 원칙을 견지하고 경외세력이 종교를 리용해 우리나라에 침투하는 것을 단호히 억제해야 합니다. 당의 화교사무 정책을 참답게 관철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기층 민주를 확대하는 것은 사회주의 민주의 기반 사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은 의법치국을 실행하고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건설하며 사회주의 법제건설을 강화해 의존할 법이 있고 법이 있으면 반드시 그 법을 따르며 집법은 반드시 엄격히 해야 하고 법을 위반하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 국가 제반사업이 점차적으로 법제화 궤도에 진입하게 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강택민은 정치체제 개혁은 사회주의 정치제도의 자아 완비화와 발전으로 우리나라 국정에서 출발해 자체 실천 경험을 총화하는 동시에 인류 정치문명의 유익한 성과를 답습하되 그렇다고 서방정치제도의 모식을 그대로 옮겨와서는 안된다고 표했습니다. 제도건설 강화에 력점을 두고 사회주의 민주정치의 제도화, 규범화, 절차화를 실현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사회안정 사업에 중시를 돌리고 사회안정을 참답게 수호하여 안정적이고 단합된 사회정치 국면을 수호하기 노력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중국특색사회주의 문화건설과 관련해 강택민은 중국특색사회주의 문화는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결집시키고 격려하는 중요한 힘이고 종합국력의 중요한 징표라고 하면서 당대 중국에서 선진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중국특색사회주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고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제기했습니다. 의식형태 분야에서 차지하는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의 지도적 지위를 반드시 견지하고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으로 사회주의 문화건설을 총괄해야 합니다.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사회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방향과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방침을 견지하며 주선률을 고양하고 다양화를 제창해야 합니다. 과학적인 리론으로 사람들을 무장하고 정확한 여론으로 사람들을 인솔하며 숭고한 정신으로 사람들을 교양하고 우수한 작품으로 사람들을 독려해야 합니다. 큰 힘을 들여 선진 문화를 발전시키고 건전하고 유익한 문화를 지지하며 락후한 문화를 힘써 개조하고 부패한 문화를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민족정신은 한 민족이 생존하고 발전하는 정신적 기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세계적 범위에서 각종 사상문화의 상호 격돌에 직면해 반드시 민족정신을 선양하고 육성하는 것을 문화건설의 극히 중요한 과업으로 삼아 국민교육의 전반 과정에 편입시키고 정신문명건설의 전반 과정에 편입시켜 전체 인민들이 초지일관 앙양되고 향상하는 정신상태를 유지하게 해야 합니다. 사회주의 법제건설과 의법치국을 꾸준히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도덕건설, 의덕치국도 꾸준히 강화하여 법제건설과 도덕건설을 긴밀히 결합시키고 의법치국과 의덕치국을 긴밀히 결합시켜야 합니다.

