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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경애하는 강택민 동지는 영생불멸하리

—전국 각지 여러 민족 인민들 강택민 동지를 침통히 추모

2022년 12월 05일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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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오후, 경애하는 강택민 동지가 서거하였다는 비보가 전해지자 장강 남북, 장성 안팎의 중화대지는 커다란 비통에 잠겼다.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은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알리는 글을 시청하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이 우리 당, 우리 군, 우리 나라 여러 민족 인민이 공인하는 숭고한 명망을 지닌 탁월한 지도자를 추모하고 강택민 동지의 빛나는 업적을 기리였으며 강택민 동지의 위대한 지조와 숭고한 품격을 칭송했다. 사람들은 모두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강택민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며 더욱 자각적으로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두리에 뭉쳐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단결분투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택민 동지의 서거는 우리 당, 우리 군, 우리 나라 여러 민족 인민의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다

수도 북경 천안문광장. 12월 1일 새벽 추위가 엄습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경건하게 서있다. 국기를 게양하였다가 반기로 드리우는 의식이 시작되였다.

온 장내가 숙연한 가운데 국기호위대가 보무당당히 걸어나온다. “국기를 향해 경례!” 오성붉은기가 웅장한 〈의용군행진곡〉 속에서 서서히 게양되여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천천히 기대의 3분의 1 되는 곳에 내려와 멈춰선다.

의식은 끝나고 사람들은 애절한 모습이다.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알리는 글이 발포된 날부터 강택민 동지 추도대회가 거행되는 날까지 북경 천안문, 신화문, 인민대회당, 외교부와 향항특별행정구주재 중앙인민정부 련락판공실, 오문특별행정구주재 중앙인민정부 련락판공실, 외국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 령사관들에서는 반기를 드리워 애도의 뜻을 표하게 된다.

“강택민 동지가 재임하는 기간 우리 나라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진척은 기세가 웅장하였다. 나는 절실한 체험이 있다.” 특별히 천안문광장으로 와서 추모하는 북경시민 임옥하는 강택민 동지는 당의 중앙지도집단을 인솔하여 개혁, 발전, 안정을 촉진하는 일련의 방침, 정책과 중대한 전략을 제정하고 실시했으며 자기와 같은 무수한 일반인들에게 인생의 운명을 개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강택민 동지는 우리 당, 우리 군, 우리 나라 여러 민족 인민이 공인하는 숭고한 명망을 지닌 탁월한 지도자이며 위대한 맑스주의자,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 정치가, 군사가, 외교가이며 오랜 시련을 거친 공산주의 전사이며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사업의 걸출한 지도자이며 당의 제3세대 중앙지도집단의 핵심이며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의 주요 창시자이다.

중앙과 국가 기관, 각 인민단체는 가장 빠른 시간대에 텔레비죤, 라지오, 인터넷 등 형식을 통해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알리는 글을 시청했다. 사람들은 모두 20세기 80년대말, 90년대초는 당과 국가의 전도와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력사적 고비였으며 강택민 동지는 당의 중앙지도집단을 인솔하여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에 긴밀히 의거하면서 기치가 선명하게 네가지 기본원칙을 견지하고 국가의 독립, 존엄, 안전, 안정을 수호하였으며 경제건설이라는 이 중심을 드팀없이 견지하고 개혁개방을 견지하여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사업을 수호하고 우리 나라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았다고 표했다.

당의 13기 4차 전원회의로부터 16차 당대회에 이르기까지의 13년 동안에 당과 국가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는 맑스주의 정치가인 강택민 동지의 뛰여난 재능과 원대한 계략, 관건적인 역할, 높은 정치적 지도예술과 긴밀히 련관되여있다.

중앙규률검사위원회·감찰위원회 기관, 중앙과 국가 기관 사업위원회 간부, 종업원들은 강택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의 제3세대 중앙지도집단의 령도하에 우리들은 우리 나라 주권과 안전에 관계되는 일련의 돌발사건을 침착하게 대응했고 정치, 경제 령역과 자연계에서 나타난 곤난과 위험을 전승하여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항선이 시종 정확한 방향을 따라 파도를 헤치며 전진하도록 담보했다고 표했다.

