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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미시 연구

김춘선(중앙민족대학 교수)

2011년 04월 19일 16:26【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서론


1980년대 한국문학에서 새로운 문학적 흐름의 하나로서 주목되는 것은 반미문학의 활발한 창작이다. 그것은 시, 소설 등 각종 장르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반외세 . 민족자주화 시선집 『아메리카똥바다』가 1988년에 공개 출판되었다는 것은 그 단적인 실례이다. 이 시집에는 총 89명 시인의 작품 141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또 청탁에 참여한 시인은 150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반일시 18편을 제외하면 반미시는 123편에 달한다. 이는 반미. 민족자주화 문제에 문학인들이 얼마나 큰 관심을 돌리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6.25전쟁 이후 현실적으로 반미=좌경=용공이라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한국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문학의 변화뿐만이 아닌 1980년대의 상황변화와 한국 국민들의 의식의 변화 등 많은 것을 시사하는 중요한 문학적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민족문학으로서의 반미문학은 그 사적인 의미도 충분히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실제로 한국에서의 반미문학은 1980년대에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미국이 한국의 우방으로 군림한 해방 직후부터 있었으며 많지는 않았으나 그 형상화는 연면하게 그 맥을 이어왔다.

이 글은 임헌영, 이영진 편인 반외세․민족자주화 시선집 『아메리카똥바다』에 실린 작품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한국에서 창작된 반미시의 여러 면을 분석하고자 한다.

2. 민족적 자각과 반미의식의 성장


해방 이후 한국의 반미시를 분석함에 있어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양상 및 시대상황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한국에서 미국의 존재는 정치․경제․문화의 구석구석까지”스며들었기 때문이며따라서 반미시에 담긴 내용은 한미관계의 실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해방 이후 한국과 미국의 특수 관계 속에서 한국 특유의 사회현실이 초래되었으며 따라서 그 같은 현실을 토대로 반미문학이 형성되고 발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반미의식이 싹트게 된 계기는 1871년 아시아함대 (제네랄 셔먼호 사건)가 강화를 침입한 신미양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반미의식의 형상화는 직접적으로 해방 이후 한․미 관계와 관련되므로 여기서는 해방 이후의 한․미 관계의 양상을 살펴보려고 한다.

1945년 8월 15일, 조선은 일제 식민지의 통치하에서는 벗어났으나 38선을 경계로 남에는 미국군이, 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게 되며, 따라서 남에서는 3년간의 미군정이 실시된다. 이 시기 미국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대체로 소박했다. 민족주의 좌파나, 사회주의자들은 물론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지만 설마설마하는 낙관적 관측을 초기에는 포기하지 않았으니, 뒤늦게 식민지 권력의 신식민지적 재편성이 미국의 의도라는 점을 깨달았을 때 이미 대세는 기울었던 것이다.” 해방 직후 당시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소박한 인식은 권환의 시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대들은 거룩한 원정들/ 팟쇼의 억센 가시나무를/ 국군주의의 모진 독초를/ 모조리 베어버리고 뿌리채 뽑아버린/ 승리의 원정!/ 세계에 민주주의의 씨를 뿌리고/ 세계의 민주주의 꽃에 물을 주는/ 민주주의 원정// 훌륭하게 복도다 주리라/ 조선의 꽃/ 민주주의의 꽃

문학가동맹의 일원인 권환은 위의 시 「고궁에 보내는 글」에서 미소공동위원회를 세계의 “민주주의 원정”으로 찬미하고 있으며 이 민주주의 원정(園丁)의 원조하에 조선의 “민주주의의 꽃”이 “아름답게 피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해방 직후 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미군정의 실상을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로부터 한국에 진주한 미국의 문제를 근본적 관점에서 다룬 문학 작품도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소박한 인식으로부터 해방기 김송의 「무기없는 민족」에서는 한반도에 진주한 소련군과 미군이 원군이자 해방군으로서 호의적으로 인식되고 있고 박노갑의 「사십년」에서는 미군이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일본군을 몰아내려고 온 천사로 긍정적 이미지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방 직후 반미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채만식의 단편 「미스터 방」 (1946년)에서 머슴이었던 방삼복은 일본 중국으로 떠돌아다니다가 귀국하여 용산 군포로 수용소에서 잠시 일하며 익힌 토막영어를 밑천으로 미국장교의 통역관이 되어 온갖 권세를 누린다. 그러나 양치질한 물을 미국장교의 얼굴에 뱉는 실수 때문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작가는 이 형상을 통해 미국 세력에 빌붙는 아첨배들을 풍자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방삼복과 같은 통역에 의한 미군정의 정치에 대한 풍자가 그 저변에 깔려있다고 볼 수도 있다. 채만식의 다른 소설「역로」에서는 미군이 한국 땅에서 한시 바삐 떠나보내야 할 마마와 같은 존재로 그려짐으로써 미소 양군은 더 이상 해방군으로서가 아니라 점령군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며 중편 『낙조』(1948년)에서는 외국 군대가 주둔해 있는 한 그것은 보호국이지 독립국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이건 소련군이건 이 땅에서 한시 바삐 사라져야 한다면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외세 배격의 논리로 이어진다. 염상섭의 「양과자갑」은 현실적 이익을 좇아 재빨리 외세와 야합하는 인물들의 타락된 삶의 양상과 미국 유학으로 영어에 능통하여 현실적 이익과 출세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외세와의 야합에 노골적으로 거부함을 보이는 지식인의 자의식에 가득찬 행동양상을 대비시켜 기회주의적 처세와 현실적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외세와 야합하는 타락한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기 소설에서는 미국의 문제가 민족적 존엄과 주체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다분히 소박한 민족 감정적인 인식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48년 한국 단독 정부가 수립된 이후 냉전이념이 한국 땅에 공식화된다. 특히 6.25전쟁이 터지자 친미반공이데올로기는 설자리를 굳히고 미국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우방으로 “혈맹관계”로 미화되었다.

