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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층동향

‘7.1훈장’ 수상자 최도식: “당은 제가 일생동안 지켜온 힘의 원천입니다”

2026년 07월 01일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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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은 저를 해방시키고 키워주었습니다. 당은 제가 일생동안 지켜온 힘의 원천입니다!”

올해 92세인 최도식은 우리나라의 국보급 총탄 흔적 감정 전문가이자 8명 공안부 특별채용 형사전문가 중 한명으로 공안, 검찰, 법원 분야에서 유일하게 당내 최고영예인 ‘7.1훈장’을 획득했다. 그는 새중국 형사 기술의 선구자로 성장해 70여년간 경찰사업에 몸담으면서 하나 또 하나의 물증과 탄흔 감정으로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지켰다.

1945년, 당의 부대는 그의 고향을 해방시켰다. 고된 삶을 살아가던 대중들은 먹고 입을 걱정이 없게 되였을 뿐더러 공부할 기회도 생기게 되였다.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는 일찍 군에 입대하여 나라에 보답하기로 결심했다. 헌데 심양에 주둔한 후방부대에 편입된 그는 문직 사무를 맡게 되였다. 

“당시 전선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저는 일부로 업무에서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그의 이런 마음을 지도원은 훤히 꿰뚫어보았다. 

“후방의 지원이 없다면 전방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어디서든 공을 세울 기회가 있으니 열심히 일해요.”

지도원의 타이름을 받은 최도식은 마음을 다잡고 부대에서 맡은바 임무를 착실히 수행하였다. 그의 우수한 표현은 부대로부터 수차 표창을 받았다. 

전역 후, 그는 조직의 배치에 따라 흑룡강성 공안청으로 가서 한명의 어엿한 형사경찰로 되였다. 그는 부대에서 단련된 신중함과 뚝심을 사건 수사에 아낌없이 투입했다. 

흑룡강성 공안청 형사기술총대 총대장을 맡고 있는 등효룡은 최도식의 가르침을 받은 적 있는 ‘제자’ 중 한명이다. 그는 옆에서 바라본 스승의 책임심과 업무에 대한 열정을 이렇게 회억했다. 

“과거 흑룡강성에서 부부간의 갈등으로 인해 남편이 총으로 안해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탄도를 분석하여야 사건의 성질을 결정할 수 있었는데 최선생님은 자신이 녀성 사망자와 신장이 비슷하다며 두말없이 땅에 누워 사건현장을 복원했습니다. 80세가 넘은 로인이 그렇게 선뜻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진정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십년간 초점이 집중되였던 백은련쇄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최도식은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다. 

흑룡강성 공안청 보도선전처의 풍예 경찰관은, 련쇄사건 중 한 사건에 대해 용의자 고승용도 자신이 한 짓이라고 자백했지만 현장에 남겨진 지문과 일치하지 않아 골머리를 앓게 되였다고 회억했다. 모두가 속수무책에 빠져있을 때 최도식을 청해오게 되였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두문불출하면서 지문 대조에만 시간을 할애했다. 며칠간의 확인을 거쳐 최도식은 현장 지문이 특수한 자세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였다. 

1955년에 흑룡강성 공안청으로 전근하게 되면서 그는 어언 71년간 형사사업에 종사하게 되였다. 통계에 따르면 그는 7000여건의 물증을 점검하고 1200여건의 중특대 사건 해명에 참여하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과정에 단 한번도 오차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최도식은 군인시절 련마한 신중함과 뚝심으로 경찰휘장에 부끄럽지 않은 하나 또 하나의 답안지를 내놓았던 것이다. 

흑룡강성 공안청 경무기술 2급경감인 고명파는, 최선생님은 평생을 소박하게 생활하면서 조직에 그 어떤 요구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 인생에 대한 최선생님의 영향은 단지 업무면의 뛰여난 능력뿐만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간고분투의 정신력을 키우도록 이끌어준 소중한 품격입니다.”

2021년, 당창건 100주년을 맞이한 특수한 시점에 최도식은 당내 최고영예인 ‘7.1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크나큰 영광 앞에서 최도식은, 영예는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위급한 시각 두려움 없이 앞장서 내달리는 전국 200만 공안경찰 모두의 영광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92세의 고령이지만 최도식은 수요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사건 해명을 위해 저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사명과 초심을 명기하고 당과 인민을 위해 분발진취하길 후대들에게 희망했다. 이 또한 그가 평생 지켜온 인생신조인 것이다.  

글 박민걸


래원: 중앙인민방송(편집: 김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