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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창립60돐 기념 특별기획 60주년에 만나본 60인] - 기획보도(21)
"천하의 민심"을 얻은 친민법관
2009년 08월 26일 10:57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친민의 정으로 백성을 관심하고 동료들과 단결하며 풍부한 학식으로 법률을 해석하고 바른 행동으로 공평을 수호한다. 백성을 위하는 자가 민심을 얻고 민심을 얻은 자가 천하를 얻는다"ㅡ2008년 "중국 10대 법제인물" 주최측이 연길시법원 유성일 원장에 대한 평가

유성일(庾成日) 프로필

1962년 흑룡강성 녕안시 출생
연길시법원 원장, 중공당원, 석사
1980-1984 할빈사범대학 화학 전공
1984-1986 연변사범학교 교원
1986-1989 연길시법원 서기원, 조리심판원, 심판원 력임
1989-1997 연변조선족자치주중급인민법원 심판원
(1993-1994 중국인민대학 법률 진수)
1997-2001 연길시법원 부원장
(1998-2001 연변대학법학원 헌법/행정법 석사학위 취득)
2001-2002.10 연길시당위 상무위원, 연길시정법위원회 서기
2002.10-현재 연길시법원 원장
연변대학법학원 겸직교수, 중공연변주위 당학교 겸직교수
2007년 “감동길림10대인물”
2008년 “중국10대법제인물”

“유성일”이라고 하면 전국법원계통 사업일군들이나 네티즌들이 너무나 잘 알고있는 익숙한 이름이다. 유성일은 조선족으로 유일하게, 전국법원계통에서도 유일하게 신화넷, 인민넷, CCTV넷, 중국법원넷에서 공동주최하고 전국 네티즌들이 투표한 2008년 “전국10대법제인물”평선에서 407만 8312표로 평선된 연길시법원 원장이다.

“친민의 정으로 백성을 관심하고 동료들과 단결하며 풍부한 학식으로 법률을 해석하고 바른 행동으로 공평을 수호한다. 백성을 위하는 자가 민심을 얻고 민심을 얻은 자가 천하를 얻는다” 이는 연길시법원 유성일원장에 대한 주최측의 평가이다.

유성일원장은 드넓은 흉금과 고상한 정조로, 인성화, 인문화, 인권화의 리념, 작풍과 방식으로 인민사법의 리념을 재판실천에 관철시켜왔다.

길림성 처음으로 사무전화와 시티폰 공개한 법관

0433-258-6301(사무실전화)과 225-5001(시티폰), 이 두개 전화번호는 유성일원장이 2006년부터 사회와 군중에 공개한것이다. 전화번호를 공개한 유성일원장의 당사자들을 위한 마음은 각별하다. 북경이나 장춘 등 외지에 출장갈 때면 유성일은 시티폰을 항상 충전상태에 놓고 떠나며 돌아와서는 핸드폰에 들어와있는 수십개의 미접수전화번호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회답하여줄뿐만 아니라 법에 따라 타당하게 처리해준다.

뿐만아니라 해마다 인터넷자문과 원장메일을 리용한 100여건에 달하는 군중들의 신고에 대한 유성일원장의 답복률은 100%에 달한다.

8월 10일 오후 2시, 인터뷰예약을 하고 찾아간 기자가 본 유성일은 114복무대의 전화교환원못지 않게 전화사무에 바쁜 모습이였다.

유원장이 사무를 볼 때까지 20여분동안 기다렸다가 시작한 인터뷰는 끊길줄 모르는 전화로 하여 한시간 예정의 인터뷰시간이 2시간으로 연장되였고 그동안 10여통의 전화가 걸려들어왔다.

채무인이 자신의 명의로 등록한 자가용을 몰고다니면서도 자기한테 진 빚은 갚지 않는다는 한 당사자의 전화에 유성일원장은 인츰 해당 일군을 시켜 채무인의 정보를 확인하라고 지시할것이니 근심말라고 말하고나서 전화를 끊자마자 즉시 해당 일군을 불러 확인해보고 즉시 회보하라고 지시하였다.

