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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미니소설】만남

안정혜

2022년 04월 18일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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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를 만난 건 남자친구와 헤여지고 난 한달 후였다.

그때의 나는 한창 리별의 후유증에서 허덕일 때였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걸었다. 무작정 걷다 지치면 벤치에 앉아 조금 쉬다가, 그러다 다시 생각이 나면 또 일어나서 걸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그냥 내 삶의 수많은 사람중 한 사람이 빠져나간 것 뿐인데, 삶의 전체가 동강 난 것처럼 허무하고 또 허무했다.

금방 헤여졌을 때는 매일을 눈물 바다 속에서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울고 밥을 먹다 울고 일을 하다 갑자기 울컥할 때도 있어서 화장실로 달려가 입을 막고 몰래 운 적도 있었다. 그러다 퇴근하고 텅 빈 집에 들어올 때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울다가 잠이 들고… 이러다 내 몸속 수분이 다 눈물로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해보았지만 눈물은 끝도 없이 나왔다.

이런 날들이 얼마나 반복되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걷기를 시작했다.

그날도 나는 걷고 있었다. 공원 둘레길을 따라 걷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가 내 뒤에서 걷고 있었다. 한바퀴, 두바퀴, 세바퀴… 힘이 들어 벤치에 앉는데 그도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이였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는데 나를 바라보며 웃는 그의 눈빛이 너무 맑았다. 그는 한여름의 해빛이 반짝거리는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를 가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자꾸 그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생각났다.

이것이 그와 나의 첫만남이였다.

그 뒤로 공원에 가면 종종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나와 그의 산책코스는 비슷했다. 공원을 빙빙 돌다가 세바퀴, 네바퀴쯤이면 힘들어서 조금 쉬여가야 했다. 그때면 그는 늘 나와 같은 벤치에 앉거나 맞은편에 있는 벤치에 앉군 했다. 나는 그의 맑은 눈동자에 이끌렸고 그도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함께 걸었고 함께 휴식을 했다. 나는 그를 “수호야~”라고 불렀다. 늘 내 곁을 지켜주는 그가 마치 내 수호천사 같았다. 그를 “수호야.”라고 부를 때마다 그는 호수물이 일렁일 것만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그와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졌고 그는 나의 푸념들을 구구절절 모두 받아주었다.

그를 만난 뒤로 흑백이였던 내 세상은 점차 색을 찾아갔다.

그날, 산책을 하는데 내 눈앞에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였다.

전 남자친구였다.

하지만 그 자식이 왜?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꽤나 멋진 양복차림을 하고 오른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미구에 멀리에서 “오빠~” 하는 챙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어떤 녀자가 그 자식의 품속으로 쏘옥 안겨들어가는 것이였다.

내가 자주 하던 행동인데.

그러더니 그 녀자는 마치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꺄아~ 오빠! 꽃다발 사준 거야? 우리 백일이라고~!?”

“백일? 백일이라고…? 우리가 헤여진 지 한달이 조금 지났는데 벌써 백일이라고…?”

그 자식은 내게 리별선고를 할 때 미처 헤여지는 리유조차 물어볼 새 없이 급하게 떠나버렸다. 이제야 그 자식이 왜 그렇게 급하게 떠났는지 알 수 있었다.

눈물이 났다. 내 모든 눈물은 금방 헤여졌을 때 이미 다 흘린 걸로 알고 있는데… 또 눈물이 흘렀다.

그때 내 눈치를 살피던 그가 갑자기 그 자식한테로 씩씩거리며 가는 것이였다. 그러더니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그들은 뒤걸음질 치다가 황급히 떠나는 것이였다. 그들이 급하게 떠난 자리에는 꽃다발에서 떨어진 빨간 장미 꽃잎 몇장이 떨어져있었다.

그러고 그는 내게로 달려와 품에 안겼다. 나는 그를 꼬옥 그러안았다. 그는 너무나도 따뜻했다. 그 온기가 차거운 밤공기에 식은 내 몸을 따뜻하게 감쌌고 차겁게 식은 내 마음까지 덥혀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나를 공원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그와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를 만난 후 나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는데 오늘부로 나는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와 함께 하기로 했다.

“수호야, 우리 집에 갈래?”



그리고 나는 전화를 걸었다.

“네, 공원에서 만난 강아지인데요. 입양 하려고요.”

래원: 연변일보(편집: 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