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36세의 김충걸은 대담히 국유기업인 길림성 백산시 팔도강구 하구삼륭포장공장 부공장장의 철밥통을 버리고 자기의 민족장점을 발휘하여 집에 돌아와 안해 원해숙과 함께 시험적으로 민족특색이 짙은 조선족김치를 담그어 팔기 시작하였다. 몇년간의 간고한 창업으로 일정한 실천경험이 있게 되자 1998년, 김충걸은 500만원의 가동자금으로 백산시교구에 자기의 실체인 반석반찬가공공장을 앉혔다.
하지만 당시 생산기술과 자금이 부족하고 인원이 적은데다 설비가 락후하다보니 곤난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민족특색제품을 생산하는것이 자기가 성공할수 있는 가장 좋은 비결이라는것을 깊이 깨달은 김충걸은 선후로 여러 차례나 연길, 장춘, 심양 등지에 가 시장동태를 잘 파악하고 일부 이름있는 조선족기업인들의 선진경험과 선진적인 생산공예, 기술을 허심히 따라 학습하였다. 그리고 전통적인 조선족김치 가공공예와 민족특색의 제품으로 시장을 겨냥하고 질과 신용을 지키는 경영모식으로 기업을 운영해나갔다.
제품생산과정에 그의 공장에서는 불합격원료가 공장에 들어오는것을 견결히 막고 또 불합격제품이 절대로 시장에 나가 판매되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기업관리리념으로 그가 경영하는 반석반찬가공공장은 점차 규범화의 궤도에 들어섰고 발전장대해지기 시작하였다.
2000년, 기업을 크게 잘 해보려고 김충걸은 다시 10여만원의 자금을 들여 비교적 선진적인 생산가공설비를 도입하고 20만원의 원료를 구입하여 기업의 생산규모를 부단히 확대하였다. 그런데 반찬생산은 계절의 제한을 받아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백산시민족사무위원회에서는 2002년, 1만여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그의 공장에 랭장신선도유지창고(冷藏保鲜库)를 지어주어 1년 사시절 신선한 조선족반찬을 생산하겠금 발전공간을 마련해주었다.
2005년, 뜻밖에 나타난 수단홍사건으로 한시기 사람들은 붉은고추를 주요 원료로 하는 반석반찬에 대해 의심을 품고 말썽이 많았으며 이로 하여 영업액에 엄중한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이 준엄한 형세에 비추어 김충걸은 주동적으로 시기술감독국, 위생보건소의 해당책임일군들을 모셔다 공장의 원자료구입과 제품의 생산가공, 포장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각종 생산공예에 대해 엄격한 검사를 진행하고 식품안전검측을 진행하였는바 그의 공장에서 생산해낸 제품은 다시 손님들의 신임을 얻게 되였다.
지금까지 이 공장에서 생산해낸 “소고기심줄”(牛板筋), “짠지”, “풍미물고기”, “맛을 돋구는 된장” 등 4가지 종류, 30여가지 민족특색의 제품은 전부 국가기술감독국에서 발급한 “전국기업제품허가증”을 얻었으며 그중 조선족김치제품은 국가기술감독국의 검사를 거쳐 각항 지표가 국가표준에 도달, “소고기심줄”제품은 동북향토문화로 표지되였다.
뿐더러 이 공장의 반석반찬제품은 점차 이름을 날려 지금은 백산, 통화 지역의 많은 백화점과 슈퍼마켓에서 잘 팔리고있으며 제품은 북경, 상해, 천진 등 국내 대도시들에서도 팔리고있다.
근년래 김충걸은 공장확건에 자금이 긴장한 상황에서도 종업원들을 전부 사회보험에 참가시켜 그들의 양로금문제를 해결하였고 또 기업곤난종업원과 곤난농민대학생가정을 적극 돕고있다.
해마다 설명절이 돌아오면 안해와 함께 차를 타고 곤난종업원가족을 찾아 위문, 그들에게 입쌀, 밀가루, 콩기름, 과일 등 물품을 사다줌으로써 대범하고 의리를 지키는 우리 민족의 전통미덕을 보여주고있다.
현재 김충걸이 경영하는 반석반찬가공공장은 2000평방 메터의 부지면적에 1000평방메터의 건축면적, 30명의 종업원을 갖고있으며 년간 100여만원의 생산액을 창출하고있다. 기업은 일 2만주머니의 생산규모를 갖춘 현대민영기업으로 부상하고있다(최창남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