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자전거가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지 않으니 집중주차구역을 만들면 어떻겠는가?”, “우산이나 구급상자가 있는 편민봉사코너가 있으면 좋겠다.”… 북경시 서성구 월단가두 삼리하2구 사회구역의 주민의사청에서는 열렬한 토론이 한창이다.
“군중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바가 바로 우리의 사업방향이다.” 제2당지부 서기 고련상은 손에 필을 잡고 자세히 기록했다. 필기장에는 주민들의 요구와 련결부문이 명확하게 표시되여있었다.
기층관리에서의 ‘마지막 1킬로메터’,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요구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가? 중앙8가지 규정 정신 심입관철 학습교양을 전개한 이래, 북경시당위는 당원간부들이 기층에 내려가 민정에 귀를 기울이고 실제적인 일을 하도록 적극 추동하여 ‘신고 접수 즉시 취급’하는 봉사수준을 향상시키고 군중 신변의 일을 잘 처리하고 여러가지 민생의 실제적인 일들을 잘 처리하도록 했다. “이 의사청은 밝고 서민성이 강하다. 앉아서 얘기를 나누면 일이 바로 해결되는데 우리 백성들이 한 말을 간부들은 정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주민 구아주머니는 당원 간부들의 실무적인 작풍에 대해 진심으로 인정했다.
작풍문제의 핵심은 당과 인민군중의 관계문제이다. 새 시대 이래, 습근평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은 중앙8가지 규정 정신의 시달을 꾸준하게 추동하고 작풍건설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인민군중과의 혈육관계를 밀접히 했다. ‘군중에게 일하도록 요구’하던 데로부터 ‘군중을 위하여 일하고 봉사하는” 데로 바뀌면서 당과 군중, 간부와 군중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학습교양을 전개한 이래, 광범한 당원간부들은 깊이 배우고 자세히 대조하고 성실하게 실천하면서 시종일관하게 군중과 함께 생각하고 일함으로써 인민군중의 획득감, 행복감, 안전감이 더욱 충실하고 더욱 보장이 있으며 더욱 지속 가능하도록 했다.
‘반쪽 이불’의 따스함을 시종일관 전승해
어둠이 깊어지는 하남성 침주시 여성현 문명요족향 5.1촌 8조의 옛 사당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긴 걸상 몇개가 둥그렇게 놓인 가운데 안팍에40여명이 둘러앉아 떠들썩한 ‘옥장회(屋场会)’를 시작했다.
마을주재 사업조, 향과 촌 2급 간부들이 일찍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촌당지부 서기 주효용은 이렇게 말했다. “최근 2년간 촌에서 산업을 벌렸기에 여러분들의 생활이 좋아졌다. 그러나 산에 들어가는 길이 그냥 그대로여서 맑은 날이면 먼지투성이고 비 오는 날이면 흙투성이로 된다. 오늘 우리함께 길정비에 관하여 한번 털어놓고 이야기해보자.”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장내는 순식간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길을 정비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길은 어떻게 빼려 하는가”… 모두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관심하는 문제들에 대해 문의했다.
마을주재 사업조 조장 강과평이 호주주머지에서 설계도를 꺼내들며 말했다. “산업길을 강을 따라 내려 하는데 너비가 3메터로 삼륜차, 오토바이차가 모두 다닐 수 있다. 기계경작길은 좀 좁은데 1.8메터로 밭머리까기 통한다.”
마을주재 간부 하성원이 말했다. “길이 정비되면 우리는 작은 농용차량으로 산에 오르고 밭에 나갈 수 있다. 더 이상 짐을 메고 언덕을 오를 필요는 없게 된다. 나이가 많은 마을사람들이 비료를 낼 때 힘을 덜 수 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밭에 낸 모종들을 어떻게 하는가? 그냥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촌민 주화량이 물었다.
“주씨가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향의 마을주재 간부 주명화가 말했다. “여러분이 손해를 보게 해서는 안된다. 모종의 보상은 시의 표준을 참조하여 촌집체에서 보상해준다. 동시에 촌의 식용균기지에서도 우선적으로 일군을 모집한다!”
실제적인 말에 마을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장내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로 의제를 통과시켰다.
여성현이 바로 ‘반쪽 이불’이야기의 발생지이다. 당년에 서해수로인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공산당인가? 공산당은 바로 자신에게 이불이 하나 있으면 반쪽을 잘라 백성들에게 건네주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군중들의 립장에 확고히 서서 행복의 평탄한 길을 만든다. 오늘날, 여성현은 학습교양을 깊이 있게 펼치고 있다. 현 지도자가 앞장서 향촌에 내려가고 당원간부들을 이끌고 마을에 가서 정황을 알아보고 문제를 해결한다. 여성현당위 조직부 부장 왕명성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간부들은 모두 촌에 내려가려고 한다. 진심 어린 말을 하고 모두가 바라는 일을 하며, 모든 일에서 항상 군중의 리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바 ‘반쪽 이불’의 따스함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무봉사에 박차를 가해
“신규증가 주주는 어떤 자료가 필요한가?”, “영업허가가 심사단계까지 왔는데 아직 얼마나 더 걸리는가?” 휴대폰메시지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20여개 기업봉사단체방에서는 자문문제가 련이어 제기된다.