비록 미세한 거동이였지만 유성일원장의 적극적인 사업심과 당사자들에 대한 배려를 보아낼수 있었다.

행정급별에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유성일원장의 프로필을 보고 유성일이 지금 맡고있는 연길시법원 원장직무가 전에 맡았던 연길시당위 상무위원과 연길시정법위원회 서기직무보다 낮다는것을 인츰 알게 될것이다. 그렇다면 유성일은 왜 전보다 더 낮은 직무에 부임됐을가? 그가 무슨 실수나 착오를 진것은 아닐가?

그런건 절대 아니다. 그는 단지 법원사업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끓어넘치는 정열을 억누르지 못해 조직에 연길시법원 원장으로 전근시켜줄것을 주동적으로 신청했던것이다.

부임하자마자 중앙을 들썽한 “천합”사건 처리

2002년 10월, 주동적으로 연길시당위 상무위원과 연길시정법위원회 서기직을 사직하고 두번에 걸쳐 여러해동안 몸담갔던 연길시법원에 원장으로 취임한 유성일앞에 놓여진것은 열렬한 환영의 박수소리가 아닌 천합무역성의 수백명 래신래방군중들의 원망에 찬 목소리였다.

600여명 업주들이 련합으로 연길시당위, 시정부, 시인대에 래신래방하였지만 시에서 해결받지 못하자 월권래신래방하여 수백명이 북경에까지 가서 천안문광장에서 프랑카드를 들고 “개발상인 사해회사는 검은 사회조직이고 공안부문은 보호산”이라고 웨쳤다. 중앙지도자들은 이에 중시를 돌리고 꼭 타당하게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부 업주들은 개발상의 집에 폭파약도 던지고 차에 뢰관도 달아매고 심지어 어떤 업주는 칼을 들고 개발상의 사무실에 뛰여들어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개발상이 남방에서 청해온 총경리는 놀라서 사무실에서 까무라쳤으며 경찰이 대신 불러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호송되였다.

“사태가 제일 위기에 처할 때쯤인 2002년 10월, 연길시법원 원장으로 부임되여온 유성일은 정치모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한테 루가 되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당지 당위, 정부와 기업의 부담을 제거해주었고 607호 업주들의 걱정을 덜어주었으며 연길시의 사회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해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당시 연길시당위 부서기이며 천합사건처리지도소조 조장이였던 현임 연길시인대 상무위원회 주임인 대충발은 감개무량하게 말한다.

연길시법원 부원장직을 떠난지 1년도 안돼 다시 법원원장으로 돌아와서 해놓은 첫일이 몇년동안이나 끌어온 이 사건이였는데 유성일로 말하면 엄청난 시련이였다. 유성일이 곧바로 해당 정, 실책임자회의를 소집하고 천합사건전문조사조를 무어 문제해결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은 607명의 업주들은 예봉을 법원에 돌리고 법원사무청사를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전문조사조에서는 낮에는 재판하고 밤에는 판결서를 작성하면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일하였다. 업주들은 연길시법원에서 하달한 입찰공고체결을 리유로 한 민사판결서를 받아들고는 돈을 받지 못하자 또다시 법원청사에 몰려들었다. 유성일원장과 해당 업무정장들은 업주들의 욕설에도, 업주들에게 목덜미를 잡혀 밀치락거리면서도 선후로 6차례의 업주간담회와 3차례의 사해회사에서의 현장사무를 보면서 백방으로 사건의 집행문제해결에 나섰다.

2003년 음력설전, 사건집행이 제일 관건적인 시각에 처해있을 때 업주들은 사해회사더러 집행금을 법원계좌에 입금하라고 요구하였으며 이래야만 다시는 북경에 래신래방가지 않겠다고 을러멨다. 하지만 이미 부분적인 자금을 업주들에게 주고 자금이 없는 사해회사를 낮은 가격으로 경매에 붙이면 사해회사는 더욱 큰 손실을 보아 파산하게 될것이고 연변주 경제발전에도 더욱 불리할것이였다. 유성일은 법원복도를 메우고 음력설전으로 집행금을 주지 않으면 법원에서 정상적인 사무를 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을러메는 업주들 앞에서 가슴을 치며 “음력설전으로 집행금을 업주들의 손에 쥐여주겠다. 만약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인책사직하겠다”고 승낙하였다. 일부 업주들은 핸드폰으로 유성일원장의 승낙을 록음하면서 꼭 언약을 지키라고 했다.