6.25, 그 날의 경악과 절망을 맛본 사람은
지구의 종언을 맞더라도 덜 당황해하리라.
하룻만에 패잔병의 모습으로 변한
국군과 함께 후퇴라는 것을 하며
수원에서 UN군 참전의 소식을 듣고서야
「노아」의 방주를 탄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 구상「난중시초 1」 일부

위의 시에서 6.25전쟁으로 경악하고 절망했던 시적 화자가 유엔군의 참전의 소식을 듣고“「노아」의 방주를 탄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6.25 이후 미군은 한국의 절대적 구원자로서 인식되고 있다. 한국의 국민 대다수는 혈맹관계에 있는 미국에 대하여 고마운 은인의 나라라는 관념이 항상 자리잡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반미의식에의 접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50년대 후반에 들어서 자유당 독재의 모순이 격화되는 것과 함께 한국문학은 서서히 사회적 관심을 회복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미군의 현실적 모습에 접근하는 문학적 형상화가 시작된다. 예컨대 주한미군과 양공주 문제를 다룬 송병수의 「쑈리 킴」(1957) 등 작품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소설은 근본적으로 미군의 한국 주둔에서 파생되는 윤리 도덕적 파탄의 문제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60년대에 이르어 한국에서는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저항하여 4.19혁명이 폭발한다. 4.19혁명에 의해 자유당 영구집권체제를 만들려던 이승만 정권은 몰락하고 장면 민주당 내각이 탄생된다. 이 과정에서의 혁명의 주도세력이었던 학생들의 움직임은 민족의 운명에 대한 관심, 남북분단 극복의 의지, 민족적인 자각을 잘 보여준다.

① 민족통일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1961년 상반기에 들어와서 고려대학교 학생회는 “온갖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민족적 주체세력을 총집결하고 내외사정이 허락하는대로 적절한 시기에 서신왕래․인사교류 및 기술협정 등 단계적 남북교류를 단행할 것”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의 민족통일 연맹도 남북간의 학술토론대회․ 체육대회․기자교류 등을 포함한 남북학도회담을 제안했으며, 전국 17개 대학생 대표 30 여명이 모여 민족통일 전국학생 연맹을 결성하고 판문점에서 남북학생회담을 5월 이내에 열 것을 결의했다. (1961년 5월 5일)

② 서울대 4.19 제2선언문에서 4월혁명의 종국적인 길이 “반봉건․ 반외세․반매판․민족통일”임을 제시하고 5월 5일 17개 대학이 참가한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이하 민통련)결성대회를 열고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무점!” “이 땅이 뉘땅인데 오도가도 못하는가!”라는 구호아래 남북학생회담 개최를 요구하는데까지 발전함으로써 사회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친미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1950년대의 한국사회에서는 ‘민족’이나 ‘통일’이란 말조차 불온시되었던 것인데 50년대를 마감하고 60년대를 시작하는 1960년대 벽두에 대학생들이 이처럼 공공연히 민족통일연맹을 결성하고 온갖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민족적 주체세력의 총집결과 민족통일을 위한 남북교류를 주장하며 반외세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남북분단을 고착화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며 기득권 이익을 고수하려는 보수 세력에게는 커다란 충격과 반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편 4.19혁명과 대학생들의 움직임은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남북분단의 고착상태에 안주할 수 없음을 일깨웠을 것이며 민족적 주체성을 자각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놀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4.19혁명은 비록 5.16군사정권에 의해 좌절되었으나 4.19혁명과 더불어 뜨겁게 불타올랐던 민주화, 민족자주화, 민족통일의 열망은 강력한 독재정권 앞에서 인간들의 내면으로 잠복했을 뿐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편 1965년은 한국 역사상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의 해이면서 동시에 한국전투부대 월남파병이 시작된 해이다. 미국의 베트남 내정간섭에 어이없이 한국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쟁마당에 투입되어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월남파병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과 한국의 식민지적 종속관계를 폭로하고 인식시키는 하나의 계기로서 반미의식은 더한층 강화되었다.

그것은 1960년대에 치열하게 전개된 순수. 참여 문학논쟁과 함께 민족문학론이 대두되어 민족의식 및 민족동질성이 강조된 점에서 확인 할 수 있으며 반미의식과 통일지향을 담아낸 1960년대 남정현, 김수영, 신동엽, 이호철 등의 작품에서 나타난다. 이들의 작품들에서 한국에서의 반미의식은 민족의식의 성장과 정비례해서 고조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반미의식은 지속되어 왔지만 6,70년대 한국문학에서는 반미의식을 본격적으로 작품화한 작품은 많지 않다. 이는 5.16 군사혁명 이후 유신정권 및 군사정권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직결된다고 생각된다. 특히 반미감정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으로 말미암아 작가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기까지 한 남정현의 「분지」 필화사건은 반미=용공으로 인식된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에서 그것도 반미감정을 다룬 한편의 단편소설에 대해 당국에서 그처럼 민감하게 대응했다는 것은 한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으며 미국과 박정희 독재정권이 얼마나 밀착돼 있었는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 남정현의 『분지』파동사건만 보아도 반미문제를 다루는 것은 반미적=반공법위반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고 생사존망에까지 연관되는 일이니 한국문학에서 노골적으로 반미의식, 반미문제를 다루는 것은 위험한 장난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런 까닭에 미국의 정체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문학인들은 속으로는 분노에 끓음에도, 행동 상으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문학작품은 활발히 창작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발표 이후에도 오랏줄에 묶여서 공안담당 검사 앞에 끌려간 문인들은 “평화적 통일을 논한 일이 있는가”라는 추궁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는 사실은 6.70년대 친미반공이데올로기의 지배가 얼마나 강경했었는가를 보여준다.

