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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

민족애를 실천하는 기업인

- 료녕신성그룹 표성룡회장의 가치관 및 인생추구

2011년 04월 11일 09:10【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표성룡 프로필

1954년 심양 출생

1972년 심조1중 졸업후 반금시 중앙툰에 하향

1975년 추천으로 심양통용기계학교 입학, 졸업후 심양시기중운수기계공장 품질검사원으로 근무

1982년 사직하고 선후로 간장공장, 식당, 사우나를 경영

1985년부터 기업경영에 투신해 료녕신성실업유한회사 창립

2003년부터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직 력임

2008년부터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 집행회장직 력임

심양시 5.1로동상장 획득

전국민족단결 선진개인

련 3기 료녕성정협위원


기자가 표성룡회장과 알고지낸지도 어언간 스무해가 다가온다. 항상 수수한 옷차림에 짙은 평안도억양, 세련된 CEO보다는 순박한 시골사람의 이미지를 안겨주는 그지만 이미 수억대의 자산을 가진 그룹회장으로 성장했다.

기회포착은 빠르게

근년래 각종 대사(大师)들의 강연이 매스컴을 달구고있는데 기자는 저명한 국학(国学)대사 적홍삼(翟弘森)에 대한 인상이 깊다.

그는 국내 유명한 CEO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 항상 항전드라마 "검을 겨누다(亮剑)"의 주인공 리운룡(李云龙)퇀장을 실례로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을 생생하게 표현해 청중들을 사로잡는다.

문맹이나 다름없는 리퇀장은 싸움에서는 훌륭한 지휘관이다. 일본군의 대소탕에서 맹군(猛軍)으로 유명한 이다에다(板田)련대와 싸울 때다. 그는 호랑이사령원으로 소문난 팽덕회부사령원의 령을 어기면서도 순간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면진공하여 이다에다련대의 지휘부를 박살낸다.

전쟁터에서 유능한 지휘원은 이처럼 순간적인 기회포착에 능하고 결단했으면 즉각 행동한다.

유능한 기업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표성룡씨는 지난 1977년 중등기술학교를 졸업하고 국영기업에 배치받았다. 안일한 생활을 택하고 철밥통에 목을 매였다면 오늘날의 표회장은 없었을것이다. 1982년, 개혁개방의 빗장이 열리자 그는 기회라고 판단하고 대담하게 직장에 사표를 내고 장사길에 나섰다.

해바라기씨로부터 해물, 복장, 간장, 신발에 이르기까지 안해본 장사가 거의 없었는데 남쪽의 광주에서부터 북쪽의 흑룡강성 야부리까지 전국을 메주밟듯 누볐다. 한두끼 굶는 일은 보통이고 먼 길에 좌석이 없어 기차간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앉아 밤을 새우기도 례상사였다. 당시만 해도 보따리장사는 "투기모리"여서 단속도 피해야 했다. 그러나 그때의 고된 떠돌이장사 경력은 그의 시야를 틔워주었고 후에 기업을 일궈세울수 있는 밑거름이 되였다.

수중에 자금이 좀 모이자 명렴가에다 자그마한 식당을 차렸다. 당시 이 지역에 음식점이 몇개뿐이여서 장사는 호황이였다. 3년후 그는 400여평에 달하는 식당을 지었고 1991년에는 2000여평에 달하는 건물을 지어 노래방과 사우나도 같이 경영했다.

"먼저 치부하라는 상급정책을 접하고 그저 앉아있을수가 없었어요. 제가 사직하겠다 하니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직장을 버린다고 만류하였지만 저는 창업으로 저의 인생가치를 실현해보고싶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의 그 선택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기회포착능력과 결단력, 모든 성공한 이들의 공동한 특점인것 같다. 표성룡씨도 수중에 자금도 별로 없고 기업경영경험도 전무하였지만 먼저 자금회수가 빠른 장사와 식당, 유흥업소 경영으로 후날 기업인으로 성장할수 있는 자금을 축적하였다.

한국형님이 준 충고

1989년 표회장은 친척방문으로 오매에도 그립던 고국땅을 밟았다. 당시 "아세아 4소룡"으로 우뚝 선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어느 날, 한국형님의 "우리 한국의 발전과정을 보니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더구만. 아우도 돌아가거들랑 힘자라는데까지 땅을 확보해두게나"라는 말 한마디가 그의 뇌리를 강하게 쳤다.

귀국후 항상 한국형님의 충고가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중국인들은 땅의 부가가치에 대해 잘 몰랐고 땅이 상품이고 재부라는것은 더욱 알지 못했다. 토지소유권은 가질수 없어도 헐값에 수십년간의 사용권을 쉽게 얻어낼수 있는 세월이였다.

