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방이야기] 중로조 3국접경 변경도시 훈춘
2015년 11월 10일 15:52【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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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 훈춘시 방천 룡호각, 몇명의 관광객들이 관람대 우에서 중로조 3국 변경풍광을 감사하고 있다. 이곳은 "한눈에 세개 곳을 바라볼수 있는" 가장 적합한 지점이다. 두만강은 방천에서 약 15킬로메터 순류하여 일본해에 들어간다. 강 왼쪽은 로씨야의 하산진이고 강 오른쪽은 조선의 두만강시이다. 훈춘은 우리 나라에서 동북아를 향한 개방합작의 "창구"로 불리운다. |
11월 7일 오후 길림성 훈춘시는 립동이래 첫 큰눈이 내렸다. 개업한지 얼마 안되는 한식음식점에는 중국, 로씨야, 조선 세개 나라의 문자가 씌여져 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29살의 젊은이 양해성은 쉬는 시간을 리용하여 모멘트(朋友圈)를 보고있다. 어둠이 금방 짙어지자 유럽식거리의 술집 네온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며 로씨야 정취의 노래와 한국과 조선 노래가 함께 어울어졌다. 때때로 삼삼오오의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갔다. 훈춘은 믹스매치가 잘 된 매혹적인 변경 소도시의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훈춘시내지역은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택시비 5원이다. 세개 나라의 문자가 씌여진 간판은 도처에서 볼수 있다. 10여평방메터 크기의 2원점에서부터 전국 체인점인 쇼핑몰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삼국의 특색산품과 식품도 즐비하다. 일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상가에서도 간단한 로씨야어와 조선어로 교류가 가능하다.
훈춘시는 길림성 가장 동단에 위치해있으며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속한다. 로씨야, 조선과 서로 이어져있고 한국,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다. 훈춘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로조 삼국 린접지에 있는 변경도시이다. 며칠전 이곳에서 "중로 변경 지명비 수립의식"이라는 기사가 떴으며 또다시 대중들의 관심지로 급상승했다. "4.7평방킬로메터의 토지"도 사람들이 열의하는 화제로 되였다.
훈춘시관광국 통계에 의하면 올해 국경 황금주기간 25만명의 인구를 가진 훈춘시는 모든 조건을 리용해 국내외 관광객 연인원 22.4만명을 접대했다. 훈춘항구를 통해 로씨야로 출입경한 관광객이 연인원 9천만명을 돌파, 권하항구를 통해 조선으로 출입경한 관광객이 7500여명에 달했다.
당지인들에게 있어서 로씨야와 조선으로 놀러가는것은 아주 평범한 일이다. 려객운수역에는 전문적으로 국외로 직통하는 대형뻐스가 있는데 몇시간이며 로씨야 블라디보스또크에 도달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주말휴가를 보낸다. 만약 조선으로 가고싶으며 일련의 수속을 거친후 자가용관광을 선택할수 있다.
몇년전, 양해성은 로씨야의 한 음식점에서 료리사로 일했다. "로씨야어가 필요없고 료리를 할줄 알기만 하면 됩니다." 중식은 당지에서 특히 환영을 받는데 그것은 적지 않은 중국인이 그곳에서 살고 있기때문이다. 그의 주위에는 20여살의 친구가 많은데 로씨야나 조선에서 몇년간 일하면서 돈을 번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생활한다고 한다.
훈춘시 방천촌 룡호각에서 상해 대형 국가기업에서 일하는 주선률씨가 핸드폰으로 중로조 삼국 국기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은후 쇼셜소프트웨어를 통해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있었다. 고배률 망원경을 통해 로씨야의 변방초소를 볼수 있고 조선의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색 중산복을 입은 녀성도 볼수 있다. 두만강변에 놓인 로씨야와 조선의 철도대교도 뚜렷이 볼수 있다.
주선률씨는 룡호각에 있는 이 망원경이 요지경인것 같았다. 망원경을 통해 많은 다른점을 볼수 있고 또한 진실하게 존재한것들이다. 조선이라는 이 땅은 비록 가까이에 있으나 먼곳에 있는것 같다. 탑우에서 망원경을 사용하여 보는 매초 또한 각별히 진귀하다. 밭에 꽃무늬옷을 입고 남색천 솜바지를 입은 한 조선부녀가 망원경에 나타나자 주선률과 친구들은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으며 옆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보게 했다. 반대로 다른 한켠은 로씨야의 하신진이다. 그가 보기에 비록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와 같은 대도시의 번화를 비길수 없으나 또다른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대형뻐스가 로씨야에서 훈춘으로 달린다. 로씨야인들은 도시의 부동한 방향으로 향한다. 상점, 기차역, 중의원, 풍경구...... 저녁이면 그들은 만족스럽게 돌아간다. 매년 설이면 수천명의 로씨야관광객이 입경하며 훈춘에서 관광하고 놀고 쇼핑을 즐긴다.
60세가 넘은 빅토르는 고향이 로씨야 아무르주 콤소몰스크이다. 7년전 훈춘에서 려행하면서 그는 이 도시를 좋아하게 되였다. 그는 이곳이 조용하고 소비도 높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40여평방메터의 주택을 사 거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훈춘에서 이 주택을 살태 그는 약 11만원이 들었다. 만약 로씨야 블라디보스또크에서 같은 면적을 사려면 적어도 100여만원이 들어야 한다. 그는 이곳에서 생활하는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훈춘에서 정착한후 그는 모터찌클을 타고 중국의 크고 작은 도시를 다니며 려행하고 있으며 퇴직후 그의 주요생활도 되였다. 빅토르처럼 훈춘에서 거주를 선택한 로씨야인들은 술집을 경영하거나 려행사에서 가이드로 일하거나 또는 학교에서 교사직을 담임하기도 한다.
저녁이 되자 양해성은 부엌에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핸드폰 구독호에서 소식이 보내지자 그의 머리는 또 숙여졌다. 훈춘에서 블라디보스또크까지 아마 고속철도가 건립될것이다.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두곳의 통행시간은 크게 감소되며 이는 그에게 있어서도 흥분되는 일이다(인민넷 조문판 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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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살의 김씨는 택시를 합승해 춘화진에서 훈춘시내로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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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고속철도역에서 한 승객이 공공뻐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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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청나라 애국대신 오대징의 조각상을 참관하고 있다. 1886년 중국과 로씨야가 훈춘 동부 변계를 다시 탐사할시 그는 도리를 따지며 극력 주장해 "토"자패를 보충 세웠으며 흑정자를 회수하고 두만강 출해항행권을 쟁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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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의 타싸(왼쪽)와 친구들은 한 빵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는 3일전 로씨야 블라디보스또크에서부터 훈춘에 와 려행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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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속의 젊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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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력사관광구에서 몇명의 관곽객들이 한창 가이드의 해설을 듣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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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리사 양해성은 음식점에서 녀자친구가 일본에서 구매대행한 로즈골드색 아이폰을 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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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진에서 몇명의 소학생들이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눈싸움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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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훈춘시 춘화진에서 두명의 농민이 눈길을 걷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