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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절 특별기획】연변주 10대 사덕기준병들의 모범사적
2008년 09월 10일 10:21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편집자의 말】9월 8일, 24번째 교원절에 즈음하여 연변주정부는 연길에서 교원절 및 사덕모범(기준병)표창대회를 소집, 몇년간 연변주 사덕건설정황을 회고, 총화하고 한패의 사덕기준병과 모범인물을 표창했다.

기획은 대회에서 표창받은 연변주 10대 사덕기준병의 사적을 요약해서 게재한다.

 
◎ 정인강: 교육사업 위해 하나의 잎사귀나 될터

20여년의 교육생애에서 정인강은 교육사업에 대한 무한한 애착감으로 평범한 일터에서 평범하지 않은 업적을 쌓았다.

그는 늘 "교육사업을 위하여 하나의 작은 잎사귀가 될터"라고 말해왔다. 대학을 졸업한후 안도현 량병향학교에 배치된 그는 련속 6년간 안도현우수교원으로 평의됐고 련속 2년간 안도현우수공산당원으로 평의됐다. 주에서 조직한 중소학교 "세가지 비기기 경합"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선진개인칭호를 수여받았고 2000년에는 길림성사덕모범, 2002년에는 성우수담임교원, 2005년에는 주골간교원, 2006년에는 주로력모범과 길림성교재개혁우수사업일군, 2007년에는 주우수교무주임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20여년간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뜬 그때 며칠간 말미를 맡은외에 말미를 맡은적 없다. 2007년 다리의 정맥이 불어나면서 아주 엄중한 정도에 이르렀다. 의사, 동사자, 친구와 가족들이 몇번이고 수술을 재촉했지만 교수에 영향준다면서 끝까지 고통을 참아내다가 여름방학이 돼서야 비로소 수술대에 올랐다.

정인강은 시종 학생들에게 친부모와 같은 사랑을 몰부었는데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학생들로 하여금 따뜻함을 감지하게 했고 그의 끝없는 정성은 후진생을 우수학생으로, 후진학급을 선진학급으로 전변시켰다.
◎ 김해란: 가냘픈 꽃나무에 사랑 가득히

김해란은 1991년 3월, 화룡3중으로 전근하여 사업하게 되였다. 주로 담임교원을 맡아온 15년간 학생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몰부었다.

그의 지성어린 노력에 가냘픈 꽃나무들은 자신의 리상을 꽃피울수 있었다.그의 제자인 리은실학생은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생활비마저 보장이 안되였다. 김해란은 그 학생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 숙박시켰다. 선생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은 리은실학생은 학업에 더욱 열중하여 연변1중에 입학했다.

2004년 5월, 김해란은 학교교수과학연구처 주임으로 임명됐다. 그는 교수에 정력을 몰부어 질을 제고하며 대담하게 개혁한다는 신념을 갖고 학교의 전체 교원들을 이끌고 교수질제고에 박차를 가했다. 2005년 6월 그가 완수한 "혁신교육리론과 연구"과제는 길림성혁신교육리론총과제 전문가소조의 긍정을 받았다. 2007년 11월 "조화로운 분위기중의 교사전문발전에 관한 연구"라는 과제는 전국 교육과학 "11.5"기획 국가교육부의 감정을 통과했다. 따라서 이 학교도 "11.5"기획기간 성급우수교수과학연구선진단위로 됐다.

김해란은 선후로 화룡시 10대 기준병, 화룡시모범담임교원, 화룡시우수과학기술사업일군, 화룡시우수당원, 주급과학연구선진사업자, 주로력모범, 주 첫패 과학연구골간교원, 전국청소년연구학회 회원 등 영광을 지녔다.
◎ 호병림: 변강마을의 원예사

해발 900메터 되는 중조변경 룡정시 백금향 평정산꼭대기에서 호병림은 26년간 농촌학생들을 위해 "초불"처럼 자신을 불태우고있다.

