녕하박물관 ‘홍기만권(红旗漫卷)’ 녕하혁명문물전시회에는 모택동동지의 <청평악·륙반산> 친필 복사본이 하나 있다. 6장의 16절 선지로 이어붙인 족자로서 종이는 누렇게 변했지만 그 고아하고 힘있는 필력은 여전히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词)의 뒤에는 작은 글씨로 세겨진 주해 한줄이 있다—“1961년 9월 녕하 동지의 부탁으로 쓰다’. 해설원은 “‘홍기만권’이라는 이 전시청 이름은 바로 사중의 ‘륙반산상고봉, 홍기만권서풍’에서 따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렬대에 누워있는 복사본 하나가 6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리유는 무엇인가? 녕하에서 그 답안은 한갈래 산길이다.
1935년 10월, 모택동은 중앙홍군을 이끌고 장정을 하면서 마지막 큰 산인 륙반산을 넘었으며 도중에 <장정요>를 창작했고 이후 여러차례 수정을 거쳐 <청평악·륙반산>으로 최종 원고를 마무리했다.
1961년 9월 8일, 녕하 동지들의 부탁에 모택동은 이 사를 다시 썼는바 초고 ‘모두(旄头, 일명 정두)만권서풍’을 ‘홍기만권서풍’으로 고치고 동필무에게 부탁하여 녕하에 넘겼다. 같은 해 9월 30일, 《녕하일보》 제1면에 붉은색으로 게재되였다. 몇달 후, 녕하 은천의 장인은 이 친필글씨를 한글자 한글자 하란석에 새겨 길이 3메터, 너비 1메터의 석병을 만들어 북경 인민대회당 녕하청에 걸어놓았다.
60여년이 지나도 이 사는 종이에만 머물러있지 않았다.
올해 청명절 전야, 날이 채 밝기 전에 녕하 고원시 고원제2중학교, 홍문중학교 등 학교 사생 및 각계 인사 3,000여명이 붉은기를 높이 들고 고원시내에서 도보로 출발했다. 그들은 왕복으로 108리되는 팽양현 임산하 렬사릉원으로 향하여 그곳에서 고이 잠든 390여명의 렬사를 추모했다.
이와 같은 ‘걸음 속의 사상정치수업’은 1995년 청명절부터 지금까지 31년 동안 한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
“홍군은 그때 설산을 넘고 초지를 걸어갈 수 있었으니 오늘의 아이들도 반드시 이 백리 산길을 걸어낼 수 있다.” 31년 전, 당시 40세였던 고원제2중학교 전임 교장 한굉은 초중 1학년의 사생 300여명을 이끌고 첫걸음을 내디뎠다.
한굉은 농촌출신으로 장정력사에 익숙했다. 홍군길은 대부분 ‘농가에서 양을 방목하며 밟아 낸 구불구불한 오솔길’이였다.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그는 며칠 전에 몇명의 교사를 데리고 실제 로선을 모두 걸어보았다. 출발 전에 그는 또 아이들에게 “한동안 굶고 걸어보면서 그때 홍군의 간고함을 체험해보라”고 제안했다. 지금 그는 일흔살에 이르렀지만 이 산길을 말할 때면 여전히 감회에 젖는다. 그는 기자에게 백리 도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운’ 전우애라고 말했다—학우들간에 서로 돕고 보살피는 것이 그때 홍군 전사들간의 서로 도우며 고난을 함께하는 정과 같은 힘을 준다.
올해 황묘산을 넘던 중 홍문중학교 학생 장택우가 실수로 미끄러져 발목을 삐였다. 교원들과 동행한 구조대원들이 그에게 차에 타라고 권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혁명전사들은 포기할 생각을 해본 적 없는데 제가 어떻게 멈출 수 있겠습니까?” 학급친구들은 그를 부축하며 대부대의 뒤를 따라 한걸음한걸음 나아갔고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도보행진에 참가한 중학생 왕가기는 새벽 3시 조금 넘은 시각에 일어났다. 한두 시간쯤 걷자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릉원에 들어선 그녀는 390여개의 묘비 앞에서 어머니가 챙겨준 사탕을 꺼냈다. 오는 내내 먹지 않고 간직해둔 것은 렬사들의 묘 앞에 놓아드리며 “그분들도 오늘의 달콤함을 맛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한굉의 눈에 이 108리 길은 바로 “만리장성에 이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모습이다. ‘장성’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발 밑에 있고 ‘대장부’는 한낱 구호가 아니라 발목을 삐고도 렬사기념비 앞까지 걸어가려는 굳은 의지인 것이다.
한수의 사의 ‘새로움’은 그것이 화선지 위에 머물던 글이 현실 속으로 들어온 데 있다.
31년 동안 이 ‘걸어다니는 사상정치수업’은 한 학교의 행사에서 도시 전체가 참여하는 활동으로 발전했고 숏폼 동영상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관련 보도의 온라인 루적 조회수는 수십억회에 달했다. 산동성 덕주의 한 퇴역군인 가족은 여러 경로로 련락을 취해와 저축한 돈을 기부해 특별장학금을 설립하겠다고 했고 흑룡강, 사천, 산서의 학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대렬에 합류했으며 북경대학의 교원과 학생 십여명도 이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세대마다 주어진 장정의 길이 있습니다.” 올해 청명절에 도보행진에 참가한 대학생 출신 퇴역군인 정위초가 말했다.
사 속에 담긴 ‘장정의 길’은 륙반산에서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고원시 륙반산홍군장정관광구에는 길이 2.5킬로메터의 ‘홍군 오솔길’이 새로 조성되였고 18조의 조각상으로 ‘혈전상강(血战湘江)’, ‘준의회의’, ‘사도적수(四渡赤水)’ 등 정경을 차례로 재현했으며 몰입형 실경공연 《불후의 장정》도 선보였다. 기념관의VR (가상현실)체험구역에서는 관광객들이 직접 눈덮인 산을 넘는 험난한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현재 륙반산홍군장정관광구는 년평균 연인원수로 6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접대하고 있으며 그중 청소년 관광객 비률은 40%를 넘는다. 산 아래에 있는 양가점 ‘홍군마을’에서는 홍색농가락과 림하버섯산업이 40여호 농가의 현지 취업과 소득증대를 이끌어 가구당 년평균 소득은 3만원을 넘는다. 관광구의 무형문화유산 전시관에서는 륙반산의 자수와 흙조각 공예가 장정이야기와 함께 산을 넘어 더 널리 알려지고 있다.
한장의 영인본에서 한번의 도보행진수업, 한갈래의 홍군오솔길, 하나의 5A급 관광지로 이어지고 나아가 수많은 청소년이 두 발로 걸어가는 108리 길에 이르기까지 장정길에서 창작되여 60여년전 화선지에 쓰인 이 사는 지금도 줄곧 ‘걸어가고’ 있다.
해마다 청명절 도보행진이 끝나면 교원과 학생들이 어스름 속에서 학교로 돌아오고 학부모들은 꽃다발을 안고 교문 앞에서 일찍부터 기다린다. 홍문중학교 당지부 서기 임호는 “만번의 훈계보다 한번의 뼈에 사무치는 실천이 더 낫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