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넷 조문판>>기획>>건국 60주년 특집>>60주년에 만난 60명
살아있는 전설…조선족의 "아라비안나이트"
[공화국창립60돐 기념 특별기획 60주년에 만나본 60인] - 기획보도(5)
2009년 05월 19일 10:31 【글자 크게 복원 작게】【메모】【프린트】【창닫기
황구연

《황구연전집》 탄생시킨 《중국3대이야기왕》 고 황구연과 수집정리자 김재권


황구연:
1909년2월 27일 한국 경기도 양주군의 한 선비가문에서 출생
어린시절 한학과 시문에 정통. 비상한 기억력과 구술력을 소유
1937년 룡정으로 이주, 광복전까지 망명생활로 중국북방지역을 전전
1945년 광복이후 룡정 팔도진 룡수평에서 농사에 종사
1983년부터 중국 민간문예가협회 회원, 《조선족민담표현예술가》칭호 수여
민답집《천생배필》《파경노》《황구연이야기집》 구술
1987년 12월 타계
1998년 중국민간문예가협회로부터 《중국3대이야기왕》으로 명명

김재권:

1938년 10월 25일 길림성 연길현 팔도구 의봉촌에서 출생
1957년 민담 《꾀돌이》 단편소설《할머니》로 문단에 데뷔
1986년부터 민담집《천생배필》《파경노》《황구연이야기집》(조,한문), 《김재권산문집》 등 30여권 출판
2005년 론문 《조선족이야기대왕 황구연》 《공화국창건 55돐 우수론문고》에 수록, 전국특등상 수상
《공화국명인록대사전》,《공화국공훈인물》등 국내 10여개 간행물에 등재
2007―2008년 민간문학이야기대전 《황구연전집》 10권 출판
룡정시문련 주석,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부주석, 현재 중국민간문예가협회 회원
문학신조:《구비문학은 모든 문학예술의 어머니다》


한사람이 1133컬레 이야기 구술 …세계서도 보기 드문 일

한사람이 1133컬레의 이야기를 구술한 일은 세계기네스기록에도 오른적 없다. 한사람이 20여년간의 수집정리를 거쳐 그 이야기들을 방대한 민간이야기집(총 10권, 1063편, 365만자, 사진 93폭, 삽화 33폭)으로 집대성한 일은 세계민간문학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3대이야기왕, 저명한 조선족민담표현예술가 황구연옹이 천재적인 기억력과 남다른 구술력으로 구술하고 수집정리자 김재권씨가 민족적인 사명감과 견인분발의 의지로 장시기에 걸쳐 집필한 민간이야기대전 《황구연전집》은 고금중외 전설과 신화, 력사이야기, 명인이야기, 이민사, 향토이야기, 우스운 이야기, 속담 등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세계로 명전 《아라비안나이트》와 어깨를 겨루고있다.

《황구연전집》은 올해초 국가신문출판서에서 주최하는 제2기《3가지100》원작출판공정에서 국가급원작도서로 선정되여 표창받았다. 중국의 최고 연구기구와 중국과학원, 사회과학원, 북경대학 등 고등학교 저명한 전문가, 원사들의 론증과 토의를 거쳐 전국 1008종 추천도서중 인문사회과학류, 문예와 어린이류, 과학기술류 3종류에100부씩 선정하는 프로젝트에서 인문사회과학류에 입선됨으로써《황구연전집》은 국가차원에서 그 가치를 충분히 긍정받았다. 이로 하여 구술자 황구연옹과 수집정리자 김재권씨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날로 커지고있다.

김재권씨를 모시고 조선족1세대 구술자와 2세대 수집정리자의 합작으로 된 민간이야기대전 《황구연전집》의 탄생경위를 듣노라니 말그대로 전설같은 일화들로 엮어진 생생한 다큐멘터리가 아닐수 없었다.

두세대 민간문학가의 해후…"하토에 묻혀사는 늙은이"를 스승으로 모시다

1983년 7월 당시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부주석이며 룡정시문련 주석이였던 김재권씨는 항간에 묻힌 민간문예보물을 발굴하기 위해 마을마다 참빗질하며 답사하던중 팔도진 룡수평촌에 "황대포"라는 별명을 가진 대단한 이야기군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였다. 한달음에 찾아뵌즉 흰저고리에 검은색조끼를 받쳐입은 황구연로인의 형형한 눈빛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김재권씨는 후대들에게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가르치려 해도 교과서마저 없는 현실을 강조하면서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에 대해 가르침 받고저 찾아왔다"고 실토하였다.