한국사회에서 반미감정이 표면적으로 당위성을 외치며 출현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이며 후반부터는 첨예화 현상을 보이며 정치․군사․경제 분야 등에서 한․미 양국간에 상호 이해와 상충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데 기인했던 것이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대미인식 전환의 일차적인 계기는 80년 광주항쟁의 경험을 통해서이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의 항쟁은 70년대 유신체제의 정치적 압제와 분단 이후 한국 사회에서 장기간 누적되었던 첨예한 사회적 모순과 불만이 폭발한 것이었는데 전두환 군부세력은 이런 진보적인 민주화 운동을 반공의 논리로써 군대를 동원하여 총칼로 처참하게 압제했다. 한국의 현실 정치에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 한국의 군부가 현재까지도 미군의 작전지휘권의 통할 하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군부의 폭력을 미국이 용인했음을 의미한다. 광주항쟁의 비극은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반미의식을 일깨우는 시발점이 된다. 그 이후 한국 전역에서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 있게 된다. 1980년 12월 9일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이어 미문화원 및 대사관 등 미국을 상징하는 건물에 대한 투쟁은 80년대에 계속 이루어지는데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미문화원 습격 혹은 방화사건만 해도 25건에 달한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2. 3. 18), 같은 해 강원대 성조기 소각사건,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1985. 5. 23)등이 그 실례이다. 이처럼 반미의식은 지속적으로 확산 심화되어 80년대 후반에는 한국사회에서 ‘제국주의 미국의 추출이 학생운동세력에게 변혁운동의 전략적인 일과제로 설정되는 이 시기에 이르러 반미운동에서는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규정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자주없이 민주없다”, “독재조종 내정간섭 미국놈들 물러가라”,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과하라”는 구호들이 일반 시민에까지 공감되게 되었다. 특히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에 대한 대미 무역수지 수출의 억제와 ‘농․축산물수입개방 압력’은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되면서 학생 및 기층 민중의 반미의식은 더욱 확산된다. 미국의 요구는 한국국민들이 부분적으로나마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특수관계 - 특수배려’의 환상을 깨주었다는 점에서 더없이 귀중한 것이다. ‘소값피해 보상요구’를 둘러싼 농민들의 지속적인 ‘외국 농축산물 수입 반대운동’을 통해 한국 민중과 미국은 직접적으로 적대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80년대에는 학생운동권세력에 의해 “분단책임론”, “신식민지론”, “제국주의론” 등 미국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짐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핵기지 문제에 대해 강하게 거부한다.

한국의 반미시는 바로 이 같은 한미관계 양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학이다.

3. 반미시의 전개양상


한국에서의 반미시의 형상화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해방 이후 한국의 시대상황과 그리고 한국민중의 민족의식의 각성 과정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반미시의 전개양상을 분석해 보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1) 친미반공이데올로기와 반미시

반외세․민족자주화 시선집인 『아메리카똥바다』를 살펴보면 몇가지 특이한 양상을 띤다. 즉 이 시집에 참여한 시인 89명 중에서 반일시를 쓴 시인 16명을 제외하면 반미시를 쓴 시인이 73명이 되는데 그들의 등단 년대를 살펴보면 대체로 1950년대 이전 2명, 1950년대 등단이 3명, 1960년대 등단이 2명, 1970년대 등단이 17명, 1980년대 등단이 49명으로 되어있다. 이로부터 반미시에서 주된 창작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1980년대에 등단한, 그리고 대학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에서 반미문제가 대학생운동세력에 의해 80년대에 본격적인 논쟁거리로 등장하게 되었고 또 민족적 각성을 위한 대학생들의 노력이 부단히 전개된 시대적 상황과 맞먹는다. 그리고 이 시집에 실린 141편의 시중에서 반일시 18편을 제외하면 반미시는 123편이 되는데 이 중에서 작품년대를 추정하기 어려운 작품을 제외하면 1960년대 작품은 3편이며 1980년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114편이 된다. 이 같이 두드러진 수적 차이는 그대로 민족의식이 고조되고 반미의식이 심화되었던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 및 한국민의 의식과 맞먹는 것이다. 이로부터 한국의 반미시는 주로 1980년대에 등단한 젊은 세대들에 의해 80년대에 활발히 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1980년 5월의 광주 항쟁의 비극적 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농축산물수입개방 등 일련의 사태가 한국민의 민족의식의 각성과 미국의 실상을 인식함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며 민족의식의 각성과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반미시 창작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반미시 창작층의 연령별 구성에 있어서 ‘한미 혈연관계’ 라는 6.25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연령층의 비율이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6.25를 체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냉전 이데올로기의 제도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체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별반 다름이 없을지 모르나 현실타개와 관련된 의식형성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은 1980년대 이전의 반미시와 그 이후의 반미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뚜렷이 나타난다.

굵다란 눈물방울 떨치는/ 존슨 너의 이야기 ……//쇠사슬 늘이어/ 흑노(黑奴)의 아들로서 시장에 팔려온/ 이제는 고이 쉬는 할아버지는// 시카고에 활발한 인종선 (人種線)에/ 무지한 백인이 던지는 벽돌에/ 집앞에서 쓰러졌으며/ 이리하여/ 원수를 갚겠다는 미친 아버지마저/ 식칼에 찔리어/ 길바닥에 자빠져버렸다./ - 중략 -// 인종선은 늬 곳에만 있는 줄 아느냐/ 동무들이 찬미하던 이 땅에서도/ 나라 있는 곳마다/ 온 세계에 전선은 펼쳐 있는 것이다. ㅡ 배인철 「인종선」

1946년에 창작된 위의 시에서 시인은 흑인문제를 통해서 조선민족 문제를 보고 있다. 그의 다른 시 「조 루이스에게 」에서는 끝 연에서 “너와 함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BLACK AMERICA는 아니/ 온 세계 약소민족은 싸우고 있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검은 아메리카의 투쟁이 인종적이면서 계급적이듯이 자주적인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조선민족의 투쟁 역시 바로 거기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유진오의 시 「누구를 위한 벅차는 우리 젊음이냐?」는 격정적인 어조로 반외세를 보여준 작품이다.

외놈의 씨를 받어/ 소중히 기르는 무리들이/ 이제 또한 모양만이 달러진/ 새로운 000의 손님네들 앞에/ 머리를 숙여/ 생명과 재산과 명예의/ 적선을 빌고 있다./ ㅡ 중략 ㅡ/ 그러나 오늘날 또한/ 썩은 000에 배탈이 나고/ 뿌우연 밀가루에 부풀어 올르고도/ 삼천오백만불의 빗을 질러지고/ 생각만하여도 이가 갈리는/ 무리들에게 짓밟혀/ 가난한 동족들이/ 여기 눈물과 함께 우리들 앞에 섰다.

