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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 순수・참여논쟁에 대한 고찰

김춘선(중앙민족대학 교수)

2011년 04월 19일 16:18【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차 례


1. 머리말
2. 19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시대적 배경
3. 19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전개 양상
4. 맺음말

1. 머리말


1960년대 한국의 문학을 논의함에 있어서 순수・참여논쟁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항목이다. 그것은 1960년대 문학비평을 문학사적으로 조명함에 있어서 순수・참여논쟁을 중심축으로 다루고 있는데서, 그리고 60년대 문학의 특징을 논의함에 있어 '순수와 참여'를 거론하고 있는데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비평분야에서 순수・참여논쟁은 많은 선학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검토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들에서 순수・참여논쟁은 그 전개과정이 여러 면에서 검토되었고 문학사적 의미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순수・참여논쟁에 대한 정확한 파악은 한국현대문학비평의 사적 맥락과 성격을 이해함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필수적인 고리이며 또한 1960년대 내지 그 이후의 한국 문학의 제반 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로부터 이 글은 위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19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전개양상 및 순수・참여논쟁이 갖고 있는 문학사적 의미와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2. 19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시대적 배경


한국문단에서 순수・참여논쟁은 1960년대에 들어와서 갑자기 돌출한 것이 아니다. 한국문학사에서 순수・참여의 문제가 대립항으로서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반의 일이다.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참여'가 20년대 초반, 카프의 출발부터 해체에 이르는 일련의 기간에 걸쳐 단속적으로 이해되었던데 비해 '순수'가 그 대립항으로서 의미와 체계를 갖춘 것은 이때부터다. 1920년대의 목적 의식적 문학을 비판하고 문학본연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는 순수문학의 주장이 나름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문단내적으로는 당대 문단을 지배했던 카프문학에 눌려왔던 많은 문학인들의 호감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 보다는 문학 자체가 말살될 지경에 놓인 식민지적 현실의 외면을 통한 역설적인 저항이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한국에서의 일반론인 듯 하다. 즉 일제 식민지 지배정책이 탄압 위주의 무단통치로 접어들던 당시 상황에서 문학활동의 유지를 위한 하나의 문학적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론의 국면이 이루어지면서 1930년대 말에는 기성 평론가 유진오와 신진작가 김동리로 대변되는 세대논쟁과 맞물려있는 순수문학논의가 있게 되며, 해방 직후에는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는 좌익의 김동석과 순수문학을 주장하는 우익의 김동리를 중심으로 하는 치열한 순수문학논쟁이 있게 된다. 그후 남과 북에 각각의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좌익문인들이 대거 월북하면서 남의 문단은 우익이 완전히 주도권을 행사하게 된다. 김동리는 유진오와의 30년대 논쟁에서부터 해방기에 이르기까지 순수문학에 대해 “순수문학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문학정신의 본령정계의 문학이다. 문학정신의 본령이란 물론 인간성 옹호에 있"다는 입장을 주장하였다. 김동리가 주장하는 인간성 옹호는 현실 속의 인간문제를 떠나 원초적, 자연적 인간성을 찾는 일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모든 현실상의 주의와 사상을 떠났을 때 가능하다는 논리로까지 이어진다. 이같은 김동리의 순수문학 주장은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면서 상당히 오랫동안 한국의 순수문학론 전개를 위한 이론적 근거로 자리잡게 된다.

이처럼 한국문단에서의 순수・참여논쟁은 1930년대부터 해방기까지 거듭된 논쟁으로서 전쟁과 분단을 맞으면서 참여론은 한국 문단에서 수그러들고 1950년대 한국문학에서는 순 수문학이 주류를 이룬다.

그렇다면 일단락된듯한 순수.참여논쟁이 어찌하여 1960년대에 또다시 대두하게 되었는가?그것은 다름아닌 60년대 한국의 문학적 상황과 사회적 현실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서 과거논쟁의 단순한 반복이 아닌 것이다.

