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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촌뜨기 시골오기로 산다
강정숙
2011년 02월 14일 15:19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지난세기 80년대 초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아직 포장도로도 제대로 되지 않은, 신호등 없고 흰줄 친 인행도가 따로 없는 화룡현성 시내가 생활환경의 전부였던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 북경이라는 거대한 도시속에 내팽개쳐졌다. 할빈이나 심양 같은 대도시나 연길에서 온 애들에 비하면 나는 한심한 촌뜨기였다. 좁은 세상에서 왔다는 렬등감으로 자신이 외롭고 초라함을 어쩔수 없었다. 특히 숙사에서 어쩌다 대도시에서 왔다는 애들이 무심코 “우물안의 개구리”니, “앉아있는 똑똑이보다 나다니는 머저리 낫다”느니 하는 말만 해도 나는 괜스레 나를 깐죽거리는 말로 들리고 나자신이 “앉아있는” “머저리”로 들려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외롭고 주눅이 든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은 학교도서관에서 나는 정신없이 세계명작들을 읽으며 감동하고 슬퍼하고 그 감동의 세계에서 신데렐라 같은 화려한 변신을 꿈꾸기도 하였다.

《제인에어》의 로체스텔을 사랑하고 나자신을 작품속의 주인공 제인에어로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내 남자친구의 모델을 로체스텔로 정해놓기도 하였다. 《제인에어》를 어찌나 좋아했던지 제인에어와 로체스텔의 매 만남대목을 일일히 기억할 정도였고 로체스텔의 슬픔, 분노, 지어 그의 괴벽함까지도 사랑했으며 로체스텔의 비극적운명을 제인에어 못지 않게 가슴 아파하였다. 아마 나의 실생활에 정말로 로체스텔이 나타났다면 나는 영낙없이 제인에어보다 더 그를 깊이깊이 사랑하였을것이다. 《붉은것과 검은것》의 망나니 쥘리앙이 미워졌다 좋아졌다 하기도 하고 《삼총사》의 포도스를 미욱하나 의협심 강해 좋아하면서도 참 웃기는 인간이라고 정숙한 도서관에서 낄낄대 주위 학생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의 매력에 질투를 느끼고 《안나 까레니나》에서의 안나의 비장한 사랑을 슬퍼하였다. 전쟁이 끝난후 스칼렛이 처음 아틀란타로 떠날 때 변변한 옷 한벌 없어 어머니의 유일한 소지품으로 남은 비취색 비로도카텐을 뜯어 드레스를 해입고 층층계를 내려오는 영화의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여서 졸업후 그와 똑같은 색갈의 비로도원피스를 사입기도 하였다. 차원 높은 폼을 내느라고 그 뜻을 제대로 깨치지도 못하는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이며 칸트, 베콘, 사르트르의 철학책들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깜냥껏 오기를 부려보기도 하였다.

때로 시골뜨기의 촌스러움에 자존심이 상한적도 없지 않았다.

아늑한 교정을 나와 처음 공공버스를 타고 세계에서도 제일 복잡한 곳의 하나인 북경동물원근처에 갔을 때였다. 공공뻐스에서 내리는 즉시 한달음으로 큰길을 건너오다 그만 오가는 차들에 꼼짝없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큰길 복판에 불안한 마음으로 서있는데 교통경찰아저씨가 다가와 척 경례를 붙이지 않는가. 어망결에 나도 굽석 답례를 하는데 경찰아저씨가 혀꼬부라진 북경말로 뭐라고 하는것이였다. 워낙 나의 한어말수준이 시원찮고 게다가 혀꼬부라진 북경말인지라 알아듣지를 못해 한편 무안하기도 하고 한편 오기가 받쳐오르기도 하여 아예 조선말로 “뭐야? 경례는 왜 하는데?”했더니 여기로는 길을 건느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내 발로 내 갈 길을 갔는데 무슨 상관이냐? 여기가 무슨 너의 집 마당이라도 돼느냐고 억지를 부렸더니 길을 건늘 때는 반드시 저기 흰줄을 친 인행도로 건너야 하고 신호등이 켜졌을 때 건너야 한다는것이다.

대학 오기전까지만 해도 올빼미눈같이 반짝이는 교통신호등이 달리고 흰줄이 쳐진 줄말같은 인행도로를 걸어본적 없는 나로선 교통상식 같은걸 모르는바는 아니였지만 제멋대로 길 다니던 몸에 밴 습관이 저도 모르게 불쑥 튀여나왔던것이다. 나의 이런 무지몽매를 떼쳐버리고 교통상식을 몸에 습관시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떠올리면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그때는 교통경찰아저씨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통하지도 않는 조선말로 꼬바꼬박 대꾸를 했다. 자격지심인지, 억지인지 아니면 시골아이의 오기에서인지 나는 끝내 내멋대로 길을 건느고 말았던것이다. 물론 뺑소니치다싶이로.

