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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또 하나의 나》(1)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소설본상

2011년 10월 24일 17:02【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나는 가끔 "또 하나의 나"를 들여다봅니다. "또 하나의 나"는 팔자가 한껏 늘어진 놈입니다. 이놈은 어항의 맑은 물 가운데 비죽이 솟아오른 조그마한 섬 위에 웅크리고 앉아 물 속에서 노닐고 있는 열대어를 멀거니 들여다보면서 나처럼 그 어떤 명상을 떠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 곁에는 새파란 깝대기를 등에 인 애기 손만큼 한 자라가 그 무엇과 근사하게 생겼다는 대가리를 자랑 차게 빼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고 있습니다.

자라는 아내가 아침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사다가 넣은 것입니다.

“여보, 자라는 왜 사왔소?”

“당신이 너무 외로워보여서 동무하라고.”

아내는 어항 안에 있는 옛날 동전잎만큼 한 풀개구리가 나 같다고 합니다.

……그녀는 무릎 위에 뛰어오른 파란 풀개구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날은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습니다. 한낮의 땡볕은 그늘에 웅크리고 있는 동넷집 개들의 혀를 한발이나 뽑아냈습니다. 그녀는 두발을 논도랑 물에 잠그고 앉은 채 손바닥 위에 놓인 풀개구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곁에 앉은 나에게 엉뚱한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야, 이게 너 같다.”

그땐 우린 서로 반말을 썼습니다.

“왜?”

“우리 집체호에 올 때 준 너의 첫 인상이 바로 이렇게 파랬다. 파란 바지에 파란 웃옷, 거기다가 모자까지 파란 모자를 쓰고. 그땐 네 얼굴도 파리하다 못해 파란색이 돌더라.”

“그땐 국방색과 파란색이 유행이었으니까.”

“같은 옷을 입어도 너는 남보다 더 파랗게 보이더구나. 얼굴이 하얘선지.”

우리 둘은 한동안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녀가 먼저 침묵을 깼습니다.

“야, 이 개구리가 암만 봐도 너 같다. 이것 봐라. 시골을 떠나기 싫어하는 너처럼 이 손바닥이 보금자린가 하고 달아날 궁리마저 안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풀개구리 궁둥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다칩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풀개구리는 까딱 움직일 염을 하지 않습니다. 한낮 더위에 질렸으면 시원한 도랑물에라도 뛰어 들련만……

“난들 시내로 가고 싶지 않아서 안 가는 줄 아니. 남들처럼 그런 운이 없어 그렇지.”

다른 애들은 추천 받아 대학 가고 공장에 들어가고 그런 행운이 차려지지 않은 애들은 하다못해 가짜 병 진단을 떼고 시내로 들어갔지만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세였습니다.

“정 방법이 없으면 그 누구처럼 간질병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거품 물고 자주 넘어져보렴. 호호호……”

“야, 너나 한 번 그래봐라. 꼴좋겠다. 평생 시집가긴 다 틀렸지.”

“시집 못 가면 이렇게 풀개구리랑 동무하며 같이 살면 되지.”

그때 그녀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녀가 날 풀개구리 같다고 한 이상 나로서는 그 말을 거저 흘려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 둘은 짬만 나면 풀개구리를 잡아서 가지고 놀았습니다. 풀개구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을 풀개구리 궁둥이 쪽에 바싹 가져다대고 입으로 딱! 하고 소리를 내면 풀개구리가 손바닥에서 폴짝 뛰어나갑니다. 우린 누구의 개구리가 더 멀리 뛰어나가는가에 따라 누가 먼저 시골을 떠나게 되는가를 내기했는데 그날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 사람, 당연하게 풀개구리가 더 멀리 뛰어나간 풀개구리 임자가 시골을 떠나간다는 뜻에서 이별의 파티를 마련합니다. 그때 유일하게 팔리고 있던 ‘손가락과자’를 한 근을 사면 가상적인 이별파티는 시작됩니다. 그 당시 술이 귀해서 맹물로 술을 대신합니다.

창고처럼 휑뎅그렁한 집체호에서 둘만 남은 우리는 맹물에 ‘손가락과자’를 먹으면서 시골을 벗어나는 사람의 희열과 계속 시골에 남아있게 되는 사람의 비애를 맛봅니다. 비록 가상적인 분위기에 제멋에 놀고 있지만 그런대로 희열과 비애를 뒤섞노라면 언젠가는 시골을 떠날 수 있다는 기대가, 그것도 막연한 기대지만 마음에 위안이 돼줍니다.

솔직한 토로이지만 그때 그녀의 모습-손바닥 위에 놓인 풀개구리 궁둥이에 입을 바싹 가져다대고 딱! 하고 소리 내는 그 모습이 얼마나 황홀한 모습이었던지 지금도 적당하게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 그녀는 밉지도 곱지도 않은 얼굴형이지만 누구 말대로 산 속에서 여자를 보면 다 예뻐 보이는 격이어선지 아니면 내 눈이 눈이 아니고 짬이어서인지……

나의 아내가 된 지금의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닙니다. 어항 안의 풀개구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도 그때의 시각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외로운 섬에 웅크리고 앉아 눈만 때룩때룩 굴리고 있자니 오죽 외롭겠어요.”