한국의 1950년대는 '가장 암흑한 시대', '믿음성 없는 시대'로 특징지어 진다. 3년간의 참혹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국토는 초토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전쟁과 자유당 정권의 부패한 정치는 빈곤의 보편화와 사기, 절도, 폭력, 타락, 극단적 이기주의를 초래하였으며 절망과 고뇌, 불안과 불신 등이 사회적 분위기를 지배하게 된다. 전쟁 이후 민족의 이념적 분렬은 더욱 심화되고 안보의 논리가 민주와 자유, 시민의 권리를 강제로 유보, 박탈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50년대의 한국 문학은 남북분단과 이념의 대립에 연관되는 사회주의 사상 문제를 문학의 소재로 취급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이념으로부터의 도피시대를 맞이하게 되며 체념적인 피해의식과 자조적인 감상으로 충만된다. 전후 현실의 황폐성과 삶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보다는 암흑한 삶에 허덕이는 인간의 절규와 절망, 패배감과 허무의식을 많이 다루었다. 그 같은 암흑한 사회현실에도 불구하고 문학에서의 비판의식은 미약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문학의 힘이 요청되었고 정신적 위축상태에 빠진 한국 문학은 암흑한 상황하에서 전쟁의 상처를 정신적으로 극복하고 문학이 그 자체로서 갖춰야 할 규범을 재정립해야 할 문학적 과제가 제기되는 바 순수・참여논쟁의 대두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로부터 1950년대 말 이어령, 김우종 등에 의해 50년대 순수문학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하고 사회비판 내지 현실인식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한편 1960년 벽두에 있은 4.19학생의거는 비록 좌절되었으나 그것은 민주와 자유에 대한 열망과 그 가능성을 과시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전후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가져다 주고 민족현실에 대한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4.19는 문학의 사회적 참여를 주장하는 참여론의 본격적인 등장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1960년대에는 전후 세대를 극복하려는 새 세대의 성장이 있었고 여기에 50년대부터 서구 이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한국 문학계에 참여론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사르트르의 앙가주망 이론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사회, 문화적 배경 하에서 등장하여 60년대 내내 진행된 순수・참여논쟁의 양상은 그 내용과 성격, 논쟁의 질서에 따라 크게 세 개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구분법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63-65년의 참여론의 순수비판과 대응, 67-71년의 <작가와 사회>논쟁, 67-68년의 '불온시'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3. 19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전개 양상


1) 참여론의 순수 비판과 대응

1960년대의 본격적인 순수・참여론의 대립은 김우종이 순수문학의 파산을 선고하고 참여문학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시작된다. 김우종은 <파산의 순수문학>에서 오늘의 한국 문학은 1930년대에 절연된 대중과의 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며 "굶주림, 6.25의 슬픔, 온갖 고통으로 오열하는 민중-오늘의 문학은 이런 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순수의 성벽을 헐고,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 민중과 호흡을 함께하는 문학이 참문학"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김우종은 50년대에 발표된 일련의 소설들을 예들어 비판하며 의지의 인간형 창조를 주장한다. 이를 이어 김병걸이 <순수와의 결별>을 발표하여 서구의 참여철학자들 논리를 원용하여 현실참여론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김우종의 논리를 뒷받침했다.

'순수'라는 애매한 이름 아래 고수되어온 그러한 문학-우리는 이젠 이 30년 전통의 문학방법론 에 대하여 아낌없이 수정을 가하고 결별을 고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론 위에서 우리의 문학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김우종의 평문이 거론된 작품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했느냐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의 참여논리가 대체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극도로 빈궁한 당시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고, 당시의 문학상황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밝혀냈다는 점, 극복을 위한 방법적 대안으로 의지의 인간형 창조를 제시했다는 점, 당시 문학의 문제점을 비평사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30년대부터 내려온 순수문학의 인습을 거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참여론자들의 순수비판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서정주였다. 그는 <사회참여와 순수개념>에서 순수와 참여의 두 영역을 대립적으로 보고 순수문학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순수란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문학을 생경한 사상으로서 하는 일을 작파하고 문학적 표현의 산육체를 통해서 해야 한다는 자각이 생겼던 때에 여러 특징 있는 정신들의 노력을 총칭한 대명사였다. 나는 모든 사회참여는 사관의 보편타당성 없이는 많이 해만 받기 일쑤인 것이라 생각하고 특히 타율이 많이 끼는 정치적 후진성을 가진 민족의 굴곡이 센 과도기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잘 선택된 사관을 먼저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문인다운 문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행동을 지금 되도록 소량으로 하니까 망정이지만, 지금 사회 참여라는 그것을 종종걸음으로 바삐 서둘러 해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안심치 않다.