강택민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담임하는 기간, 국방과 인민군대 건설을 둘러싸고 많은 중요한 사상을 제기하고 강택민국방군대건설사상을 창시했습니다. 강택민은 확고한 국방을 건립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대화 건설의 전략적 과업으로서 국가의 안전과 통일을 수호하고 초요사회를 전면 건설하는 중요한 보장이라고 제기했습니다. 모택동군사사상, 등소평새시기군대건설사상을 지침으로 견지하고 정치적으로 합격되고 군사적으로 강하며 작풍이 우량하고 규률이 엄명하며 보장이 강유력한 총적 요구에 따라 전쟁에서 이기고 변질하지 않는 두개 력사적 과제를 긴밀히 둘러싸고 중국 특색 정예병의 길을 드팀없이 견지하고 인민군대의 혁명화 현대화 정규화 건설을 강화해야 합니다. 사상정치건설을 줄곧 우리 군 제반 건설의 선차적 지위에 놓고 인민군대의 성격, 본색, 기풍을 영원히 그대로 간직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세계 신군사변혁의 도전에 맞서 중국 특색의 군사변혁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20세기 90년대, 중공중앙과 중앙군사위원회는 새시기 적극적인 방어의 군사전략방침을 확립하고 전략지도 면에서 중대 조정을 실시해 군사투쟁 준비의 기점을 일반 조건하의 국부전쟁 대응에서 현대기술 특히 고도기술 조건하의 국부전쟁 대응에로 옮겨갔습니다. 이어 군사투쟁 준비의 기점을 정보화 조건하의 국부전쟁 대응에로 승격시킬 것을 제기했습니다. 새로운 정세하에서 우리군의 군사투쟁 준비의 목표와 과업을 명확히 하고 우리군 건설의 주요 모순을 포착하고 우리군 건설과 개혁의 발전방향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했습니다. 강택민은 군대와 무장경찰부대, 정법기관은 일률적으로 상업활동에 종사하지 못하게 할 것을 제기했습니다. 강택민은 국방건설과 경제건설의 조화로운 발전 방침을 견지하고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국방과 군대 현대화를 추진하고 자체만의 고도기술 무기장비의 “비장의 카드”를 다그쳐 손에 쥐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은 조국의 통일 대업을 완수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근본 리익이며 대만 동포, 향항오문 동포, 해외 교포를 포함한 전체 중국인민의 공동 념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은 향항과 오문에 대한 중국정부의 주권 행사전 일련의 준비 사업을 지도하고 추진했습니다. 1997년 7월 1일 향항이 조국에 귀환되였고 1999년 12월 20일 오문이 조국에 귀환되였습니다. 강택민은 선후하여 향항과 오문을 방문해 중국과 영국 정부, 중국과 뽀르뚜갈 정부가 진행한 향항과 오문 인계인수식에 참가했습니다. 향항과 오문의 조국 귀환은 “한 나라 두 제도”의 리론과 실천을 풍부히 했습니다. 향항과 오문이 조국에 귀환된 이후 강택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한 나라 두 제도” 방침을 정확하고도 전면적으로 관철하고 향항기본법과 오문기본법의 엄격한 준수를 기반으로 사무를 처리하며 향항과 오문 두 특별행정구 행정장관과 정부의 사업을 전력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향항과 오문 각 계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단합하여 향항과 오문의 번영과 안정, 발전을 공동 수호하고 추진해 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중앙정부의 확고한 지지하에 두 특별행정구 정부는 아시아금융위기를 비롯한 대내외 경제환경 변화가 가져다 준 충격과 영향에 심층 대응하고 각계 인사들을 단합하여 일련의 사회문제와 경제문제를 타당하게 처리함으로써 사회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유지했습니다. 강택민은 대만문제의 대국을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힘쓰며 한개 중국 원칙을 구현한 “9.2공동인식”을 체결하도록 량안 쌍방을 이끌었고 량안사이 협상과 담판을 추진했습니다. 1995년 1월 강택민은“조국 통일 대업 완성을 위해 계속 분투하자”라는 중요한 연설을 발표하고 현단계 량안 관계 발전, 조국 평화통일 추진을 위한 8가지 주장을 제출했습니다. 강택민은 한개 중국 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 토대이자 전제이며 무력 사용 포기를 언약하지 않는 것은 절대 대만 동포들을 향한 것이 아니며 외국 세력의 중국 통일 개입 그리고 “대만독립” 시도자들에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의 연설은 조국 통일 대업을 완성하기 위한 확고한 결심을 구현할 뿐만 아니라 대만 동포들의 념원과 대만의 실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주장으로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적극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강택민은 “정치 경제 외교 문화 군사 겸비” 총방략을 제출하고 분렬을 반대하고 “대만독립”을 반대하는 중대한 투쟁을 지도했습니다. 강택민은 국가 통일을 이루려면 민족이 부흥해야 하며 대만 문제를 무기한으로 끌고가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전체 중화 아들딸들의 공동 노력으로 조국의 완전한 통일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정중히 표했습니다.