1983년 8월, 평정산 교수지점에서 교편을 잡은 첫날부터 호병림은 락후한 학교시설때문에 교수외에도 건물보수일을 도맡아했다. 이 기간 친척들이 그를 교수조건이 좋은 다른 학교로 전근할것을 수차례나 조언했지만 그는 계속 사절하면서 안해까지 평정산에 데려와 가정을 꾸렸다.

비록 산간지역의 작디작은 학교였지만 그는 교편을 잡은 첫날부터 도시아이들이 배우는 과목 전체를 설치하여 농촌아이들에게 배워주었고 년령과 학습진도에 따라 점심과 저녁 시간을 리용하여 매일 학생들을 위해 보충수업을 해주었다. 휴식일이거나 명절때면 그는 또 자기 집 농사일을 뒤전으로 한채 마을로부터 10킬로메터 떨어진 향정부로 걸어가 향정부에서 다시 뻐스를 타고 룡정에 도착하여 서점에 들려 새로운 책들을 구독했다.

또 평정산촌과 백금향정부사이에는 해발 900메터 되는 평정산이 가로막혀있어 차가 통하지 않다보니 새 학기가 될 때마다 호병림은 직접 정부에 찾아가 교과서들을 둘러메고 10킬로메터 되는 산길을 걸어 가져다주군 했다.
◎ 김희옥: 학자형 교원을 목표로

연변1중 김희옥교원은 교육사업에 참가한 15년간 조선어문교수사업에서 학자형교원으로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교수를 연찬했다. 새로운 세기의 교수요구에 적응하기 위해 그는 연구성학습의 교수개혁에 투신하여 훌륭한 성적을 거뒀고 주, 성 공개교수를 수차 도맡았다.

2003년 그는 주 15차 고중조선어문연구회 공개과를 도맡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4년 그는 전 주 고중 제3차 연구성학습세미나공개과를 도맡았고 2005년 길림성 제16차 고중 새 교재골간교원 교재강습전시과를 도맡았는데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긍정을 받았다. 이밖에도 그가 지도한 학생들은 전국조선족중학생작문콩클, 길림성민족중소학교 제4회 "세가지 언어" 기본기능콩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학생들의 작문은《중학생신문》,《중학생》잡지,《중학생작문》등 간행물에 수차 실렸다.

김희옥은 교수개혁을 대담하게 펼친후에는 제때에 경험과 부족점을 총화했다. 그가 쓴 론문 "교수전의 웅변을 통해 종합자질을 제고"는 2000년 중국조선어문교수연구회에서 1등상으로 평의됐고 론문 "열독과 교수중에서 혁신사유능력을 어떻게 양성하겠는가"는 《중국조선어문》잡지에 발표됐고 2001년 주교육학회 1등상을 수여받았다.
◎ 상위: 인재육성의 전문가

상위는 성한어문골간교원, 주명교원, 주골간교원이고 연길시우수교원, 연길시우수담임교원이다. 현재 연길시제1고급중학교에서 교무주임 겸 1학년 4반 담임을 맡고있다.

교편을 잡은 11년간 그의 학급은 학기마다 학년에서 앞자리를 차지, 국내 크고작은 도시 및 해외 많은 명문대학에 우수한 인재들을 수송해 그는 인재육성 전문가로 불리우고있다.

상위는 또 우수한 학급관리자일뿐만아니라 교수에 연구가 깊은 학습형, 전문가형, 과학연구형 인재로 돼야하는 꿈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전심전력 교수연구사업에 몰두해 풍부한 문화과학기초지식, 교육과학지식과 심리과학지식을 장악하고 대담하게 교수방법을 혁신하고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몰부으면서 그들의 학업뿐만아니라 생활도 지극히 관심해줬다. 2004년도 졸업생인 주정과 주영은 가정형편이 좋지 못하고 부모가 모두 병으로 앓고있다는것을 료해하게 된 상위는 그들을 위해 학비감면등록을 신청했고 때로는 그들에게 학습재료나 학용품을 마련해줬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였다. 그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아래 그들 형제는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교통대학과 화동리공대학에 입학했다.

