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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층동향

섬북의 좋은 강남, 오늘날의 새 모습

남니만, 북대황과 ‘손 잡아’

2025년 08월 07일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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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니만 천무 논 경치(신화사 기자 번우청 촬영).

남니만 천무 논 경치(신화사 기자 번우청 촬영).

남니만 대생산기념관내의 조각상(신화사 기자 번우청 촬영).

남니만 대생산기념관내의 조각상(신화사 기자 번우청 촬영).

남니만은 중국인민의 항전기억 속에 새겨져있다. 1941년 봄, 팔로군 제359려는 ‘자력갱생, 간고분투’ 정신을 발양하여 이곳에서 군대 개간과 둔전을 실행하고 황무지인 ‘진흙탕’을 ‘곳곳마다 농작물이고 온 땅에 소와 양’인 ‘섬북의 좋은 강남’으로 변모시켰으며 ‘자신의 두 손으로 풍의족식’하는 모범으로 되였다.

올해는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최근 기자는 섬서성 연안에 가서 남니만의 새로운 모습을 탐방하고 북대황의 농업기술이 어떻게 남니만에 뿌리 내리고 보급되는지 알아보았다.

—편집자

“남니만에 왔네, 남니만은 좋은 고장, 좋은 고장이라네…”

록음이 우거진 남니만, 천무 논의 모는 이미 이삭이 패고 꽃이 피는 시기에 들어섰다. 멀리서 바라보면 논이 사방의 푸른 산, 습지와 어우러져 황토고원에서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농가들, 새 ‘곡괭이’를 들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남니만 벼재배면적은 한때 위축되였다가 지금은 1000무로 점차 회복되였습니다.” 연안 보탑구 남니만진 남양부촌의 새로 정리한 논두렁에 서서 연안남니만(집단)농업유한회사 부총경리 조걸이 소개했다. 근년에 연안은 남니만진 등 주변 3개 향진을 포함하는 남니만개발구를 설립했으며 관리위원회와 남니만집단이 병행하는 모식으로 발전을 추동하고 있다.

논의 회복은 결코 쉽지 않았다.

벼를 심으려면 우선 물이 있어야 했다. 원유의 관개계통은 오랜 세월 수리하지 않아 낡아있었다. 건설자들은 삽과 곡괭이로 낡은 수로를 수리하고 개건했으며 강에서 더 멀리 떨어진 논에서는 또 뜨거운 해빛을 무릅쓰고 탐사하여 우물을 팠다. “고방촌에 2개, 홍토요촌에 3개, 남양부촌에 1개, 이렇게 6개의 우물을 파고 나서야 비로소 논의 ‘생명선’을 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조걸이 멀리 있는 우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음은 땅이였다. 토양의 알칼리화가 심각하여 그들은 유기비료를 지속적으로 주고 땅을 깊이 갈고 벼짚환전법을 보급하여 논을 조금씩 개량했다. “토양색이 깊어지고 손감각이 부드러워지고 벼모가 싱싱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 이 고생도 보람이 있습니다.” 조걸이 말했다.

“이전의 ‘진흙탕’이 ‘좋은 강남’으로 변한 것은 팔로군 제359려 장병들의 곡괭이에 의해서입니다. 오늘날 땅이 다시 생기를 되찾게 하려면 백성들이 새 ‘곡괭이’를 들어야 합니다.” 조걸은 남니만에서 무인이양기, 콤바인, 무인기 등 선진적인 농기계설비를 도입하여 농민들의 생산효률을 제고시켰다고 말했다.

몇년이 지닌 후 남니만개발구 핵심구역으로부터 주변의 고방촌, 도보욕촌 등에 이르기까지 논들이 한구획씩 회복되여 서로 련결되였다. 관개수로와 생산도로가 그 사이에 종횡으로 뻗어있고 전야는 생기로 차넘친다.

황토지가 흑토지를 ‘만나다’

이른 아침의 논에서는 농민들이 벌써 바쁘게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장몽은 논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벼잎 성장세를 자세히 살펴보았고 그 옆의 선뢰는 손에 든 기계를 숙련되게 조작했다. 무인기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약물안개가 엷은 비단처럼 가볍게 논을 뒤덮었다.

장몽은 남니만(집단)농업유한회사 벼재배책임자이고 선뢰는 북대황집단 수빈농장의 기술원이다. ‘남’과 ‘북’의 협력은 2019년에 시작되였는데 남니만집단과 북대황집단은 천무 량질벼생산기지 건설을 계획하고 표준화 시범농지를 만들었다.

사실 남니만과 북대황은 일찍부터 인연을 맺었다. 지난 세기 50년대, 제359려의 일부 전사들은 노래 <남니만>을 부르며 ‘자력갱생, 간고분투’ 정신을 이어받아 북대황을 개간했다. 남니만정신은 북대황이 ‘북대창(北大仓)’으로 변한 중요한 정신적 버팀목으로 되였다. 근년에 북대황집단은 개간구를 벗어나 전국으로 나아가 량질의 벼품종과 선진적인 재배관리기술을 가지고 남니만에 왔다.

올 때는 의욕이 넘쳤지만 로련한 기술원인 선뢰는 ‘풍토’에 인차 적응하지 못했다.

