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래 중국농촌은 거대하고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 농민 인구당수입과 농업종합생산능력이 부단히 제고된것은물론 농산물류통이 활발해지고 농촌경제가 전면적으로 번영한것은 결국 당중앙의 영명한 령도밑에 농촌개혁을 부단히 심화시킨 결과이고 억만 농민이 간고분투하고 애써 혁신한 성과이며 광범한 간부군중이 충심으로 단결분진한 결정이다.
국가발전및개혁위원회 농촌경제사에서 최근 발표한데 따르면 개혁개방이래 우리 나라 농민들의 인당 순수입 장성률은 년평균 7.1%에 달했다. 개혁개방이래 우리 나라 농촌경제사회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발생했다. 농민수입은 안정하게 장성되고 생활수준이 점차적으로 제고되였다. 2007년 농민 인당 순수입은 1978년의 133원 60전으로부터 4140원 40전으로 년평균 138원 제고되였다.
9억 농민 당당하게 새 시대로 매진(경전 중국 휘황 30년)
1978년 겨울, 안휘성 봉양현 소강촌의 18명 농민이 조용히 “호도거리”계약을 “체결”하면서부터 중국 개혁개방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했다.
농촌에서 첫발자욱을 뗀 개혁은 거창한 기세로 신속히 전국에 보급되였는데 30년 동안 신주대지의 광활한 농촌은 력사적변혁을 가져왔고 9억 농민은 부유하고 문명한 새 시대로 매진했다. 【전문보기】
◎ 빈곤과 작별하고 부유와 문명에로 매진
“‘호도거리’를 실시하기전 생산대에서 나누어준 량식은 가련할 정도로 적어 모두가 늘 배를 곯아야만 했다. 하지만 ‘호도거리’를 실시한후 우리들의 생활은 갈수록 좋아졌는데 지금 반수 이상의 세대들이 층집에서 살고있고 랭장고, 색텔레비죤, 핸드폰은 흔히 볼수 있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안휘성 명광시 반촌진 전서촌 농민기업가 전영언의 말이다.
개혁개방 초기, 우리 나라에는 2.5억명 농민이 온포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가정별생산도급제는 중국농민의 위대한 발상으로서 우리 나라 농업성장의 “황금시기”를 촉성하였을뿐만아니라 비교적 짧은 시간내에 억만명 이상 사람들의 온포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인류가 빈곤에서 해탈하는 력사에 기적을 남겼다.
류수와 같이 흐른 이 30년에 우리 나라 농민의 의, 식, 주, 행, 용 모든 면에서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발생했다.
◎ 10개의 “1호문건” 획기적인 변혁 조성
개혁개방이래 당중앙은 농업과 농촌사업을 지도하는 10개의 “1호문건”을 발포함으로써 농업발전을 추동하고 농민증수를 추진하여 농촌경제를 번영시키는 주선률을 울렸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중공중앙은 련속 5년간 “1호문건”을 발포하여 농업과 농촌의 개혁발전에 대해 전략적포치를 했고 정식으로 가정별생산도급제를 긍정하고 농민들이 시장으로 나아가고 상품경제를 발전시키는것을 권장하였으며 농가의 시장주체지위를 확립했다. 그리고 농산물통일수구제도를 점차적으로 취소하고 농산물류통체제개혁을 추진하였으며 농촌산업구조를 조정하고 향진기업과 소도시건설을 발전시켰다.
◎ 사회주의 새농촌건설 전면적으로 가속화
억만명 농민들이 당의 “혜농”정책이 가져다준 실질적혜택과 희열을 누리고있을 때 당의 16기 5차 전원회의는 재차 사회주의 새농촌건를 제기함으로써 인심을 고무하는 진군의 나팔을 울렸다. 이는 농촌종합변혁이 새로운 력사적배경과 참신한 리념의 지도하에 새로운 기점에서 섰음을 뜻한다. 중앙은 다섯마디의 요구 즉 “생산을 발전시키고 생활을 여유롭게 하며 기풍이 문명하고 마을이 깨끗하며 관리가 민주적이여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했다.
