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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넷 조문판>>개인문집

단편소설 《희로애락》(1)

제1차 "작가"문학상, 제1차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영예상, 제2차 중국소수민족문학작품 우수소설상

김훈

2011년 10월 18일 15:28【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머리말

희로애락은 인간상징이다. 인간의 정서적 측면에서 볼 때 인생은 희로애락의 부단한 연속이라 함은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나의 주인공들

나의 주인공들은 혹을 가진 청년들이다. 다리 부러진 노루 한곳에 모인다더니 그들은 다 종양병원 4호 병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들은 수술을 기다리는 청년들이다. 1호 침대는 위 속에 혹을 가지고 있는 상일이가 차지했고 2호 침대는 목에 새알만한 혹이 생긴 윤수가 차지하였다. 그다음 3호 침대는 팔꿈치에 달걀만한 혹을 달고 있는 철삼이가 차지했고 4호 침대는 아랫배 속에 혹을 안고 있는 승대가 차지했다. 이들의 외형은 검다, 희다, 크다, 작다라는 말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 내두산 수력발전소 노동자인 상일이는 얼굴이 흑인에 짝지지 않을 정도로 검실검실했고 그와 반대로 예술단 독창가수인 윤수는 분 바른 처녀들의 얼굴처럼 하야말쑥했다. 양식 창고에서 마대를 메어 나른다는 철삼이는 농구선수처럼 키가 무척 컸다. 그와 침대를 맞대고 있는 승대는 가두 옷공장의 구입원이였는데 난쟁이나 다름없었다. 철삼의 절반 키나 좀더 될까 말까 한 그의 키를 제대로 말하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딱 1미터 29.9센티미터밖에 안 되었다.

그들은 외형도 달랐고 성격도 각이했다. 상일이는 반고수머리여서 그런지 아련한 편이였다. 그를 되다만 처녀라고 놀려주는 철삼은 키 큰 탓인지 꽤 싱거웠다. 난쟁이 승대는 타고난 천성인지 아니면 나다니는 구입원이 되어 그런지 잠시도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지 못하는 바람개비 성미였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열등감이 앞서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지만 승대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을 대할 때에도 자기를 소개한 끝에 꼭 “난 팔삭둥이여서 키가 채 자라지 못했습니다.” 하고 우스개를 덧붙이였다. 승대는 병원에 입원한 그 시각부터 잠시도 병원에 누워있지 않고 종일 온 병원 안을 쏘다녔다. 맞은쪽 병실에 가서 암으로 입원한 늙은이와 장기판을 벌려놓고 장훈이야 멍훈이야를 불러대기도 했고 가끔 간병원실에 들어가 우스개를 풀어 간병원들로 하여금 배를 그러안고 뱅뱅 돌며 눈물을 찔끔찔끔 짜도록 웃기기도 했다. 심지어는 어느 여 환자가 유선암으로 젖통을 떼냈다는 말만 들으면 어김없이 찾아가 어느어느 곳의 어느어느 병원에선 인공 젖통을 만들어 붙여준다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누가 만약 주책머리 없이 별걸 다 말한다고 할라치면 승대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면서 자기는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정신적 위안을 주었노라고 호기를 부렸다. 어쨌든 그는 뭇사람들의 재미를 끄는 인물이었다. 그와는 달리 윤수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진종일 그 해사한 얼굴에 짙은 그늘을 띄우고 시름에 잠긴 눈으로 천정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하여 철삼이는 가끔 가다 그를 버림받은 처녀꼴이라고 놀려주곤 하였다. 윤수와 머리를 맞댄 상일이는 눈만 뜨면 베개 밑에서 네 귀가 다 보풀이 인 중학교 교과서며 물리교과서며 화학교과서를 꺼내 놓고 말없이 그것들을 뒤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묻는 말에 겨우 대답이나 하는 정도인 그는 4호 병실에서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액외 사람이었다. 꺽다리 철삼이 또한 인물이었다. 그는 낮엔 짬만 있으면 주패로 처녀패를 놓는 것이 업이었다. 그러다가도 밤이 되기만 하면 간호원 몰래 침대 밑에 넣어 둔 가방에서 큼직한 권투장갑을 꺼내 가지고 창문으로 뛰어나가 밖에 있는 소나무에 대고 한참씩이나 따닥이를 먹인다. 그의 말을 빌린다면 지금 한창 권투 삼단을 꺾는 중이라고 한다.