“기후와 토양이 너무 달랐습니다.” 선뢰의 소개에 따르면 동북평원으로부터 섬북고원에 이르기까지 북대황의 주재배품종은 이곳에서 ‘더위에 못견뎌냈다’고 한다.

더 골치 아픈 것은 토양의 알칼리화와 보수성이 나쁜 것이였다. “한낮에 해빛이 내리쬐면 지면온도가 급상승하고 수분증발이 빠릅니다. 게다가 알칼리성이 강하여 작은 모가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모가 대량으로 죽어나갔는데 기술을 그대로 옮겨서는 안되였습니다.” 당시의 정경을 회억하며 장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북대황기술의 현지화 ‘적응전투’가 곧바로 전개되였으며 품종이 돌파구로 되였다. 수빈농장은 50여가지 품종 가운데서 3가지 주재배품종—도화향2호, 룡양16호, 초향갱1호를 선별해내여 남니만 벼를 위해 ‘핵심’방향을 찾아주었다.

모종기르기와 논관리가 관건적인 ‘전쟁터’였다. 동북의 모종기르기 하우스모델이 이곳에서 통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반복적으로 시험했다. 차광망을 추가로 설치하고 부직포를 깔았으며 토양 속 알칼리성 물질이 어린 모를 상하지 않도록 대량의 물로 모를 씻었다. 모판을 놓기 전에 모판흙의 산알칼리도를 정밀하게 조절하고 닷새에 한번씩 모에 ‘산조절목욕’을 시켜주는 것을 견지했다.

장몽은 선뢰를 따라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북대황의 기술원들은 나에게 ‘데터사유’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온도, 습도, pH값, 모의 성장세 등 모든 것은 데터를 보고 규칙을 찾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작에서는 또한 ‘현실에 발을 붙여야’ 했는바 이양기의 변수를 조정하고 무인기시비, 시약의 최적방안을 모색하는 등 모두 현지화가 필요했다.

“땅은 ‘살아’있습니다. 제대로 해내려면 남니만의 ‘성미’를 속속들이 파악해야 합니다.” 장몽은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토박이전문가’로 변신했다.

‘적응전투’의 성과는 뚜렷했다. 2019년, 남니만 벼의 무당 평균생산량은 950.4근이였는데 2022년에는 1186.6근으로 도약했다. 오늘날 6년간의 경작을 거쳐 천무 시범농지의 무당 생산액은 이미 4000원을 초과했으며 ‘남니만쌀’브랜드는 점차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장몽은 말했다. “북대황의 과학기술과 우리 남니만 사람들의 파고들고 열심히 일하는 완강한 정신이 하나로 뭉쳐졌습니다.”

‘붉음’과 ‘푸름’이 어우러진 화폭

“오늘날의 좋은 풍경은 모두 그 시절 359려 전사들이 곡괭이로 일구어낸 것입니다…” 남니만의 한 농가 뜨락에서 팔순로인 후수진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마디마디 힘이 있었다. 이 359려 전사의 후손은 40년을 하루와 같이 홍색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기력이 남아있기만 하면 이 이야기를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토굴집 외벽에 씌여진 “남니만정신 대대로 전하자”라는 몇개의 큰 글자가 특히 한눈에 안겨왔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남니만 대생산기념관내에서는 남니만문화관광회사 일군 형정군이 현장학습단에 홍색문물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부동한 관광객군체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념관에서는 4세트의 해설사를 준비했는데 359려 전사들이 사용했던 도구 하나하나는 모두 남니만정신의 생동한 묘사였다.

다시 논쪽으로 가면서 보니 서로 다른 색의 모로 구성된 항일주제 논그림 한폭이 확 안겨왔다. 조걸은 해마다 모내기철과 가을철이 되면 늘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농경생활을 체험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남니만의 벼를 리용하여 사람들에게 남니만정신을 보여주고 그들이 오늘날의 생기발랄한 새로운 남니만을 보게 하고 싶습니다.”

남니만국가습지공원에서는 백로, 왜가리 등 물새들이 노닐고 있고 국가1급보호야생동물인 동방황새, 먹황새도 이곳에서 먹이를 찾는다. 근년에 현지에서는 수계련통, 수원함양, 생태회복 등 조치를 취하여 하천, 습지 등 물환경에 대한 생태관리와 효과적인 보호를 진행했으며 이와 동시에 습지과학보급선전교양을 전개하여 습지야생동식물의 서식생장환경을 수호했다. 2019년말, 이곳은 섬북지역 첫 국가급습지공원으로 되였다.

현대화농업의 토대를 튼튼히 다지면서 ‘붉음’과 ‘푸름’이 어우러진 남니만은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혁명옛터 참관, 논 현장학습, 습지 조류관찰, 특색농산물 시식… 풍부한 체험, 다양한 업종형태는 끊임없이 발전동력에너지를 활성화시키고 있는바 2024년 남니만은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을 접대했다.

“359려의 곡괭이로부터 오늘날의 스마트농기계에 이르기까지, 당년의 군대 개간과 둔전으로부터 오늘날의 농업, 문화, 관광의 융합발전에 이르기까지 남니만의 ‘개척’이야기는 멈춘 적이 없는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남니만정신은 대대로 계승될 것입니다.” 남니만개발구관리위원회 발전계획부 부부장 고명뢰가 말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