위에서 시인은 해방기 미군정하의 현실과 인민들을 못살게 만드는 외세에 대해 분노하며 그 적을 추방하고자 고취한다.

바람 부는 밤/ 만삭의 임부는/ 철조망 곁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눈이 갠 아침/ 그 화창하게 맑은 산과 들의/ 은빛 강산에서/ 열두 살짜리 소년들은/ 에제 신문에서 읽은 동화얘길 재잘거리다/ 저격받았다./ ㅡ 중략 ㅡ/ 쏘지 마라/ 솔직히 얘기지만/ 그런 총 쏘라고/ 박첨지네 기름진 논밭,/ 그리고 이 강산의 맑은 우물/ 그대들에게 빌려준 우리 아니야.// 벌 주기도 싫다/ 머피 일등병이며 누구며 너희 고향으로/ 그냥 돌아가 주는 것이 좋겠어.ㅡ 신동엽 「왜 쏘아」

위의 시는 미군의 총기난사 사건을 규탄한 신동엽의 1960년대 작품이다. 아기 밴 어머니가 배가 고파 애들을 재워놓고 먹을 것을 찾으려고 미군기지촌에 왔다가, 열두 살짜리 소년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깡통 꿀꿀이 죽을 찾아 먹”으려고 미군이 있는 경계선으로 왔다가 미군병정의 난사로 목숨을 빼앗겼다. 그리하여 시인은 “왜 쏘아./ 우리가 설혹/ 쓰레기통이 아니라/ 그대들의 판자안방을 침범했었다 해도/ 우리가 맨손인 이상/ 총은 못 쏜다.” “그런 총 쏘라고 박첨지네 기름진 논밭,/ 그리고 이 강산의 맑은 우물/ 그대들에게 빌려준 우리 아니야.”라고 분노를 터뜨린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토끼몰이 하던 아우성으로/ 씨름놀이하던 함성으로/ 밤낮을 모르던 박첨지네 동산”에서 그것도 임신부와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왔다가 이 같은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은 낯선 얼굴들이 얕보는 휘파람으로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곳은 우리들이 천년 이천 년/ 울타리 없이도 콧노래 부르며 잘 살아온/ 아름다운 강산”임을 알리면서 “머피 일등병이며 누구며 너희 고향으로/ 그냥 돌아가 주는 것이 좋겠어”라고 솔직히 얘기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미군이라는 외세에 의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민족의 비극이 빚어지고 있으며 그러한 미군이 이 땅에서 물러가야만 그런 비극이 사라질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분단 극복에 대한 지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노에 비해 미군 처벌에 대해서는 “벌 주기도 싫다/ 머피 일등병이며 누구며 너희 고향으로/ 그냥 돌아가 주는 것이 좋겠어”로 그 어조는 너무도 너그럽고 차분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물론 반미를 ‘빨갱이’로 몰아 부쳤던 그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이 점은 쉽게 이해될 것 같다.

외세 의존에 대한 신동엽의 비판적 인식은 그의 장시 「금강」에서도 잘 나타난다. 금강은 민중혁명으로서의 동학과 1960년대의 사회. 역사적 상황을 병치 구조로 하여 시를 전개시키고 있다. 이러한 작품 구조는 금강이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동학혁명이지만 시인은 동학혁명이라는 근대사 최대의 한 사건을 통해서 지난 날 잘못된 역사를 되돌아 비판해 보고 현재의 여러 가지 모순과 문제점을 조명해 봄으로써 당대 한국사와 현실이 당면하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현실적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신라 왕실이/ 백제, 고구려 칠 때/ 당나라 군사를 모셔왔지/ 옛날 사람 욕할 건 없다.// 우리들은 끄덕하면 외세를/ 자랑처럼 모시고 들어오지./ 8.15후, 우리의 땅은/ 디딜 곳 하나 없이/지렁이 문자로 가득하다. / 모화관에서 개성 사이의 행길에 끌려나와/ 청나라 깃발 흔들던 눈먼 조상들처럼,// 오늘 또 화창한 코스모스 길 / 아스팔트가에 몰려나와,/ 불쌍한 장님들은, 대중도 없이 서양깃발만/ 흔들어댄다.

위에서 시인은 “우리들은 끄덕하면 외세를/ 자랑처럼 모시고 들어오”는 집권자들에 대해 청나라 깃발 흔들던 조상들을 “눈먼 조상”으로, 서양깃발만 흔들어대는 집권자들을 “불쌍한 장님들”로, “정치 거지”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시인은 외세 의존을 비판하고 민족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작품은 “갈라진 조국/ 강요된 분단선./ 우리끼리 익고 싶은 밥에/ 누군가 쇠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구나./ 너와 나를 반목케 하고/ 개별적으로 뜯어가기 위해/ 누군가가 우리의 세상에/ 쇠가루 뿌려 놓은 것 같구나.”처럼 조국의 분단은 강대국에 의해 “강요”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남과 북을 반목케 하고 “ 개별적으로 뜯어가기 위해”서라는 그 본질을 우회적으로 밝히고 있다.

1960년대 반미의식은 김수영의 작품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시 「가다오 나가다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유는 없다ㅡ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와 ‘가다오’의 차이가 있을 뿐
말갛게 개인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
가다오 가다오.
ㅡ 중략 ㅡ
조용히 가다오 나가다오
서푼어치값도 안 되는 미.소인은
초콜렛, 커피, 페치코오트, 군복, 수류탄
따발총.......을 가지고
적막이 오듯이
적막이 오듯이
소리없이 가다오 나가다오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이 저희들의 고장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은 기다릴래야 더는 기다릴 수 없어 “하루 바삐 가다오”라고 간절히 호소하기에까지 이른다. 시인은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 땅에서 나가야 할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반어적으로 “이유는 없다”고 함으로써 그들이 남북 땅에서 물러가야 할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인은 한국땅에 달콤하고 구수한 “초콜렛, 커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민족의 자유와 통일을 가로막는 “ 수류탄․따발총”을 가져왔다. 해방군, 우방의 자세로 나타난 미.소인에 대해 “서푼어치도 안되는 미.소인”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달라는 표현은 실로 커다란 경멸과 조소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 같은 놈들”이라는 표현은 조국의 분단을 강요한 외세에 대한 반발이며 따라서 소련에 대한 나쁜 인상이 미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됨으로 해서 미국에 대한 더 큰 반감을 획득하고 있다.