국제 정세의 불안정에 대해 강택민은 세계 정세 발전의 전반 추세를 통찰하고 일련의 외교와 국제전략 사상을 제출해 중국특색사회주의 외교 리념과 실천을 풍부히했습니다. 강택민은 평화와 발전은 여전히 당면 시대적 주제로 세계 다극화와 경제 글로벌화의 굴곡적인 발전은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회와 유리한 조건을 가져다 준다고 분석했습니다. 새로운 세계대전은 예견 가능한 시기 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비교적 긴 시기 평화로운 국제환경과 량호한 주변 환경은 실현 가능합니다. 그러나 불공정하고 비합리한 국제 정치와 경제의 오래된 질서 역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한 관계로 평화와 발전에 불확실 요소를 증가시키고 전통적 안전 위협과 비전통적 안전 위협의 요소가 교차하며 패권주의와 강권정치가 새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남북간 격차도 한층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세계는 아직 안녕하지 못합니다. 인류도 많은 준엄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강택민은 평화와 발전은 의연히 당면 시대의 주제로 국제의 풍운 변화에 관계없이 중국은 시종 독립자주의 평화외교 정책을 견지할 것이며 중국 외교정책의 취지는 세계 평화를 수호하고 공동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은 발전도상국과의 단합과 협력 강화를 대외정책의 기본 착안점으로 삼고 선진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며 린국과의 친선을 강화하고 린국과 사이좋게 지내고 린국을 동반자로 지역간 협력을 강화하며 주변 나라와의 교류와 협력을 새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제3세계와의 단합과 협력을 증강하고 상호 지원과 지지를 강화할 것을 제출했습니다. 세계 다극화를 적극 추진하고 국제관계 민주화를 추진하며 세계 다양성을 존중하고 문명 교류와 상호 참조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강택민은 중국은 계속하여 다각 외교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유엔을 비롯한 기타 국제와 지역성 기구에서 역할을 발휘하며 발전도상국들이 자국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이 제출한 시대 수요에 발맞춘 새안전관의 핵심은 상호 신뢰, 호혜 평등, 협동입니다. 강택민이 주도해 창립한 상해협력기구는 중국이 참여해 추진하고 중국의 도시 이름으로 명명된 첫 지역성 협력기구로 상해협력기구가 창도하는 상호 신뢰, 호혜 평등, 협상, 다양한 문명 상호 존중, 공동 발전 도모의 “상해정신”은 당대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산생시켰습니다.

강택민은 당의 자체 건설을 깊이 중시했습니다. 강택민은 새로운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개혁 정신으로 당 건설에서 부딪힌 중대한 리론 문제와 현실 문제를 연구 해결하고 당이 시종일관 선진성과 순결성을 유지하고 창조력과 응집력, 전투력으로 충만될 수 있도록 할 것을 전당 동지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강택민은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당을 다스려야 하고 당을 다스리려면 반드시 엄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지도 수준과 집권 수준 제고, 부패와 위험부담 대응력 증강 면에서 량대 력사적 과제를 완정하게 제기하고 참답게 연구하고 해결하도록 전당에 요구했습니다. 강택민은 다민족이 공존하는 발전도상국인 중국은 전체 인민의 의지와 힘을 응집하여 초요사회 전면 완수, 사회주의현대화를 다그쳐 추진하고 반드시 당의 령도를 확고히 강화하고 개선해야 하며 당 건설의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전면 추진하여 우리 당이 시종 중국로동계급의 선봉대, 동시에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의 선봉대, 시종일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업의 지도 핵심으로 되게 보장하고 시종 중국 선진 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표하고 중국의 가장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 리익을 대표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은 반드시 당의 사상리론 건설을 보다 뚜렷한 위치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의 집권력 건설을 강화하고 당의 지도수준과 집권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민주집중제도를 견지하고 완비화하며 당의 활력과 단결 통일 수준을 증강해야 합니다. 자질 높은 지도간부 대오를 건설하고 활력 넘치고 분발 향상하는 지도층을 형성하며 학습을 중요시하고 정치를 장악하며 바르고 굳센 기개를 갖추도록 지도간부들에게 요구해야 합니다. 기층 당 건설 사업을 잘 하고 당의 계급 기반을 증강하는 한편 당의 군중 기반을 확대해야 합니다. 당의 기풍 건설을 강화하고 개선하며 반부패 투쟁을 깊이있게 실시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당의 기풍 건설을 추진하는 핵심은 당이 인민대중과의 혈육적 련계를 유지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당의 최대 정치적 우세는 대중과 밀접히 련계하는 것이고 당 집권 후의 가장 큰 위험은 대중을 리탈하는 데 있습니다. 부패를 단호히 반대하고 방지하는 것은 전당의 한가지 중대한 정치 과업으로서 표면과 근본을 함께 다스리고 종합적으로 정돈하는 방침을 견지하며 근본 정돈 강도를 점진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교육을 강화하고 민주를 발전시키며 법제 수준을 완비화하고 감독을 강화하며 체제를 혁신하는 한편 반부패를 제반 중요 정치 조치에 포함시키고 부패 문제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전당 동지들이 시종일관 공산주의자의 굳센 기개와 드높은 기세, 올바른 의지를 유지하고 영원히 인민대중과 마음을 함께 한다면 우리 당의 집권 기반은 반석과도 같이 튼튼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택민은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모든 사업의 출발점과 착안점은 가장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리익을 부단히 실현하고 수호하며 발전시키기 위한 데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의 방침정책을 제정하고 관철하는 기본적인 착안점은 가장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리익을 대표하고 각이한 방면의 군중리익을 정확히 반영하고 잘 돌봄으로써 전체 인민들이 공동부유의 방향으로 안정적으로 전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강택민은 반드시 시종 당의 군중로선을 견지하고 모든 것은 군중을 위하고 군중에 의지하며 군중 속에서 오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며 인민군중의 창조를 존중하고 인민군중의 호소를 경청하며 인민군중들의 념원을 반영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인민군중들의 지혜와 힘을 응집해 제반 사업을 발전시키며 개혁개방과 사회주의현대화 건설 전 과정에서 로동자, 농민, 지식인, 기타 군중들이 모두 경제사회발전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담보해야 합니다. 강택민은 한마음 한뜻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취지를 명기하고 강한 공복 의식을 수립하며 인민을 사랑하는 깊은 마음으로 인민을 위하는 책임을 짊어지며 인민을 부유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인민에게 리로운 일을 많이 하며 시시각각 인민군중들의 안위와 일상을 마음 속에 새겨두고 군중들의 질고를 관심하며 군중들을 위한 실제적인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할 것을 각급 령도간부들에게 요구했습니다.