서정주의 글은 새롭게 제기된 참여문학론을 보는 전세대의 불안한 심리와 의심스런 눈길이 잘 드러나 있으며 그의 순수문학관이 '배제'의 원리에 토대를 둔 것임을 잘 보여준다. 서정주는 이 글에서 참여문학의 실체를 20,30년대에 등장한 경향파문학의 연장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정주에게 있어서 사회참여문학이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는 문학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회참여'는 거론해서는 안 될 금기의 대상이다. 그리하여 서정주는 경향파 문학과 비평을 '쓰레기 소각품'으로 일축하고 순수문학을 옹호한다.

서정주의 글에 반박하고 나선 비평가는 홍사중이었다. 그의 <작가와 현실>이라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올바른 현실에의 관심이란 결국은 현실을 변혁시키겠다는 굳은 의지에 다름없는 것이며 이와 같은 변혁에의 의지가 결핍되어 있는 한은 현실에 대한 투철한 관심, 또는 현실감각 이라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작가의 불가결한 자질의 하나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글에서 홍사중은 문학에서 현실에 대한 관심을 대단히 중요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작가가 취해야 할 자세로 현실변혁의지를 강조한다. 그는 또 1930년대의 순수문학은 "비단 맑시즘에의 저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제의 탄압적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현상이며 또한 일체의 정치를 거부하고 오직 자아의 내면에만 파들어가, 여기서 유일한 생활의 기틀을 찾으려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함으로써 30년대의 순수문학의 실상이 문학적인 요소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포착하고 서정주의 순수문학주의는 문학자의 자질을 상실하고 있는 행위라 반격을 가한다.

김우종은 한달 후 《현대문학》 11월호에 발표한 <유적지의 인간과 그 문학>이라는 평문을 통해 한국인이 처한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고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한다. 그는 문학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한국문학의 과제는 이러한 빈궁속의 인간을 어떻게 해방시키고 인간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해받고 패배한 절망적인 이야기만 쓰는 소설들은 현실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파악하고 질타를 가한다. 그러면서 적극적인 해결책의 필요를 강조하고 그 해결책으로 30년 전통의 순수문학을 청산하고 새로운 방법론 위에서 새로운 문학을 수립할 것을 주장한다.

참여문학론 일반에 대해 본격적 반론을 제기한 비평가는 이형기였다. 그는 <문학의 기능에 대한 반성-순수 옹호의 노트>에서 문학의 기능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는 먼저 순수문학은 '반정치주의 문학'일 수는 있어도 '비현실'의 문학은 아니라고 대답하며 "어떤 정치적 목적의 수행을 위해 문학을 그 도구시하는 것"이 정치주의라면 순수문학은 그런 정치주의 문학을 거부하는 '인간성 옹호문학'이라고 순수문학을 옹호해 나선다. 그리고 문학의 기능에 대하여 문학이란 “인생도로의 허망함을 달래주는 여러 가지 장남감”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이 글에서 이형기는 문학의 목적성과 현실적 효용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으며 김우종이 주장한 문학의 현실적 효용성 문제를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으로 끌고가 김우종을 공격한다. 순수문학을 ‘인간성 옹호’의 문학이라고 하면서 문학은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이형기의 주장은 모순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형기의 이 같은 주장에 김우종은 격렬한 반격을 가한다. 그는 이형기의 ‘불쏘시개감밖에 안되는 문학’ 논리는 말장난 수준으로 문학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참여주의 문학이 ‘당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 있다는 점을 밝히고 문학의 고유성이란 절망적인 현실의 단순한 제시가 아니라 그 극복의 단계에까지 나아가는데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번 재확인한다. 김우종의 참여문학 주장은 50년대 말부터 그가 단편적으로 표명해온 사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김우종은 사상성을 결여한 순수문학의 전통이 한국 문학의 빈궁을 초래한 근본 요인으로 일찍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 논쟁에는 위의 비평가들 외에도 장일우, 최일수, 신동한, 장백일, 임중빈, 천이두,김진만, 조동일 등이 참여론의 입장에서, 조연현, 김상일, 원형갑 등이 순수론의 입장에서 논쟁에 참여하였다.