김수영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소시민의 옹졸함에 대한 자아비판의 시이다.

왜 나는 조그만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위의 작품에서 시인은 ‘왕궁의 음탕’, ‘소설가의 구속’, ‘ 언론의 부자유’, ‘월남파병’과 같은 큰 일에는 제대로 분개하지 못하면서 조그만 일로 분풀이하는 소시민적 삶에 대해 자기 고발과 비판을 한다. 이 시에서 월남파병에 대한 반대는 구체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있지만 자신의 옹졸함에 대한 울분과 월남파병을 강요하는 미국에 대한 분노가 깔려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수영은 왜 “옹졸하게 반항”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은 그의 다른 시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 씻개로 하자」에서 얻을 수 있다. 즉 “그 놈의 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무서워서 편리해서 살기 위해서/ 빨갱이라고 할까보아 무서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편리해서/ 가련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김수영만이 아닌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분노하고 반감을 가지면서도 솔직하게 표출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편리한 삶을 위해서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김수영과 신동엽이 모두 1960년대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 평해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960년대의 반미시에서는 1980년대 반미시에 나타나는 노골적이며 과격한 표현을 극히 자제하고 있으며 반미의식을 작품화하는 경우에도 조심스럽게, 차분한 어조로, 때로는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표현은 김수영의 시에서 본 바와 같이 60년대의 시대적 상황 및 그 같은 상황 속에서의 한국인의 심리와 직결된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60년대의 반미시에서의 반미의식은 대체로 분단극복으로서의 조국통일의 지향과 연결되고 있다. 대미인식에서 아직은 ‘제국주의’나 ‘ 신식민지’ 등의 인식에까지는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 민족적 자각과 반미시의 활발한 창작

1980년대에 이르러 반미는 한국 시문학의 커다란 주제로 부각된다. 창작된 반미시도 많거니와 참여한 시인도 많으며 내용 면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아래에 『아메리카똥바다』에 실린 작품들을 중심으로 1980년대에 반미문제가 어떻게 형상화되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 시선집에 실린 1980년대의 반미시는 주제에 따라 대체로 미국에 의한 경제․문화 침탈과 민중의 저항의식을 다룬 작품들, 반제 민중항쟁 등의 역사적 사건의 진상 복원 및 오늘의 반제, 민족자주 의지를 드러낸 작품, 민족해방 자주통일을 가로막는 미국의 실상과 자유민주주의의 허구성을 고발한 작품들, 신식미지적 현실을 폭로 비판한 작품들로 분류할 수 있다.

(1) 미국에 의한 경제수탈과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화한 작품

1980년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수출의 억제와 농축산물시장의 개방에 대한 요구와 공개적인 압력으로 말미암아 미국으로부터 쇠고기를 비롯하여 농축산물이 많이 수입된다. 결과 한국 농축산물이 엄청난 가격하락으로 한국 민중계층의 생활상의 막대한 불이익을 초래하게 되었으며 이에 농민들은 미국대사관 앞에 모여 항의 시위를 하는 등 저항해 나섰다. 80년대 반미시에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미국에 의한 경제수탈과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화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박노해의 「소를 찌른다」, 홍일선의 「미국 소에게」, 「보리수매가 2% 인상」, 김용택의 「소」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이게 웬 청천벽력이여
2년 동안 지성으로 키워온 우리 소가
복스럽게 살찌워온 우리 희망 누렁이가
본전치기도 안 된다니, 소값이 폭락하여 개값만도 못하다니
지난 세월 썩어 나뒹군 배추 양파 고구마가
악몽으로 어른거려 부드득 이 갈리게 몸서리치게 어른거려
동네사람들과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야무진 꿈으로 융자 얻어 스무 마리나 길러오던
영농후계자 서군은 끝내 농약 마신 채 자살을 하고
이웃마을 착한 김씨는 야반도주하고 말았다며
뭔가 대책을 세우자고 철수 아범이 울부짖고
소값이 폭락한 것은 미국소를 수입해온 놈들 때문이라며
ㅡ 박노해 「소를 찌른다」

