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략력】
1963년 길림성 화룡시 출생.
1986년 중앙민족대학 졸업.
1986년 7월-1988년 3월 북경시에서 공무원으로 근무.
1988년 4월이후 연변에서 《연변녀성》잡지사 편집, 《연변일보》 기자로 근무하다가 2008년 8월부터 현재까지 연변인민출판사 《문화시대》편집부 부주필로 근무하고있음.
연변작가협회 리사.
《도라지》문학상 등 문학상 수상.
감동하며 감동을 만들며 알락달락 이쁜 옷 입고 각가지 명품신을 신고 학교로 가는 소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하면서도 덕지덕지 기운 옷 입고 앞코숭이 쑥 빠진 고무신을 신고 학교 가던 내 어린 시절을 기감하게 느껴본적은 없었다. 슈퍼에서 넘치는 여러가지 맛나는 과자, 음료들을 딸애한테 사주면서 강낭떡도 배불리 먹지 못한 내 어린시절을 결코 슬프게 생각한적도 없었다.
나는 촌뜨기 시골오기로 산다 지난세기 80년대 초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아직 포장도로도 제대로 되지 않은, 신호등 없고 흰줄 친 인행도가 따로 없는 화룡현성 시내가 생활환경의 전부였던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 북경이라는 거대한 도시속에 내팽개쳐졌다. 할빈이나 심양 같은 대도시나 연길에서 온 애들에 비하면 나는 한심한 촌뜨기였다. 좁은 세상에서 왔다는 렬등감으로 자신이 외롭고 초라함을 어쩔수 없었다.
꽃의 사랑법 언제부터인가 슬픈 일이 있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그리고 해빛이 유난히 좋은 날, 화훼시장을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울적한 날은 앞당겨 퇴근해서는 곧장 화훼시장으로 향한다. 이상하게 화훼시장으로 가면 모두다 웃는 얼굴이다. 하기야 활짝 핀 꽃을 보고 어느 누가 빙그레 미소를 안 지을수 있겠는가. 나비같은 마음으로 소년같이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짓고 이꽃 저꽃 기웃거리고 이 식물 저 식물 슬쩍슬쩍 건드리다가 맘에 드는 꽃이 있으면 한두개 사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굴뚝부터 쳐다본다 아침부터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점심에 입쌀떡만두를 할테니 먹으러 오라고 하였다. 여든을 바라보는 엄마지만 지금도 색다른 음식을 할때면 우리 자식들을 불러들인다. 나는 인차 간다고 대답하고는 어쩌구려 미적거리다보니 11시가 다 되여서야 엄마집에 들어섰다. 문을 두드리기 바쁘게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며 내 핸드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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