"하토에 묻혀사는 늙은이 뭘 안다고 찾아왔습니까. 옛말은 거짓말이라 하고 옛말군은 《대포쟁이》《잡귀신》으로 몰리는 판인데… "워낙 황구연옹은 문화혁명시기 이야기덕에 "잡귀신"으로 몰려 투쟁받고 이야기라 하면 아예 입도 벙긋하지 않고 계셨다.

김재권씨는 개혁개방후 나라의 민간문예방침을 낱낱이 설명해드리면서 이젠 민간문예가를 받들어모실 때가 왔다고, 자기도 잡귀신으로 몰려 비판받은적 있다며 자신을 "제자로 받아주십사"하고 넙죽 큰절을 올렸다. 황구연옹도 얼떨결에 맞절로 답례하였다.

황옹의 말문을 열기 위해 김재권씨는 단군시조로부터 력대 임금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추리면서 력사사실에 맞는지 시정을 부탁드렸다. 황옹은 "오랜만에 진짜 말동무를 만났다"고 무릎을 철썩 치더니 "나라에서 옛말을 중시하고 또 선생님이 이렇게 찾아까지 오셨는데. 하기야 내가 그 옛말들을 관속에 갖고가겠습니까?"라고 하는것이였다.

이윽고 황옹은 청동화로를 가까이 끄당겨놓고 부저갈로 화로재를 휘휘 젓더니 이야기물고를 터치우기 시작하였다. 때는 7월 염천이라 화로엔 재불 한점 없었지만 황옹이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하던 습관이였던것이다. 낮에 밤을 이어 이야기주머니를 풀어내는데 련 7일동안 100여컬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갖고간 록음테이프가 모자라 사람을 띄워 더 사오고 듣고 쓰고 하면서 수록하기에도 비지땀이 났다.

황옹의 이야기는 한건도 중복되는것이 없었고 고문이면 고문, 일본어면 일본어,시조에 판소리까지 곁들여가며 이야기를 구사해가는데 그 비상한 기억력과 생동한 구술력, 완벽한 이야기짜임새에 실로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올방자를 틀고앉아 하얀 수염발을 쓰다듬으며 이야기하는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날아내린 신선도사를 방불케 하였다.

리조 황희정승의 22대손…

이 신비한 정체의 황옹은 누구일가? 김재권씨는 그의 당안까지 펼쳐보았다. 1909년 2월 한국 경기도 한 선비가문에서 태여난 황옹은 리조초기 이름난 황희정승의 22대 손이였다. 다섯살에 천자문을 뗐고 일곱살부터 서당에서 10년간 한학을 배웠는데 론어, 맹자, 주역, 사서오경 모두를 읽었다. 아홉살부터 임진강선비시회에 동참하여 "장원"으로 불린 신동이였다. 당시 리련이라는 서당훈장이 글공부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린 황구연의 마음에 이야기씨앗을 심어주었다.

신학교육을 받으면서 항일학생운동을 지지하다 퇴학당하고 1931년 서울농업학교를 나와 고향에서 농업기사로 근무하였다. 1937년 일제의 만행에 불복하여 처자를 남겨두고 룡정에 와 발을 붙였다. 일본경찰들과 순사들의 행패질을 목격한 그는 자신이 경찰이 되여 불쌍한 사람들을 지켜주고싶었다. 하여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3개월만에 투도파출소 소장으로 임명되였다. 그러나 투도로 가는 도중 일제의 개가 되는것이 싫어 그는 임명장을 찢어버리고 망명의 길에 올랐다.

그후 흑룡강일대를 전전하며 세간의 풍운사를 몸소 겪었고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들려주면서 이야기풍토를 넓혔다. 광복을 맞게 되자 그는 처자(1939년에 이주)가 자리잡고있는 룡수평으로 돌아왔다. 이 땅의 떳떳한 주인으로 해방된 그는 학식있는 농업전문가로, 룡수평의 구공량대표로, 토지개혁의 주력으로 되였다. 당시 마을사람들은 늘 그를 둘러싸고 생활세태담과 , 항일영웅이야기, 이민사에 대해 귀를 기울이군 하였다.