넷의 외형, 성격, 직업이 달라서인지 병문안을 오는 사람들도 달랐다. 승대한테는 거의 모두가 말이 다사한 가두 옷공장의 아주머니들이 찾아왔고 철삼이한테는 따닥이패들이 자주 와서 어디 가서 술 먹고 주먹을 휘두르던 이야기로 왁작 고아댔다. 고아인 상일이한테는 간혹 가다 수력발전소에서 한두 사람이 올 뿐이었다. 윤수한테는 예술단 배우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중엔 칠칠한 처녀배우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 올 때면 승대는 언제나 침대에 궁둥이를 눌러 박고 앉아 병실에서 서설거리며 예술단 처녀 배우들한테 자리를 권한다. 물을 따라준다 하면서 각별히 친절을 베풀었다. 어쨌든 승대와 철삼의 기분은 좋았다. 승대의 말대로 한다면 예술단의 처녀 배우들을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젠장, 날 찾아오는 아주머니 네들한테선 아이들 똥오줌 냄새만 펄펄 난단 말이야. 그리고 저 철삼이를 찾아오는 따닥이 패들한테선 피 비린내가 확확 풍기는 게 소름이 끼치거든. 그래도 예술단 배우들이 와야 분내, 향수 내가 풍기고 방안이 환하다니까.”

그러면 철삼이도 윤수도 상일이도 웃음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의 주인공들에게 있어선 소독내만 풍기는 병실에서 티 없는 옥처럼 말쑥하고 고운 처녀 배우들의 얼굴을 본다는 그 자체가 말 그대로 정신상의 유쾌한 향수였으니까. 허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종양수술을 받아야 할 그들에게 있어선 이러한 향수는 어디까지나 순간적이었다. 그들에게는 순간적인 향수보다도 가끔 엄습하는 암에 대한 무서운 공포에 가슴을 졸일 때가 더 많았다. 몸에 혹을 가진 사람들 거개가 그러하다시피 그들도 자기 몸에 돋은 혹이 악성이면 어쩌랴 싶어 은근히 속을 썩이는 중이었다. 암이라면 사람들은 흔히 죽음을 연상하게 된다. 하기에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암에 걸렸다면 그를 저승의 문턱을 이미 넘어선 저세상 사람으로 점찍는다. 암에 대한 무서운 공포가 본격적으로 나의 주인공들을 엄습한 것은 승대와 자주 장기를 두던 맞은쪽 병실의 늙은이가 시체실 신세를 지게 된 그날 저녁이었다. 4호 병실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고 나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얼굴에 슬픈 기색을 짓고 침대에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죽음이란 인생의 한껏 가는 슬픔이니 그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인간의 상정이리라…… 이날 넷은 잠들지 못했다. 한밤중까지 그들은 이리 궁싯 저리 궁싯 침대 소리만 요란하게 내다가 나중엔 약속이나 한 듯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승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방안의 무거운 침묵을 찢었다.

“젠장, 사내대장부들이라는 게 고양이 낙태상이 돼가지고 이게 뭔가? 이러다간 살 놈도 며칠 못 살고 지레 죽겠어.”

“아무 때 죽으나 한번 죽겠지 체!” 철삼이가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치며 승대의 말을 받았다.

“자, 이러지 말고 우리 지금부터 자기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일들을 말해 보자구.”

승대는 말을 마치기 바쁘게 발딱 일어나 전등을 켰다.

“승대, 자네가 먼저 말해 보라구.”

그러면서 철삼이는 베개 밑에서 담배를 꺼내 셋에게 한 대씩 뿌려 주었다. 윤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받아 쥔 담배를 철삼이에게 뿌려 주었다.

“쳇! 담배 한 대도 피우지 않으니 되다 만 처녀라지. 지금 계집애들은 담배 먹고 술 먹는 놈을 사내답다고 한다니까. 자넨 그저 간호원 계집애들의 환심밖에 못 산다니까.체!”

철삼이의 말에 윤수는 그저 허구프게 웃고 말았다. 승대가 에헴! 하고 일부러 건 가래를 떼고 말 주머니를 풀었다.

“자, 모두 잘 들으라구. 이 어른이 지금부터 스물다섯 살을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몇 마디 금싸락 같은 명언을 남기겠소.”

이렇게 나의 주인공들은 목을 옥죄이는 죽음의 공포를 밀어내기 위해 하나하나 차례로 자기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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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원: 인민넷 (편집: 김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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