◎ 보다 행복한 나날이 농민들을 기다린다
30년 동안 우리 나라 농촌경제는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에로의 거대한 전환을 실현했다. 농업은 지금 전통농업에서 현대농업에로 나아가고있고 농민의 생산생활방식도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과 농촌의 발전은 미증유의 새 단계에 들어섰고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은 도시와 농촌을 통일적으로 계획하고 도시로 농촌을 이끌고 농촌발전을 다그치는 중요한 경로로 되고있으며 힘을 통합하고 자원을 집중하여 “3농”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매개물로 되고있다.
30년전 안휘성 봉양현의 소강촌에서 18명의 농민이 "도급"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는 중국농촌개혁의 서막을 열었다.
지난 2년간 안휘성 봉양현 소강촌에서는 전문가의 지도하에 600무 경작지에 포도를 재배하여 해마다 호당수입 2000여원을 제고
30년전 중국에 처음으로 토지호도거리를 실시했던 안휘성 봉양현 소강촌의 토지가정도급기념관
농민일기가 보여주는 농촌의 변천
산동성 빈주시 추평현 호생진 교가촌 농민 류종수와 산동성 덕주시 평원현 왕봉루진 수무촌 농민 양춘령은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일기쓰기를 견지하였는데 백여권에 달하는 일기책들에는 개혁개방 30년래 이들의 신변에서 발생한 사사건건들이 평민의 시각으로 상세히 기록되여있다. 이런 사사건건은 어쩌면 사소한일이라 할수도 있지만 다른 한 측면으로 놓고 볼 때에는 중국 농촌면모의 변화와 시대의 변천에 대한 기록이 아닐수 없다.
농촌의 발전은 중국의 사회진보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농민들은 기억은 향토의 중국이 현대중국으로 나아가고있는데 대한 진실한 “기록”이다. 10월 9일에 소집된 당의 17기 3차전원회는 농촌개혁발전이 새로운 시기에 들어섰음을 표징하는바 개혁개방 30돐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우리들은 두 농민의 일기에서 지난 30년을 회고하고 사고하고 총화함으로써 공동히 아름다운 래일을 전망하자.【전문보기】
1981: 토지분배를 끝내고 저녁에 한자리에 모여 기쁘게 술마셨다
1990: 닭을 치고싶어 52원 주고 병아리 100마리를 샀다
1999: 6000원에 뜨락또를 샀다. 아주 행복했다
2006: 농업세를 취소한다는 말을 듣고 흥분되여 며칠밤 잠도 잘 못자
2008: 병을 보이고 치료비를 결산받을수 있을줄은 생각못했다
2008년: 촌의 곽씨네가 컴퓨터를 사용한다우
2008: 농촌 아이들이 모두 도시에 들어가 공부를 한대요
조선족촌들의 놀라운 변화
개혁개방 30년 발해벌 조선족촌들의 놀라운 변화
11월 1일, 목단강시 발해조선족로년협회총회에서는 발해진로년협회 활동실에서 개혁개방30주년을 기념해 뜻깊은 좌담모임을 가졌다. 협회 상무리사와 총회산하 7개 촌 8개 분회의 분회장, 협회골간들을 비롯한 50여명이 300여명 회원들을 대표해 좌담모임에 참가했다.
좌담회는 총회 회장 최경활씨의 개혁개방전 야간학교, 독보조 형식으로부터 지금의 총회에 이르기까지의 협회발전과 변화, 취득한 성과를 회고하는 기조발언에 뒤이어 참가자들의 열렬한 발언이 이어졌다.
발해중심소학교에서 오래동안 교장직을 맡아왔던 성범수씨는 개혁개방 30년의 실천은 중국공산당의 옳바른 강국부민정책의 실천으로서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건설과 정신문명건설에서 눈부신 변화를 갖고왔다고 했다. 더우기 우리 조선족은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독특한 해외로무송출로 경제생활의 “부”를 창출했다고 했다. 【전문보기】
산간벽지 조선족촌들의 놀라운 변화
지난달말 3일 동안 장백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 안도현의 이도진, 송강진을 비롯한 5개 향진의 내두산촌, 무주촌 등 8개 조선족촌을 돌며 개혁개방이 그들에게 가져다준 놀라운 변화를 목격했다.