또 그가 맡은 학급은 늘 학년에서, 학교에서 전형이였다. 2006년 3월, 상위가 맡은 학급에서 조직한 "고마움을 배우고 성실한 사람으로 되자"는 주제반회는 중앙TV 뉴스, "인민일보", "신화사", "중국교육신문" 등 매체를 통해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 강정화: 직업기술인재 양성 위해 혼신

연변공업학교 강정화교원은 20여년의 교육생애에서 16년을 담임교원을 맡아왔다.

이 몇년간 연변공업학교 입학생들은 대부분 자질교육에서 뒤떨어진 학생들이였다. 하여 내심에는 자비감이 많고 역반심리가 강했다. 그리고 학습에 열중하지 않고 규률면에서도 비교적 차했는데 지각, 조퇴, 무고결석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하지만 강정화교원은 종래로 학생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후진생교양사업에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도 부족점이 있고 성적이 낮은 학생도 우수한 점이 있다면서 "훌륭히 가르칠수 없는 학생은 없다. 다만 교육을 모르는 교원만이 있을뿐이다"면서 항상 자신을 높이 요구했다. 그는 학생들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애심으로 면려하고 학생들을 늘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학생들의 장점을 찾기 위해 애썼다. 우점이나 장점을 발견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학습과 생활에서 자신감과 용기가 차넘치게 했다. 이 몇년간 그가 맡은 학급의 류실생률은 전교에서 제일 낮은 수준이였다.

강정화교원은 사건례수업을 통해 교수과정에서 덕육교양을 했고 교수리론과 자신의 교육, 교수실천을 결부시켜 학생의 개성을 존종하고 특점을 중시했다.

강정화교원은 남편이 출국하다보니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두 역할을 모두 담당해야 했지만 종래로 지각, 조퇴를 하지 않았고 사유때문에 사업에 영향주는 일이 없었다.
◎ 서영: 학생사랑=존중+리해+용서

"학생사랑"은 돈화시제3중학교 교원인 서영의 좌우명이다. 그녀의 "학생사랑"은 학생에 대한 "존중", "리해", "용서"로 표현되고있다.

다년간 담임교원과 어문교원사업을 해오면서 평범한 일터에서 든든한 교수실력과 고상한 사덕을 자랑하는 서영은 10년간 줄곧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정으로 교원인생의 길을 장식하고있다.

하이봉은 서영의 학생이다. 하이봉이 금방 농촌학교에서 전학해왔을 때 서영은 그의 총명함을 발견하고 학급내에서 크게 칭찬했다. PC방에 빠져 부모가 준 식비를 모두 PC방에서 랑비했을때에도 따뜻한 관심과 사랑, 리해와 용서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도록 인도해주었다. 서영의 사랑으로 하이봉은 학년 10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돈화시실험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또 학급사무를 처리할 때면 "존중"을 기본원칙으로 학생마다 독립적인 인격으로 간주했다. 개구쟁이 아이들이 학교질서를 무시하고 일을 저지를 때에도 그는 욕하고 때리는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화시키면서 진실한 대화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었다.

매일 아침 가장 일찍 학교에 나오는이가 그녀였고 저녁에 가장 늦게 퇴근하는 교원 역시 그녀였다. 그녀의 노력하에 그가 맡은 학급 학생들중 2명은 연변제2중학교로, 4명은 돈화실험중학교로 추천받았고 31명은 우수한 성적으로 돈화실험중학교에 입학했다.
◎ 리해연: 가정보다 학급이 먼저

"교육은 학업이다. 꾸준한 학습이 있기에 정채로움이 있는것이다. 교육은 직업이다. 위대한 추구가 있기에 끈질긴 노력이 있는것이다. 교육은 사업이다. 사심없는 사랑이 있기에 후회가 없는것이다."

이는 현재 훈춘시제10소학교에서 활약하고있는 인민교원 리해연의 좌우명이다.