아내의 말속에 가시가 들어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정면으로 맞설 엄두를 못 냅니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러합니다.

“그런데 이봐. 하필이면 왜 파란 자라를 사왔어?”

그래도 사내의 체면을 지키느라고 반말을 내뱉을 용기만은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거무죽죽한 것보다 파란색이 곱지 않아요?”

“아무 색이든 자라는 기분 나빠.”

“왜요?”

“자라는 말이야. 한족들의 욕 말에는 제 계집 남에게 떼운 얼간이 사내를 뜻한다니까. 더군다나 파란색 자라라 하면 한족들은 ‘푸른 모자를 쓴 사내’를 떠올리기 십상이지.”

“푸른 모자를 쓴 사내? 건 무슨 뜻이죠?”

“역시 제 계집 하나 건사 못하는 바보를 일컫는 말이지.”

“그런데 이 자라를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잘 사가던데요.”

“그건 말이야, 그런 사내 꼴이 되지 말자고 미리 징계하는 뜻으로 사갈지도 모르지. 어쨌든 자라는 기분 나쁜 연상만 준다니까.”

“당신 분석대로 그런 뜻에서 남자들이 푸른 자라를 사간다고 하면 제가 이 자라를 사오길 잘했네요.”
“뭐?”

아내는 말속에 숨긴 가시를 약간 내비칩니다. 그 가시가 퍼렇게 독을 쓰며 그 형체를 완연하게 들어내기 전에 나는 놀란 자라목처럼 움츠러들고 맙니다.

한해 전만 해도 나는 아내가 이런 식으로 말속에 가시를 내비치기만 하면 지붕이 낮다하고 길길이 뛰었습니다.

“어따 대고 하는 말버릇이야? 내가 요즘 집에서 잠깐 쉬고 있는 것이 그렇게 원수 같아 보여? 돼먹지 못한 여편네 허벅지 긁고 바가지 긁을 줄밖에 모른다더니……”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내는 사흘이고 나흘이고 입에 자물쇠를 겁니다. 그러던 아내가 이제 와서는 빡빡 악을 씁니다.

“당신 지금 집에서 잠깐 쉬고 있어요, 아니면 곰처럼 동면하고 있어요? 동면이라도 했으면 잠에서 깨여날 봄철이나 있잖겠어요. 허구한 날 저 개구리처럼 웅크리고 앉아 당신 무슨 궁리를 하고 있어요? 정 할 일 없으면 거리에 나가서 구두라도 닦으세요. 남자라면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모습이라도 좀 보여 달란 말이예요.”

“그만해둬. 나 이래도 언젠가는 솟는다니까 솟아.”

“당신에겐 지금 솟을 하늘이 없어요.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제발 땅에서 착실하게 기기라도 하세요.”

그러면 나는 목을 움츠린 채 슬며시 자리를 뜹니다. 갈 곳은 없지만 나는 집을 나섭니다. 이렇게 고약한 기분으로 문밖에 나오면 꼭 어김없이 떠올리게 되는 노랫가락이 귀 신경을 긁어댑니다.

가사가 아주 엉망인 노랩니다.

“청량리로 갈까요, 홍도한테 갈까요, 아니면 북망산으로 갈까요?”

언젠가 한국에 가서 돈깨나 벌어온 사촌동생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내뱉던 노랩니다. 그날 그 녀석은 그 녀석의 말마따나 서울의 사창가인 ‘588’과 거의 근사하다는 곳에서 폼 한 번 잡았더랬습니다.

“야, 양주 한 병 더 가져와.”

“어느 양주로 드릴까요?”

“거 있지. ‘섹스오케!’”

그 녀석은 XO양주를 ‘섹스오케’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반죽이 잘돼야 나중에 복에 겨운 소리가 거창하게 나오는 법이예요”

독한 술이 창자를 비틀어 짤 때까지 곁에 붙어 앉은 계집을 아주 주물럭 반죽을 만들어놓고는 걸레짝처럼 늘어질 밀실로 자리를 옮기는 게 바로 그 녀석의 주변입니다.

“형님도 오늘 밤 멋진 사내 한 번 돼보소. 그럼 이따 만나요.”

그 녀석이 계집과 함께 밀실에 들어간 뒤 나는 내 곁에 앉은 계집애가 따라주는 술만 훌훌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이제 갓 스물이 될까 말까한 가녀린 계집애가 새침한 표정으로 술을 따라주다가 나중에 한다는 말이 기막힙니다.

“사장님은 여자 좋아 안하세요?”

이때면 나는 사장이 됩니다.

“뭐 여자?”

“나 안 이뻐요?”

술기운이 오른 내 눈엔 계집애의 얼굴이 윤곽밖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래봬도 전 여기선 잘 나가는데요.”

잘 나가는 년인데 왜 날름 잡숫지 않고 있나 하는 건데 내 지금 기분이 얼마나 엉망이라고, 그러나 말만은 여유작작하게 나옵니다.

“나 그런 짓에 명 재촉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곤 빈 술잔을 내밉니다.