북경에서의 대학생활 4년을 마쳤음에도 나의 촌스러움은 영 가셔지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북경시의 정법기관에서 일하게 된 나는 때때로 사업관계로 공중장소를 드나들며 정부관원들의 통역을 서게 되였는데 한번은 어느 5성급 호텔로 들어갈 때였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식 출입문으로 앞사람이 들어가자 나도 뒤따라 냉큼 들어섰다. 한사람밖에 수용 못하는 비좁은 회전식문안에 둘씩이나 들어섰으니 상상만 해도 어찌 됐을지는 알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다. 나는 대뜸 앞사람의 뒤잔등에 엎어지다싶이 코방아를 찧었고 앞사람은 또 떠밀리다싶이 그 회전문에서 풀려나는격이 되고말았다. 그때의 그 안스럽고 초라하기까지한 내 모습…

하지만 나는 사업이나 단위활동에서만큼은 결코 대도시 애들한테 뒤지지 않았다. 출근한지 얼마 안되여 단위에서는 신직원강습반연수를 석달간 조직하였는데 40여명 학원들 모두가 대학졸업생들이였다. 석달간의 학습을 끝마친 총결대회에서 나는 행운스럽게도 학원대표발언을 하게 되였다. 나는 나만으로서의 짙은 시골정서와 정열에 넘치는 필치로 서면발언을 하였는데 중간중간에 열렬한 박수갈채를 자아냈다. 나는 내가 단위령도와 전체 학원들앞에서 대표발언을 했다는 그 자체보다는 북경이나 다른 대도시, 드리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온 40여명의 애들을 한낱 시골에서 굴러온 촌뜨기인 내가 제쳐버렸다는 오기로 나자신에게 대견스러웠고 스스로 어깨가 으쓱해났다. 마치 못생긴 새끼오리가 하루밤 사이에 우아한 백조로 변신한듯한 심정이라고 할가. 그래서 나는 북경에서 사업하는 기간 그애들앞에서 우쭐해질수 있었다.

아무리 대도시에서 도시사람들과 몇년간 뒤섞이고 어울렸어도 나의 촌스러움은 아마도 타고난것인듯 핟. 나는 끝내는 북경이라는 이 대도시에 용해되지 못하고 6년만에 다시 시골로 되돌아오는 “락엽귀근”이 되고 말았다. 시골에는 그리운것들이 너무나 많았던것이다. 나는 대도시에서 시골아이로서의 초라함과 렬등감은 다 이겨냈음에도 결국 그리움에는 약했던가보다. 아마도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웠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엄마는 약골인 나를 발이 따뜻하라고 흰 광목천으로 솜버선을 만들어 신겼다. 친구집에 놀러가면 나는 양말을 신은 다른 애들앞에서 부끄럽고 촌스러워 신 벗기를 저어했다. 애들은 내 버선이 우습고 신기해서 이리저리 만져보고 내 발에서 벗겨 자기들 발에 신어보기도 하였다. 촌스러움으로써 오히려 친구들의 관심을 샀던 나는 그래서 그후부터 따뜻하고 편안한 버선을 더 자주 신었던것 같고 알락달락하고 깔끔한 양말에 비해 투박하지만 포근한 버선이 그때처럼 좋아져본적 없었던것 같다.

수출처럼 일어선 빌딩, 개미처럼 부지런히 오가는 차량들, 긜고 사람의 바다, 꽉 짜여진 생활시간표… 등등 이런 시끌벅적한 환경과 다채롭고 번화한 대도시행활보다는 투박하고 포근한 흰 버선같은 담담하고 자유롭고 푸근하고 소박한 작은 도시속의 시골생활이 내 적성에 더 잘어울리는듯하다.

지금도 나는 시골내기 아낙네, 그 흔하고 정교한 비닐바가지를 제쳐두고 쌀독의 쌀바가지만큼은 박바가지를 사용하고있다. 금이 가서 바느실로 꿰맨, 그제날 우리 외할머니가 쓰시던 고물딱지같은 박바가지, 아침마다 밥 지을때면 손에 와닿는 자연의 그 부드러움이 좋아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쌀을 퍼낸다. 요즘 신세대들이 그 누가 박바가지를 쌀가가지로 사용하랴마는 나는 이젠 몇년이고 이 박바가지를 고집해왔다. 고집이라도 좋다. 아집이라도 좋다. 촌스러움의 오기만큼은 버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시골오기로 산다.

《도라지》2001년 4기

  래원: 인민넷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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