위의 시는 수입소 파동시기에 농민들의 울분과 절망, 분노한 나머지 농민들이 집단 시위로까지 나아간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생동하게 시화하고 있다. 2년 동안 지성으로 키워온 소가 미국소 수입으로 소값이 폭락한다. 2년 전에 80만원 주고 사다가 복스럽게 살찌워 놓았으나 소 값은 도리어 본전치기도 안 되는 42만원으로 폭락한다. 농민들은 절망한 나머지 자살하고 야반도주하고 울부짖고 핏발선 성토가 쏟아진다. 갈수록 적자농사로 빚더미에 눌려도 영리한 장남을 “어떻게든 서울 큰 대학교에 입학시켜 보자고” 아파도 약 한 첩 안 쓰고 ‘누렁이’를 지성으로 길러온 농민의 희망은 유일한 밑천으로 기대했던 황소의 값이 폭락함으로 하여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분노한 농민들은 “단결된 힘으로 싸워 찾아 나서자고” “소값폭락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녀노소가 시위에 나서나 국가는 국민의 피해를 대변할 대신 경찰을 동원하여 항의에 나선 농민들을 처참하게 압제한다. 치밀어 오르는 울분과 분노를 참을 길 없는 농민은 “처참하게 날뛰는 누렁이를 끌어안고/ 시퍼렇게 미친 듯이 함께 날뛰며” “피눈물을 뿌리며” “유일한 희망”이었던 소를 사정없이 찌른다. 힘 약한 농민의 분노의 폭발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수입소 파동을 통해 미제에 의한 직접적인 민중수탈과 그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홍일선의 「미국소에게」는 한국에 수입되어온 「미국소」를 빗대어 미국의 본질을 밝히고 반미감정을 드러낸다. 미국소가 한국에 온 것은 “풍성한 탐욕”때문이며 “분단의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서이다. “서로 이 땅을 차지하겠다고” 힘센 미국소의 주인들의 다툼으로 “이 땅에선 무서운 전쟁이 있었다” “우리들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미국소의 “자유를 경멸”하며 미국소의 넓은 초지도 경멸한다. “빨갱이만 적이 아니라/ 너희들의 광활한 초지도/ 이땅 농민들에게는 원수다”할 때 ‘빨갱이’에 대한 거부감이 똑같이 미국의 광활한 초지에도 적용됨으로써 미국에 대한 반감은 한층 더 강하게 안겨온다. 조진태의 「기름때를 파내며 조국을 얘기한다」에서는 노동자들의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시적 화자의 어린시절 그의 “조국은 성조기의 이상으로 아득하게 걸어가던 대통령의 나라”였다. 하루에 “12시간 14시간 철야작업 속에서” “온갖 놈의 명령과 내쫒김 속에서” 노동에 내몰리면서도 “40년이나 침묵 속에서 인내해왔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화자는 “갈라진 손바닥 들여다보며 조국을 얘기한다/ 반제 항전의 전통 속에서 꿈틀거리는 나라/ 기름 묻은 노동자의 손으로 지켜 나갈/ 아아 조국 우리들의 반도.”라고 노래한다. 이 같은 표현은 반제 항전의 전통 속에서 반제 민족자주화에로 민중이 바야흐로 각성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통일을 이룰 민족의 주체는 기름묻은 노동자ㅡ 민중임을 의미한다.

(2) 신식민지적 현실을 폭로 비판한 작품

한국의 신식민지적 모습은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나타날 뿐만아니라 일상 현실 속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점들은 80년대 반미시에서 잘 그려지고 있다. 윤재철의 「아메리카 사운드 . 3」, 이누리의 「식민지 국어시간」, 김흥수의 「말의 역사」, 박노해의 「영어회화」, 김용락의「다부동 전적비」, 이하석의 「처용의 딸」 등은 모두 이 부류의 작품들이다.

머언 먼 태고적
아니 삼국, 삼국시대는 물론
한글을 처음 만든 15세기까지만 해도
겨레 얼인 우리말이 주로 쓰이던 것이
어찌어찌하다 중국의 입김이 거세어지자
그때부터 우리의 언어는 변하기 시작했다

까까는 과자로 다시 미루꾸로 또 다시 캬라멜로
놀이는 유희로 다시 찜으로 또 다시 게임으로
하나 둘 셋은 일 이 삼으로 다시 이찌 니 상으로 또 다시 원 투 쓰리로
뫼는 산으로 다시 야마로 또 다시 마운틴으로
심지어 어머니 아버지까지도 모친 부친으로 다시 오까상 오도상으로 또 다시 마더 파더로
더구나 말의 뿌리인 입과 말은 구강으로 음성으로 다시 구찌로 하나시로 또 다시 마우스로 보이스

위의 시 「말의 역사」는 겨레의 얼을 지닌 민족어가 외세의 힘에 의해 중국어로 다시 일본어로 다시 미국어로 바뀌면서 상실해가는 과정을 통해 이 땅에서 식민지적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이누리의 「식민지 국어시간」 역시 미국에 의한 문화침탈 현상을 폭로 비판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는 우리말 시간이 없어
참된 우리말 가르치지 못했고
저들 일본놈들 쪽발이 말을 가르쳤다.
ㅡ 중략 ㅡ
해방 40년, 분단 40년
바뀐 것이 뭐 있는가
국어시간 옆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영어시간
국어보다 영어 단어외기에 열 올리고
모든 성적에 우선해서 영어점수가 더 중요하다 하니
과연 우리말 우리글을 되찾았다 할 수 있는가

일제식민지 시대에는 자기 민족어를 배울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일본어를 배워야 했다. 해방 40년이 된 현재는 모국어 보다는 영어를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식민지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 힘으로 한국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윤재철의 「아메리카 사운드. 3」역시 몰주체적이며 가치관이 전도된 한국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이 시는 미국의 레이건 취임식 광경을 라디오와 함께 위성으로 실황 중계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 AFKN에서도 방영하지 않는 취임식을 한국의 KBS에서 새벽 2시 반이 넘도록 방영한다. 작품은 이 땅이 식민지인지 아니면 식민지 본국인지를 착각케 하는 말하자면 주종이 뒤바뀐 한국의 현실을 통해 전도된 관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3) 반제 민중항쟁 등의 역사적 사건의 진상 복원 및 오늘의 반제. 민족자주 의지를 드러낸 작품

반제. 민족자주 의지는 이 시집의 많은 작품들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그 중에서도 김남주의 「동시대인의 합창」 , 이광웅의 「재생의 불길」, 고은의 「그대 숯 덩어리 썩지 않나니」, 이산하의 「한라산」 등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가 의를 들어 여기에 이르니
우리가 해방의 칼날을 세워 그 주위에 모이나
그 본의가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ㅡ 중략 ㅡ
조국을 이민족의 억압에서 해방시키고자 함이라
중략
밖으로는 제국주의 신식민지 세력과 그 앞잡이들을 몰아내고자 함이라
ㅡ 김남주 「동시대인의 합창」

위의 시에서 시인은 오늘의 한국의 현실을 이민족의 억압하에 허덕이는, 해방시켜야 할 ‘신식민지’ 로 , 미국을 몰아내야 할 ‘제국주의로’ 인식하고 주저치 말고 일어나 투쟁할 것을 호소한다.

고은의 「그대 숯덩어리 썩지 않나니」는 김세진 열사의 분신자결 백일을 맞이하여 쓴 작품이다.