김재권씨는 황옹과의 첫 만남에 이어 26차나 단독방문하고 또 연변민간문예가협회 성원들과 함께 동행하면서 무려 5년간 1133컬레의 이야기를 채록하였다. 황옹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포섭범위가 광범하였다. 철학, 문학, 의학, 농학, 언어학, 민속학, 풍수설 할것 없이 다방면이였다. 게다가 이야기성이 강하고 인물형상이 뚜렷하여 구전문학으로서의 독특한 풍격을 구비했을뿐만 아니라 자기의 독특한 예술풍격을 구현하였다.

1986년 김재권씨는 그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첫 민담집 "천생배필"을 출판하였다. 그러던 1987년 7월 의 어느 하루 자리에 몸져누운 황옹은 띄염띄염 말씀을 이어나갔다. "난 시간이 많지 못한 사람입니다. 누룽지를 긁자면 아직 멀었는데… 후대들에게 천경지땅을 물려주기 보다 한권의 책을 남겨주는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해 12월15일 황구연옹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산자리는 그가 미리 잡아놓은 풍수좋은 곳에 정해졌다. 이듬해 9월 중국민간문예가협회 길림분회와 연변민간문예가협회에서는 "민담표현예술가 황구연의 묘"라고 쓴 대리석으로 된 비석을 묘지에 세워 그의 업적을 기리였다.

황옹은 갔으나 그이가 남긴 이야기는 육성테이프와 서면자료로 김재권씨의 신변에 키높게 남아있었다. 김재권씨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고 정리사업을 이어가려니 황옹의 부재로 력사적인 고증에 어려움만 컸다. 그는 옥편이며 력사책을 옆에 쌓아놓고 한자, 한건 출처까지 일일이 확인하면서 정확한 증실에 왼심을 썼다.

그리하여1989년 박창묵씨와의 합작으로 두번째 민담집 《파경노》를, 1990년에는 민간문예가협회 박찬구전임주석과의 합작으로 세번째 민담집《황구연이야기집》을 조한문으로 펴냈다. 한문으로 된 《황구연이야기집》이 출판되면서 중국문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였다.

황옹은 생전 주, 성의 민간문예가협회 회원으로서 저명한《민담구연표현예술가》의 영예를 지녔고 고인된 후에는 중국민간문예가협회로부터《중국3대이야기왕》(1998년)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김재권씨 또한 황구연에 대한 연구에 심입하여 황구연의 생애와 민담표현예술에 관한 론문을 집필하였는데 이 론문은 《건국 55돐 기념우수론문문고》에 등재되였고 전국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이로써 황구연이야기는 리론체계를 확립하였고 또다시 그 가치를 확인하였다. 하지만 방대한 규모의 이야기책 출판은 여전히 자금문제로 미결이였다.

굽이굽이 열두고개 넘어 고인의 령전에 바친 제물

1994년부터 김재권씨는 내부퇴직을 하면서《룡정한글독서사》를 비롯한 한글독서사 확장사업과 력사유적발굴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해나갔다. 이 역시 우리 글, 우리 문화, 우리 력사 지키기 일환으로서 그의 평생의 념원이기도 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한글독서사만도 연변내에 20여개로 늘어났다. 보다 많은 후대들이 자기 민족 언어문자로 된 책을 읽으면서 자기 민족 문화와 력사를 알고 미래를 개척하는데 기여할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것에 얼마간 시름이 놓였지만 못다한 황구연이야기출판때문에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였다.

그러던 2002년말에 성민간문예가협회에서 출판자금을 마련할 대책을 강구하면서 정리사업을 다그칠것을 부탁하였다. 그는 룡정한글독서사 법인대표를 포함하여 12가지 사회직무를 몽땅 벗어버리고 정리사업에 혼심을 쏟아부었다. 허나 2년이 지나도록 출판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막연하게나마 소식을 기다리고있을 때 외국에서 거액의 계약금을 내걸고 합동출판에 의향을 내비쳤다. 그러나 자기 나라의 문화주권을 돈받고 외국에 판다는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맘때 관내의 한 출판사에서 10만원만 내고 자비출판을 하라고 우대책을 내놓았다. 경제적으로는 부담이 있지만 판권을 자국의것으로 지켜낼수 있는 조건이 마음에 들어 대뜸 계약까지 맺었다.

