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대학생 취업, 퇴역군인 배치, 정리실업자 재취업이 모두 어려워진 가운데 정부는 대졸생, 퇴역군인, 실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취업강습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여러가지 관련정책을 출범하여 자주창업을 지지하고 있다. 퇴역군인이며 "정스프군려문화쇠가마"식당의 경리인 정배군씨는 자주창업의 길에서 군인의 본색을 잃지않고 있을뿐만아니라 독특한 음식문화도 만들어가고 있다.
일전 국가공안부의 한 소장은 그의 식당에서 식사를 한후 "군복을 벗었지만 의연이 군인답다"고 정배군씨를 치하하였다.
○ 퇴대후 자주창업의 길 선택
정배군씨는 1962년, 룡정시 한 귀국화교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어릴때부터 황계광, 뢰봉, 구소운 등 영웅인물들을 매우 숭배하였으며 장차 크면 영광스러운 해방군전사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1979년, 고중을 졸업한 정배군씨는 소원대로 입대, 내몽골심양군구수비사보병퇀에 배치받았다. 2개월간의 신병훈련이 끝난후 단정하고 영준하게 생긴 정배군씨는 퇀부수장의 통신원으로 되였다. 3년간의 군대생활은 정배군씨를 고생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맡겨준 임무를 출중하게 완수하는 견강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1982년에 퇴대한 정배군씨는 연변병원 보위과거나 다른 사업단위에 배치받을수 있었지만 심사숙고 끝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앞치마를 두르고 료리사로 되였다. 아버지와 주위사람들은 그가 료리사로 되는것을 반대했지만 그는 "중국의 료리문화는 매우 풍부하고 심오하여 탐구할 가치가 있다"면서 고집을 꺽지않았다. 결국 그는 자주창업의 길을 선택하였던것이다.
그는 늘 "나는 군대에 입대한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부대란 이 용광로는 나를 단련시켰고 내가 나아갈 길을 가리켜주었다. 나는 나의 군인경력에 대해 항상 자호감을 느낀다"고 말하군 한다.
○ 국가고급료리기술사 자격 취득 100여명 료리사 양성
정배군씨는 항상 자기는 군인이라고 생각했고 군인이라면 무엇이나 훌륭하게 해내야 한다고 자기를 요구하면서 열심히 료리기술을 연찬해 국가고급료리기술사 자격을 따냈으며 길림성중국료리고급직함평심원으로 되였다.
"훌륭한 료리사로 되는 지름길은 근면이고 부단한 학습이다”고 정배군씨는 말한다. 료리사로 되기 위해 그는 칼질, 료리젓기를 날마다 몇백번씩 련습했고 몸이 녹초가 되여도 학습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료리사학습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에서 보던 색텔레비죤을 팔았고 임신한 안해가 마음에 걸렸지만 석달간 장춘에 가 있으면서 학습을 견지하여 우수한 성적을 따냈다.
그는 선후 여러차례나 장춘에 가 료리학습을 했고 음식업과 관련되는 식물학, 해부학, 화학, 영양학, 미학, 문학 등 지식을 자습하였으며 2000여가지의 료리자료를 수집정리하고 300여만자의 학습필기를 하여 료리리론을 부단히 풍부히 하였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91년, 성통일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국가특3급료리사자격증을 따냈고 1993년에는 국가특1급료리사 자격증을 때냈다. 당시 우리성에는 국가특1급료리사가 3명밖에 없었는데 그중에서 정배군씨가 제일 나젊은 사람이였다. 2004년에는 국가고급료리기술사직함을 따내였다.
정배군은 군인의 강의함과 집요함으로 료리업계에서 알아주는 명료리사로 되였을뿐만아니라 사회에 보답하는 책임감으로 료리사인재 양성에도 투혼을 불태웠다. 연변실습판점에서 3년간 료리강사로 사업하면서 100여명의 료리사를 배양하였는데 현재 이들은 연변음식업계의 중견력량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뜨르르한 호텔, 식당의 초빙유혹을 물리치고 결손으로 문을 닫을 위험에 직면한 량식술집을 맡아 새로운 아이디어로 일영업액이 만원이 넘고 일고객수가 천명이 넘는 식당으로 탈바꿈시켰다.
○ 군사박물관 방불케하는 식당
정배군씨는 군복을 벗은지 어언 20여년이 된다. 그는 부대는 퇴역군인들 마음속의 영원한 고향이라며 늘 군생활의 뜻깊었던 추억속에 빠져들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정배군씨는 퇴역군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군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병영문화를 펼쳐보일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였으며 2007년에는 드디여 음식문화와 병영문화가 접목된 "정스프군려문화쇠가마"식당을 개업하였다.
그의 식당에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식당의 독특한 장식에 놀라움을 금치못하고 있다. 식당문앞에서부터 “군려문화식당을 중국인민해방군과 전우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드린다. 우리의 자유는 군인 및 전우들의 생명과 선혈로 바꾸어온것이다”라는 글귀가 유난히 선명하게 안겨온다. 식당안의 벽과 복도에는 부대생활을 반영한 여러가지 실물, 모형, 도편과 휘장들이 배렬되여 있다. 정배군씨는 병영문화를 반영한 영상재료, 문자자료와 무기, 도형을 수집하는데만 5년간의 시간을 들였고 그것들을 수집하여 배렬하는데 무려 10여만원의 거금을 투입했다. 기념휘장만해도 200여개를 사들였고 군함모형은 4000원을 주고 구매하였다. 각 방의 명칭도 식당이름에 걸맞게 지었다. 주방은 야전주방, 취사반으로 량식창고는 탄약고로 당직실은 전투준비당직실로 이름을 달고 손님접대실은 무장경찰청, 홍군청, 팔로군청, 지원군청, 해방군청, 륙군청, 해군청, 공군청 등으로 이름을 달고 간단한 소개글까지 써붙였다. 또 방안에는 방 이름과 관련된 유명한 사건, 인물, 전투를 문자나 영상자료로 전시하였다. 례하면 홍군청에는 중국공농홍군의 장정로선도, 대도하전역, 준의회의, 수자로 보여주는 장정 등을 네벽에 전시하였다.
군영주식, 장정옥수수떡, 옹군채단자, 항련군만두, 광복이밥, 련대교자 등 료리이름에서도 병영문화가 다분히 안겨온다. 걸상도 모두 군복천이거나 위장천으로 카바를 씌웠다. 그리고 정배군씨를 비롯한 식당종업원들은 모두 군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손님을 맞을때마다 깍듯이 거수경례를 한다. 하여 이 식당을 찾는 사람마다 탄복해 마지않고 있으며 한차례 뜻깊은 애국주의 교양을 받군 한다.
"미국의 대기업가중에는 퇴역군인출신이 하버드대학출신보다 더 많다. 퇴역군인들은 군생활을 통해 강철같이 단련되였고 무슨 일을 하나 집요하게 착실하게 출충하게 해낸다"고 말하는 정배군씨는 오늘도 자신을 군인으로 생각하고 자신감있게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채춘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