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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은 누구인가

2011년 07월 26일 14:51【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문화는 집단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 것이다. 그런데 그 "집단구성원"을 중국의 조선족으로 설정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조선족문화의 존재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보통 조선족문화라 할 때 그것은 조선족공동체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 문화를 가리킨다. 때문에 조선족문화의 정체성(identity)을 담론하려면 우선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 세기 80년대부터 시작된 문화의 르네상스시대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사회발전과 인류 진보를 위한 새로운 문화중심의 패러다임으로 형성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학계는 조선족 사회나 문화를 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아직 조선족의 민족정체성, 조선족문화의 정체성, 민족문화의 가치와 기능 등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해어나지 못하고 있다.

1. “조선족”은 누구인가

“조선족”이란 호칭을 “조선민족”의 약칭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으나 정확히 말한다면 “조선족”이란 중국국적 을 가진 조선민족에 대한 전문호칭, 즉 국적과 민족출신을 동시에 표시한 호칭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으로서 네이션(nation)은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경계와 역사적, 문화적, 혈연적 공동체를 지칭하는 근대적 영토 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등장한 개념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사용하는 "민족"이란 용어의 개념은 복합적인 개념으로서 “국민+민족”이다. “한족”은 중국 국민으로서의 “漢민족”이고 “몽골족” 은 중국 국민으로서의 “몽골민족”이며 “조선족” 역시 중국 국민으로서의 “조선민족”이다.

미국에서는 미국국적을 취득한 한국인들을 “한국계미국인”이라고 한다. 한국계미국인이라는 호칭을 코메리칸(komeric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 미국에서는 “한국계미국인” 혹은 “코메리칸”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조선족”으로 호칭하는가? 건국 역사가 200여년밖에 안 되는 미국은 총인구의 1%를 차지하는 인디언원주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세계 각국에서 온 외래 이민이거나 이민의 후예들이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민족이란 계념보다는 어느 나라에서 이민 왔나 로서 국민들을 분류한다. 1929년에는 출신국적법(National Origins Act)을 제정하여 국가별로 이민 수자를 할당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아일랜드계미국인, 프랑스계미국인, 중국계미국인 등으로 호칭한다. 한국인들의 미국이민은 1965년 새 이민법이 시행되면서 대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미국국적을 취득한 후 미국의 관례대로 한국계미국인으로 호칭된다.

그러나 중국은 수 천 년 역사를 가진 나라이고 고대로부터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민족학자들의 노력으로 민족 식별작업을 거쳐 56개 민족(nation)으로 국민을 분류하게 되었다. 150여년의 이민 역사를 가진 조선민족도 1945년 이 후 중국에서 토지와 참정권을 부여받으면서 중국의 소수민족 일원으로 인정되고 한족, 만족 등 민족과 동등한 위치에서 조선족으로 호칭되게 된다.

사실, “한국계미국인”은 한국에서 이민 온 미국인이라는 뜻에서 “미국인”이라는 국적이 강조되었다면 “조선족”이라는 호칭에서는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민족이라는 뜻에서 민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한국계미국인”이라는 호칭에 반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조선족”이라는 호칭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우리 민족공동체(ethnic group)는 영토의 분단, 민족의 분단과 함께 민족 명칭의 분단이라는 아픔도 함께 겪게 된다. 조선반도의 북과 남에서 각각 “조선” 과 “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면서 하나의 민족공동체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호칭되게 되었다. 동방과 서방의 이념대립이 살벌해지면서 민족 명칭의 갈등도 심각해졌다. 오늘까지도 인터넷사이트에서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놓고 한국네티즌들과 조선족네티즌사이에 쟁론을 하고 있는 양상을 보면 냉전시대의 유물이 쉽게 해소될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조선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의 일원이다. 그러나 조선족은 조선에서 이민해 온 민족 집단이기 때문에 그들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혼란을 불러올 소지가 있었다. 현재의 조선족공동체 구성원들 중에서 소수의 17세기 고대 이민의 후대 (河北省 靑龍縣과 요녕성에 산재해 있는 박씨 후대들)들을 계산하지 않더라도 조선족의 이주 역사는 150여년이 된다. 그러나 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으로서 조선족 공동체의 형성은 1949년 9월,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 개최로부터 1952년 9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립까지로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조선민족을 중국 소수민족으로 인정한 최초의 문헌은 1928년 7월 9일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 대표대회에서 통과된 《민족문제에 관한 결의문》이다. 그 후에 작성된 중국공산당의 중요한 문헌자료에서 시종일관하게 중국 조선 민족을 중국소수민족으로 인정하였다. 다만 민족 명칭을 “고려인”, “한국인”, “조선인” 등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은 특이하다.

