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인민은 초유록을 부른다>는 글을 읽을 때면 밝은 달이 은빛을 뿌리고 사색은 걱정으로 이어진다…” 1990년 7월 15일, 그때 복주시위 서기로 있었던 습근평은 <념노교•초유록을 추억하며>를 썼다.
다년간, 습근평은 초유록정신을 배우고 발양할 것을 시종 강조해왔다. 그는 격동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이 세대는 초유록동지 사적의 교육을 깊이 받으며 성장했고 초유록동지의 형상은 줄곧 나의 마음속에 있다.
“습근평동지는 선후로 세차례나 란고를 시찰하고 우리에게 초유록을 따라배우고 초유록을 모범으로 삼고 대중들을 만족하게 하며 란고를 잘 발전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리는 반드시 이 부탁을 명기하고 사람마다 앞다퉈 초유록식 좋은 당원, 좋은 간부로 될 것이다.” 란고현위 서기 채송도는 본사기자의 취재를 받을 때 이렇게 말했다.
초수운(초유록의 둘째 딸): 그는 문에 들어서면서 친척방문을 왔다고 말했다.
“원래 조금 긴장했는데 그는 문에 들어서면서 나는 친척방문을 왔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서 나는 많이 편해졌다.” 초유록의 둘째딸 초수운은 말했다.
2009년 봄, 하남에서 조사연구를 하던 습근평은 특별히 란고현 초유록기념원에 들려 초유록의 묘지를 배알했다. 2014년, 제2회 군중로선교육실천활동 가운데서 습근평은 란고현을 자신의 련계점으로 삼았다. 같은 해 3월 17일, 그는 란고현에서 교육실천활동을 현지지도했는데 제일 첫 역이 초유록동지기념관이였다.
처음으로 란고현에서 고찰할 때 습근평은 전문 초씨네 집을 찾아 초유록의 자녀와 친족들을 방문했다. “그는 우리들의 건강, 사업, 생활정황을 하나 하나 물었고 ‘초씨네 제3대’ 의 성장을 관심해주었다.” 초수운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초유록동지는 줄곧 내가 따라배우는 모범이였다’고 격동되여 말하고 나서 어떻게 초유록을 따라배워야 하는가고 생각하는가’고 묻기도 했다.”
“두번째로 만났을 때 부친의 사적을 소개하는 한편의 기록영화를 찍고 있다고 나는 그에게 회보했다.” 습근평은 관련정황을 상세하게 묻고 나서 수행한 중앙 관련책임동지들에게 “이 기록영화는 교육실천활동의 교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초수운은 회억했다.
2014년 3월 17일 저녁, 습근평은 초유록간부학원에 와서 란고현 기층봉사형 당조직건설양성반 학원들과 좌담을 펼쳤다. 그는 초유록을 학습할 때 나는 초중생이였는데 그 때 정치과 선생님은 신문을 읽다가 울먹이였고 우리는 듣다가 눈물까지 흘렸다고 말했다.
바로 이 좌담회에서 습근평은 사람들을 반성케 하는 ‘란고의 질문’을 제출했다. 초유록이 란고에서 일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우리에게 이토록 많은 정신적 재부를 남겨두었는데 우리는 후세대에 어떤 정신적 재부를 안겨줄 것인가?
“좋은 간부를 좋아하지 않는 백성이 어디 있는가? 눈물이 비처럼 흘러 초유록이 심어놓은 오동나무를 적신다. 모래언덕을 다스려 옥토로 만들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거니…”한수의 <념노교•초유록을 추억하며>는 초유록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습근평의 숭경과 백성을 위해 당을 건설하고 인민을 위해 집정하려는 책임감을 표달했다.
“2014년 3월 18일, 란고현 회보회의에서 습근평은 이 사를 읊었는데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당시 란고현위 서기이며 현임 개봉시정법위원회 서기 왕신군은 이렇게 추억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 | (편집: 김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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