이상 63~65년의 김우종 대 이형기, 서정주 대 홍사중으로 대표되는 순수・참여논쟁의 대체적인 양상은 참여론자들의 순수문학 비판과 그에 대한 순수론자들의 반격으로 나타난다. 참여한 평론가나 발표한 평문들에 나타나듯이 순수론에 비해 참여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순수・참여논쟁은 문학의 본질적 국면이 순수문학에 있느냐, 참여문학에 있느냐를 둘러싸고 생겨난 쟁점이라는 점에서 문학의 본질론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 논쟁은 문학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기 보다는 문제 제기의 차원에 그치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참여론자들이 문학의 사회참여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도 보다 구체적인 창작방법의 논의에로 나아가지 못하고 추상적인 설명에 그치고 만 것, 순수론자들이 참여론을 비판하면서 식민지 시대의 프로문학과 해방 직후 좌익문학에 연결시키는 논의 등이 이 점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시기 순수・참여논쟁은 그 의미를 충분히 인정받을 만 하다고 생각된다. 문학의 사회적 참여를 주장하는 참여론의 대두는 시대정신이라는 당대의 요구에 의한 것으로서 위에서 제기된 한계는 비평가들 자신의 한계인 동시에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다. 분단이라는 엄연한 전후의 한국 현실에서 문학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한 문제의 접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문단에서의 참여론의 대두는 그 가치를 높이 사줄만 하다고 생각된다. 다음, 김우종과 김병걸의 참여문학 주장은 전후 한국 문학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깨뜨리고 이념적 논의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이후의 심화된 논쟁을 위한 토대를 닦아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에 의해 참여론의 논리적 정당성도 어느 정도 확보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형기의 변모에서 그리고 1960년대 후반의 논쟁에서 문학의 참여적 성격을 부인하는 논자가 없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작가와 사회>논쟁

순수・참여논쟁은 1965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일단락을 맺은 것처럼 보이다가 1967년 10월 12일, 김붕구가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 주최 원탁토론>에서 <작가와 사회>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더욱 심화된 논쟁으로 발전한다. 이 발표문에서 김붕구는 작가의 자아를 ‘사회적 자아’와 ‘창조적 자아’로 구분하고 있으며 이 두 자아의 갈등에 의해 사회참여의 유형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것은 작가에게는 한 생활인, 시민으로서의 나(사회적 자아)와 창작 활동을 하는 나(창조적 자아)의 양면이 있음을 이미 상식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략) 사회적 자아는 한 생활인으로서 다른 시민과 공유하는 영역에 속하며 창조적 자아야말로 일개 생활인을 작가로 만들어주는 본질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듯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유행사조를 좆아 사회적 자아를 앞세우고 (주로 <사회참여>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아무리 그럴사한 이론을 주장하거나 (작가측) 또는 제시. 강요(평가측)한다 하드라도 그것으로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요, 또(일시적 인기는 몰라도) 항구적인 힘(가치)을 지닌 작품이 빚어질 리도 만무하다.

김붕구는 작가를 포함한 모든 시민은 공동체의 사업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만 작가의 ‘창조적 자아’에 관한 한 어떠한 가치 판단을 강요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론화된 앙가쥬망은 필연적으로 프로레타리아 혁명의 이데올로기로 귀착되며‘창조적 자아’를 구속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사르트르의 문학론은 사회적 자아에 앞세운 것으로, 지드와 카뮈의 문학론은 창조적 자아를 강조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전자를 부정하고 후자를 긍정하는 입장을 표명한다. 김붕구의 이러한 창조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구분은 사실 한 작가에게 통일적 형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두 자아를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구분해 설정함으로써 창조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관계를 무관한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따라 그가 비판하고 있는 사회적 자아의 현실참여란 사실상 작가가 아닌 한 개인의 현실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 되고 만다.

김붕구가 제시한 ‘창조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구분법은 문학에 관한 인식태도와 비평적 속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비평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김붕구의 주장에 가장 먼저 이의를 제기한 것은 임중빈이였다. 그는 참여는 창조행위의 방편임을 전제로 하면서 “역사의 암담한 벽과의 필연적인 씨름이며 생존을 위한 구체적인 언어활동”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어 그는 창조적 작가라 하더라도 사회와의 유기적인 관계는 피할 수 없으므로 집단사회와의 관련을 통하여 인간 실체를 실증하고자 하는 것이며 예술성을 상실하지 않는 전제하에서 집단의식의 자아를 결합하는 작용을 한다. 뿐만 아니라 참여문학론이 리얼리즘으로 심화, 확대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 방법과 함께 미학적방법의 동시적 검토가 요청된다고 보고 있다.