중앙조직부, 중앙통전부, 중공중앙대외련락부의 동지들은 강택민 동지는 안목이 원대하고 시야가 넓고 시기와 형세를 잘 파악하였는바 언제나 중국과 세계의 발전대세로부터, 당과 국가 사업의 전반 국면으로부터 출발하여 문제를 관찰하고 사고하였으며 리론혁신과 기타 여러 면의 혁신을 끊임없이 추진하였다고 표했다.

중앙선전부, 중앙당학교(국가행정학원)의 간부, 종업원들은 강택민 동지는 전당의 지혜를 결집해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을 창시하고 지도사상에서의 당의 또 한차례의 시대와 더불은 발전을 실현했으며 진정한 맑스주의자의 커다란 정치적 용기와 리론적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표했다.

전국인대 기관 간부, 군중들은 강택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의 제3세대 지도집단은 정치체제 개혁을 추진하고 민주를 발전시키고 법제를 보완하고 법에 의거해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건설하여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인민의 권리행사를 담보했다고 표했다. 전국정협 기관 간부, 군중들은 강택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의 제3세대 중앙지도집단은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다당합작과 정치협상제도를 중국의 기본정치제도로 확립함으로써 인민정협사업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표했다.

강택민 동지의 우수한 품격과 고상한 풍모는 우리들이 전진하도록 영원히 교육하고 격려할 것이다

결백한 국화꽃 한송이를 올리고 송별의 바람을 글귀에 담으며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추모활동에 참가하였는데 기리는 마음들은 끊임이 없었다.

강소성 양주에 있는 강택민 동지의 옛집 문어구에는 사람들의 애도의 뜻이 담긴 꽃다발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이곳을 찾아와 헌화한 사람들은 부근의 주민들외에도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젊은이들도 많았다.

경화관사회구역 주민 리화는 무거운 심정으로 꽃다발을 조심스레 강택민 동지의 옛집 문어구에 놓고 나서 말했다. “강택민 동지는 양주사람들의 자랑이다. 비록 그이는 떠나갔지만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그이의 정신은 꾸준히 분투하도록 우리들을 격려해줄 것이다.”

양주대학 교원 황걸은 침통한 심정으로 말했다. “강택민 동지는 고향의 발전을 아주 관심하였다. 우리들은 더욱 질 높은 교수 수준으로 더욱 많은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고 고향을 더욱 훌륭하게 건설하련다.”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알리는 글은 강택민 동지의 일생을 회고함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그이의 우수한 품격과 고상한 풍모를 더욱 감복하게 했다.” 일기자동차집단회사 부총공정사를 담임한 적 있는 모리평은 강택민 동지와 함께 일하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강택민 동지는 일찍 장춘제1자동차제조공장 동력처 부처장, 부총동력사, 동력분공장 공장장을 담임했다. 동사자들 기억 속의 강택민 동지는 언제나 현장에 심입하고 군중 속에 심입하여 정황을 료해하고 모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지지해주었다.

“강택민 동지는 비록 우리를 떠났지만 그이의 부지런히 학습하고 꾸준히 기술업무를 연찬하는 정신은 영원히 우리들이 따라배울 바이다. 동북로공업기지에 대한 그이의 공헌은 영원히 명기될 것이며 동사자, 벗과 백성들에 대한 진실한 감정과 두터운 우의는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모리평은 이같이 말했다.

“강택민 동지는 실천을 존중하고 시대와 더불어 전진했다. 언제나 시대의 발전의 맥박과 기회를 단단히 파악하고 당과 인민의 생동한 실천으로부터 출발하여 경험을 총화하고 방법을 찾는 것을 견지했으며 착실하면서도 개척 진취하면서 당과 국가의 제반 사업을 추진했다.” 전당, 전군,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알리는 글중의 이 말은 일찍 강택민 동지와 함께 일을 한 적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회를 금치 못하게 했다.