리해연이 맡았던 학급의 왕수학생은 성격이 괴벽하고 심한 심리장애가 있다보니 학습성적이 차하고 대인관계가 락관적이 못되였다. 왕수의 학습성적을 제고하고 생활에 대한 지향과 신심을 북돋아주기 위해 리해연은 인내심있게 인도하고 늘 따로 시간을 내여 그에게 개별보도를 하였다. 그의 너그러운 사랑과 교양하에 왕수의 닫혔던 마음의 창이 차츰 열리기 시작했고 학습성적도 뚜렷이 제고되였다.

윤승미는 1학년 상반기에 리해연의 학급으로 전학하여온 학생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학습기초가 차해 늘 학과진도에 따라서기 어려웠다. 정황을 료해한 리해연은 당시 겨우 4개월밖에 되지 않는 자식을 돌봐야 하는 어려운 형편에서 매일 윤승미를 위해 보충교수를 해주고 또 학습용품 등도 해결해주었다.

리해연에게는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가정과 학교사이에 그는 늘 학교를 택했고 아들과 학생사이에서 학생을 택했던것이다. 2004년, 리해연은 선후하여 "청년사업일터능수", "전국석탄기초교육우수교수연구사업자", "어문학과시급골간교원", "훈춘시우수담임교원", "훈춘시우수공산당원", "훈춘시사덕기준병"등 영예를 받아안았다.
◎ 길완녀: 솔선수범은 교사의 령혼

현재 도문시조선족유치원에서 활약하고있는 길완녀는 1988년 연변제1사범학교를 졸업해서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청춘과 정열을 교육사업에 고스란히 바쳐왔다. 그는 늘 "남의 모범이 되는것은 교원의 령혼"이라면서 사업일터를 소중히 여기고 일에 전력하여 그 어떤 유감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맡은 학급에 불구자어린이가 있었는데 평소에 늘 다른 어린이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받았다. 이러한 정황을 료해한 길완녀는 불구자아이의 어린 마음속에 상처를 주지 않고 그가 즐거운 동년을 보내게 하기 위해 직접 그의 일상생활을 전부 도맡아 책임졌다.

또한 평소 실내수업에서 품덕교육을 강조하고 어려서부터 남을 관심하며 사랑하는 도리를 가르쳤으며 솔선수범하고 자신의 언행으로 이러한 도리를 인상깊게 일깨워주었다. 시간이 오래되면서 어린이들은 그의 언행속에서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는 도리를 실감하게 되였다. 지금은 너도나도 불구자어린이와 친구가 되였다. 하여 그의 학급도 전 유치원에서 가장 "조화로운 학급"으로 평가받게 되였다.

20여년의 교육생애에서 그는 자신의 실제행동으로 "세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실천하였고 당과 인민의 교육사업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왔다. 1999년, 2000년, 2001년 그는 련속 3년 시우수교원으로 평의되고 2006년에는 시우수공산당원, 길림성선진사업자로 평의되였다.
◎ 석운화: 학생은 나의 생활의 전부

현재 왕청현 계관향중심소학교에서 사업하는 석운화교원은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청춘과 정열을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교육사업에 바쳐오면서 고상한 사덕을 쌓아온 인민교원이다.

그는 2007년 8월, 전 향적으로 조건이 가장 차하고 편벽한 소학교에 전근하였다. 간고한 환경속에서도 그의 신념은 견정하였다. 가정을 돌볼겨를이 없었지만 후회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여 늘 웃으면서 "학생은 나의 생활의 전부"라고 말하군 하는 석운화는 학생에게 있어서 교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잘 알고있었다. 1986년, 그가 맡은 반급에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운 학생이 있었다. 정황을 료해한 석운화는 이 학생에게 돈도 주고 옷, 이불 등 일상용품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학생을 찾아 보충공부를 시켜주고 진도를 따라가게 했다. 그의 따뜻한 관심과 교육으로 그 학생은 신심을 되찾고 열심히 공부를 시작하였고 좋은 성적을 취득하게 되였다.

또 1990년, 반급의 한 학생이 급성뇌염으로 당장 입원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학생부모가 집에 없었다. 담임선생이였던 그는 집에 출생한지 몇달밖에 않되는 어린애를 홀로 남겨둔채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그 학생을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래원: 인민넷-중국공산당뉴스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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