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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 당지시간 18일 오후 1시 42분 병환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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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은 페염으로 한달남짓한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병세가 심해지면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18일 오후 서울시중심의 세브란스병원에서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18일 오후, 세브란스병원 원장 박창일은 전 대통령 김대중이 페염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이날 13시 43분(북경시간으로 12시 43분)에 서거했다고 언론계에 밝혔다.
김대중은 페염으로 지난 7월 13일 입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으면서 줄곧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7월 29일, 기관지 기관지절개수술을 받았다. 8월 9일, 김대중은 혈압이 내려가면서 병세가 악화되였다.
김대중의 서거소식을 접한 한국 각계는 심각한 비통속에 빠졌다. 한국대통령 리명박은 이날 깊은 애도를 표했으며 "오늘 우리는 위대한 정치지도자를 잃었다. 민주화와 민족화해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이룩한 그의 업적은 국민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것이다"고 말했다.
김대중은 1924년에 출생했다. 20세기 50년대에 정계에 진입해 한국 정치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는 선후로 여섯번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였으며 1998년 2월부터 2003년 2월까지 한국대통령을 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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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김대중의 사망으로 한국 운반로케트 발사 연기
18일 전 대통령 김대중의 사망으로 한국에서는 19일에 발사하기로 했던 운반로케트 발사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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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략력】
1925년12월3일 전남 신안군 하의도 후광리에서 출생 1948년10월-1950년10월 목포일보 사장 1952년 흥국해운 사장 1960년8월-61년5월 제5대 민의원 1973년8월 일본 도꾜에서 한국중앙정보부에 의한 납치로 귀국, 가택연금 1976년3월-78년3월 민주구국선언 주도로 구속 1980년9월 계엄하 군법회의에서 내란혐의로 사형선고 1982년12월 형집행정지 상태에서 신병치료차 도미, 망명생활 1983년5월 재미한국인권문제연구소 창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1997년12월 대통령 당선 2000년6월15일 남북정상회담 2000년10월13일 노벨평화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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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 IT강국 초석놓은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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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전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이 IT 강국으로 도약할수 있는 초석을 놓았던 지도자이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깔아 산업화를 이뤘다면 김 전 대통령은 초고속인터넷 등 유무선통신망을 구축함으로써 대한민국을 굴뚝산업 중심에서 지식정보화 강국으로 업그레이드시킨 인물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국민의 정부"를 출범하면서 취임사를 통해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어 정보대국의 토대를 튼튼히 하겠다"며 IT강국 의지를 피력했다.
실제로 그는 임기 내내 IT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력량을 쏟아부었다.
김대중정부 첫해인 1998년 6월 시작한 초고속 인터넷서비스 가입자가 불과 4년만에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인터넷이 생활화되는 등 IT 붐이 조성됐다.
한국 IT 전문가들은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에 큰 획을 그으신것만큼이나 한국이 IT강국이 될수 있는 산파역할을 하셨다"고 높이 평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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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 외환위기 극복, 국가부도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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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 외환위기 당시 취임해 뚝심으로 국가부도 위기를 해결해 경제분야에서도 성공한 통치자로 평가된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당시 단행한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권 건전화는 작년 9월 전 세계에 몰아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속에서 한국이 슬기롭게 헤쳐나갈수 있는 버팀목이 됐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민주적인 시장경제원리"는 한국사회가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일반화됐던 개발독재시대로부터 자률경쟁과 시장경제에로 진화하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김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로 인해 1997년 말 39억딸라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를 재임 마지막해인 2002년 말 1214억딸라로 늘림으로써 국가부도 위기를 해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S&P,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평가하는 국가신용등급도 A등급을 회복했다.
1998년 -6.7%에 달했던 경제성장률도 1999년 10.9%, 2000년 9.3%, 2001년 3%, 2002년 6%로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1998년 6.8%로 최고조에 달했던 실업률도 1999년 6.5%, 2000년 4.1%, 2001년 3.7%, 2002년 2.5%로 해마다 떨어졌다.
또 기업, 금융, 공공, 로동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1997년 396.3%에 달했던 기업부채비률이 2002년에 135.6%까지 낮아졌으며 재임 5년간 무역수지 흑자 루적액도 949억딸라에 달했다. |
한국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은 통일을 향한 기나긴 려정이였다.
그는 3단계 통일론과 대북 포용정책의 확고한 신념을 꺾지 않고 마침내 남북 화해협력 시대를 여는 등 통일운동에 평생을 투신했다.
김 전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1970년대 야당지도자때부터 주장해온 3단계 통일론으로 압축된다.
그의 통일론이 빛을 발한것은 대통령에 취임한 1998년 이후였다.
그는 2000년 3월 남북간 협력수준을 민간에서 정부로 진전시키겠다는 베를린선언을 하고 대북포용정책을 펴 그해 6월 분단 반세기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개성공단을 설립했으며 꿈에나 그리던 리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도 실현함으로써 화해와 협력의 길을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한반도의 랭전을 평화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해볕정책은 2003년 참여정부(노무현정부) 출범후에도 계승?발전되면서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년간 그의 해볕정책과 통일론은 빛이 바랜채 미완의 숙제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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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2000년 6월 16일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평양 백화원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표단 환송오찬에서 활짝 웃으며 건배하고있는 장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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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명박대통령은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위대한 정치지도자를 잃었다"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리대통령은 또 "민주화와 민족화해를 향한 고인의 열망과 업적은 국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의 생전의 뜻이 남북화해와 국민통합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리대통령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한국 청화대 이동관대변인이 18일 오후 춘추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명박대통령의 애도의 뜻을 전하고있다. |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서거하자 각국 언론들도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하고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알려진 직후 인터넷판 톱기사로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김 전 대통령의 출생부터 서거까지의 일대기를 자세히 소개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통신은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11월 중국과 국사를 론의하려 중국을 방문한 이후 여러 차례 방중했다"면서 "특히 2009년 5월에는 중국인민외교학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뉴스전문사이트 "중국사이트"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전하며 "그는 한국 민주화의 불굴의 상징이였다"면서 "어려운 경제위기를 단시간안에 회복했고 한국을 IT선진국으로 이끈 대통령이였다"고 전했다.
이어 "외교면에서는 조선에 해볕정책을 펼치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을 회담에 이끌어내는데 성공했고 이로써 남북관계의 긴장을 완화하고 경제융합을 이루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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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의 서거와 관련해 외교부대변인 기자질문에 대답 |
외교부대변인 진강은 18일 기자의 질문에 대답할 때 우리는 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선생이 불행하게 병환으로 사망한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시한다고 말했다.
한 기자가 보도에 의하면 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이 오늘 서거했다고 하는데 중국측은 이에 대해 어떻게 평론하는가고 물었다.
진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한국 전 대통령 김대중선생이 병환으로 불행하게 서거한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시하며 그 유족들에게 진지한 위문을 표시한다.
김대중선생은 중국인민의 오랜 벗으로서 생전에 중한관계발전을 추동하기 위해 중요한 공헌을 하였는바 중국 정부와 인민은 이를 잊지 않을것이다.
호금도주석은 이미 김대중선생의 서거와 관련해 리명박대통령에게 조전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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