땅을 많이 확보하려면 기업을 많이 세워야 한다.

표회장은 화평촌(현 화신그룹), 명렴가가두, 영수태, 우홍신촌 등지에다 선후로 철근, 레미콘, 산하샷시, 강화플라스틱창문제조 공장과 강재시장, 애완동물시장, 명렴종합시장 등 10여개의 크고작은 기업들을 세웠는데 차지한 부지가 500여무에 달했다.

당시는 누가 기업을 꾸리겠다면 토지는 헐값으로 제공받을수 있었기에 그는 큰힘을 들이지 않고 많은 토지를 점유할수 있었다. 공장부지외 또 개발가치가 있는 토지 500여무를 더 확보하였다.

토지를 확보한 그는 공장을 짓기 위해 장리돈도 서슴없이 맡아썼다. 그 빚을 갚기 위해 죽을 고생도 하였지만 토지가 그에게 가져다준 부가가치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 할가... 표회장은 땅의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 후에도 동릉지역에서 500무, 철령지역에서 500무, 법고현에서 400무, 통화지역에서 3000무를 확보하였는데 그는 명실공히 "대지주"로 되였다.

표회장은 토지를 차지하면서 재부를 축적할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튼실한 경제기반을 갖춘 기업인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90년대말부터 심양도시확장에 따른 개발이 진척되면서 그의 공장, 시장들이 하나하나 개발지역에 들어갔고 거기에 따르는 보상액도 엄청났다. 90년대말, 레미콘회사가 처음으로 개발지역에 들어갔고 후에는 16만평방메터에 달하는 강재시장도 개발지역에 들어갔다. 그는 보상받은 돈을 은행에 차곡차곡 쌓아놓은것이 아니라 이 돈으로 종합강재시장을 일떠세우는데 투자하였다. 보상금이 내려오자 그는 또 이 돈으로 홍기대 군용비행장에 속하는 토지 1200무를 임대해 3000여개의 매장을 가진 전국 최대 규모의 강재시장을 세웠다. 현재 입주가 거의 만료된 상태, 평소에는 그에게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구실을 잘하고 일단 개발지역에 들어가면 거액의 보상금이 떨어진다고 한다.

지난 1997년에 세운 2만평방메터의 명렴종합시장도 2000여개의 매장에 6000여명에 달하는 업주들이 진출해있는데 머지 않아 개발지역에 들어간다.

현재 표회장이 이끄는 신성그룹 산하에는 대형 강재시장과 종합시장외 동릉, 철령에 2개의 석재가공회사가 있고 우홍신촌에 부지 4만평방메터, 건축면적 2만평방메터에 달하는 과학연구원이 있다.

과학연구원에서는 다년간 물에서 수소를 뽑는 연구와 페광석에서 휘발유, 디젤유를 뽑아내는 연구실험이 진행되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헛된 일이라고 도리머리지만 표회장은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으며 연구일군들의 신형에너지개발을 독려하고있다.

지난 2005년, 조선 평양의 중심구역에다 5400평방메터에 달하는 건물을 짓고 식당과 상점을 경영하고있다.

아직은 적자신세지만 장래를 보고 꾸준히 경영해오고있다. 지난해에는 또 자금 수백만원을 투입해 카페트공장(쇠절단기계 제작)까지 세웠다.

뭉쳐야 산다

"우리 민족은 똘똘 뭉쳐야 삽니다"표회장의 열변이다. 8년째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직을 력임하고 4년째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 집행회장직을 력임하고있는 그는 기업인으로서 민족애를 말로만이 아니라 누구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표회장이 심양지역 조선족사회발전에 큰 획을 그은 가장 큰 일은 지난 2000년 심양조선족1중을 위해 새 교수청사를 지어준것이라고 할수 있다.

공화국창건 당시에 세워진 심조1중 건물은 낡고 시설이 락후한데다 비좁기까지 하여 날로 발전하는 현대화교수요구를 도저히 충족시킬수 없었다. 심조1중 력대 지도부도 학교청사를 신축하고 교수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표회장은 자신의 토지에다 심조1중의 교수청사와 부속건물 그리고 교원사택까지 지어주고 심조1중의 원터와 맞바꾸는 조건에서 이 일을 추진하였다. 손에 자금이 그리 넉넉하지는 못하였지만 모교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는 여기저기서 건축자금을 둘러댔다.