인당 수입 대폭 증가: 내두산촌, 무주촌 등 8개 촌에서는 모두 밭농사를 위주로 하고있었다. 영경향 용진촌의 38세대에서는 집집마다 손잡이뜨락또르, 수확기, 탈곡기 등 한두가지 농기계를 갖추어놓고 손쉽게 농사를 짓고있었다. 신합향의 서한촌은 개혁개방초기에는 인당 수입이 20~30원 정도밖에 안되였으나 지난해에는 인당 수입이 5000원을 초과했으며 영경향 조양촌은 42명이 한국으로 로무를 가 벌어들인 수입을 제외하고도 지난해 인당 수입이 5200원에 달했다. 8개 촌중 지난해 인당 수입이 3100원에 그친 송강진 무주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당 수입이 5000원 이상이였다.
촌민생활이 크게 개선: 개혁개방전만 하여도 이들은 모두 초가집에서 살고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벽돌기와집을 짓고 살고있었다. 신합향의 서한촌과 영경향의 조양촌은 이미 전 촌이 벽돌기와집으로 변하였으며 기타 촌의 초가집개조도 40~70% 이루어졌다. 내두산촌과 조양촌 등 촌에서는 집집마다 통일적으로 보기좋게 색철판바자와 널판바자를 둘렀고 마을 곳곳에 모두 위생상자를 갖추어놓아 거리가 매우 깨끗하였다. 그리고 촌마다 모두 깨끗한 수도물을 마시고있었으며 집집마다 색텔레비죤, 음향설비, 전기밥솥 등 가전제품을 갖추어놓고 여유롭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고있었다.【전문보기】
당의 17기 3차 전원회의 "결정"은 30년 농촌개혁발전을 통해 우리 나라 농촌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결정"은 농촌개혁발전의 위대한 실천은 억만 농민들의 적극성을 크게 불러일켰고 농촌사회생산력을 크게 해방, 발전시켰으며 광범한 농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크게 개선시켰다며 "세가지 큰 변화"로 농촌개혁발전의 위대한 성과를 고도로 개괄했다. 이는 주로 아래의 5개 면에서 체현되고있다.
첫째, 농촌개혁에서 중대한 돌파를 가져왔고 우리 나라 실정에 알맞고 사회생산력 발전요구에 부합되는 농촌경제체제를 초보적으로 형성했다. 인민공사를 취소하고 농호별생산량도급경영을 기초로 하면서 통일과 분할이 결합된 이중경영체제를 확립했으며 농촌기본경영제도를 세웠다. 향진기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농촌 사영경제발전을 권장했으며 공동소유제를 주체로 하고 여러가지 소유제 경제가 공동발전하는 농촌 기본경제제도를 형성했다.
30년 농촌개혁발전과정을 어떻게 인식할것인가?
당의 17기 3차 전원회의 "결정"은 우리 당은 국내외 발전대세를 전면적으로 파악하고 농민의 혁신정신을 존중하였으며 제일 먼저 농촌에서 개혁을 시작해서 일사천리로 전국에 파급시켰으며 인민을 령도해 개혁발전의 빛나는 서사시를 엮어놓았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네개 단계로 나누어 30년 농촌개혁발전의 변화추진경로를 파악할수 있다.
제1단계(1978년-1984년): 중점은 인민공사를 취소하고 농호별생산량도급경영을 기초로 한 통일과 분리가 결부된 이중경영체제를 확립하고 농촌기본경영제도를 내왔다. 1978년, 안휘성 봉양현 소강촌의 18세대 농민들이 제일 먼저 "도거리책임제"를 실시했다. 1980년, 중앙은 농업분야에서 각종 형식의 생산책임제를 보편적으로 실시할것을 명확히 제기했다. 1983년말, 전국 농촌은 농호별생산량도급경영을 기초로 하고 통일과 분리를 결부한 이중경영체제를 기본적으로 실시했다. 1984년, 중앙은 토지도급기한을 보통 15년이상으로 할것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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