“아이참 긴긴 밤 술시중이나 들다 말겠네. 인젠 그만 하세요. 기실 명 재촉하는 게 술이예요.”

“뭐야?”

빈 술잔이 술상 위에 튀어 오릅니다.

“술 주는 세상에 술 마시지 않고 뭘 하라는 거야? 어서 붓기나 해!”

계집애는 하는 수 없이 술을 따릅니다. 그러면 나도 내 체신을 찾습니다.

“너한테 큰소리해서 안됐다. 자, 너도 한 잔 해라. 너한테 솔직히 말해주는데 난 말이다, 술 마시고 그 짓은 둘째 치고 니나노 장단도 못 치는 놈이야. 그건 그렇고 나 지금 기분이 말이 아니다.”

“좋아요. 그럼 우리 오늘 밤 취토록 마시자요.”

계집애는 절로 맥주 컵에 양주를 가득 채우더니 건배를 해왔습니다.

“방금 사장님은 술 주는 세상이니 술 마시자고 했죠. 좋아요, 술 마시지 않고는 못사는 세상, 자, 마시자요. 사장님도 기분 푸세요.”

쨍그랑! 오케! ‘섹스오케’ 또 한 병!

“인생은 나그네 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꽃순이를 아시나요? 어여쁜 꽃순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눈물을 보였나요, 내가 울고 말았나요……”

“학창에서 공부하고 농촌에 돌아와 부지런히 일하여 첫 수확을 거두었네……”

“그대의 옷자락에 매달려 눈물을 흘려야 했나요……”

술 한잔, 노래 한곡, 네 술 한잔에 내 술 한잔, 가고 오는 술에 주고받는 노래, 이렇게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지 모릅니다. 계집애는 주로 사랑의 이별이라든가, 그리움이라든가, 아픔이라든가 하는 노래만 주어 부르면서 눈물을 찔끔거렸고 나는 나대로 기억에 떠오르는 노래면 죄다 뽑아버렸습니다.

“술 마시니 기분 고약하네요. 나 이래도 슬픈 여자예요. 아저씨……”

계집애가 혀 꼬부니 난 사장님에서 아저씨로 내려앉았습니다.

“나 역시 구질구질하게 살아온 놈이야……”

이렇게 신세타령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엔 내 신세 조져놓고는 훌쩍 밀항선을 탔어요……”

들어보나 마나 역시 구질구질한 사랑과 배신에 관한 넋두립니다. 그런 넋두린 보통 그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소연이 그 넋두리의 말허리를 썩둑 자릅니다.

“너 내 신상서 한 번 보겠냐?”

“뭐요. 신상서?”

“그것도 몰라? 너 중학교나 나왔냐?”

“중퇴하고 말았죠.”

“그럼 글은 뜯어볼 수 있겠구나.”

나는 호주머니를 뒤적여 자그마한 종이 한 장 꺼내주었습니다.

“자, 이걸 읽어봐.”

계집애는 그걸 받아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읽어 내려갑니다.

“이력서:

동년 시절: 영향실조에 걸린 구루병환자.

소년 시절: 반란에는 무조건 도리가 있다던 홍위병.

청년 시절: 광활한 천지에서 지구를 다스리던 지식청년.

중년 시절: 부모처자를 가진 정리해고자.’

아니 이게 뭐예요?”

“내 역사이고 명함이다.”

재취직하러 이곳저곳 다니자니 명함이나 이력서 같은 것이 필요해서 글깨나 쓴다는 동창생한테 부탁해서 만든 내 이력섭니다. 별로 적어 넣을 것이 없는 생이니만큼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좋다는 게 동창생의 주장이었습니다. 사실 적어 넣을 것이 없는 것이 내 이력입니다. 한창 먹고 자랄 나이에 3년 자연재해를 만나 영양실조로 가슴이 새가슴처럼 쏙 튀어나온 구루병 체질이 됐고 공부에 열중해야 할 소년 시절에는 문화대혁명이 터져 ‘홍위병완장’을 낀 손에 몽둥이나 들고 다녔는가 하면 아침 아홉시 태양과도 같다는 청년 시절에는 손에 쥔 호미로 밭이랑을 긁으면서도 지구를 다스린다고 허풍이나 떨었습니다. 그때 말을 빌면 청년 시절은 ‘밭이랑을 타고 세계를 내다보던’ 시절입니다. 운수가 사나웠던지 남들처럼 대학이나 군대에는 못 가고 겨우 농촌을 벗어나 부모 대신 뒤늦게야 공장에 들어가 시키는 일이나 해오면서 두루두루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중년 시절에 들어섰습니다. 별다른 의욕이 없이 정착된 생활을 누리려고 하니 정리해고 바람이 터져 한 달에 기본생활비만 타는 실직자가 돼버렸습니다. 생각하면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삶입니다.

“이건 보고도 모를 글이구만요.”

계집애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맞아, 너들 세대야 돈 바람이 터진 세상에 나서 돈맛만 알고 커왔으니까 보고도 모를 글이지. 말해봤댔자 소귀에 경 읽는 거고. 술이나 먹자.”

【2】 【3】

래원: 인민넷 (편집: 김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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