1986년 4월 28일 오전 9시 반 / 신림동 네거리/ 한 건물 옥상에서/ 반전반핵평화옹호투쟁위의 85학번 학우들 앞에서/ 수많은 학우의 농성장 앞에서/ 그대는 이재호와 함께 처절하게 외쳤다/ 반제반핵 양키는 꺼져라/ 그리고 선언문을 뿌렸다 전단이 널렸다/ 그리고 그대는 마지막으로/ 농성대렬 짓밟는 전경대에 경고했다/ 그대와/ 이재호의 몸에/ 그대는 석유를 붓고 외쳤다/ ㅡ 중략 ㅡ/ 그 최후로 외쳤다/ 목숨 다하여 끝까지 외쳤다/ 양키는 꺼져라 양키는 가라고

민중의 가난한 삶의 현실과 광주항쟁의 비극과 도처에 휘날리는 성조기 앞에서 “이 땅의 가난 분단 탄압의 원인이/ 바로 제국주의라는 것을/ 군사팟쇼인 것을 ”인식한 대학생들은 “이 땅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 자주통일을 위해, 민중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에 일떠섰다. 그들은 농성을 벌이고 선언문을 뿌리며 “반제반핵 양키는 꺼져라”고 처절하게 외친다. 그리고 농성대렬 짓밟는 전경대와 꿋꿋하게 맞받아 싸운다.“인간의 해방/ 민중의 해방/ 민족의 해방”을 위해, “이 땅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이 몸을 바치”려고 의지를 다진 김세일은 이재호와 함께 분신자결을 단행한다. 자기의 죽음으로써 이 땅에 평화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자주통일을 이룩하고자 한다. 고은은 이 시에서 1980년대 한국 대학생들의 반제. 민족자주화를 위한 투쟁의 현장을 시로 생생하게 떠올리고 있다. 그리고 “산자여 귀 뚫어 들어라/ 이 소리를 살아 있는 이 성난 소리를 들어라/ 듣고 일어서라 뭉쳐라/ 김세진 앞장세워 나아가라/ 이 땅의 반역 앞에서/ 싸움 아니거든 무엇이겠느냐”고 김세진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끝까지 싸울 것을 격정적으로 호소한다. 아울러 시의 끝 부분에서 “그대 숯 덩어리 썩지 않는다/ 오 민족의 꽃 산화하여/ 민족의 썩지 않는 숯으로 파묻혀 있음이여 영령이여”라고 읊고 있다. 김세진 열사의 정신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일깨워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의 불길로 타오를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이산하의 장시 「한라산」은 제주도민중항쟁의 역사적 사건의 진상을 복원한 작품이다.

1948년 4월 3일/ 미군정 압제에 반대하여/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외치며/ 제주도 인민은 일제히 봉기했다./ ㅡ 중략 ㅡ/ 미군의 지휘 아래/ 이승만 군경의 이 가공할 ‘게릴라토벌작전’은/ 당시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만 5천여 주민이 학살되고/ 전 촌락의 8할이 불에 타는/ 참화를 낳았다// 전후 아시아에서의 게릴라전에 대비하는/ 최초의 실험실이 되었던 제주도의 밤/ 미제의 근대적 병기로 무장된/ 수개 사단의 대병력과 비행기, 구축함까지 동원되어/ 철저한 빨갱이사냥전이 전개되었던/ 저 잔인한 4월의 밤

이산하는 “당시 일체의 공식적인 보도가 금지되었고/ 외부의 특파원이 현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지되었기 때문에/ 전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채/ 깜쪽같이 은폐되었”던 1948년의 제주도 ‘4,3사건’을 시로써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제주도 ‘4,3사건’과 관련하여 정부 양민학살, 또는 반공진압 등 설이 있거니와 최근 제주도 ‘4,3사건’의 진상을 구명하기 위한 연구가 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줄로 안다. “미군에 의해 제주도민의 4분의 1인, 근 7만 여명이 학살된” 이 엄청난 사건을 깜쪽같이 은폐하고 일체의 공식적인 보도가 금지된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제주도민에 대한 대량 학살이 떳떳치 못하며 비정의적인 죄악임을 충분히 말해준다. 40년 간이나 역사에서 완전히 묻혀 있은 이 처절한 사건을 시를 통해 과감히 끄집어올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라산」의 가치는 인정해 주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미군은 처음부터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
그들은 반드시 한국인 동포를 이용해 싸웠다.
현지에 허수아비 파쇼정부를 세우고
그것에 경제, 군사 원조를 하면서
반공을 명분으로 서로 피 터지게 물어뜯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방법이었다
ㅡ중략ㅡ

한 손에는 착취의 칼, 한 손에는 냉전의 칼, 그리고 한 몸쯤 넉넉히 가릴 우산처럼 큰 해방군의 방패를 마구 휘두르면서 마침내 그들은 왔다. 와서 북북 찢어버리고 계획대로 하나하나 접수해 갔다.

이처럼 이산하는 미군의 실체를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낙인찍고 있으며 ‘해방군’의 허울을 쓰고 들어와 계획대로 남북을 분단하고 경제적 착취를 감행하는 ‘정복자’로 미군을 인식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오늘의 한국의 현실을 두고 “총독부가 대사관으로 바뀌었을 뿐,/ ‘창살 없는 감옥’ 식민지 산하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고 노래하며 “바람 부는 대로 쓰러지는 풀잎이 아니라면/ 결코 그들의 노예가 아니라면/ 우리 어찌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고 투쟁을 고취한다.