그런데 그 시기 조선민족 이민들이 집중 거주하던 동북지역은 中華民國政府에 귀속되는 東北軍閥政權의 유효 행정 지배하에 있었고 그들 행정부가 조선민족 이민을 중국 소수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사실상 외국거류민 으로 취급되었다. 1945년 항일전쟁승리 후의 몇 년 사이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조선민족 이민들이 자의에 의해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갔다. 귀국하는 사람들과 남아있을 사람들이 완전히 구분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동북국은 그 당시 동북에 거주하는 조선 민족을 ‘韓國居留民’, ‘조선인’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민현장에 남아 영주할 결심을 한 조선민족구성원 들은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분여 받았고 지방정권수립에 참여하여 참정권을 갖게 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점차 탈바꿈 하게 되였다.

1950년 12월 6일자 《人民日報》는 <中國東北境內的朝鮮民族>이라는 논설에서 “1949년 9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가 개막되면서 동북경내의 조선인민은 중국경내 소수민족의 자격으로 각 형제 민족들과 만나게 되였다. 그때부터 중화인민 공화국 각 민족 인민가운데 이 새로운 구성부분은 각 형제민족 인민들의 관념 가운데서 교민으로 중국에 거류하는 조선인민들로부터 갈라져 나오게 되였다.”라고 지적하였다. 중국공산당의 기관지인 《人民日報》는 조선민족이 조선교민으로부터 중국 소수민족으로 탈바꿈한 시간을 1949년 9월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 회의 개최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조선인민”, “조선민족”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어 “조선족”이란 이름은 1951 년에서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는 그 사이에 확정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1987년 9월에 미국의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에 교환교수로 초청되어 《중국과 미국의 조선민족 사회와 문화의 비교연구(The Korean Immigrants Society and culture in P.R.C and U.S.A)》라는 연구를 담당한 적이 있다. 1년 남짓한 기간의 조사와 연구를 거쳐 1988년 10월말에 연구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한 후 옌칭연구소에 제출할 수 있었다. 그 연구보고서 에서 나는 중국 조선족의 민족정체성(Ethnic Identity)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중국 조선민족의 민족의식은 아주 뚜렷하다. 그들의 민족 정체성은 1945년 광복을 전후하여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광복이전의 ‘조선민족정체성’은 범조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항일투쟁, 조국광복, 민족교육, 민족문화 4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광복이후 조선반도의 정세는 ‘조선민족정체성’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고 따라서 1950년대 초반기에 형성된 ‘중국 조선족정체성’은 철저한 탈조선(국가)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중국에서 영주할 생각과 조선민족적인 것을 현지에서 키워가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중국 조선족정체성’은 여러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있다.

우선 그들은 광복이전 자신들이 중국에 이민하면서 겪어온 민족차별과 일제의 강제동화정책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 역사는 가장 짧지만 다른 민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음을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물론 그들은 일제의 통치를 반대해 싸웠고 현지개발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이 땅의 주인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의 근면과 교육열로 이룩한 경제생활의 상대적 윤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농촌 농민들은 벼농사에 종사하기 때문에 타민족 농민들에 비해 단위당수확고가 높고 수익도 높으며 도시거주자 중에는 전문직업인(대학교수, 연구기관 연구원, 의사, 문화예술인, 기타 전문분야의 기술인 등)과 국가 기관간부로 진출한 사람들의 비례가 크다.

그들은 동포들의 적극적인 중국정치참여에 대해서도 만족 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중앙정부 부부장(차관)급 관직에 진출했던 사람(현 재직자 포함)이 10여명, 전국인민대표대회대표 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진출했던 사람(현직 포함)은 수 십 명이 된다. 1988년 10월에 중국인민해방군의 정상급 계급에 승진된 17명의 상장 중에도 한명의 조선족 출신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민족의 동질성과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자각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조선민족출신이란 사실에 대해 전혀 열등감 을 느끼지 않으며 도리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들이할 때에도 한복을 입음으로써 자신이 조선민족 출신임을 나타내려고 하는 경향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 1세와 2세들 간의 심리적 일체감이다. 그들 은 미국 조선민족이 겪고 있는 심각한 세대 간의 갈등을 경험하지 않고 있다. 1세들은 현지사회에 정착하기 위하여 자아 희생적으로 열심히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 대한 민족교육(민족 자부심, 민족 언어, 민족문화 등)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2세들은 1세들에게서 전수받은 민족교육의 바탕 위에 시대적 의식과 새로운 지식을 가미하면서 현지사회의 지출에 나섰다. 1957년의 ‘반 우파 투쟁’과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혁명’기간에 민족주의자로 비판받았던 사람 중 다수가 2세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강한 민족의식에 대한 반증으로 될 수 있다.”

지난 세기 80년대 현재의 조선족사회의 민족정체성을 분석한 것이다. 90년대를 경유하면서 조선족사회는 엄청난 구조적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적지 않은 민족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치관의 혼돈으로 민족정체성도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본다면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에 질적인 변화 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 90년대에 동, 서방 대립의 냉전구조가 종식되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장막은 걷히고 경제활동의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중국 조선족 역시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변화와 새로운 움직임들을 재빨리 파악 하고 그와 같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21세기에 살아남는 생존 전략으로서 우리는 조선족이면서 중국적인 안목과 세계적인 안목을 함께 갖춘 새로운 조선족 공동체의 민족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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