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일 전국 각지의 간부와 군중들은 경의와 깊은 정을 머금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알리는 글을 시청하며 강택민 동지를 침통하게 애도했으며 자발적으로 여러가지 소박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장구한 그리움을 표했다.
유지를 이어받고 지난날의 사업을 계승해 앞길을 개척해야 한다. 모든 이들은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굳건한 지도하에 비통을 힘으로 승화시켜 각자의 일터에서 더욱 열심히 사업하고 끊임없이 단결 분투하며 민족 부흥이라는 이 웅위로운 청사진을 점차 아름다운 현실로 전화시켜야 한다고 한결같이 표했다.
시대와 더불어 발전하고 개척혁신해야 한다
“저는 몇분 후에야 정신이 들었어요. 마음이 매우 괴로워요.” 강택민 동지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천진항컨테이너부두유한회사 조작부 해안컨테이너 기중기대 당지부 서기 겸 대장인 왕옥혁은 매우 비통해했다.
왕옥혁은 강택민 동지가 천진항에 와 고찰한 그해 자신은 그저 부두의 보통 컨테이너 트럭 운전수였었다고 회억했다. 30여년이 지난 오늘날 천진항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천진항은 북경, 천진, 하북성의 해상문호로 되여 세계 180여개 국가와 지구의 500여개 항구와 무역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왕옥혁은 “우리는 실제행동으로 우리의 애도를 표달해야 하는바 본직 일터에서 새로운 공적을 세우고 세계 일류의 친환경지혜중추항구를 다그쳐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부단히 보완되고 있다.
강택민 동지가 전에 고찰했던 료녕안산강철주식유한회사는 다년간 드팀없이 ‘개혁+시장’ 발전의 길을 걸으며 로기업의 전환승격을 추동하여 지혜강철제련의 새시대를 개척했다.
청해거얼무정유공장에서 모든 일군들은 강택민 동지가 이곳을 고찰하면서 남긴 부탁을 명기해 한창 과학연구 강도를 높이고 생산수준을 제고하고 청장고원의 연료구조를 개선하고 있으며 삼강원의 맑은 물과 푸른 하늘을 힘써 잘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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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발전및개혁위원회, 과학기술부, 공업및정보화부 간부와 종업원들은 다음과 같이 표했다. 국제, 국내적 정세가 매우 복잡한 상황에서 강택민 동지는 당의 중앙지도집단을 이끌고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당의 기본로선을 드팀없이 견지하며 전당,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을 단합해 기회를 다잡고 개혁을 심화하고 개방을 확대하고 발전을 촉진하고 안정을 유지하며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21세기로 밀고나갔다.
재정부, 상무부, 중국인민은행의 동지들은 다음과 같이 표했다. 강택민 동지의 인솔하에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개혁목표와 기본기틀을 확립하고 공유제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소유제경제를 함께 발전시키는 기본경제제도와 로동에 의한 분배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분배방식이 병존하는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분배제도를 확립하여 사회주의 물질문명, 정치문명, 정신문명 건설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진척을 거두도록 추동했다.
혁명의 성지인 섬서성 연안에서 당지 간부와 군중들은 분분히 비통한 소식을 전하며 강택민 동지에 대한 침통한 애도를 표달했다.
“강택민 동지가 연안에 와 고찰할 때의 모습은 여전히 연안인민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연안시 연안정신연구쎈터 주임인 풍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택민 동지는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의 주요 창시자이다.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이 제기된 후 연안에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고 매우 빠르게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을 학습하고 실천하는 고조를 불러일으켰다. 그 시기 전 시는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을 관철, 실천하며 개혁개방의 새 형세에 적응되지 않고 대중들의 념원에 부합되지 않는 두드러진 문제를 힘써 해결하여 당기풍, 당과 군중 관계, 간부와 군중 관계가 뚜렷한 개선을 가져왔다.
공안부, 국가안전부, 사법부, 자연자원부, 생태환경부의 동지들은 다음과 같이 표했다. 강택민 동지가 전당의 지혜를 모아 창시한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은 인류력사 발전 진보의 보편적인 법칙을 준수하고 시대 발전 조류와 우리 나라 사회 발전 진보 요구에 부응했고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의 리익과 념원을 반영했으며 새로운 형세에서 당의 집권 능력을 높이고 당의 집권 지위를 공고히 하며 당의 집권 사명을 완수하는 근본을 틀어쥐였다.
외교부, 국가민족사무위원회 간부와 군중들은 다음과 같이 표했다. 강택민 동지의 혁명정신과 혁명적 기풍을 학습하고 맑스주의의 립장, 관념, 방법을 활용하여 새로운 정황을 연구하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그의 과학적 태도와 창조적 정신을 학습해야 한다.
각 민주당파 중앙, 전국공상업련합회와 무당파 인사들은 다음과 같이 한결같이 인정했다. 강택민 동지는 우리 나라 여러 민족 인민들이 공인하는 숭고한 위망이 있는 탁월한 지도자이다.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의 걸출한 지도자, 중국공산당 제3세대 중앙지도집단의 핵심,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의 주요 창시자로서 강택민 동지는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다당 합작과 정치협상제도를 견지하고 보완하는 데 마멸할 수 없는 중요한 공헌을 했다.
대중을 존경하고 대중을 관심해야 한다
삼진대지는 슬픔에 잠겨있다. 뉴스에서 강택민 동지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산서성 대동시 운주구 보촌은 슬픔에 휩싸였다. 80세의 로서기 류계명과 그의 안해는 강택민 동지가 촌을 시찰할 때 남긴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렸다.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1990년 1월 강택민 동지가 대동-양고 지진 뒤 촌을 시찰할 때의 정경은 아직도 류계명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강택민 동지는 촌을 찾아 촌민들의 안위와 일상에 대해 물으면서 우리가 터전을 재건하도록 격려했습니다.” 류계명은 “보촌은 최근년간 신촌을 재건하고 전기로 석탄을 대신하는 청결 난방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며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생활로 강택민 동지를 위로해야 합니다.” 고 말했다.
강택민 동지가 서거했다는 소식은 당산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고아이자 하북성 당산시 재활의료중심 실험실 검사원인 당육신의 기억을 26년 전으로 되돌려놓았다. 당육신은 1996년 7월, 강택민 동지가 당산을 시찰할 때 당산내진기념관에서 그녀에게 열심히 사업하여 당과 인민의 양육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당부하던 것을 회억했다. 당육신은 “강택민 동지의 격려는 평생 동안 나에게 힘이 되여주었다. 하여 주동적으로 문천지진 재해구조와 코로나19 전염병 예방, 통제 사업에 지원하였고 당과 인민을 위해 힘을 기여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강택민 동지는 생전에 삼협저수지 관리구역의 발전과 이민들의 생활을 깊이 념려했다. 1988년 4월, 중경을 시찰할 때 그는 중경시 부릉구 남타진 련풍촌에 심입해 관리구역 이민 대중들과 일상사를 얘기하면서 그들의 생산, 생활 상황을 관심했다.
강택민 동지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련풍촌당지부 서기인 엽강은 매우 비통해했다. 엽강은 “촌민들은 줄곧 강택민 동지의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았다.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에서는 중국공산당은 시종 중국의 가장 광범한 인민들의 근본리익을 대표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반드시 강택민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여 향촌진흥의 길에서 촌민들의 생활이 더욱더 좋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