김붕구의 논의에 적극 동조하는 입장을 표명한 사람은 선우휘이다. 그는 문학이 고상해서가 아니라 다른 무엇에 사용될 값어치가 없다는 생각에서 결국 문학이란 좋은 의미의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라 주장하며 사회참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인데 우리 현실과 관련해서는 항상 북과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르트르를 추종하면 결국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론에 귀착될 수밖에 없다는 김붕구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문학의 공리성과 효용성에 대해 명백히 거부하는 선우휘의 논의는 문학의 현실참여 방법에 대한 논의를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으로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던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사르트르적인 참여 논의는 결국 좌경화하여 공산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는 김붕구의 의견과 이에 대한 선우휘의 동조는 다수의 작가와 비평가들의 비판을 받게 된다. 이호철은 <작가의 현장과 세속의 현장>에서 작가가 처해있는 구체적 조건 속에서 구체적으로 양성된 작가 의식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구체적 조건을 떠난 일반론으로서의 앙가주망 이론의 성립이란 경화된 교조이자 고식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철범은 <한국적 상황과 자유>에서 사르트르의 앙가주망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한국에서의 참여문제는 일반적인 전 인간이 아닌 구체적 인간, 한국인에 관한 것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한편 김현은 기존의 참여문학논의가 작품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추상성을 띠고 있음을 지적한 뒤, 첫째 작가의 형성문제, 둘째 창조적 자아와 시민적 자아의 구분을 가능케 하는 시민 사회의 적용 문제, 셋째 문학적 언어의 성격 문제 등에 대한 해결이 없이는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지금의 우리에게는 참여라는 공허한 개념보다 현 시대의 혼란상을 밝히는 고고학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붕구의 <작가와 사회>를 둘러싼 논쟁은 참여문학론의 당위성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는 가운데 참여의 방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으로 일단락되는 듯 하다가 1969년에 김붕구가 <작가와 사회 재론>을 발표하여 자신의 입장이 처음의 논의에서 일보도 후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다시 공방이 시작되어 1971년까지 이어진다.

김붕구의 사회적 자아와 창조적 자아를 둘러싸고 벌어진 <작가와 사회>논쟁은 순수.참여논쟁에서 가장 많은 비평가가 참가한 본격적인 논쟁이다. 이와 같은 논쟁의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 논쟁에 참가한 논자들 모두가 참여문학 그 자체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논쟁은 주로 문학의 현실 참여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적 측면에 대한 논의였고 그런 점에서 이 논쟁은 참여문학의 당위성 자체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는 60년대 초반의 순수・참여론의 단계에서 한걸음 진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여의 구체적 의미와 방법을 둘러싸고 한국적 특수성을 의식한 점, 사회적 실천의 문제와 작가의 창조적 자아를 어떻게 통일시켜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의 형성도 60년대 초반의 순수・참여론의 도식적 인식에서 한걸음 발전한 것을 의미한다.