강택민 동지는 일찍 무한열공기계연구소에서 사업했었다. 올해 78세인 리옥정은 강택민 동지는 틀을 차리지 않고 전 소의 종업원들과 어울렸다면서 그이는 우리더러 확고한 정치립장, 높은 사업능력과 우수한 문화지식을 갖추라고 경상적으로 가르쳤고 그 자신은 더욱 착실한 사업작풍으로 전 소의 종업원들을 이끌고 학습에 전념하고 단결 분투했다고 말했다.

“강택민 동지는 대중을 존중하고 대중을 관심했다. 언제나 인민대중의 안위와 일상생활을 고도로 관심하고 가장 광범한 인민의 근본리익을 의거로 사업을 검증하고 추진했다.” 이 구절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흑룡강성 치치할시 대래현 탁리하촌 촌민 왕옥매는 몇번이고 울먹거렸다.

1998년 여름, 우리 나라는 력사적으로 보기 드문 특대홍수재해를 입었다. 장강, 눈강, 송화강에서 력사의 기록을 초월하는 특대홍수가 발생했던 것이다. “홍수는 우리의 집을 허물어버렸다. 가장 어려울 때 강택민 동지가 우리 이 재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문했으며 나하고 악수도 했다. 이러한 따뜻한 배려를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24년이 흘러지나 나의 애들은 모두 가정을 이루었고 생활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우리들은 마음속으로부터 그이가 그립다.” 왕옥매는 이같이 말했다.

큰 재해 앞에서 굴하지 않는 기둥이였다.

호남, 호북, 강서, 안휘 등 당년의 재해지역 간부, 대중들은 강택민 동지가 인민의 안위를 념두에 두고 직접 홍수와의 싸움을 지휘하던 감동적인 장면을 정 깊게 회억했다.

당시 호북 형주시당위 서기를 담임했던 류극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홍수가 박두하는 위급한 시각에 강택민 동지는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뚝에 올라 홍수와의 싸움을 지휘하여 전선의 군민들이 홍수와 싸우는 데 강대한 정신적 힘을 실어주었고 하루속히 아름다운 고향을 복구하려는 모두의 신심을 확고하게 했다면서 “력사는 그이의 위대한 공적을 영원히 명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것은 인민을 위하고 모든 것은 인민에 의거했다. 1999년 6월, 강택민 동지는 중서부지역의 발전템포를 다그칠 시기가 이미 성숙되였다고 제기했다. 같은 해 중국공산당 15기 4차 전원회의와 중앙경제사업회의는 정식으로 서부대개발전략을 실시할 것을 제기했다.

서남재경대학 중국서부경제연구원 원장 모중근은 서부대개발전략에 힘입어 서부지역의 경제는 쾌속 발전했고 민생은 끊임없이 개선되였으며 인민대중은 전국 인민과 함께 초요를 향해 달리는 행복의 길에 올랐다면서 인민은 강택민 동지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법위원회, 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의 동지들은 강택민 동지가 인솔한 중앙지도집단은 의법치국 기본방략을 실시하고 당건설의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추진하며 사회주의 물질문명, 정치문명, 정신문명 건설을 추동하여 세인이 괄목할 만한 새로운 진척을 이룩하고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21세기에로 떠밀었다고 표했다.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강택민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고 실제 행동으로 우리의 추모를 표현해야 한다

내몽골자치구 실린골맹 소니드우기에서 울란무치대원들은 울란무치전시청에 들어가 강택민 동지의 사진 아래에 조용히 서서 묵념을 했다. 대장 짜나는 “강택민 동지는 울란무치를 줄곧 매우 관심하였다. 그이는 우리더러 정확한 문예방향을 견지하고 더욱 훌륭하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사회주의를 위해 복무하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꼭 이 소중한 정을 명기하고 인민대중에게 당의 목소리와 배려를 전달하며 영원히 초원의 ‘홍색문예경기병’으로 될 것이다.”고 말했다.