중경시 량강신구 정무봉사원 진현길의 하루 업무는 ‘손끝’으로 질의응답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국가급 신구(新区)에는 기업들이 운집해있다. 산업단지가 분산적인 정황에 비추어 량강신구는 기업혜택 정무E참을 설치하고 전문일군이 직접 이곳에서 일대일로 사무를 취급해 기업이 단지를 벗어나지 않고도 큰일, 작은 일들을 모두 취급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2년간, 정무봉사센터의 창구일군으로부터 산업단지 일선의 봉사전문일군으로 된 진현길은 봉사방식의 변화를 깊이 느끼고 있다. “이전에는 창구에 앉아 기업이 오기만 기다렸는데 지금은 밖에 나가 뛰면서 정책을 갖고 기업을 찾는다. 기업을 위해 봉사하려면 효률을 따져야 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 말할라치면 신경원계과학기술파트너기업 책임자 석선생에게 가장 큰 발언권이 있다. 젊은 시절 창업할 때 그는 부문마다 찾아다니며 정책을 묻고 자료가 맞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창구를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최근 량강신구에 새 회사를 등록할 때 그 체험이 완전히 달라졌다. “진씨가 주동적으로 찾아와 지도해주고 자료 준비와 문서양식 작성 전 과정을 도와주었다. 나는 한번도 다녀올 필요가 없었고 영업허가증을 바로 집까지 부쳐주었다!”
지난날에는 ‘공인(公章)을 쫓아’다녔다면 지금은 ‘수요를 에워싸고 돈다’. 량강신구에서는 ‘효률적으로 한가지 일 성사시키기’개혁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정무봉사 전문일군이 군중이 생각하는 바를 생각하고 다급해는 바를 시급히 해결하면서 발걸음으로 봉사의 따스함을 향상시키고 군중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기업에 혜택을 주는 이야기가 매일 펼쳐지고 있다.
오늘날, 학습교양과정에서 량강신구정무봉사센터는 더더욱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정무대강당’을 개설하여 창구일군들의 봉사의식을 높이고 창구봉사의 규범화 건설을 억세게 틀어쥠으로써 군중이 ‘부문을 찾기 쉽고 일을 취급하기 쉽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도록 하고 있다.
량강신구 룡성신성정부봉사분센터 정무봉사 전문일군 맹방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변화를 보아내고 실제적인 혜택을 얻어야만 학습교양이 실제적으로 시달되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계속 ‘효률적으로 한가지 일 성사시키기’개혁을 심화하여 정무봉사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군중의 ‘좋은 아이디어’가 관리의 ‘황금열쇠’로 변해
상해 복흥동로터널은 은빛 띠처럼 한쪽은 포서성황묘의 불빛과 련결되고 다른 한쪽은 포동 륙가취의 별빛과 이어진다.
밤이 되면 이곳에서는 분주하면서도 질서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아래층에는 동력엔진차가 쌩쌩 달리고 웃층에는 비동력엔진차가 오가며 상하로 흐름이 분리되여 그야말로 질서정연하다.
“이제는 정말 편리해졌어요. 가속손잡이를 한번 돌리면 바로 강을 건널 수 있어요.”
늦은 밤 전동스쿠터를 타고 귀가하던 사람들은 이 터널의 ‘미세개선’에 대해 앞다투어 호평을 보냈다.
누군들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 따뜻한 변화가 시민 한서와 배달기사간의 한번의 대화에서 비롯되였다는 것을.
어느 날, 한서는 배달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배달은 몇건 못했는데 과태료는 잔뜩 물었어요.” 한수가 자세히 알아보니 포서상권의 밤은 매우 활기찼는데 배달기사들이 강을 건너 주문을 받으러 갈 때는 마지막 련락선이 언녕 끊긴 시간이였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터널을 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배달기사의 말은 한서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인민건의접수함이 있잖아, 그걸 리용하면 꼭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야!”
실현 가능한 건의를 내놓기 위해 한서는 며칠 동안 외탄 금릉동로, 십리포 동창로 등 련락선승강장에서 자리를 지켰다. 배가 끊기기 전, 서둘러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감개함을 금치 못했다. “차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밤에 강을 건너는 게 정말 너무 힘들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민의 진심이 담긴 한통의 ‘인민건의’가 상해시 인민건의접수함에 접수되였다. 그 편지에서 한서는 ‘야간 련락선운항 연장’과 ‘야간 터널통행 허용’에 관한 건의를 제기했다.
상해시 인민건의접수처의 간부들은 편지를 받은 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한서와 련락을 취했다. 그들은 기록을 면밀히 살펴보고 심층적인 현장조사를 진행했으며 관련 부문에 적극적으로 문의하면서 문제의 전말을 명확히 파악했다. 이후, 상해시 교통위원회와 공안교통관리부문이 문제해결의 ‘계주봉’을 이어받았다. 연구판단 끝에 복흥동로터널을 개선대상으로 확정했다.
복동동로터널은 이중튜브, 이중층 구조로 되여있어 구조적으로 개조가 가능한 기반을 갖추고 있었지만 진출입구외의 ‘비동력엔진차 통행금지’ 구간이 개조의 난점으로 떠올랐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모두들 함께 머리를 쓴 끝에 마침내 교묘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가장 오른쪽 동력엔진차 전용차선을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비동력엔진차 전용차선으로 전환시켜 전동자전거가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해 최초의 전동자전거가 통행할 수 있는 월강터널이 개통되였다.
‘미세개선’이 개선한 것은 도로였고 이어준 것은 인심이였다. 학습교양이 시작된 후, 상해시의 당원간부들은 인민에게 수요를 묻고 해법을 구하는 것을 견지했으며 백성들과의 소통 및 봉사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당의 군중로선을 보다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실천해나갔다.
상해시 인민건의접수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건의접수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건의수렴의 촉각이 사회구역, 산업단지, 캠퍼스까지 미치도록 했다.
“인민의 건의가 바로 우리 결책의 ‘비단주머니 속 묘계’입니다. 우리는 군중의 좋은 아이디어를 도시관리의 ‘황금열쇠’로 전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상해시 래신래방판공실. 인민건의접수처 주임 개박화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