하지만 돈 10만원을 어디서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그가 평생토록 민족문화사업에 일체를 헌신해오는것을 지켜본 지기며 동사자들이 몇만원씩 지원도, 선대도 하면서 출판자금을 보태주었다.

그럭저럭 출판자금이 모아지고 준비가 따라서는데 그가 15년동안 경영해오던 룡정한글독서사관사를 두고 소송안이 발생하여 한글독서사는 살려냈지만 3년간 소송에서 돈 10만원이 가랑잎처럼 흩어지고말았다.

불행중 다행으로 연변에서의 출판이 가능하게 될것이란다. 연변 문련과 민간문예가협회에서 줄곧 이 사업을 중시하여 주당위 등개서기까지 동원되였는데 출판자금은 문제없을것이라는것이다. 긴감인가 했던 일이 과연 현시로 되였다.김재권씨는 2006년 12월 8일 연변인민출판사와 드디여 출판계약서를 쓰게 되였다.

그날부터 수개단계에 들어간 그는 밤에 낮을 이어 365만자 원고를 세번이상 심열하면서 악전고투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과로로 그는 그만 뇌혈전에 걸려 쓰러지고말았다. 그 순간에도 그는 황구연전집을 출판하기 전에는 죽을수도 없고 죽어서도 안된다고 강다짐하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원고수정을 마쳤다.

드디여 2008년초까지 한해사이 구전문학《황구연전집》10권이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완간되였다. 그 사이 어느덧 고래희를 맞은 김재권씨는 갓 출판된 묵향이 짙은 《황구연전집》을 받들어안고 고인된 황옹의 령전에 나섰다. "선생님, 인제야 숙제를 완성해 죄송합니다. 늦게나마 큰책이 나왔습니다"

"매몰될번한 귀중한 유산이 볕을 보았습니다"

그는 "가시나무"라는 필명을 즐겨쓴다.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민족문화동산을 지키는 꼬부랑 가시나무가 된다"는 뜻이란다.

《황구연전집》의 출판과 더불어 연변주당위 등개서기는 민간문학의 외길을 억척스레 걸어온 그를 특별히 두차례 만나 뜨겁게 손잡고 격려하였다. "김선생님께서는 정말 큰일을 해내셨습니다. 기나긴 세월동안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수집정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귀중한 조선족문화유산이 드디여 빛을 뿌리게 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황구연전집은 볕을 보지 못한채 매몰될번 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다만 수록자일뿐입니다. 만약 저의 노력으로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렇게 답하는 순간 그는 평생 민족문학의 한길을 드팀없이, 벅차게 걸어온 자신의 노력에 긍지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항일무장투쟁에 나선 아버지께서 일제의 무기를 탈취하다 군견에게 물려 세상뜨면서 나어린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을 그는 어릴적부터 가슴깊이 아로새겼다. "자기 민족의 말과 글을 잊어서는 절대 안된다. 근본을 절대 잊지 말어라. 근본을 모르는 사람이나 민족은 뿌리없는 나무와 같느니라"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모진 가난속에 살아온 그는 소학교문을 나와 농사일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배우기에 열중하였다. 농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글로 옮기려는 충동을 느껴 1957년 민담 《꾀돌이》를 써내고 문단에 데뷔하였다. 1963년에는 독학으로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전업에 입학하고 나중에 문학예술반공부까지 하면서 문학수양을 높였다. 한낱 농군으로부터 서점직원, 문화소 소장, 문련주석, 민간문예가협회 주석으로 성장해오면서 글농사를 계속하여 민담집을 비롯한 소설, 동요동시집, 《김재권산문집》 등 30여권을 출판하였다.

민담집 《천생배필》《파경노》등은 연변주 진달래문예상, 길림성정부 장백산문예상을 수상하였고 각종 문학상 50여차 수상하였다. 《황구연전집》또한 국가급원작도서로 선정되여 조선족민간문학사에서 획기적인 한획을 그었다.

김재권은 "구비문학은 민족의 력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민족문화예술의 어머니입니다. 황구연전집의 출판은 저의 사명이며 운명이였습니다"라고 강조한다.

연변대학 김관웅문학박사는 "김재권선생은 자신의 일생의 지혜와 정력을 황구연이야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데 바쳐 중국 조선족문단은 물론 중국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 주목하는 민간문학의 귀중한 유산을 인류에게 선물했다"고 평하고있다.

김재권
  래원: 인민넷-중국공산당뉴스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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