(4) 민족해방자주통일을 가로막는 미국의 실상과 자유민주주의의 허구성을 고발한 작품

8.15 이전 조선민족의 지상 과제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된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또한 조선민족 절대 다수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와 염원은 8.15 직후의 미군정에 의해서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광복 50여 년이 지난 오늘도 독립된 민족국가의 건설은 여전히 역사적 과제로 남아있다. 1980년대에는 민족통일의 문제가 거론되고 국제 정세의 변화와 함께 분단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민족통일을 지향하고 민족해방 자주통일을 가로막는 미국의 실상과 자유민주주의의 허구성을 고발하고 투쟁을 고취하는 시들이 적지 않게 창작된다. 그 중에서도 김남주의 「고개 들어 조국의 하늘 아래」, 「학살Ⅰ」, 박진관의 「임진강」, 하경의 「아직도 그는」, 「아메리카여」, 박공배의 「가야 한다」, 채광석의 「위대한 나라」, 문병란의 「미국개와 조선똥개의 대화」 등은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우방의 이름으로건
평화를 위한 유엔군의 이름이로건
보호다 뭐다 협력이다 뭐다
뭐다뭐다 흰수작 개수작 같은 이름으로건
이 땅에 허리꺾인 내 누이의 땅에
이방인의 군대가 들어와 있는 한
들어와 총을 메고 이 도시 저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한
나는 아니다 고개 들어 조국의 하늘 아래
직립보행의 독립이 아니다
ㅡ 김남주 「고개 들어 조국의 하늘 아래」

정전위 판문점에서 너를 대표한 자 누구이며
도마 위에 너를 올려 놓고 초치고 장치고 포치고 차치고
내 조국의 운명을 요리하는 자 누구냐
입으로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뒷전에서는 원격조종의 끄나풀로 꼭두각시를 앞장세워
제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민중들을
계획적으로 (너희들 표현으로는 전략적으로) 학살하는 아메리카여!
ㅡ 김남주 「학살 .ㅣ」

위에서 시인은 조국이 분단되고 미군이 활보하고 있는 한 한국의 오늘을 해방이 되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국의 분단은 바로 미국의 개입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미국의 자유 민주주의의 허위성을 강력히 지적하며 강한 적개심을 보여준다. 위의 시들에서 8.15 이전에 독립된 민족국가를 염원하던 조선민족의 염원은 이제 분단이 극복된 통일민족국가의 성립을 지향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아울러 식민지시대의 숙원 그대로 외세의 간섭이 없는 당당한 독립국가가 되기를 염원한다.

노동자, 농민이라는/ 단어만 입에 올려도/ 빨갱이로 잡혀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물며, 반미라는 말이야 ㅡ/ 분단된 땅에서/ 민족문제를 외면하는 사람이란/ 불구덩이 속에서/ 뜨거움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하며/ 결국/ 그 뜨거움 때문에/ 젊음 태우다 잡혀간 그,// 그가 오지 않는 시절에도/ 조국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다
ㅡ하경 「아직도 그는」

위의 시에서 분단된 조국과 민족문제를 외면하지 않은 죄 아닌 죄로, 반미라는 말을 한 죄로 잡혀갔다. 그러나 그의 “조국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다”. 독재정권과 미국이 얼마나 밀착된 관계이며 그들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위적인 것인가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한다.

무서움에 떨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다 되었는데/ 너는 여전히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자유 대신 감옥을/ 민주주의 대신 독재정권을 주었다
ㅡ 하경 「아메리카여」

위의 시에서 시인은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가지고 도리어 독재를 지원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아메리카의 포성은 탱크는/ 자국의 이권을 위한 것일 뿐/ 아메리카의 초콜렛 달콤한 경제는/자국의 이익을 위한것일 뿐
ㅡ 박공배「가야 한다」

위의 시는 민족분단의 비극을 다시 일깨워주며 분단은 누구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느냐, 한미관계의 실상은 무엇인가에 관해서 생각케 한다.

채광석의 「위대한 나라」는 미국이란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철저한가를 고발함으로써, 문병란 「미국개와 조선똥개의 대화」는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을 고발함으로써 미국이 부르짖는 ‘자유 평등’‘민주주의’의 허위성을 야유 조소하고 있다.

4. 결론


위에서 시선집 『아메리카똥바다』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창작된 반미시의 제반 양상을 살펴보았는바 다음과 같이 요약할수 있다.

첫째, 한국에서의 반미시는 해방 직후부터 부분적으로 창작되었으며 1970년대까지는 대체로 민족통일, 민족주체의 측면에서 미국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이는 해방 직후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소박한 인식, 6.25전쟁의 체험, 분단이 주는 제약, 냉전이데올로기의 영향, 독재정권의 암흑정치 등 제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둘째, 한국에서의 반미시는 1980년 이후 본격적으로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이러한 문학적 현상은 1980년 광주항쟁의 잔인한 압제, 한․미 통상무역 마찰, 학생운동권의 지속적인 투쟁 등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 날카롭게 고조된 반미, 자주화 투쟁의 시대적 상황과 직결됨을 볼 수 있다. 즉 1980년 이후 반미시의 본격적인 창작은 한국에서 1980년 이후 반미구호가 대중적으로 전면으로 드러난 시대적 상황과 맞먹으며 민족적 자각 정도와 정비례된다.

셋째, 1980년대의 반미시는 그 이전 시기에 창작된 반미시와 비해볼 때 미국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즉 미군을 ‘해방군’으로서가 아니라 ‘점령군’ ‘정복자’로, 조국을 분단시킨 ‘원흉’으로, ‘침략자’로,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있으며 미제를 몰아내야 만이 이 땅에서의 평화와 민주주의와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통일이 이루어 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넷째, 한국의 반미시에서 주된 창작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대체로 1970,80년대에 등단한 대학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다. 이는 한국에서의 반미투쟁이 주로 이 땅의 지성인 계층인 대학생들에 의해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과 맞먹는 것이며 그들의 투쟁이 분단현실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문학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다섯째, 1980년대 반미시는 대체로 미국의 제국주의로서의 실체, 한국에 대한 경제적 침략, 독재지원, 민주와 자주에 대한 압제 등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격렬한 어조로써 강한 적개심을 보여준다.

반미시는 한국인이 처한 분단된 사회현실에 대한 시인들의 구체적인 인식으로부터 이루어진 형상화의 작업이다. 이러한 반미시는 한미관계의 실상을 깨우쳐주고 민족적 자각을 추진하며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통하여 올바른 민족의 진로를 모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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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원: 인민넷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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