강택민이 당과 국가의 주요 지도 직무를 맡았을 때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아주 복잡한 정세에 직면했습니다. 세계 사회주의에 심각한 우여곡절이 나타났고 준엄한 시련이 나타났습니다.

강택민은 당의 중앙지도부를 단합 인솔해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긴밀하게 의지하면서 우리나라 주권, 안전과 관계되는 일련의 국제적인 돌발사건에 태연하게 대처하고 정치, 경제분야와 자연계에서 나타난 어려움과 위험부담을 이겨냈습니다. 특히 아시아금융위기의 충격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1998년 특대홍수에 직면해 재해구조의 전면적인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개혁개방과 사회주의현대화건설의 항선이 줄곧 정확한 방향을 따라 나아갈 수 있게 담보했습니다.

2004년 9월 중국공산당 제16기 4차 전원회의는 강택민의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주석 직무 사임 요구에 동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5년 3월 10기 전국인대 제3차 회의 제2차 전원회의에서는 강택민의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무 사임 요구를 받아들일데 대한 결정을 채택했습니다. 지도자 직무를 사임한 후 강택민은 단호히 당중앙의 사업을 옹호하고 지지하면서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위대한 사업을 관심하고 당기풍청렴건설과 반부패 투쟁을 단호히 지지했습니다.

강택민은 “강택민문집”제1권, 제2권, 제3권의 편집사업을 친히 맡고 한편한편 심사했습니다. “강택민문집”은 주로 20세기 80년대말부터 21세기초까지 강택민의 대표성 있고 독창성있는 중요 저작을 수록해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보다 더 깊이있게 학습 터득하고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위대한 사업과 당 건설의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계속 추진하는데 중요한 교재를 제공했습니다.

강택민이 창립한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은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에 대한 계승과 발전으로서 당시 세계와 중국의 발전변화로 인한 당과 국가 사업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반영했습니다.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은 당 건설을 강화, 개진하고 우리나라 사회주의의 자아 완비화와 발전을 추진하는 강대한 리론 무기이며 중국공산당 집단 지혜의 결정체이며 당이 반드시 장기적으로 견지해야 할 지도사상이며 당과 인민의 소중한 정신적 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력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할 목표에 더 근접했고 더 큰 신심과 능력을 구비했습니다. 새 로정에서 전당 전군 전국 여러민족 인민들은 습근평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확고한 령도아래 더 긴밀하게 단합해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습근평신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을 전면 관철하며 “두가지 확립”의 결정적 의의를 깊이있게 터득하고 “네가지 의식”을 증강하며 “네가지 자신감”을 다지고 “두가지 수호”를 실천하며 자신 자강하고 바른 길에서 혁신하며 분발해 일떠나 과감히 전진하며 일치단합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게으름없이 분투해야 합니다.

래원: 중앙인민방송(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