신강위글자치구 우룸치시에서 소수민족특색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애니와르·투얼은 “우리는 꼭 확고부동하게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견지하고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견지하며 일치단합하여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두번째 백년 분투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천리 밖에 있는 동해 해변도시 하문, 강택민 동지는 일찍 여러번이나 이곳 하문경제특구를 고찰했었는데 하문시교통국 부국장을 담임한 적 있는 반세건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하문은 개혁개방의 최전방 진지로서 우리들은 강택민 동지가 하문의 경제, 사회 발전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다준 것을 실감하였다. 강택민 동지는 당의 중앙지도집단을 인솔하여 우리 나라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우리는 꼭 강택민 동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고 말했다.

광동, 절강, 해남, 상해 등지에서 사람들은 강택민 동지가 경제체제 개혁, 정치체제 개혁, 문화체제 개혁과 기타 여러 면의 개혁을 진취적으로 추진하여 개혁개방의 새로운 국면을 전면적으로 열어놓은 휘황한 발자국을 회고하고 있었다.

해남사범대학 중국특색자유무역항연구중심 주임 류봉은 “강택민 동지는 해남경제특구 건설에 대해 충분한 관심과 지지를 주어 해남 간부, 대중들이 전국에서 가장 큰 경제특구를 건설하려는 배심과 신심을 확고히 하게 하였고 해남 간부, 대중들의 과감히 부딪치고 과감히 시험하며 용감히 앞장서는 분투정신을 진작시키게 했다. 우리는 계속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드팀없이 나아가 그이의 부탁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광동 산두, 강택민 동지가 제자를 쓴 해만대교는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고 있다. 올해 9월말, 해만대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해만턴넬의 개통은 낮과 밤을 이어가면서 전력을 다해 분투한 것을 목격했다.

“광동의 발전변화는 강택민 동지의 관심과 긴밀히 관련되여있고 개혁개방의 인도와 긴밀히 관련되여있다.” 광동성당위 부비서장을 담임한 적 있는 진개지는 이같이 말하고 나서 우리는 꼭 강택민 동지가 맑스주의 립장, 관점, 방법을 응용하여 새로운 정황을 연구하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적 태도와 혁신정신을 힘써 따라배워 우리 나라를 부강하고 민주적이고 문명하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건설하기 위해 단결 분투할 것이라고 표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사업에는 강택민 동지를 포함한 한 세대 또 한 세대 공산주의자들의 심혈과 분투가 응결되여있다

전국총공회, 공청단중앙, 전국부녀련합회의 간부, 종업원들은 반드시 더욱 자각적으로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두리에 뭉쳐 당의 기본리론, 기본로선, 기본방략을 견지하고 ‘두가지 확립’의 결정적 의의를 깊이 터득하며 ‘네가지 의식’을 강화하고 ‘네가지 자신감’을 확고히 하며 ‘두가지 수호’를 실행하고 당을 전면적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것을 꾸준히 추진하며 새시대 당건설의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깊이 추진하고 당의 자기혁명으로 사회혁명을 인솔하여 우리 당이 초심과 사명을 고수하고 시종일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업의 강력한 지도핵심으로 되게 해야 한다고 표했다.

강택민 동지의 모교인 상해교통대학에서 사생들은 륙속 전자정보및전기공정학원 문어구의 광장으로 나와 ‘후덕지원(厚德致远)’이란 글자가 새겨진 비석 앞에 헌화하고 묵념을 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항일애국활동에 적극 참가하여 세례를 받은 로선배는 맑스주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인생길의 선택을 완성하였으며 최종적으로 민족해방, 인민행복을 위해 분투하는 인생 리상과 신앙을 확립했다.” 2021급 박사연구생 장자문은 이같이 말하고 나서 20차 당대회는 새로운 전진의 나팔을 울렸다면서 우리는 더욱 자각적으로 습근평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두리에 뭉쳐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고 위대한 창당정신을 고양하며 신심을 확고히 하고 한마음한뜻으로 열심히 일하고 용감히 전진하여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단결 분투해야 한다고 말했다.

래원: 연변일보(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