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량강진 강남촌당지부 서기 채종묵씨는 여러 민족 농민들을 이끌고 빈궁하고 락후하던 산간마을을 화목하고 부유한 민족단결진보촌으로 탈바꿈시켜 촌민들의 환영을 받고있다.
채종묵의 피타는 노력으로 강남촌은 2004년에 안도현민족단결선진집단으로, 2006년에 연변주농민합작사선진집단, 2007년에 연변주민족단결선진집단, 2008년에 현급 새농촌건설시범촌이란 영예 꽃다발을 받아안았으며 본인도 여러차례 안도현, 연변주의 선진인물로 표창받았다.
강남촌은 60세대(조선족 135명, 한족, 만족 등 기타 민족 54명)에 189명 인구를 가진 민족혼합촌으로서 얼마 안되는 경작지에 매달려 살다보니 오래동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4년에 촌당지부 서기로 된 채종묵씨는 우선 촌민들의 수입증대에 심혈을 몰부었다. 촌민들의 수입을 높이자면 산업구조부터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실천경험과 지역우세, 시장수요에 비추어 고추재배를 수입증대의 돌파구로 삼았다. 그는 2005년에 강남촌고추재배협회를 내오고 무공해생태고추생산을 전 촌에 보급하였는데 당해로 좋은 수확을 거두었다. 이듬해 그는 촌에 고추생산전업합작사를 세우고 생산규모를 일층 확장, 고추재배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는데 2007년 9월에는 길림성농업위원회로부터 “성급시범농업 전업합작 경제조직 시험단위”로 지정되였다. 지금 이 촌에서 생산하는 무공해 “설산호”표고추가루는 “연변록색식품”으로 되였으며 연길, 장춘, 상해 등 국내 도시와 한국 등 국외에까지 나가고있다. 채종묵씨는 강남촌뿐만아니라 주변 6개 한족촌에도 고추생산 기술과 경험을 보급하여 공동치부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그가 이끄는 합작사는 150만원의 생산액을 올리고 60여명 회원가정의 인당 순수입은 7500원 이상에 달했다.
채종묵씨는 15년간 촌당지부서기사업을 하면서 늘 “한족이나 조선족이나 만족이나 다 한마을 혈육들입니다.곤난할 때 서로 돌보는건 응당한 일이지요”라고 하며 촌민들이 곤난에 봉착하면 누구라 없이 찾아가 도와주군 하였다.
남의 집을 빌어 살고있던 장애자 근수군(만족)씨는 안해가 그와 11살난 아들을 버리고 가출하자 가정형편이 더욱 어렵게 되였다. 이를 불쌍하게 생각한 채종묵씨는 자기 집의 콩기름, 입쌀과 옷가지들을 그들에게 가져다주었으며 명절이면 고기도 사다주었다. 그리고 관련 부문과 련계하여 구제금도 탈수있게 했다. 그러나 이런 일시적인 방조는 그들의 가정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없었다. 채종묵씨는 고추생산전업합작사를 설립하자 인차 그를 경비원으로 배치해 고정수입이 있게 했다.
10년전, 촌민 왕헌(한족)네 집이 화재를 입어 빈털터리가 되였을 때에도 채종묵씨는 제일 먼저 그를 찾아가 “우리가 있는 힘껏 도와줄테니 힘을 내여 새롭게 시작하기요”라고 하며 그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자기 집의 이불, 옷가지와 현금을 가져다주는 한편 “의무방조대” 를 무어가지고 그의 집을 새로 지어주었다. 촌민들도 모두 지원의 손길을 보냈다. 짧은 시간내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수있게 된 왕헌씨는 채종묵서기의 손을 꼭 잡고 “채서기,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과 촌민들의 방조가 아니였더라면 우린 떠돌이신세가 되였을것입니다.당신들은 모두 나의 혈육입니다.당의 민족단결정책의 따사로움을 깊이 느꼈습니다”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
3대가 한집에서 사는 총덕지(丛德志)네는 식솔이 많고 경작지가 적어 생활이 몹시 곤난하였다.총덕지씨는 양돈업으로 치부해보고싶었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다. 이 정황을 알게 된 채종묵씨는 사처로 뛰여다니며 대부금 2만원을 맡아다 그가 양돈업을 시작할수 있도록 부축해주었다. 총덕지씨는 그 돈으로 100평방메터 되는 돼지우리를 짓고 양돈업을 시작하였는데 2008년에는 4만여원의 수입을 올렸다.
채종묵씨가 여러 민족 농민들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해준 감동적인 이야기는 이루다 말할수 없다. 지금 강남촌사람들은 채종묵씨의 말만 나오면 모두 엄지손가락을 내밀고있다(함창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