그러나 막상 일을 벌이니 막히는 일이 많았다. 시공을 시작하여서부터는 거의 매일 새벽마다 공사현장에 나가 독려하며 기한내에 공사를 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가 뚝심으로 밀어붙인 보람으로 지난 2000년을 맞으며 심조1중은 새 교수청사에 입주, 새 청사는 부지면적 9만평방메터에 종합교수청사를 비롯해 표준적인 400메터 운동경기장, 실험실, 체육관, 학생기숙사, 식당, 교원사택, 보이라실, 주차창고 등 구전한 시설을 갖추었는데 총 건축면적이 근 4만평방메터에 달했다. 총 부지면적이나 건축면적은 원래 면적의 3배로 늘어나 성중점고중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였다. 정부지원이 조금도 없이 한 개인의 힘으로 이렇게 큰 공사를 해냈다는것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장거가 아닐수 없다.

지난 2004년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으로 당선되면서 표회장은 조선족사회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 사무장소가 없는것을 보고 그는 200평방메터에 달하는 건물을 구매해 사무실로 제공하였고 이듬해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서 전 성 규모의 󰡒조선족민속절행사를 개최하려 하자 그는 기업인들을 동원해 모금운동을 벌이는 한편 부족한 자금 20여만원은 기꺼이 자기가 안았다.

현재까지 전 성 조선족민속절행사가 4회 개최되였는데 표회장은 번마다 20~30만원의 자금을 후원하였고 또 단동, 무순 등 시의 조선족행사에 초청되면 즉석에서 1만원씩을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지난 2008년, 그는 할빈에서 열린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 설립대회에서 초대집행회장으로 당선되였다. 지난 4년간 표회장은 적게는 20여만원, 많게는 40만원을 내놓았으며 지난해말 련임되면서 올해 경비로 50만원을 내놓았다. 청도, 할빈, 연길, 장춘에서 대형 조선족행사가 개최될 때도 표회장은 초대되면 빈손으로 참가하지 않았다.

"행사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전통과 특색을 살려나가는 중요한 활동이다. 산재지역 조선족사회에서 행사를 조직하려면 경제의 뒤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정부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인들이 발벗고나서서 지원해야 우리 조선족사회가 더 뭉치고 발전할수 있다고 표회장은 말한다.

그의 가치관 인생추구

표회장은 기업인으로서의 가치를 창조하였을뿐만 아니라 주류사회에서 조선족의 위상수립에도 앞장섰다. 문화수준이 그리 높지 못한 그지만 인생가치 실현목표는 컸다. 기업을 꾸려 단순히 돈을 벌자는것이 아니라 항상 사회와 민족을 위해 뭔가 기여하고싶어했던 그였기에 1998년에 성정협위원으로 추천되였고 현재까지 3기를 이어오고있다.

성정협위원으로서 표회장은 매우 활약적이다. 우스개를 잘하고 붙임성이 좋아서인지 상급지도자들도 그와 롱담을 즐겼고 저녁이면 많은 위원들이 그의 침실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기타 조선족위원들과 함께 조선족이 아이 둘을 낳게 해줄데 관한 제안, 일정한 수자의 조선족간부를 발탁해줄데 관한 제안, 조선족교육경비를 늘려줄데 관한 제안들을 제출하였다. 그는 또 정협위원의 직책을 리행했을뿐만아니라 형제민족 지원에도 적극 나섰다. 그는 선후로 수십만원을 투입해 법고현에 성룡희망학교를 신축하여 지속 후원하고있으며 단동변경부흥활동에 수만원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지난 문천지진, 옥수지진 발생시에도 각기 10만원씩 성금을 쾌척한바 있다.

표회장도 어느덧 60고개를 톺아오른다. 오늘도 그는 왕성한 정력으로 그룹을 진두지휘하고있을뿐만 아니라 료녕성 나아가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를 이끌어가고있다. 회사가 순풍을 탈 때나 첩첩한 어려움에 부딪칠 때나 그한테서 소심한 모습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항상 락관적인 자세로 곤경을 헤쳐나가고 정열적인 자세로 조선족활동에 나서는 그에게서 조선족기업인들을 리드해가는 훌륭한 리더의 모습을 찾아본다.

우리 민족사회는 표회장과 같은 정열적이고 헌신적이고 역동적인 사람이 있어 더욱 활기차고 희망이 넘치는것 같다.

사회, 민족에 대해 강한 사명감을 갖고 민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천하는 그와 같은 조선족기업인들이 많이 배출되여야 우리 조선족사회의 래일은 더욱 아름다울것이다(료녕조선문보 리덕권기자).

래원: 길림신문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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