유성일원장이 사해회사에 대부금을 대신 맡아주느라 은행과 신용사에 뛰여다닌다는 소식을 접한 길림성인대 대표이며 연변위원회사 리사장인 채국군은 유성일의 대공무사한 사업작풍과 인격매력에 탄복한 나머지 사해회사의 대부금인출에 담보까지 서주었다. 2003년 9월 28일부터 2005년 2월 3일까지 세번에 나누어 634.6만원 집행금을 607호의 업주들에게 전달하였으며 전 연길시를 뒤흔들었던 래신래방사건을 조용하게 해결하였다.

원래의 사해회사는 몇년간의 분투를 거쳐 은행대부금을 전부 환납하고 이젠 3개의 분회사와 6개의 자회사에 10억원의 자산을 갖춘 인화그룹으로 성장하였으며 2008년에는 15억원을 융자하여 연길시고속도로입구에 부지면적이 45만평방메터, 건축면적이 105만평방메터되는 연길농부산물도매시장을 개발건설하였다.

몇해동안 연길시법원에서는 유성일원장의 정확한 인솔하에 여러차례나 지방 당위와 정부에서 난처해하는 중대한 집단래신래방사건을 화해시켰는바 법에 따라 무릇 법원에서 응당 나서서 조절해야 하는 범위내의 사건이면 추호의 주저도 없이 용감하게 군중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당위와 정부의 부담을 경감시켜주었다. 례를 들면 연길시택시차경영권 래신래방사건, 연변병원의 마른버짐치료중의 수은중독으로 인한 래신래방사건,100여호에서 기소한 “고려툰부동산개발”사건, 100여호가 기소한 “수상시장뷴규”사건, 수백명이 기소한 “경산중학 교수관리분규”사건, 100여명이 기소한 길림세기그룹의 집단래신래방사건, 200여명이 기소한 연길강남쇼핑센터의 래신래방사건 등 집단소송 및 집단소송사건을 처리하여 법률적효과와 사회적효과의 유기적통일을 실현하였다.

길림성법원계통에서 수많은 “제일”을 만든 사람

“나는 유성일원장이 감동길림10대인물로 평선된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왜냐 하면 그는 우리 인민법관대오중의 걸출한 대표로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권을 수호하고 사회의 공정을 수호하였기때문이다. 유성일원장은 매우 인성화, 인문화, 인권화된 리념, 작풍과 방식으로 인민사법의 리념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관철하였다.”

이는 유성일원장에게 2007년 “감동길림10대인물”상패를 수여하며 한 길림성고급인민법원 장문현원장의 평가이다.

유성일이 연길시당위 상무위원, 연길시정법위원회 서기직을 맡을 때부터 부축련계점인 건공가 연청사회구역의 1500여명의 주민들은 유성일원장이 “감동길림10대인물”후선인으로 당선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남녀로소 누구라 할것없이 자원적으로 모두 유성일원장에게 투표하였다.

1986년에 22살의 어린 나이에 연길시법원에 처음 배치받게 된 유성일은 기층법원에서 서기원, 조리심판원, 심판원 등 직을 력임하고 민사심판에 종사해오면서 매일 군중들의 질고, 불쌍한 처지와 생존상황을 너무나도 잘 료해하고있었다. 하여 기층법원에 대한 떼여버릴수 없는 정과 법원사업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안고 세번째로 법원에 전근해 원장으로 부임하게 되였다.

금년 7월 14일, 연길시법원에서는 군중들의 사법수요와 법원사업에 대한 군중들의 료해를 강화하기 위하여 길림성법원계통에서 제일 처음으로 정보화네트워크우세를 빌어 인터넷재판 생중계를 하여 전사회를 향해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며 법관들의 자질과 집법능력을 제고시켰다. 뿐만 아니라 군중들이 직관적으로 법원사업을 료해하고 사법공정을 실현하고 군중감독을 접수하였다.

