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제 바남현 옴도향 쌍바촌의 장족식 마당에서는 베틀 소리가 울려펴진다. 할머니에서 손녀에 이르는 3대에 걸쳐 직조기예를 이어온 바이마가족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이 한오리의 실은 고난과 새 삶의 세월을 증명하는 동시에 설역고원의 민생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비추어준다.
“할머니, 힘드시면 좀 쉬세요.” 몸을 구부리고 베를 짜는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손녀 바이앙이 조용히 권고했다. 일흔이 넘은 바이마 로인은 련이어 손을 저었다. “힘들긴! 내 일을 하는데 조금도 힘들지 않아!” 소박한 감회는 두 세대의 전혀 다른 처지를 말해준다.
“옛 사회에서 모포를 짜는 것은 농노들에게 어깨를 짓누른 고역이였습니다.” 옛 서장의 농노출신인 마을의 로세대 촌민으로서 바이마는 실에 묶여 쉴 새 없이 일해야 했던 고난의 세월을 몸소 겪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밤낮없이 베틀 앞에 앉아 일했고 짜놓은 모포는 전부 장원주에게 바쳐야 했다. 모녀가 온 힘을 다해 하루종일 일해도 돌아오는 것은 묽은 짬바 한그릇 뿐이여서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손에 쥔 실로 짠 것은 천이 아니라 농노들의 피로와 농노들의 고통이였습니다.”
민주개혁의 도래는 바이마가족의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당시 아직 어렸던 그녀는 운명을 뒤바꾼 이 거대한 변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백성들을 억압하던 농노제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그녀의 집에도 집과 토지가 분배되였다. 어머니는 장원주를 위해 오랜 세월 일해온 낡은 베틀을 장원에서 자기 집 마당으로 옮겨놓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가 짜는 모든 천은 우리 자신의 것이란다. ”
“우리 어머니 세대가 손에 쥔 실은 장원주가 내려준 것으로 빚을 갚기 위한 것이였고 부역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 이르러서는 손에 쥔 실은 스스로 집어든 것으로 생계이고 부를 도모하는 희망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바이마에게 직조기예를 배운 줘가가 말했다. 오늘날 모포 직조는 이미 옛날의 고난이라는 흔적을 벗어던지고 향촌의 전면적 진흥 정책에 힘입어 활기차게 발전하는 고원의 특색산업으로 되였다.
이제 이 실은 바이양에게 전해졌다. 중국공산당 당원이자 촌당지부 서기이며 향촌산업의 선도자인 젊은 바이양은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저는 이 기예를 잘 전승할 뿐만 아니라 이 한오리의 실을 더 멀리 보내고 싶습니다.”
새 시대의 물결 속에 서서 드넓은 산천과 번화한 도시를 보았고 외지에서 배우고 심화한 경험을 통해 바이양은 계승과 개혁의 결심을 더욱 굳혔다. “저는 조상에 대한 경외심과 시대에 대한 감사함를 안고 옛 기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모포가 시가제를 벗어나고 고원을 벗어나 세계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