3)‘불온시’논쟁

<작가와 사회>논쟁이 이루어진 비슷한 시기에 김수영과 이어령 사이에 ‘불온시’논쟁(1967.12.28~1968.3.26)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논쟁은 1967년 12월 28일 《조선일보》에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라는 이어령의 글이 실리고 1968년 1월호 《사상계》지에 김수영이 <지식인의 사회참여>라는 반론이 시작되면서 불붙은 논쟁이다. 이어령은 위의 글에서 문화계의 창조력이 극도로 위축된 이유로 정치적 권력 집단의 문화 다스리기, 상업주의 경향 등과 함께 무엇보다 심각한 것으로 이러한 상황에 백기를 드는 문화인 스스로의 타락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김수영은 위의 글에서 “오늘날의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의 소심증과 무능에서보다도 유상무상의 정치권력의 탄압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괴수 앞에서는 개개인의 문화인은커녕 매스미디어의 거대한 집단들도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정”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와 같은 논지를 펼치는 중에 ‘불온시’문제가 나온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최근에 써놓기만 하고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을 생각하고 고무를 받고 있다. 또한 신문사의 신춘문예 응모 작품에 끼어 있던 ‘불온한’ 내용의 시도 생각난다. 나의 상식으로는 내 작품이나 ‘불온한’ 응모 작품이 아무 거리낌없이 발표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현대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영광된 사회가 반드시 머지 않아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위의 글로 볼 때 김수영이 말하는‘불온시’는 당시 한국의 정치적 상황, 시국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의 이 글에는 문인들이 마음대로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깃들어 있다. 여기에 대해 이어령은 <서랍속에 든 ‘불온시’를 분석한다>에서 “만약에 불온한 시를 써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는 것이 시인의 사회참여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고 꼬집으면서 “참여론자는 ‘영광된 사회’가 와서 서랍속에 보류된 자신의 불온한 시를 해방시켜줄 것을 원하고 있는 예술이 아니라, 거꾸로 그 ‘불온한 시’가 ‘영광된 사회’를 이루도록 행사시키는 데서 그의의를 발견하는 일종의 전사인 셈이다.”라고 참여파 시인들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김수영에게 그대는 과연 진정한 의미의 참여파 시인인가고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어령은 계속해서 불온시가 과연 좋은 시인가 하는 질문을 하면서 정치적 입장보다 문화적 입장에서 그런 불온시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을 펼치며 사회적 가난과 정치적 폭력을 고발하면 좋은 시이고 심미적이고 전원적이면 언어 희롱, 현실 도피라는 논리의 횡포가 관의 검열관보다 훨씬 더 시 자체를 본질적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결코 불온성은 작품의 가치 평가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어령은 50년대 후반, 60년대 초반의 이전 세대를 부정하고 저항과 반항, 부정과 도전의 목소리를 외치던 때와는 사뭇 다르게 문학의 현실참여성을 비문학적 태도로 일축한다. 이 논쟁은 그후 몇 번의 공방을 거듭한 후 김수영이 불온의 정의를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고,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불온성이 정치적 의미로 좁혀 규정되는 한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논쟁은 마감된다.

결국 이 논쟁은 불온성을 문화의 본질로 해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치 사회적인 의미에서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마감된다. 이 논쟁은 구체적인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특히 김수영의 시작품과 시 비평에 대한 태도를 문제삼음으로써 문학의 본질에 대한 논의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시의 ‘불온성’의 의미를 해석하는 입장의 확인에서 그치고 만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반공법이 막대한 위력을 발휘하던 60년대의 어두운 시대 상황과 관련된다고 추측된다. 그것은 김수영은 처음에는 분명히 정치적 의미의 불온시었으나 후에는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한 것”이라 확대 해석하는데서, 그리고 기타 논쟁에는 많은 비평가들이 참가한데 반해 ‘불온시’논쟁에서만은 많은 비평가들이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맺음말


이상 19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전개양상과 그 배경을 살펴보았다. 이로부터 1960년대 한국 순수・참여논쟁의 대두는 과거 논쟁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당대 문학적 상황과 사회적 현실의 요청에 의한 필연적인 것이었다.

1960년대 한국 순수・참여논쟁의 의의와 한계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 전후 한국 문학에서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극복하고 작가들로 하여금 민족의 현실에 관심을 돌리게 한 것이라 할 것이다. 단독정부 수립 이후 순수문학 위주였던 한국 문학은 60년대에 들어 민족의 분단현실과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 비판하는 참여문학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데 이는 4.19를 통한 작가들의 역사의식의 각성과 관련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수・참여논쟁을 통한 새로운 방향 제시가 문학창작에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1960년대의 이 논쟁의 의의는 한국 문학에서 이후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론의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즉 1970년대에 들어서 민족문학과 관련되어 리얼리즘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해석과 방법론이 활발히 전개될 수 있은 것은 60년대 내내 펼쳐졌던 순수・참여논쟁의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1960년대 순수・참여논쟁이 구체적인 작품창작방법과 결부되여 논의되지 못한 것은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은 1960년대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직결되는 한계라고 생각된다.

넷째로, 문학을 순수・참여로 나누어버리는 이분법적 사고를 일반화시킴으로써 문학의 본질과 그 포괄성을 단순화시켜 버린 점 또한 한계라고 지적될 수 있다.

이처럼 1960년대 한국 순수・참여논쟁은 1960년대 한국 문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이후 한국 문학의 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의의 있는 논쟁이다.

래원: 인민넷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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