연길시법원에서는 인터넷재판뿐만 아니라 법원사이트건설, 래신래방실개설, 법원사업일군 전화번호 공개, 디지털서류 개설, 양광재판 추진 등 길림성법원계통의 수많은 “제일”을 창조하였다.

연길시법원사업 전국의 앞장서 달린다

연길시법원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부에 위치한 기층법원으로서 매우 많은 특수한 면을 갖고있다. 연길시의 경제가 날따라 번영해지고 많은 외지인구가 연길시에 몰려들면서 더욱더 많은 경제분규가 뒤따르고있다.

근년래 연길시법원의 년평균사건접수수는 8000여건으로서 연변주법원계통 접수총수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연길시법원의 정식일군은 고작 110명인데 그중에서 종합부문의 일군을 제외하면 1선에서 재판, 집행에 참가하는 일군은 절반도 안된다. 하여 매인당 년평균 200건이상 재판, 집행하여야 한다. 사건접수수는 해마다 상승세를 보이고있는바 2008년에는 9000건, 금년에는 1만건을 초과할것이다. 하여 매인당 재판, 집행한 사건수는 길림성내 동급법원중에서 제일 많다. 하지만 연길시법원의 사업일군들은 견인불발의 정신과 의력으로 곤난과 싸워 이긴다. 그들의 동력은 어디서 올가? 그들은 누구라 할것없이 유성일원장의 남들과 다른 개성있는 인격매력과 전체 간부경찰들에 대한 배려라고 말한다.

하여 연길시법원은 선후로 전 성 법원 사상선전사업선진단위, 전 성 법원 정보화건설선진단위, 전 성 법원 조해사업선진단위로 평의되였으며 길림성고급인민법원으로부터 집단2등공, 최고인민법원 “인민사법”으로부터 전국응용법학연구선진단위로, 최고인민법원으로부터 전국법원법경사업선진단위로, 련속 3년간 네트워크선전선진단위로 평의되였다.

“민족법률인재 류실 안타깝다”

유성일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나라는 개혁발전의 쾌속기에 처해있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모순의 돌출기와 군중들의 래신래방 다발기에 처해있으며 사법절차를 통해 공평하게 문제를 해결받으려는 군중들의 욕망이 점점 강력해지고있다. 인민법원은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중요한 경로로서 대량의 래신래방사건이 발생하는것은 정상적이다. 조화로운 사회는 민주법치, 공평정의, 성신우애하고 활력으로 충만되고 안정하며 질서있는,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지내는 사회이다.

인민법원은 의법치국의 중심위치에 놓여있으며 각종 사회모순을 조해, 화해하고 법치진행과정을 추진하는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있으며 정확하고 적시적으로 법률수단을 리용하여 매 한건의 사건을 조해처리하는 과정에 인민을 위하는 사법의 근본리념을 확고히 수립하여야 한다. 군중들이 래신래방경로를 통해 문제를 반영하는것은 우리 법원에 대한 신임으로서 우리는 군중들의 신임과 기대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

연길시법원의 정식일군 110여명가운데서 조선족일군은 58%로서 이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있지만 여러해동안 편제수는 늘지 않고 사업량은 해마다 증가되다보니 항상 일손이 딸렸다. 하여 진정으로 민족어구사가 능통한 조선족법관이 매우 부족하다.

유성일원장은 고향에서 양성한 많은 인재 특히는 법률인재들의 외지로의 류실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하고있다며 연길시법원에서는 고향의 사법발전과 조화로운 사회발전에 기여할 인재들을 언제든지 두손 들어 환영한다고 밝혔다.

2007년 "감동길림 10대인물"로 평선된 연길시법원 유성일원장(오른쪽)과 상패를 수여하는 길림성고급법원 장문현원장(왼쪽).
  래원: 인민넷-중국공산당뉴스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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